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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의 통치와 그 본색(로마교단의 실체) /김장진 교수

by 【고동엽】 2021. 11. 17.
로마 교황의 통치와 그 본색
목 차
- 시작하면서 -
I. 로마 카톨릭 교회 및 교황의 명칭 이해
Ⅱ. 로마 카톨릭 교회의 기원과 본질
Ⅲ. 로마 교황의 통치
Ⅳ. 로마 교황의 본색
- 맺는 말 -


김장진 (고려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시작하면서-


기독교의 범주에는 참 기독교(Biblical Christinity),
유사 기독교(Pseudo Christianity) 및 기독교적 이단(Heresies)이 포함된다.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로마를 거쳐 전 세계에 편만한 세계적 종교이며,
수 천년동안 생명을 가지고 있는 전 세기적인 역사 종교이다.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는
① 로마 카톨릭 교회(The Roman Catholic Church)
② 헬라 정 교회(The Orthodox Eastern Church) 및
③ 프로테스탄트 교회들(A Number of Protestant Churches)로 지류를 형성하며,
각종 이단들이 썩여 있다.
종교개혁의 주 대상으로서 로마 카톨릭에 대한 이해가 참된 기독교 운동에 필요하다.
또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장 중심된 위치를 차지하며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행세하는
로마 교황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곤란하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본질과 교황의 통치에 관련된 사항을 간략히 논해 보고자 한다.





I. 로마 카톨릭 교회 및 교황의 명칭 이해


1. “로마 카톨릭 교회”란 명칭의 의미


로마 카톨릭 교회는 우리나라에서 天主敎라고 부른다.
그 전에서는 天主學, 天學, 서교(西敎), 서학(西學) 이라고도 하였다.

[ 한국에서 천주교라고 한 것은
마태오리치의 “天主實義”(De Deo Verax Dispuratio)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이는 카톨릭이란 개념과는 전혀 무관하다.
“하느님”의 개념에 중점을 두어 천주교라고 하였다.
서학이란 서양의 학문을 나타내며, 동학은 이에 대칭 되는 개념이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The Roman Catholic Church), “로마교”(Romanism)라고도 하는
이 명칭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본래 “카톨릭 교회”(Catholic Church)란
보편적 교회 혹은 우주적 교회란 의미로서 아주 고귀한 이름인데,
여기에 수식의 “로마”(Roman)라는 말이 붙은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종교개혁 이후에 붙여진 역사적 산물이다.
참된 우주적 교회가 아닌 로마에만 국한된 유사 기독교임을 드러내는 말이며,
심지어 로마교라고 할 때는
진정한 기독교와 상관없이 고대 로마 종교의 영향을 받은 교회라는 비하의 의미가 있다.
카톨릭(Catholic)이란 말은
헬라어 카톨리코스에서 유래한 말로 보편적, 우주적이란 뜻이다.

AD 110-115년에 이그나티우스(Ignatius)가 처음 사용한 단어로써
156년경 서머나의 순교자 폴리갑은
모든 믿는 신자를 “거룩한 우주적 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라고 하였다.
카톨릭 교회란 명칭이 사용되는 의미는
① 지역 기독 신자의 공동체와 구별된 우주적 교회
즉,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 의하여 믿어질 교회의 신앙
(the doctrine believed, every where, always, and by all=Vincentian Canon)을 말한다.
② 이단 사설 혹은 분리주의로부터 구별된 정통(Orthodox)의 개념이다.
③ 1054년 동서 교회가 분리되기 이전의 우주적 교회(Undivided Church)를 나타내는데,
동 교회는 “정통적”(Orthodox), 서 교회는 “우주적”(Catholic)이란 말을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영국의 프로테스탄트는
종교개혁의 대상인 교황권의 교회를 “로마에 국한된 카톨릭 교회”란 의미로서
로마(Roman)라는 형용사를 사용하였다.
이는 제한적인 의미이며, 비판적인 의도에서 사용한 것이다.
말하자면 “로마 카톨릭 교회”란
폴리갑이 사용했던 보편적 우주적 교회의 개념과 거리가 먼
“교황에 의한 로마로부터 다스려지는 기독교의 "가르침, 조직, 신앙 및 제의 일체"
(the body of Christendom ruled from Rome by the pope)
를 나타내는 제한적인 의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카톨릭 교회(Uniate Catholics)는 초대 교회부터 있어 왔으나
로마 카톨릭 교회(The Roman Catholic Church)는
종교 개혁 이후에 시작된 교파(Denomination)에 불과한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고대 공교회와 구별되는 제한적인 개념이다.

Roman Catholic에서
로마(Roman)는 특별의(special) 뜻이고, 카톨릭(Catholic)이란 보편의(universal) 뜻이 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신앙으로 볼 때,
그들이 말하는 조직적 의미의 보편적 교회란 주장은 잘 못되었다.
그들에게 보편적 교회란 말이 불가했기에,
개신교에서 로마에 국한된 자기들만의 보편 교회란 의미로 로마 카톨릭이라 부르게 되었다.


2. "교황"이란 명칭의 의미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최고의 지위를 자랑하는 교황이란 말은
영어권에서는 Pope 또는 Pontiff라 부르는데, 특별한 뜻을 가지고 있다.



(1) Pope(교황)
라틴어의 파파(Papa)는 헬라어의 파파스(παπ??)에서 나온 말로
아버지(father)라는 뜻이다.
로마 감독 실리기오(Siricius, 38대 교황/384-398)가
공문서에 직권으로 Papa를 사용한 적이 있으며,
그후 로마 감독 레오1세( Leo I,45대 교황/440-461)를 부를 때 사용했다.
본래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에게 부여되었으나,
서방 교회의 감독에게도 부여되었다.
그러다가 로마의 감독에 국한시켜 사용하게 되었다.
사악한 황제로 알려진 동로마제국 황제 포카스(Pochas/602-610)가
A. D 604년에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64대 교황/590-604) 에게 사용하였으나
그레고리우스1세는 교황이란 칭호를 거절하였고,
대신 자신을 “하나님의 종들 중의 종”이라 불러주길 원했다.
물론 다른 이에게는 이 칭호를 허락지 않음으로 사실상의 교황권을 행사하였다.
본격적으로 A. D 607년 보니파시오 3세(Bonifatius III,66대 교황/ 607.2-11)부터
로마의 감독을 지칭하는 칭호로 사용되었고,
그레고리 7세(Gregorius VII,157대 교황/1073-1085)에 의하여 주도된,
1073년의 로마공의회는
로마의 감독 외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사용치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의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 시니라”(마23:9)는 말씀과 정면 배치된다.
교황이란 명칭은 참으로 비성경적이다.



(2) Pontiff(교황)
Pontiff(Supreme pontiff)는 다리(pons)와 만드는 자(facio)의 합성어로서
“다리를 놓는 자"(bridge builder)란 말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라는 뜻이다.
본래 로마에 있던 이교(paganism)들이 사용하던 용어를
로마 카톨릭의 수장에게 적용한 것이다.
구약 시대의 개념이 원용되었다.
구약의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의 중간에 서서 속죄 제사를 드렸는데
그의 직위를 교황에게 적용하였다.
교황은 연옥(purgatory)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
교황은 인간의 영혼을 천국에 보내기도 하고,
무한정으로 고통을 받게 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의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교황직(papacy. pontificate)의 수행은 천주교회의 구원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고 밝히고 있다.
교황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 of Christ)로 격상시켜 중보자의 위치에 올린 것은
완전히 비 성경적이다.
교황이란 명칭은 통상적으로 부르는 이름이지만
그의 직위에 관련되어 사용되는 칭호가 많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교황의 공식 직위는
① 이 지상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떠맡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
② 국제적인 입장에서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
③ 로마의 주교
등으로 알려져 있다(박도식 저 카톨릭 교리사전 15p).
그러나 1983년도의 교황청 연감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264대/1978-2005) 밑에
무려 9개의 명칭을 나열하였다.
즉 ① 그리스도의 대리자(큰 활자) ② 로마의 주교(중간 활자). ③ 으뜸 사도의 후계자
④ 전교회의 대사제 ⑤ 서구의 총대주교 ⑥ 이탈리아의 수석주교
⑦ 로마 관구의 수석 대주교 ⑧ 바티칸 市國의 元首 ⑨ 하나님의 종중의 종이다.

[ 바티칸 시국(市國)의 원수직은 가장 늦게 생긴 것으로 그의 정치적 직위를 말해 준다.
이 직위는1929년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와의 정교 조약(政敎條約)을 통해 바티칸 국가가 창설됨으로써
교황에게 주어졌다.]
로마 교황은 선출직이다.
[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교황 선거장인 콘클라베에서 투표하여
⅔이상 득점을 한자가 교황으로 당선된다.
그때 콘클라베 (Conclave: 자물쇠가 채워진 방)에서 흰 연기를 뿜어내어 선출을 알리게 된다.
전 세계 8억 카톨릭의 슈퍼스타가 탄생되는 순간이다.
이후에 그는 자연인이 아닌 신의 지위로 의인화된다. ]
로마 교황은 추기경들이 선출한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새로 선출된 교황의 대관식(Cornation)에는 3중관(the tiara)이 씌워지면서,
집전 추기경은 교황의 종교적 위상을 나타내는 다음의 선언을 한다.
“삼중관을 받으소서.
당신은 이제
왕자와 왕들의 아버지시오, 세계의 통치자시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심을
아시옵소서”
(Receive the tiara adorned with three crowns
and know that thou art
the Father of princes and kings. Ruler of the world.
the Vicar of our savour Jesus Christ :
National Catholic Almanace).



삼중관을 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교황은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삼중권(삼중 권세)을 받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통치하는 왕 중의 왕이요,
그리스도의 대리자임을 공인하고 따르게 된다.
천주교의 뉴욕 교리문답서(The New York Catechism)는 교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육하며 절대적 신앙을 강요하고 있다.
즉 “교황은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하신다.…
신적인 권위로 교황은 모든 성도, 사목, 개인의 신앙과 도덕에 있어서
우월하고 충만한 권세를 가지신다.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대리자시오, 온 교회의 머리시며,
모든 크리스챤의 아버지시요, 스승이시다.
무오한 통치자시요, 교리의 창안자이시며, 모든 종교회의의 주재시요 심판자이시다.
하늘과 땅의 최고 심판자요, 모든 것의 심판자시다.
다른 이가 아닌 지상에 계신 하나님 자신에 의한 심판이 이뤄지신다”고 하였다.
이런 표현은 로마 카톨릭에서 교황을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의 열쇠를 준 수제자 베드로의 후계자로 확신한다는 증거이다.
교회의 모든 권한을 한 손에 쥐고 있으며,
세계 교회를 통치하는 황제의 지위에 있음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사명을 교도권, 사목권, 사제권으로 분류하고,
그 세 가지 사명을 교황이 이루어 간다고 생각한다.
로마 카톨릭은 교황의 명칭에 성하(the Holy Father 혹은 His Holiness)라는 말을 붙이며,
하나님과 대등한 지위를 부여한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이름으로 예수님의 권세를 대신 행사하는 것이다.
구속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고유한 사역이다.
로마 교황이 어찌 그 자리를 차지하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교회를 한 사람의 기초위에 세웠다는 말인가?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Christ's Vicar on the earth)는 성령(The Holy Spirit)이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고 하셨다.
개혁자들은 이렇게 비성경적인 교황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 루터와 칼빈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되심을 성경에서 발견하고,
로마의 교황을 적그리스도(Pope as the Antichrist)로 인식하였다.
그리스도의 대리자(The Vicar of Christ)요 하나님의 다음가는 섭정자(vice-regent of God)로서
교황의 우주적, 총체적 권세의 주장은,
인류역사상 발견된 가장 큰 사기꾼이요 기만자가 교황임을 말한다고
뵈터너(Loraine Boettner) 교수는 지적하였다(Roman Catholicism p.129).]
그럼에도 로마 교황의 지위는 철옹성처럼 흔들리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교황은 전 세계의 천주교인은 물론 추기경까지
그의 발에 입 맞추고 배알하게 하는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다.
교황의 바로 신적 지위와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다. ]





Ⅱ. 로마 카톨릭 교회의 기원과 본질


1. 로마 카톨릭 교회의 기원


종교개혁 이전의 중세 교회의 실체로서
서방 교회(Western Church), 혹은 라틴 교회( Latin Church)라고도 부르는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 기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두 가지 설명이 있다.



(1) 로마서의 수신 교회인 “로마의 교회”가 로마 카톨릭의 모체라는 설명
바울의 로마서는 그의 제3차 선교 여정이 끝날 무렵
고린도에서 기록되었다(행18:23-21:14 ;롬15:19; 행20:3-6 :A. D58년경).
사도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기록이 없는 로마 교회이지만
그 당시에 이미 명성을 날리며 사도들에게 기쁨을 주는 교회였다(롬1:8;롬16:3,19).
바울 사도가 로마에 가까이 왔을 때(이탈리야 반도의 보디올에 입항)
로마 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열렬히 영접하였다(행28:14-16)

[ 행28:15의 “맞으려 오니”(헬 : 아판테씬)이란 말은
어떤 도시의 대표단이나 왕 또는 개선장군을 맞이할 때 쓰는 말이다.
그들은 바울을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도요,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영접했던 것이다. ]
여기 성도들은 누구였는가? 누가 이 교회를 설립하였단 말인가?
①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가 설립했다는 설(행2:10, 41)과
② 베드로가 설립했다는 설(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적 입장)과
[ A.D 42년경 베드로가 로마를 방문 20-25년 간 사역하다가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다는 전승에 근거하나 증명할 만할 문서가 없다. ]
③ 바울이 개종시킨 사람들이 세웠다는 설(롬16:3-16;행11:19;행18:2-3)이 있다.
로마서가 쓰여질 무렵의 로마 교회는 큰 교회가 아니었으나,
네로 황제(재위/54-68)의 기독교 박해 당시에 순교자가 “엄청난 군중”이라는
클레멘트(1세기 말의 로마의 감독)의 서신을 미루어 볼 때
로마의 교회는 급성장을 하고, 크게 부흥했음을 알 수 있다.
네로의 박해(A. D64)이후에 박해가 절정에 달했던,
디오클레디안(Diocletian/284-305), 갈레리우스(Galerius/305-311)황제시대까지
로마의 교회는 지하 카타콤으로 잠적하였는데
4세기 초에는 전 로마 인구의 5분의 1이 크리스찬이 되어 있었다

[ 약 10세대의 카타콤 교회는 1세대당 17만 5천 내지 40만 명 정도가 지하에 매장되었다고
교회 사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한 콘스탄틴 대제 (Constantino The Great/306-337)에 의한
밀란 칙령(Edict of Milan : A. D 313)으로 교회의 공식 박해가 종식되면서
로마의 교회는 로마제국의 중심 교회로 등장하게 되었다.]
지중해 연안의 중심지이며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위치한
로마제국내의 중심 교회로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콘스탄틴 대제의 신 로마(New Rome) 건설로 331년, 수도의 콘스탄티노플 천도,
395년, 동, 서 로마의 분열, 야만족의 침입의 혼란 속에서, 476년 서로마가 멸망했는데도,
오히려 로마 교회는 그 영적 권위가 강화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동로마의 동방 교회와 별도로
로마의 주교(Bishop of Rome) 제도가 강화되고
베드로의 사도권계승과 전통의 강조,
그리고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와
발렌티니아누스 2세(황제/372-395)의 로마 주교의 교리적 우월권 선포등으로
순수한 사도적 로마 교회에서 제국적 로마 카톨릭 교회로 비대해지며
변질되었다는 설명이다.



(2)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도 베드로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설립자라는 설명
로마에서 강력한 교회국가 형태(The State of church)인 로마 카톨릭 체제가 세워졌지만
그 배후에 사도 베드로의 권위를 업고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정통성과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레오1세(Leo 1, St 45대 교황/440~461)가 주장한 내용이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지상의 교회를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받았으며
그 권위는 로마의 주교인 소위 교황에게 계승되었다는 설명이다.
[ 마16:18-19절 말씀을 근거로 내세운다.
즉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제자의 신앙고백에
예수님이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
그러나 성경을 아는 크리스찬은 그 누구도 이러한 억지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
로마 교황권의 근거로 제시한 마16장의 해석의 차이에서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이다.
[ 마16:18의 “이 반석 위에”란 말씀은
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만날 수 없는 다리이다.
이 반석에 대하여
① 반석이 그리스도라는 설(Augustine Luther)… 지지를 못 얻음 (롬9 : 33, 고전 10 : 4)
② 교회의 기초요 주권자 (천국 열쇠 소유자)로서의 베드로가 반석이라는 설…
로마 카톨릭의 정설이지만 비 성경적임(갈 2 : 14, 고전 3 : 11, 엡 2 : 20, 마 16 : 23)
③ 이 반석은 베드로의 인격을 가리키면서 그의 신앙고백에 관계된다는 정설이 있다.
반석이란 아람어(The Aramic)로 게바(Cephas : Stone)이고
헬라어(The greek)로 베드로(Peter : rock)이므로 같은 말이다.
시몬 베드로를 지칭하면서 그가 고백한 신앙고백을 관련시켜 반석이라 했음을
많은 주경학자들은 주장한다.
알렌(Allen)이 마태복음 16장 18절을
“너의 이름은 페트로스(베드로)라, 그리고 네가 고백한 진리는 페트라(반석)라
내가 그 (페트라)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고 풀이했는데 지지할만하다.
그리고 마16:19의 “천국 열쇠”도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교회 수장권이 아니라
“사도직을 맡은 재확인”임을 알아야 한다.]
베드로는 주님의 구원 역사에 부름 받아 쓰임 받은 도구이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초대 교황은 결코 못되는 것이다.

[ 교회의 주권은 그리스도에게 있다. 그 권한은 사람을 통하여 역사 하신다.
그 청지기의 직무는 주님이 세우는 자에게 주어진다(엡2:20;요20:23;마18:18;마6:12).
로마의 교회가 이방인의 풍속에 동화되고, 세속적인 교권의 강화 과정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가 형성되고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로마 제국의
정치적 중심이요, 라틴어 문화권의 중심지인 로마의 교회는
서양에서의 유일한 사도적 교회(only apostolic church in the west)로 자처하며,
야만인들의 개종 이후 소위, 기독교적 공동체가 세워 지면서
세속 권세와 연합한 강력한 교권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 Roman Empire ;
established( 27 B. C.) by Augustus, succeeding the Roman Republic,
divided(395 A. D.) by Theodosius into the Eastern Roman Empire &
Western Roman Empire which was overthrown by the Ohio Odoacer in 476 ]
서방 교회는 로마 자체의 이방 풍속과 게르만 민족의 잡다한 의식과 이질적 요인들이
혼합되어 독특한 종교로서 발달하였다.



2. 로마 카톨릭 교회의 본질과 교황의 위상


로마 교회는 세속 사회를 포함하는 교회이다.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751-843)시대에
교황 그레고리오 4세 (Gregorius IV, 101대 교황/827-844)에 의하여
“세상은 두 권세에 의하여 통치된다.”
“(This world is ruled by two powers ; Duo sunt quibus hic mundus regitur)”
고 선포되었고,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157대 교황/1073-1085)의 개혁(Gregorian reform)때부터
세상 권세와의 강한 결집력을 이루는 가운데
심지어 "교황은 왕 중 왕의 지위를 가진다."(de jure superiority over kings and emperors)

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교황권(pontifical power)의 강화를 위하여
세금을 징수하였으며, 종교재판(Inquisition) 제도가 형성되었고,
교황 칙서(敎皇 勅書; papal decretals= The Decretum of Gratian)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교회는 사회의 조직체이므로 반드시 통치하는 머리가 필요한데
보이지 않는 머리는 그리스도요, 보이는 유형적 머리는 교황“
(“Vicar of Christ, the Pope is a visible head,
Christian invisible head of the social body.....The Church was social body,
and therefore had a head, an invisible head, Christ, and a visible head, the pope”)
이라고 주장하였다.
교회의 피라미드 체계
(Body-Head Scheme...
monarchic pyramidal vision of the Church :the Bull Unam Sanctam of BonifaceⅧ)
의 구축으로
교황은 의인화(personification)되고 대표화(representation)되면서,
마침내 교회의 축소판(epitome of the Church)으로 간주되었다.
그의 가르침에 유의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교황의 무오성(Infallibility)교리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1150년 이후에는
하늘의 신비의 변형으로서 성례(Sacraments)와 전례(liturgical)를
교회의 생명으로 혹은 교회 그 자체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곧 구원이라는 생각이 지배하면서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
(The Church is salvation, and there is no salvation outside of it)
는 주장이 퍼지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의 교회관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교회는 외형적, 유형적 통일체이다.
교부들이 이해한 보편적 교회관 즉 우주적 교회란
그리스도 교회의 참된 지 교회를 포함하며, 외형적 유형적 통일체로 결속되어 있다
(Catholic Church as comprehending all true branches of the Church of Christ,

and as bound together in external and visible unity)는 교회관을 그대로 채택한다.
그리고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교회는 세례를 받고 동일 교리의 신앙고백을 하고, 동일 성례에 참여하며,
한 사람의 유형적인 元首 敎皇아래 있는
합법적 성직자들의 치리를 받는 모든 신자들의 집합이다”

[ The Congregation of all the Faithful, who,
being baptized, profess the same faith, partake of the same sacraments, and
are governed by their lawful pastors, under one visible head on earth. ]
로마 교회는 교회의 유형성(Visibility)을
말씀의 성육신(Incarnation of the Divine Word)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 말씀은 사람들의 영혼을 통해서 전승되지 못하고,
사람 중의 한사람(a man among men)을 통하여 계승된다.
여러 가지 현상의 조화 속에 성육신은
유형적 인간 매체(a visible human medium)를 통하여 사역을 집행하는데
교회는 바로 성육신의 지속(Continuation of the Incarnation)이라는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자신께서 사도들을 임명함으로서 교회의 조직을 하셨으며
사도 중에서 베드로를 택하여 사도들의 머리로 삼았다고 설명하면서
교황권의 원천을 그리스도에게서 찾고 있다.
교회의 주교들(Bishops)은 사도들의 일반적 계승자들이고,
교황(Pope)은 베드로의 후계자(Successors of Peter)로 생각한다.
따라서 교황은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권위(direct and absolute authority)를 가지고,
일반 주교들은 교황으로부터 위임된 제한적 권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 한사람 교황을 정점으로
신자들이 유기적 통일체를 이루는 외형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2) 교회는 교훈 하는 교회와 신앙하는 교회로 구분된다.
외형적 교회를 강조한 결과 자연적으로 성도를 계급화 시키고 있다.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교직자 계급
(consists of the whole clericus, with the pope at its head, who rule, teach and edify)과
그들의 가르침을 받고 치리를 받으며 성례를 받는 일반 신자들
(consists of those who is taught, governed, and receives the sacraments)
을 구분하고 있다.
교직자들을 가리켜 교훈 하는 교회(ecclesia docens ; the teaching church)라 하고,
신자들을 가리켜 신앙하는 교회 혹은 듣고 배우는 교회
(ecclesia audiens, discens, or credens ; the hearing, learning or believing church)
라고 규정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교회란 교훈 하는 교회를 가리키고
신앙하는 교회는 간접적으로 동참할 뿐이다.
교훈 하는 교회는 직접적으로 교회의 영광스러운 속성들을 배분하고
(shares directly in the glorious attributes of the church),
신앙하는 교회는 합법적인 목자들의 권위를 존경하는 신자의 무리
(Church of all the faithful who honor the authority of their lawful pastors)
로서 전적으로 교훈 하는 교회에 동참함으로서
간접적으로 파생되는 은혜를 덧입을 뿐이다.
(is adorned with them only indirectly ;
has part in the glorious attributed of the church only in a derivation manner).



(3) 교회는 육체와 영혼의 구조를 지닌다.
교회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몸과 혼을 가지고 있다
(The church is made up like a human person)고 생각한다.
교회의 영혼이란 어느 특별한 시기에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부름을 받아
초자연적인 은사와 은혜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의 단체
(The soul of the church
consists at any particular time of the society of those who
are called to the faith of Christ and who are united to Christ by
supernatural gifts and graces)를 말하고,
교회의 몸이란 의인이건 죄인이건 상관없이 참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의 단체
(The body of the church is the society of those who
profess the true faith, whether they be just or sinners)를 말한다.
모든 선택받은 자들이 다 교회의 영혼에 속하지 않으며
세례를 받아도 구원의 은혜만을 필요하다고 고백하는
초신자(catechumens professing the necessary grace)는
아직도 교회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구원관에서 형성된 사상에 불과하다.



(4) 교회는 구원의 방주로서 교회를 통하여 구원이 주어진다.
구원의 방주(saving ark ; institute of salvation)인 교회는
세 가지 기능을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① 말씀으로 참 신앙의 정진
(to propagate the true faith by means of the ministry of the Word),
② 성례에 의한 성화의 실현
(to effect sanctification by means of sacraments),
③ 교회법에 의한 신자의 통치
(to govern believers according to ecclesiastical law)
이다.
이러한 기능은 가르치는 교회의 권한에 속하며,
가르치는 교회는 구원의 유일한 중보자로서
만민에게 필요한 은혜를 간직하고 배분하며,
모든 인류의 안전한 방주 (ecclesia docens is the only Mediator of salvation,
the depository and distributer of grace for all men and the only ark of safety
for the entire human race)라고 가르친다.
구원의 과정은 교회가 조정하고,
은혜는 합법적 직원을 통하여 시여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이 그의 말씀으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의하여 교회가 사람을 말씀과 그리스도에게 이끌어 간다
(The order in the work of salvation is not that
God by means of His Word leads men to the Church,
but just the reverse, that the church leads men to the Word and to Christ)
고 주장하므로
유형교회가 무형 교회를 앞서고,
교회가 구원의 열쇠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교회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임재 하는 매체이며,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그의 나라로 이끌어 가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충만한 은혜를 죄인에게 베풀려고 하면
반드시 합법적인 교직자를 통하여 시여 한다는 교리로서
이신칭의(以信稱義 ; Justification by Faith)의 길을 막고 있다.
[ The Church is the mediator of Christ's presence in the world.
God uses the church as His agent to move the world toward His Kingdom.
In the church Christ distributes the fullness of those graces and
blessings which he merited for sinners.
He does this exclusively through the agency of the clergy,
that is through the legitimate officers of the church. ]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를 떠나면 구원이 없다고 하였으니
성경을 읽지도 깨닫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했는가?
이러한 교회관의 중심에는 교황이 위치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벨라민(Bellarmine 1542-1621)의 다음 설명이 증거 한다.
‘교회는 동일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불신자는 제외),
동일한 성례에 동참하며(초신자 및 파문 당한 자는 제외),
합법적인 교직자들 및 원칙상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대리자인 로마 교황의 통치를 받는
(헬라 교회의 신자처럼 모든 분리된 자들은 제외) 모든 자의 단체이다‘고 하였다.
[ * The Church is the company of all who are bound together
by the profession of the same Christian faith(excludes all unbelievers) and
by the use of the same sacraments(excludes catechumens and those that are excommunicated) and
are under the rule of legitimate pastors and principally Christ's vicar on earth,
the Roman Pontiff(excludes all schismatics, such as the Greek Christians). ]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예수님은 그 자신의 대리자로써 베드로를 세우고
“로마의 제1대 주교”(The first Bishop of Rome)
혹은 “제1대 교황”(the first Pope? ~ ? 64. or 67)으로 삼아
“온 교회를 다스릴 완전한 최고 최상의 권한”
(full and supreme jurisdiction over the whole Church)을 부여했다고 주장하며,

교회를 교황 중심으로 조직화시킨 것이다.
[ “레오 1세”(Leo I,45대 교황/ 440-461)의 주장에 의하여
베드로는 제1대 교황으로서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특별히 사도 베드로는 바울 사도와 함께
네로 시대(54-68)의 순교 제물(Martyrdom)로 바쳐진 독특한 권위의 사도로 강조되어졌다.
오리겐(Origen)은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음을 전하고 있고,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는 베드로가 A. D 68년에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베드로의 날은 6월29일로 지키며,
성 베드로 성당(St Peter's Basilica in Rome)의 베드로 상은
특별한 존숭대상(Special Reverence)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베드로라는 인간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닦아 둔 터 위에,
성령님의 감화로 고백하는 그의 신앙고백 즉 성경적 교리와 신앙을 기초로 교회를 세운 것이다.
cf. the Rock : Peter .... Tertullian, Cyprian, Vatican1&2.
the Rock : Christ....Augustine, Calvin, Zwingli.
the Rock : the Confession of Peter ....Chrysostom, Zahn
그리고 천국의 열쇠는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8:18과 16:19를 비교해 보면
분명히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을 계승할 사도들 모두에게 이런 권세를 주신 것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로마 카톨릭이 교황권을 강조하기 위하여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세우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상 교황 제도는 590년,
Gregory the Great (Gregorius I, 64 대 교황/590-604)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이는 500년 이후의 교권을 합리화, 합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자연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인 베드로의 인적인 계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지와 사도의 터 위에
이뤄진 신앙적, 교리적, 사명적 사도성의 계승이 확실하다고 하겠다.
(This does not signify a successio personarum,
but does imply according to Scripture a successio doctrinae).
결국 성경을 벗어난 로마 카톨릭은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으며,
성령의 거룩한 공회를 교황을 정점으로 한 세속적 조직으로 통일시키며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 The Church of Rome is of the nature of an absolute monarchy,
under the control of an infallible pope,
who has the right to determine and regulate the doctrine, worship,
and government, of the church.
This system also conflicts with scripture,
which recognizes no such primacy of Peter as that on which
the system is built, and distinctly, recognizes the voice of the people in ecclesiastical affairs. ]



Ⅲ. 로마 교황의 통치


교황은 로마 교황청을 통하여 전 로마 교회를 통치한다.
앞서 언급 한대로 9개의 지위를 행사하며,
지상의 모든 교인들을 통치하는데 그 기구와 조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교계제도(사제 계급)

그들은 교계제도(敎階制度)란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가르치고, 성화시키고 통치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세우신 목자들의 집단으로 정의한다.
이 집단은 크게 나누어 교황과 주교와 사제와 부제로 되어 있다.
마태오복음(마태복음) 28:18-20, 요20:21-23, 히5:1절에 근거한다는
천주교회의 사제 계급은 다음과 같다.

**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직 계급

1. 주교(Bishop)
교황(敎皇) : Pope, Holy Father
추기경(樞機卿) : Cardinal
총대주교(總大主敎) : Patriarch
常住총대주교 : Residential Patriarch
名儀총대주교 : Titular Patriarch
대주교(大主敎) : Archbishop
常住대주교 : Residential Archbishop
首都대주교 : Metropolitial Archbishop
一般대주교 : Non-Met Archbishop
名儀대주교 : Titular Archbishop
교황대사 : Nuncio : Pro-Nuncio Bishop
교황公使 : Internuncio Bishop
敎皇使節 : Apostolic Delegate Bishop
主敎(Bishop)
常住주교 : Residential Bishop
名儀주교 : Titular Bishop
代牧己長 : Vicar Apostolic
副主敎 : Coadjutor Bishop
補佐主敎 : Auiliary Bishop

2. 사제(신부. Priest)
知牧己長 : Apostolic Prefect 地己長신부 : Rural Dean
敎會己主任神父 : Parish Priest 補佐神父 : Curate

3. 부제(副祭, Deacon)


성직 계급은 신품(神品)의 위계 면에서
주교, 사제(신부), 부제의 세 가지 계급으로 구성되나(교회 법전 제108조 3항),
모든 주교는 동등하며 오직 교황에게만 종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신법(神法)으로 나누어진 두 계층은 인간의 법에 의하여, 즉 교황에 의하여
어느 주교가 다른 주교보다 상급자가 되도록 하고 있다.
교황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신적 권위를 가지고 통치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만인 제사장의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2. 교황청 제도


교황청(Curia Romana)은 교황과 동일시되며
성좌(聖座 : Sancta Sedes) 또는 사도좌(使徒座 : Sedes Apostolica)로 호칭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최고 통치기관이다.
바티칸(Vatican)으로 보통 불려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사도 베드로가 순교한 언덕이 바로 바티칸이기 때문이다.
교황청 기구의 시작은 1542년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 220대/1534-1549)가
“이단 심문 회의”란 이름의 상설 추기경 위원회를 설치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비오 4세(Pius IV,224대/1559-65), 그레고리 13세(Gregorius XIII,226대/1572-85),
바울로 5세(Paulus V, 233대/1605-21) 교황들에 의하여
다른 기구들이 첨가되었다.
전체적인 면모는
식스토 5세(Sixtus V, 227대 교황/1585-1590)에 의하여 갖추어졌다.
그리고 몇몇 교황들에 의하여 수정이 가해지다가
1908년 비오 10세( Pius X, 257대 교황/ 1903-1914)가 전반적인 개혁을 단행하여
가스파리 추기경이 준비한 교회 법전에 수록케 하였다.
현행 교황청의 개편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세계의 변천에 적응하도록 확대 조정되었다.
[ 교황청의 변천 역사는 대개 4시대로 구분되어 연구되고 있다.
즉 ① 로마 공의회 시대(Concilium Romanum seu Synodus Romana)
② 추기원(樞機院) 시대(Consistorium)
③ 의회 신설 시대(Congregatio)
④ 교황청 개편 시대(Curia Romana)이다.
교계제도사(敎階制度史)의 분야로서 고찰된다. ]
1967년 8월 15일 바오로 6세 (Paulus VI,262대 교황/1963-78)에 의한
“교황청 개편 칙서”(Regimini Ecclesiae Universae)의 발표로
개편된 기구와 조직은 1968년 3월1일부터 발효되었다
(칙서에는 1968.1.1.부터 발효되도록 했으나 변경됨).
초기에는 교황이 이단 등에 관한 문제만 취급하다가
지금은 교황청을 통하여 전 로마 교회를 통치하고 있다.
로마 카톨릭 교황의 보필 기관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① 전 세계 교회 통치의 중앙 행정부서의 역할을 하는 교황청(Curio Roamana),
② 바티칸 시국의 통치 기관으로서 교황령 행정청(Aula Pontificia),
③ 로마 교구를 맡아서 다스리는 로마 교구청,
혹은 부교구장인 추기경이 사실상 다스리므로 로마주교 대리청(Vicariatus Urbis) 등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최고 수장으로서
교도권(敎導權), 사목권(司牧權), 사제권(司祭權)을 가진 교황은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인정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고 성화시키고, 통치하기 위한 교황청은
교황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게 된다.
교황의 최고 자문 기관이요, 교황의 협력자로서의 추기경(Cardinal)단이 조직되어
교황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행사한다.
추기경은 교황이 임명 추대하는 교황의 최고 보좌관으로서
모든 추기경은 주교 서품을 받는다.
추기경은 옛날의 왕자의 권한을 소유한다.
따라서 붉은 제복을 착용하고, 홍의 주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추기경은 교구의 교구장으로 지역 교회를 사목하며
바티칸 시민권을 가지고, 어디서나 교구장의 허락 없이 고백성사를 줄 수 있고,
교구 내에서 한 대사(大赦)를 베풀 권한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그 숫자가 상당히 많아졌다.
식스토 5세(Sixtus V, 227대 교황/1585-1590)가 1586년
추기경 수를 70이 넘지 못하게 하였으나,
요한 23세(Joannes XXIII, 262대/1958-1963)가 1962년,
교회 법전 제231조의 70명 정원 제도를 폐지하고(1962.4.15 일부의 교서 Cum gravissima)

추기경을 대폭 증원하였다.
[ The cardinals of the Roman church,
who are appointed for life by a reigning pope, constitute a special college
whose chief function is to elect the bishop of Rome.
In recent years all areas of the world have been represented in the college of cardinals.
The number is not fixed, but since Vatican Ⅱ it has hovered at about 120.
The cardinals also act as a body of advisers
when summoned to deal with questions of major importance,
and they head some of the offices of the Curia Romana. ]
로마 카톨릭 교황은
각국에 대주교급, 교황청의 장관급 추기경을 보내어 교회를 통치한다.
교황의 협력자로 로마 시대의 총독과 유사하다.
추기경 외에 각급 사제 계급은 특별 권한을 가지면서
교황 중심의 세계 정부 체계를 관할한다.
전제군주체제의 교회 정치를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교황의 자문 기관으로 공의회, 세계 주교 협의회, 세계 대표 주교 회의가 있으나(97개 이상)

교황청의 최고 집행기관은 국무원 및 교회 외무 심의회
(Secretaria Status, Sacrum Consilium pro Publicis Ecclesiae Negotiis)이다.
(현재 85개국이상 외무관계)
이 외에 9개의 의회(Congregations)가 있다.
교회의 일상 업무
즉 1.신앙교리 2.동방 교회 3.주교 4.성사 규율 5.전례 6.성직자 7.수도자 및 재속회
8.카톨릭 교육 9.인류복음화 즉 포교 등을 다루는 의회이다.
사회와 대화 일치 업무의 사무국(Secretariatis)이 세 개가 있으며,
3대 법원(Tribunalia)이 있어, 재판 업무를 관장한다.
교회 사무 관리의 6개 사무처(Officia)가 있다.
결국 교황청은 세계에 산재한 카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지구 통치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로마 카톨릭의 정체(政體: System of Church Government)는
로마제국의 통치 체제와 비슷하다.
[ 교의 신학에서 논의되는 교회 정치는 몇 가지로 구분된다.
감리교회의 감독 정치체제(왕정의 형식), 로마 카톨릭의 절대교황정치체제(황제의 제국 통치),
침례교회의 회중정체(국가 교회 체제), 장로교회의 대의정치(의회정치),
무정부주의적 교회 정치, 독립교회정치 등이다.]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세계 정부의 형태로서 교회 행정 구역을 통하여 정치를 한다.
마치 로마제국의 황제가 점령지에 총독을 파견하여 정치를 하듯
로마 카톨릭 교회는 로마 교황의 주교와 추기경을 통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
교회를 계급적인 공동체로 보면서 교계 제도를 성스러운 지도력으로 파악한다.
교회를 돌보는 계급이 바로 교황의 통치 체제에 속한 사제들이다.
[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예배당(성당)을 유형적인 교회로 중시하면서 교회를 둘로 나눈다.
보이는 교회는 “가르치는 교회”와 “배우는 교회”로 구분된다고 본다.
가르치는 교회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공부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사제들”을 총칭하는 것이고,
배우는 교회란 사제들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뭇 신도를 가르친다. ]
교황청의 지고한 권위와 권한은 교회 행정구역을 통하여 일사불란하게 행사된다.
성경은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되심을 강조하고 있으니
교황 중심의 정체는 비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의 유산을 채택하고 있을 뿐이다.



Ⅳ. 로마 교황의 본색


1. 로마 교황의 절대적 권위와 무오성 강조


로마 교황은 소위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전 세계의 천주교 신도와 인류를 지배할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인간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권위를 교황은 소유하고 있다.
교황의 수위권(Primacy)과 무류성(無謬性; Infallibility)이 강조되지 않으면 안 된다.



(1) 교황의 수위권 강조
로마 주교의 수위권 확보는 역사적 산물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의 수위권을 가지고 있는가?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에서 출간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 보면
주교단과 교황 수위권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 「… 주교들의 단체인 주교단은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 교황을 그 단장으로 포함시켜 이해해야만 권한을 가지는 것이고
목자나 평신도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 대한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은
전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로마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전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직책상으로 완전한 최상 전권(全權)을 가지며
언제나 자유로이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주교들은 교도권(敎道權)과 사목행정권(司牧行政權)에 있어서
사도단(使徒團)을 계승할 뿐 아니라,
주교들 안에 사도단이 영구히 존속하므로 주교단은
단장인 로마 교황과 더불어 세계 교회에 대하여 완전한 최고 권한의 주체인 것이다.
그러나 이 단장 없이는 이 권한의 주체가 결코 될 수 없으므로
로마 교황의 동의 없이는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주께서 시몬이란 한 사람을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시고
교회의 열쇠를 맡기셨으며 그를 당신의 양무리 전체의 목자로 세우셨고,
베드로에게 맡겨진 메고 푸는 권한은 단장과 결합된 사도단에도 수여된 것이 확실하다. …
이 주교단이 교회 전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최고의 권한은 공의회에 장엄하게 행사된다.
그러나 베드로의 후계자가
공의회를 확인하거나 적어도 공의회로 받아들여야만 공의회가 성립될 수 있다.
공의회를 소집하고 주재하며 확인하는 것은 로마 교황의 특권이다.
세계에 산재하는 주교들이 교황과 함께 이 단체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나,
그것은 주교단의 으뜸인 교황이 주교들을 단체적 행동으로 부르거나
혹은 적어도 흩어져 있는 주교들이 일치된 행동으로 인준하든지
자유로이 받아들임으로써 참으로 단체적 행동이 되는 경우에 한한다」(p.78-79) ]
로마의 교황은 성직 계급으로
신권(神權)을 서품 할 수 있는 신품권(神品權) 혹은 사제권(司祭權)에 관한 한
다른 주교들과 동등하다.
하지만 재치교정권(裁治敎政權)에 있어서 교황은 전 교회와 그 모든 구성원에 대하여
최고(最高)이고 보편적이고 직정적(直政的)인 권한을 소유한다.
교정권은 교회를 다스리는 교도권, 신품권(사제권), 재체권(사목권)의 총칭인데
교황의 재치교정권은 그의 수위권을 확보해 준다.
교황의 수위권은 그를 선출한 추기경들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권위를 부여받는 것으로 주장한다.
교황을 모든 교회의 으뜸으로 삼고, 로마의 사도좌를 신앙의 머리로 간주하고 있다.
베드로의 계승을 내세우며 무모한 권위를 주장하고 있다.
무류적인 교사요, 교회의 최고 입법자이며, 교회의 최고 재판관인 교황은
나사렛 예수님과 대조되는
로마 카톨릭의 권위를 한데 모은 인위적인 신의 존재라 할 것이다.
[ 교황은 나사렛 예수님의 수제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라 하지만
예수님보다 더 큰 권세와 위엄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이다.
로마 교황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한 독일 언론의 신문 만평은 참으로 깊이 생각하게 한다.
“주님 우회하여 가십시오(Umleitung). 여기는 지나가시지 못합니다.
당신의 대리자(교황)가 사목 방문중입니다.”고 하는 경찰(Polizei)의 저지 장면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
추기경들의 선거로 선임된 한 개인이 천상천하의 전권을 행사하면서
지구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는 사실이 성경적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절대적 권위를 가진 슈퍼맨으로서의 교황은 천주교에서 창조한 신적 존재이다.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강조하면서 교황은 그리스도의 뜻을 거스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2)로마 교황의 무류성 교리 채택
로마 교황의 수위권보다 더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말이
“교황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교황의 무류성(Infallibility) 주장이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에서 공식적인 교의로 채택한 내용이다.
1869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Pius Ⅸ,255대/1846-1878)에 의하여 개회된 제1차 바티칸공의회는
카톨릭 신앙에 관한 교령, 로마 수위권, 로마 교황의 무류성에 관한 교의 등을 제정하였다.
700여명의 주교가 참석한 이 회의에서 교황의 무류성에 관한 극한 논란이
1870년 3월 6일부터 7월 4일까지 계속되었다.
7월 13일에 실시된 예비 채결 결과
찬성451명, 반대88명, 수정하여 승인하자는 주교가 62명이었다.
마인츠의 대주교 켓테러(Ketteler)외 5명의 주교들은
교황을 만나 교회의 평화를 위하여
교황의 무류성에 관한 제의는 철회하도록 간청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맨닝(Manning)주교와 독일의 세네스트레이(Senestray) 주교는
교황이 그 안을 거절하도록 고무하였다.
드디어 7월18일 정실 채결을 하였는데 찬성533명, 반대2명의 결과를 가져왔다.
반대하던 48명의 주교들은
교황에게 반대 편지를 보내고,
교황은 존경한다는 관례대로 투표에 참여치 않고 떠났기 때문에 반대표가 적었다.
교황은 반대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무류성 교의를 비준하고 말았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정의한 로마 교황의 무류성은 다음과 같다.
“초기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물려받은 전승을 충실히 고수하면서 ……
우리는 로마 교황이 성좌에서
즉, 모든 크리스챤의 목자요, 교사의 직책에서, 그의 최고의 사도적 권위에서,
그가 모든 교회에서 지켜야 할 신앙과 윤리에 관한,
베드로 안에서 그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도움에 의지하여 한 신조를 정의할 때
하나님이신 구세주는
그의 교회에 신앙과 윤리 관한 교리를 정의하는 권한을 부여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무류성을 지녀야 하고,
따라서 로마 교황의 그러한 신앙 정의는 교회의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이 계시된 신조임을
우리는 가르치고 선언하는 바이다”
고 하였다.
말하자면 사도로부터 전승되는 신적 계시이므로
교회가 믿는데 그 계시의 내용 중 신앙과 윤리에 관한 교리를 정의할 때
교황은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신적 계시를 수호하기 위하여
지상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에게 오류를 범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의 신학자 뮐러(Mohler)는
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여 교황의 무류성 교리 정착에 힘을 쓴 것 같다.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형상 아래 감춰져 있는 교회 안에서
진실로 역사 하시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교회에는 신적인 측면과 인간적인 측면이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은 상호간의 특성을 교환한다.
신적인 측면인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그의 성령은
교회 안에서 결코 오류가 없는(無謬的) 요소이고 영원토록 확실하다.
또한 인간적인 측면도 무류적이고 확실하다.
왜냐하면 신적인 것은
결코 인간적인 것과 분리되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직접적인 역사 섭리를 왜곡하고 있다.
하나님은 무류한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교황만을 오류가 없는 자로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교황의 무류성을 주장하는 천주교에서는 무류성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교황도 인간이기에 죄를 지을 수 있고, 고백성사를 받는다고 하면서도
교황은 무류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설정하는 한계는 4가지 국면이다.
① 교황이 보편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직책상, 성좌에서 말할 때 무류성을 지닌다는 것
② 교황이 신앙과 윤리에 관한 교의를 정의할 때에만 무류성을 지닌다는 것
③ 교황이 계시의 전 내용을 포함하고 사도 바울이 말한 신앙의 유산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무류성을 지닌다는 것
④ 교회는 반석이요, 천국의 열쇠를 지닌 교황이 전 교회를 향하여 의도했을 때
무류성을 지닌다는 것
결국 교회가 무류성을 지니므로
교회의 으뜸이요 대변자인 교황은 무류성을 지니게 되고
그의 인격은 어떻게 되었던 간에 죄를 범할지라도
신앙과 윤리 문제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오류가 없다는 주장은
비 성경적인 논리이며 억지 주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교황도 개인의 인격을 가졌으면 인격과 직책이 분리되어
오류가 있고 없는 양면성을 지닐 수 없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의 교황 무류 교리가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채택되었을 때
전 유럽은 대단한 반발을 하였었다.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은 더욱 심하였다.
독일의 경우 비스마르크(Bismark) 재상을 중심으로
로마 카톨릭의 교황권 강화에 강력한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문화 논쟁 운동(Kulturkampf-편주:1870년대 독일의 로마교 억압정책)을 전개하였다.
특히 뮤니히 대학에서 47년간이나 교회사를 강의하였던
저명한 신학자 될링거(J. J. I von Dollinger) 교수는
강력하고도 계속적으로 교황의 무류성 교의 채택을 반대하다가 출교당하기도 하였다.
[ 그의 저술에 다음과 같은 교황 비난 내용을 담고 있다.
“내게 있어서 교황의 주권과 무류성에 관한 모든 교리 체계는
궤휼과 기만과 폭력에 의한 것이다.
그 모든 교리들은 5세기 이후에 널리 유포된 위조문서와 조작된 전설에 근거하여 꾸며진 것이다.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교황들 중에서 양심 있는 교황들은 교황의 역사를 알고, 교황의 도덕성을 잘 알기 때문에
교황의 무류성 교의에 크게 반대하였다.
비질리우스(Vigilius,59대/537-555), 인노첸시오3세(Innocentius III, 176대/1198-1216),
클레멘스 4세(Clemens IV,183대/1265-68), 그레고리 11세(Gregorius XI,201대/ 1370-78),
하드리아노 6세(Hadrianus VI,218대/1522-23), 바오로 4세(Paulus IV, 223대/1555-59)등이다”
고 하였다. ]
천주교 내부에서의 반대는 교황권의 강화 추세에 밀려 조용해지기 마련이었다.
강력한 개신교회의 교황 무류성의 허구성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1962년 10월 11일부터 1965년 12월 8일까지 계속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다시 한번 교황의 권위를 강화하였다.
주교의 교도권과 무류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신 구주께서 당신의 교회가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결정할 때에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교회에 허락하신 무류성(無謬性)은,
교회가 거룩히 보존하며 충실히 설명해야 할 계시의 유산의 범위와 같이 광범한 것이다.
주교단의 으뜸이신 로마 교황이 모든 신도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
형제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결정적으로 선포할 때에,
교황은 직무상의 무류성을 향유한다”
고 하였다.
계속하여 말하기를
“그러므로 교황의 결정은 교회가 동의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개정될 수 없는 것이라 함이 마땅하다.
그것은 베드로 안에서 이미 교황에게 약속된 성신의 도움을 받아 선포된 것이므로
이 결정은 그 누구의 승인도 필요치 않고
다른 판단을 요구하는 어떠한 상소(上訴)도 있을 수 없다.
그럴 때에는 로마 교황이 개인 자격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교회 자체의 무류(無謬)의 은사(카리스마)를 특별히 지니고 있는
세계 교회의 최고 스승으로서
카톨릭 신앙의 교리를 설명하고 옹호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으며,
“교회에 약속된 무류성은
주교단이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최상 교도권을 행사할 때에도
주교단 안에 존재한다”
고 하였다.
이는 모든 사람은 무조건 믿고 순종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천주교회의 교황 절대화를 볼 때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령의 역사와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진 기독교가 아니라,
베드로의 열쇠와 반석을 구심으로 하여
2천년 역사의 전승을 결합시킨
그리고 역사의 과정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을 창출하여 믿고 따르는
견고한 기독교적 인본주의 혼합 종교라 해야 할 것이다.
한 생명을 지닌 인격체가 성령만이 할 수 있는 신앙과 윤리의 문제로
오류 없는 판단과 교도, 그리고 선언을 할 수 있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2. 로마 교황의 신학적 오류들


천주교회의 주장대로 로마 교황이 무류성을 지닌 초월적 존재라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무죄성과 무류성을 구분하고,
무류성도 교황이 신앙과 윤리에 관하여 성좌에서 전 교회를 향하여 정의하고 말할 경우에 국한하고 있지만 석연치 않다.
도덕적 연약은 개인적이라 해도 공인으로서 로마 교황은 역사적으로 과연 무류한가?
결코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과오투성이의 역사를 볼뿐이다.
교황의 무류성 교리가 1870년 7월 18일에 비준되었는데
교황이 무류하다는 교리가 왜 그렇게 늦게 발견되었는지 이상하지 않은가?
진실을 진리라고 해야지 억지로 믿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황의 무류성을 주장하므로
무류하지 않은 사실을 증거로 제시해야 그 교리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할 것이기 때문에
몇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잘못된 교리적 판단의 오류들
① 교황 리베리우스(Liberius, 36대/352-366)의 오류 :
이단으로 알려진 아리우스(arius,250?∼336?) 편을 들어
아다나시우스(Athanasius 296-373)를 파문하였다.
② 교황 조시무스(Zosimus, 41대/ 417-418)의 오류 :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펠라기우스주의를 정통으로 옹호하였다.
③ 교황 비질리우스(Vigilius, 59대/537.-555)의 오류 :
성육신한 그리스도의 별개의 두 인격을 주장한 이단 네스토리우스주의를 용납하였으나
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는 네스토리우스( Nestorius ?∼? )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④ 교황 호노리노 1세(Honorius I, 70대/625-638)의 오류 :
단의설을 주장하므로 680년, 3차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교황 레오 2세( Leo II, 80대/ 682-683)에 의하여 유죄 선고가 확인되었다.
교황이 오류가 없다면 한 교황이 어떻게 다른 교황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수가 있는가?
⑤ 교황 복자 에우제니오 3세(Eugenius Ⅲ,167대/ 1145-1153)의 오류 :
결투를 승인하였으나
교황 율리오 2세(Julius Ⅱ,216대/ 1503-1513)와 교황 비오 4세(Pius Ⅳ, 224대/ 1559-1565)는

이를 금지시켰다.
누가 오류가 없는가?
⑥ 교황 식스토 5세(Sixtus Ⅴ,227대/1585-1590)의 오류 :
라틴어 표준역 성경을 편찬하고 그 서문에서 책의 무오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3천군 데나 수정하였다.
마침내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 231대/1592-1605)는
다른 성경을 만들라고 명령하였다.
⑦ 교황 하드리아노 2세(Hadrianus Ⅱ,106대/ 867-872)의 오류 :
비종교의식 결혼이 유효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교황 비오 7세(Pius Ⅶ, 251대/ 1800-1823)는 무효하다고 정죄하였다.
⑧ 교황 에우제니오 4세(Eugenius Ⅳ,207대/1431-1447)의 오류 :
아코(Ark)의 요한(John)을 살아 있는 마녀란 이유로 불태워 버리라고 선고하였다.
그러나 교황 베네딕토 15세(Benedictus XV, 258대/1914- 1922)는
그녀를 성인이라고 선언하였다.(요한=잔 다르크, Jeanne d'Arc 1411?∼1431)
⑨ 교황 바오로 5세 (Paulus V/ 233대/1605-1621)의 오류 :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가 지동설을 주장하여 기존의 천동설을 부정하자
시편 93:1을 근거로 1616년 정죄하였다.
그 說을 취하거나 가르치거나 변호가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1632년 그는 책(“천문대화”)을 출판하였으므로 투옥된 후 1642년 죽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전설도 있지만 1835년 금서가 해제되었을 때
케어주교의 말이 더 재미있다.
“지구는 움직여도 좋다는
교황(그레고리오 16세 Gregorius XVI,254대/1831-46)의 허락을 받았다”고 하였으니 ……
그래도 교황은 무오한가?
차라리 교황의 무류성 교리가 없었다면 로마 카톨릭의 진실이 돋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말해 주는 진실은 너무나 냉정하여
교황이 무류하다는 주장에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



(2) 결정의 번복이 보여주는 오류들
① 스테파노 6세(Stephanus VI, 113대 교황/896-897)를 중심으로 한 오류 :
로마 교황의 무류성 교리를 반대한 주교 요셉 스트로스마이에르(Strossmayer 1815-1905)는 카톨릭 백과 사전에서
교황 스테파노 6세가 전임 교황 포르모스(Formosus 111대/891-896)와 어떻게 대립하였는지
특별 진술하였는데 매우 흥미롭다.
스테파노 6세는 전임 교황의 죽은 지 8개월 된 시체를
무덤에서 끄집어내어 보좌에 앉히고 재판하였다.
죽은 포르모수스 교황에게 교황의 옷을 입히고 관을 씌웠으며
썩어 문드러진 뻣뻣한 손가락에 홀을 쥐게 하고 재판정에 앉혀 놓았다.
대답이 없는 그 시체는 정죄를 당하고 교황복이 벗겨져서 거리에 내동댕이쳐졌다.
마차 뒤에 매달아 로마의 길거리를 끌고 다니다가 티베르 강에 던져 버렸다.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그런데 스테파노 6세의 계승자인 교황 요한 9세(Joannes Ⅸ, 116대/ 898- 900)는
강에서 포르모수스의 시체를 건져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큰 영광을 드리며 재매장하고,
스테파노 6세의 판결을 파기시켰다.
그리고 포르모수스가 내린 명령들이 유효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런데 세르지오 3세(Sergius Ⅲ, 119대 교황/ 904-911)는 로마의 한 종교회의에서
포르모수스를 단죄한 스테파노 6세의 결정에 찬동하였다.
교황들 사이의 이러한 대립은 교황의 무류성 교리를 포기케 한다.
② 성 빌로메나(Philomena) 사건을 중심한 교황의 오류 :
1802년 나폴리의 사제가 빌로메나의 성골(유골)을 발견한 바 있다.
그 밑에 있던 두 수녀의 꿈을 통해 받은 빌로메나의 생애와 기적에 관한 계시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래서 교황 레오 12세(Leo ?, 252대/1823-1829)는 그녀를 성녀(聖女)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레고리 16세(Gregorius XVI, 254대 교황/1831-1846)는 그 화상을 축복하였고
비오 9세(Pius Ⅸ,255대 교황/ 1846-1878)는 기념 성무일과의 미사를 정했다.
1928년에 시성(諡聖)된 「뀌레다르스」도 찬성하였다.
하지만 이 어찌된 일인가?
「성녀 빌로메나」는 실재하였던 인물이 아니었다.
가상적인 인물로 판명된 것이다.
로마 카톨릭은 이 사실을 인정하였다.



(3) 기타 교황의 무류성을 묻는 질문들
로마 카톨릭의 주장이 억지이지만 비판적인 질문에 대하여 교묘히 피해 간다.
개인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여도 교황의 무류성과는 무관하다는 대답이다.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은?
① 베드로가 무류성을 지녔다면 어떻게 그는 구세주를 부인할 수 있었겠는가?
② 인간이 어떻게 무류성을 지닐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만의 속성이 아닌가?
③ 무류성을 지닌 교황은 그의 관면권(寬免權)을 잘못 사용하지는 않는가?
④ 로마 교황들[니콜라스 1세 (Nicolaus I,105대 /858-867)등]은
위령집(僞令集)으로 알려진 문서로서 통치하지 않았는가?
⑤ 교황 요한 22세(Joannes XXII, 196대/1316-1334)는
구개의 천국을 가리키며 한 천국은 구원받은 신자의 것이고
다른 천국은 미리 예정된 자를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는데 어떻게 무류한가?
그 외에도 얼마든지 따질 수 있다.
교황의 무류성을 주장하기 전에 그
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은혜를 가르침이 더 급선무였을 것이다.

3. 로마 교황의 이교적 요소들


1989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된
제44차 세계성체대회(Covenyus Eucharisticus Internationalis)는
한국 기독교의 각성을 촉구한 대회였다.
진리의 분별력이 없는 일부 개신교도의 영적 혼란을 가져왔지만
TV로 중계된 교황의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의 참 진리를 넘어선 의식적 행사임을 깨닫고,
기독교 본래로 되돌아갔던 종교개혁의 이유를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를 집전하는 장엄한 사제들의 행렬과 교황의 휘장, 복식 등은
성경을 믿는 기독신자에겐 이교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였다.



⑴ 칭호 상에 나타난 이교적 요소
교황이란 뜻이 아버지를 나타내는 파파와 다리를 만드는 자라는 폰티브임을 알고 있다.
이 칭호는 어디서 왔는가?
맥밀란사의 백과사전에서
고대 로마의 최고 사제, 즉 로마의 다리 건설의 최고 책임자에게서 따 온 것이
최고 사제 “폰티브”라고 설명하고 있다.
파파란 칭호는 카톨릭 백과사전의 미트라 예배에서 보면
그 분파의 수장사제 “파테르 파트룸” 즉 “아버지 중의 아버지”에서 나온 것으로 알 수 있다.

미트라 종교의 아버지가 로마의 종교를 지배하였고
기독교와 혼합되어 로마 카톨릭의 파파로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의 종들 중의 종이 교황이요, 아버지 중의 아버지가 교황이다.
그를 향하여
“교황 만세”라고 환호하는 카톨릭 신도들과 “교황 성하”라고 존경하는 사제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성경에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중보자는 그리스도시요,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는 성령임에도 불구하고
교황을 교회의 “보이는 머리”로 간주하며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라고 믿기 때문이 아닌가?
좀더 뿌리를 설명해 보자.
고대 바벨론의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바그다드에서 바스라까지 달리는 철도가 멈추는 곳이 바벨론의 도시였다.
“바벨론 멈춤, 승객을 위하여 기차는 여기서 정지”
(Babylon Halt, trains stop here, to pick up passengers)
라는 표지가 그 사실을 말해 준다.
"니므롯"이 바벨론의 왕이요 제사장이었다.
니므롯으로부터 바벨론 왕과 바벨론 신비 종교의 수장들의 계보가
벨사살 왕 때까지 계속되어 내려왔다.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단 5:4)고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바벨론의 종교 축제였다.
그들이 마신 술잔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한 금, 은, 기명이었다.
왕은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술을 마시고 우상을 숭배하였다.
멸망의 전주곡이었다.
그 나라는 망했으나 그들의 종교는 로마 제국에 스며들었고,
바벨론 종교의 대제사장 “폰티펙스 막시우스”제도가
로마 집권자 줄리어스 시저(B. C. 47)때부터
A. D.376년 그라티아누스 황제(재위:375-383) 이전까지 사용되었다.
378년 무렵 로마 주교 데마수스 1세(Damasus I,37대 교황/366-384)가
최고 승원장으로 선출되어 로마 카톨릭의 교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바벨론 종교와 기독교의 혼합이었다.
바벨론의 신비 종교와 기독교의 혼합이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가?
순수 기독교와 이교적 혼합은
콘스탄틴 대제(재위:306-337)의 기독교 개종과 연관시켜 살펴보아야 한다.



⑵ 기독교와 이교의 공통점 모색
콘스탄틴 황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한 개종자로 알려져 있다.
300년 동안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사실상 종결되는 조치였다.
이 칙령은 기독교를 로마의 유일한 종교로 선언하지는 않았으며
이방 종교를 금한 것이 아니었다.
기독교를 단순히 묵인한 311년의 갈레리우스가 행한 법률보다 높은 것이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 내에 있는 다른 종교들과 함께 법률 앞에서 동등한 발판을 얻게 하였다.
제국의 보좌에는 기독교를 공인한 사람이 앉았다.
황제는 교회를 박해하는 대신에 호의의 소나기를 내렸다.
기독교의 성직자는 시민들이 꺼려하는 의무에서 면제되었다.
콘스탄틴 대제는 기독 신자에게 많은 하사금을 주었으며
콘스탄티노플과 예루살렘, 베들레헴 등지에 거대한 교회당을 신축하였다.
주일 성수를 위하여 주일의 모든 작업을 중지시키기도 하였다.
기독 신자란 이름이 죽기 위하여 태어난 순교자들이 아니었다.
이제는 로마 사회에서 승진의 수단이 되었으며 정치적 군사적 특혜의 신분증이 되었다.
큰 물질적 이득을 향유하게 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수백만의 이교도들이 다투어 교회와 합류하며 기독 신자가 된다 하였다.
교회에는 양적인 폭발과 함께 타락의 홍수가 엄몰해 왔다.
진리의 기준은 없이 명목상의 신자화 운동은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기독교의 순수성이 침해되었다.
300년의 박해를 견디며 자라 온 순교자의 피가 이교도의 의식과 종교적 전승과 혼합되어
중세 암흑기의 긴 터널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장본인이 황제 콘스탄틴 대제이다.
그가 306년 영국에 있는 로마 군대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후,
이태리와 북 아프리카를 다스렸던 막센티우스(재위:306-312)와 적의에 찬 대결을 하였다.
로마성 북방 10마일 지점인 사카 루브라에서 두 황제의 군대는 접전하게 되었다.
그 군대 사이에 타이버 강이 있고, 그 강을 가로질러 밀비안 다리가 있었는데,
이 다리에서 3일을 대치하였다.
미트라 종교의 신봉자였던 콘스탄틴은
군인의 신중 최고의 신인 미트라에게 예배하며 전쟁의 결과에 대한 점을 치게 되었다.
에스겔 21장 21절의
“바벨론 왕이 갈랫길 곧 두 길 머리에 서서 점을 치되
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의 간을 살펴서”
란 말씀을 보면 점치는 관습을 알 수 있다.
콘스탄틴은 점을 쳤으나 패배한다고 점괘가 나왔다.
그런데 전쟁 전날 서편에 지고 있는 태양위에 한 “십자가”가 나타나고
그 표시 안에 나타난 글자는 “이 표시 안에서 정복하라”는 정복의 표징이었다.
다음날인 A.D.312년 10월 28일, 콘스탄틴의 군대는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따라 진군하여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십자가를 숭상하게 되었다.
이교 종교의 최고 지도자인 콘스탄틴이 개종했다.
하지만 그 신빙성은 의심된다.
그는 기독교와 미트라 종교를 혼합시켜 로마 제국의 힘을 강화하려고 했다.
두 종교의 유사점을 찾아 투쟁 대신 화합의 제국을 다스리려 하였다.
핍박은 끝났으나 타락은 시작되었다.
순수 기독교와 미트라 종교의 혼합으로 로마 카톨릭 종교가 탄생했다면
그에 따른 혼합의 요소를 증거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최고 수장 사제의 로마 교황에게로의 전승 속에 남아 있는 이교적 상징들이
지금도 사용된다.



⑶ 교황과 관계된 상징의 이교적 기원
① 베드로의 열쇠와 야누스의 열쇠
로마 교황의 권위는 열쇠로 상징된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는 말씀을 근거하여 로마 교황의 권위를 강조한다.
마치 인간 베드로와 자칭 그 후계자들에게
천국과 이 땅에서 교회의 전권이 주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오해이다.
열쇠를 준다는 말씀은 당시의 문화적 배경에서 이해할 때 권한을 위임한다는 의미이다.
일차적으로 베드로 개인에 대한 약속으로
그가 오순절 이후 말씀 운동, 예수 복음 전파의 장본인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예수께서 베드로를 위시한 모든 교회의 참 사역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닻을 좇아 교회를 간접적으로 치리 할 권리를 주신 것으로 해석된다.
열쇠로서 맨다는 것은 금지, 열쇠로서 푼다는 것은 허용을 의미한다.
이 치리권을 사도직의 계승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베드로에게 주어진 열쇠를
미트라 종교에서 사용하는 권위의 상징인 열쇠와 결합시킨 데 있다.
로마 종교들의 최고 사제를 갈대아 명칭으로 페트르(Peter : 비밀들의 해석자)라 하였다.
로마 종교의 대 해석자와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를 연결시킨 것이 드러난다.
“니므롯”은 비밀과 신비를 열어 보이는 자로 신격화된 인간의 맏아들인데
출애굽기 13장 2절의 “초태생”이 히브리어로 페테르이다.
신들의 후계자요, 맏아들이요, 최고 수장사제로 받들어진 로마황제에게는
“열쇠” 두개가 권위의 상징물로 주어졌다.
로마인들은 1000년 동안이나 남신 야누스와 여신 키벨레의 “신비 열쇠”를 신봉하여 왔다.
페르시아의 신비 종교인 미트라교에서도 태양신은 열쇠 두개를 가지고 있다.
황제가 사용하던 최고 수장사제의 칭호가 378년경, 로마의 감독에게 사용되었을 때
신비한 열쇠의 소유자는 로마의 교황이 되었다.
교황은 이 신비 열쇠를 소유한 지 50여년 후인 A. D.431년에,
이 열쇠가 바로 예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과 땅의 열쇠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하였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야누스가 두 얼굴을 가지고 여러 문을 여닫는 책임을 맡고 있으면서
신성한 수탉을 가지고 있는데
이 수탉을 베드로를 회개시킨 닭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요18:27).
베드로 사도와 비밀 해석자 페트르,
야누스의 수탉과 베드로에게 들린 닭 울음,
야누스의 열쇠와 베드로의 열쇠를
교묘히 일치시킨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② 교황의 주교관과 다곤의 어두관
교황은 때때로 주교관을 쓰고 수갑을 끼고 화려하게 장식된 법복을 입고 나타난다.
주교들이 쓰는 골무의 모양을 한 주교관은
물고기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주교관은 직무의 표시, 즉 교황, 주교들, 대수도원장의 직무를 나타내는 관이다.
고대 유대 대제사장의 공식적 머리 장식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나
그 기원을 다곤신에게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레이야드는 “바벨론과 니느웨”란 책에서 주교관과 다곤의 어두관을 동일시 하였다.



다곤신의 어두관을 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다곤신은 고대 블레셋과 후에 베니게의 농업의 신인데 반신반어의 모양을 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조각에 나오는 다곤의 모자와 교황의 어두관이 거의 같다.
그래서 아이론사이드는
“교황이야말로 바벨론 신비종교의 대사제의 직계 후계자이며 어신 다곤의 신하이다”
라고 하였다.
그 이유로서
교황이 우상 숭배하던 전임자처럼 옷을 입고 어부의 반지를 끼고 있음을 지적했다.
1965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Ⅵ, 262대/ 1963-1978)가 미국을 방문하여
“평화”에 대한 메세지 낭독의 모습에도 분명히 드러나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264대/1978-2005)의 분주한 세계나들이를
상징하듯 주교관이 곧 현대 국제 정치의 외교관임을 풍자한
어느 신문의 만화도 어두관을 보여준다.
③ 교황의 어깨에 걸치는 영대(領帶)
교황 혹은 주교, 신부 부제들은 카톨릭 교회의 의식때에 영대를 목에 건다.
a. 영대의 색깔 … 영대는 흰 양털로 만들지만 의식에 따라서 색깔이 다르다.
미사 때에는 미사 제의의 색깔과 같다.
사제가 입는 공식 제의의 색깔은 다섯 가지인데 실제로 일곱 색깔을 사용한다.
인노첸시오 3세(Innocentius III, 176대/1198-1216) 교황 때에 결정된 다섯 가지의 색깔은
흰색(결백, 기쁨의 상징), 붉은 색(피, 열, 사랑의 상징),
녹색(생명의 희열, 희망, 영생의 상징), 자주색(참회, 보속의 상징), 검은색(죽음의 상징)이다. 이 외에 장미색 혹은 자주색과 흰색의 중간색이 사용된다.
영대는 또 영세, 기타 축성, 강복식 때는 희색을 메며,
죄를 사하는 사죄권의 행사 때는 자색을 멘다.
b. 영대 메는 법 … 세 종류의 성직에 따라서 메는 법이 다르다.
주교는 영대를 목에서 기다랗게 그대로 내린다.
사제는 원칙적으로 영대를 십자형으로 메고,
부제는 왼쪽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비스듬히 멘다.
이를 멜 때는 친구(親口 : 경의를 표하거나 사랑과 평화를 나누기를 위한 입맞춤인데,
물건에 親口함은 속죄, 회개 기원을 의미한다)하면서 사제는 이렇게 기원하다.
「주여, 원죄의 타락으로 잃은 불사불멸의 영대를 도로 내게 주사,
주께 봉헌하기에 합당치 못하오나 내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옵소서」
c. 영대의 상징적 의미 … 사제들이 미사나 기타 성무를 집행할 때
목에 걸쳐 무릎까지 늘어뜨리는 영대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어떤 권위 혹은 권한을 상징한다.
신품 성사를 받은 사제의 권한과 품위를 나타내므로
주교와 사제 그리고 부제의 메는 법이 다르다.
고백소에서 영대를 멘 사제는 사죄권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 외에도 의식을 집행할 수 있는 사제의 권위와 품위를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또 다른 의미는 영대가 성직자의 성덕(聖德)을 나타낸다고 한다.
사제로서, 지도자로서의 영적 덕행을 상징하면서
대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제직의 거룩함을 뜻한다는 것이다.
밝고, 옳고, 크고, 착하고, 빛나고, 아름답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마음씨나 행실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는 덕성을 가진 상징으로 보아서 그 권위를 과대평가하고 있다.
d. 영대의 이교적 기원 … 영대는 6세기에 공식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
기원에 관하여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옛날 유대인들이 망또를 입을 때 땀닦는 손수건에서 유래했다는 설명과,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귀족들이 착용하던 화려한 허리띠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랄프 우드로우는
“영대는 기독교 이전에 그리스와 로마의 이교 사제가 입는 제복”에서
기원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영대를 로마의 성 아그네스 교회당에서 축복 받은 두 마리 양의 흰털로 만들어
교황 직무의 충만함을 나누는 상징으로 주교들에게 보내는데,
베드로의 무덤에 밤새도록 놓아두는 관습이 이교 관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④ 성 베드로의 의자와 청동상
성 베드로의 성당 안에는
베드로의 청동상과 베드로가 앉아서 강론한 베드로의 의자,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힌 성 베드로의 상이 그려져 있다.
교황의 권위를 나타내는 베드로의 무덤도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성 베드로의 청동상은
교황 보니파시오 8세(Bonifatius VIII,193대/1294-1303)의 위촉을 받아
1300년에 캄바니오의 아르놀프가 제작한 작품이다.
그 동상은 로마 카톨릭 신자의 지극한 존경의 대상으로서
앞으로 뻗은 오른발이 많이 닳아버린 상태이다.
많은 순례자들이 존숭한 나머지 입을 맞추고 손으로 만졌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려고 할 때 이러한 행위를 하게 된다.
출애굽기 32장 1-6절의 사건을 생각게 한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 형상의 신을 만들어 섬기는 행위이다.
교황의 권위를 베드로에게 기원케 하니
자연적으로 베드로의 동상은 숭앙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베드로의 의자도 그렇다.
베드로가 실제로 앉았다는 의자는 몇 년이 된 의자인가?
1968년 7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262대/1963-78)가 임명한 한 과학위원회는
의자의 어떤 부분도 베드로 시대의 것으로 보기에 족하리만큼
오래된 것이 없다고 보고했다.
탄소 연대 측정법과 여타 방법들에 관한 보고서는
銅 의자가 9세기 이상 더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카톨릭 백과사전은 또 베드로 의자 전면 판화에
헤라클레스의 고역과 함께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동물들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바벨론의 헤라클레스와 성경의 니므롯이 대비된다.
성 베드로의 의자는 기독교적 기원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성 베드로의 동상에 입 맞추는 행위도 비기독교적이다.
바알숭배의 전형적인 형태가 금송아지 형상에 입 맞추는 것이었다.(왕상19:18, 호13:1-3)
⑤ 교황의 운반 행렬
브리태니카 사전 22권 교황항을 보면, 교황의 운반행렬에 대하여
‘엄숙한 의식들이 진행될 때
교황은 높은 등받이가 있는 적색 우단으로 만든 이동식 의자인 세디아에 앉아서 운반되고,

깃털로 된 큰 두개의 부채 파벨리로 호위 받는다’고 묘사하였다.
실로 장엄한 행렬이다.
교황이 운반되면 사람들은 교황 앞에 머리를 숙이며 경의를 표한다.
교황을 호위하는 부채의 위풍도 대단하다.
화려한 사제의 복장을 한 그의 거동은
성경적인 빛을 상실한 일반적인 성도들에게는 흠숭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러나 이 행렬은 기독교의 독창적인 의식이라기보다도
고대 바벨론 종교의 우상이 옮겨지는 모습이나
이집트 등지에서 왕이나 사제가 운반되는 행렬과 유사함이 드러난다.
헤스탐의 ‘종교 윤리 백과사전’의 형상과 우상들의 항목을 보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기원전 15세기에 바벨론의 사랑과 다산의 여신 이쉬타르의 상(像)이
바벨론에서 이집트로 운반되었는데
그 화려한 의식과 교황의 행렬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운반되는 우상의 행렬에 대하여 복음의 선지자 이사야는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사46:6-7)
고 통렬하게 비난하였다.
우상의 행렬이 왜 하필이면 교황에게 적용되었을까?
사실상 교황은 천주교 신자에게 구원까지 베푸는 권한을 소유하는 존재로 군림하지만
성경적 근거는 찾을 수 없다.
교황의 행렬의 기원이 될 만한 사실을
히스롭은 ‘두개의 바벨론’이란 책에서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3000년 전, 이집트에서의 왕이나 사제의 운반 행렬과
오늘날의 교황 행렬이 거의 같다는 것이다.
군중 사이로 12명의 운반자가 이집트의 사제, 왕을 어깨에 메고 운반했다.
깃털로 만든 대형 부채도 나타난다.
권위와 위엄을 강조한 나머지
이러한 운반행렬은 지금도 시행한다면 그 기원은 이교적이라 할 것이다.



- 맺는 말-


이러한 로마 교회이기 때문에 종교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개혁된 교회는 참된 교회를 강조했고, 그것을 널리 교육하였다.
거짓된 교회와 구분되는 참된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게 증거 되는 교회이다.
성경에서 제시한 성례가 정당하게 시행되는 교회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권징이 있어 삶의 전 영역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개혁자들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원리로 하여
이신칭의의 구원 진리를 내용으로 삼아 성경적 기독교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이 개신교는 너무나 다양한 색깔로 분산되고 말았다.
강력한 단일 세계 조직체인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격에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불교가 힌두교를 개혁하였지만 지금 인도에는 불교가 쇠퇴하였다.
프로테스탄트가 본래의 종교 개혁의 정신을 되살리며,
칼빈주의(개혁주의) 신앙으로 무장하되 성경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럴 때 주의 나라가 임하고, 주의 뜻이 이뤄지게 될 것이다.



Bibliography




출처: 한국 칼빈주의연구원
(http://www.johncalvin.co.kr/cyber_lecture1.asp)->
사이버 강의 1. 정치-> 6.교황 통치와 그 본색



청교도개혁주의도서보급선교회
출처 : 개혁주의 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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