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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및 신조〓/청교도

사무엘 데이비스 (Samuel Davies, 1723-1761)

by 【고동엽】 2021. 11. 16.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설교자 - 로이드존스의 평가 (1967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강연중에서)


1723년 11월 3일, 펜실베니아주 뉴캐슬 카운티에서 태어남
경건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독자였으며, 아벨 모건이라는 침례교 목사에게 초기 교육을 받았다.


1734년, 사무엘의 어머니는 장로교로 교파를 옮겼다.
사무엘은 십대에 영국인인 윌리엄 로빈슨이 가르치는 고전 영어 수업을 받았다.
그후 사무엘 블레어 목사의 통나무 대학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1738년, 15세때 데이비스는 구원의 확신을 했으며, 복음 전도 사역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헌신할 것을 결심했다. 그러나 사무엘 데이비스가 설교에 대한 진정한 개념을 정립한 것은 통나무 대학에서 블레어의 지도를 받을 때부터였다.


1741년 8월, 뉴저지와 펜실베니아의 복음적 영향의 중심지였던 뉴브런즈윅의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은 그는 가는 곳마다 강렬히 타오르는 듯한 하나님의 빛으로 빛나는 유성이 되었다. 그는 모든 약점과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추진력으로 하나님과 영혼들을 뜨겁게 사랑했다. 네쉬아미니 크리크 족이었던 유명한 설교자 윌리엄 테넌트를 계승해 달라는 요청을 정중히 거절한 채, 로빈슨은 서부와 남부의 복음화되지 않은, 인적이 드문 광활한 지역을 여행하며 설교하는 어려운 길을 택하였다.


1747년 2월 19일, 뉴캐슬 장로교 노회(New Castle Presbytery)는 그를 복음 전도자로 안수하고 버지니아로 보냈다.
1747년 8월, 그는 하노버에 처음 방문하고 잃어버렸던 건강도 되찾게 된다.
1747년 9월,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이 갑작스럽게 죽음으로 슬픔과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게 된다.
1748년 5월, 하노버 신자들은 그를 다시 초청했고 그는 하노버에 정착하게 된다.
"나는 최근에 하노버에 정착한 세심하고 경건한 청년 데이비스의 사역 아래 버지니아의 하노버에서 흑인과 백인들 사이에 벌어진 엄청난 확신과 회심에 대한 믿을 만한 보고를 전해 들었습니다." - 조나단 에드워즈
1748년 10월, 버지니아의 전 시장의 딸인 제인 홀트와 결혼하게 됨으로서 상류사회에서도 데이비스의 사역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데이비스 목사의 회중으로 있을 때 그들의 신앙심은 부흥되는 것 같았으며, 마치 내가 천국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아침과 저녁 기도회 시간에는 사교계의 신사들과 그들의 노예들이 함께 헌신적으로 기도했다. 지상에서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기분 좋고 유쾌한 일이었다."- 1755년 리치먼드 카운티의 한 통신원의 고백


1753년 12월, 프린스턴 대학을 세우기 위하여 1년 기간동안 뉴저지 대학(프린스턴 대학의 전신)을 대표해서 길버트 테넌트 목사와 함께 영국을 방문했다. 그는 영국 방문을 통하여 조지 휫필드와 더욱 친분이 깊어지게 되었다.
1755년, 버지니아의 첫 장로회가 형성되었다. 이번에 데이비스가 혼자 섬기던 이 지역은 이제 다섯 명의 새로운 목사가 섬기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1759년 7월 1일, 조나단 에드워즈의 후임으로 프린스턴 대학의 학장으로 초청받고 사랑하던 하노버 목회사역을 접게 된다. 그러나 그는 몇 년 전부터 나빠진 건강으로 몸이 급격히 쇠약해진다.
1761년 2월 4일, 37세의 짧은 일기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사무엘 데이비스의 어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열방에게 기독교를 전파함에 있어서 성도들의 거룩하고 선한 행위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과 경향을 알지 못합니다."


"성령의 부어 주심은 황폐해진 사회를 치료할 수 있는 위대하고도 유일한 방법이며, 국가적 재앙과 비참함을 효과적이고도 최종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이며 평화를 확립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근거다"


"나에게는 아주 적은, 정말 아주 적은 신앙이 있습니다. 나는 아마도 3-4개월에 한 번 정도 정말 내가 소원하는 만큼의 능력으로 설교한 것 같습니다. 은혜로우신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자주 변덕부리는 나로서는 정말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입니다. 나는 기껏해야 그리스도의 교회의 촛대에 연기 나는 심지이며 꺼져 가는 촛불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불꽃이 타락한 마음의 심지에 임할 때 그것은 떨리게 되고 새롭게 되고 감화되며 가끔씩 생명이 끝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내 친구여, 이전에 나는 좀더 천국에 합당한 사람으로 준비되기 위해 오래 살고자 했네. 그러나 이 생각은 정말이지 내게 너무나 무가치한 것이었네. 이 세상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것이 자라기에는 정말로 해로운 곳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네. 나는 이제 오래 살기가 두렵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오래 산다해도 현재의 내 자신의 모습보다 천국에 더 합당한 사람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이네." - 깊은 병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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