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성경해석학 서론 / 정규철 목사 |

by 【고동엽】 2021. 11. 12.
목록가기
 
 

성경해석학(hermeneutica)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곳은 슈트라스부르크(Straßburg) 출신의 단하우어 (Johann Konrad Dannhauser, 1603-66)가 1654년에 출판한 「성경주석의 방법으로서의 성경해석학」 (Hermeneutica Sacra sive Methodus Exponendarum Sacrum Literarum)이다. 이 저서의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해석학은 17세기부터 문헌해석의 규칙이나 방법에 관한 학으로 규정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해석학은 어떤 문헌을 실재로 해석하는 작업을 넘어서 실제의 해석 활동을 지배하는 규칙이나 방법을 세우는 일이다. 이 용어는 특정한 텍스트(Text)를 위한 해석을 보조하거나 해석의 여러 가지 규칙을 확정하는 신학이나 문헌학 또는 법률학을 위한 보조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 왜 성경해석이 필요한가?

 

첫째로 언어적인 차이(Language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성경과 독자의 언어에 차이가 있다.
둘째 시간적 공간적 차이(Chronological and Regional gap) 때문이다. 과거에 기록된 성경의 장소와 현재의 독자들 사이에는 시간적 공간적 차이가 있다.
셋째 의사소통의 차이(Communication gap)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 기록자들과 현대인들 사이에는 지식, 경험, 문화, 상식이 서로 다르다.
넷째 표현의 차이(expressional gap) 때문이다. 성경 언어와 현대어가 같지 않다.
다섯째 성경 자체가 성경해석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⓵ 누가복음 24:26-27,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당하고서 자신의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시고,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있는 자신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친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구약을 요약하여 해석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성경 해석자가 되셨다. 그래서 이 두 제자는 복음을 알고 믿었다.

 

⓶ 사도행전 8:34-35, “내시가 빌립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가 당신께 청하여 묻노니 선지자가 이것을 말한 것이 누구에 대한 것이냐? 자신에 대한 것이냐, 아니면 다른 누구에 대한 것이냐?" 하니, 빌립이 입을 열어 이 성경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하였다.” 빌립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에게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해석해주었다. 빌립의 설명을 들은 그 관리는 복음을 믿었고 에디오피아에 복음이 전달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⓷ 디모데후서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하나님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힘써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올바른 성경 해석을 권면하는 것이다. 즉 이 구절은 성경 해석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⓸ 베드로후서 3:16, “그가 모든 편지에서 이것들에 관하여 말하였는데,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이해하기 어려워서,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처럼 이것들을 억지로 해석하다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 있다.” 바울 서신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는 것은 성경 해석의 필요를 말해준다. 성경 본문 자체가 난해한 점을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을 읽는 사람들의 이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성경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해석이 필요하다.

 

2. 성경해석과 관련된 용어

 

성경 해석과 연관되어 몇 개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해석학, 주석. 주해, 강해 등이다. 해석학은 주석, 주해, 강해와는 달리 약간의 구별이 있지만, 때로 주석, 주해, 강해는 서로 혼용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박형용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참고할만하다(박형용, 「성경해석의 원리」, 수원: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2, 9-22)

(1) 해석학과 주석

해석학은 영어로 헬메뉴틱스(Hermeneutics)을 사용한다. 해석학은 해석의 원리와 법칙과 방법을 가르치는 과학이다(루이스 벌코프, 「성경해석학」, 윤종호, 송종호 공역,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2002, 9.).

 

성경 해석학을 흔히 학문(science)과 예술(art)로 정의할 수 있다. 성경 해석학이 학문이라는 뜻은 성경 해석학이 법칙을 가지고 있고 이 법칙들을 질서 있는 체계로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해석학을 예술로 생각하는 이유는 법칙 적용에 융통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계적이고 딱딱한 법칙의 적용은 오히려 본문의 뜻을 왜곡시킬 수 있다. 해석가는 예술가처럼 해석 법칙을 지혜롭게 적용한다.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은 석의 혹은 주석(exegesis)에 관계된다. 법칙은 놀이가 아니다. 그러나 놀이는 법칙들이 없으면 무의미하게 된다. 성경 해석학은 주석이 아니다. 그러나 주석은 성경 해석학의 인도가 없으면 과녁을 맞출 수 없다. 해석학을 학문이라고 한다면 석의와 주석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고, 해석학이 이론이라면 석의와 주석은 실제라고 할 수 있다. 성경 해석학은 성경의 뜻을 찾아내는 데 필요한 성경 해석 원리들을 성경을 기초로 찾아내어 확립하는 학문이다.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볼 때 해석학이 있기 전에 주석이 있었다. 즉 성경 해석에 대한 학문이 있기 전에 이미 성경 해석이 존재했다. 이는 마치 동물학이 있기 전에 동물이 생산하고 성장하는 사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원리는 해석학이 주석가를 만들어 낼 수 없음을 증명해 준다. 식물학이 식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교육학이 선생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과 같다.

 

해석학은 자연적인 은사를 훈련시키고 발전시키게 하며 어떤 법칙과 방법을 더 양심적이고 정확하게 해석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해석자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주석을 돕는다.

(2) 주석과 주석서

 

일반적으로 exegesis는 주석을 하는 행위를 뜻하고, commentary는 주석책을 가리킨다. Exegesis는 헬라어 엑세게시스(εξηγησι?)로부터 왔다(요 1:18). 그 뜻은 ‘설명하다’, ‘이끌어 내다’, ‘인도해 내다’, 자세한 정보를 조직적인 방법으로 제공하는 것, 즉 알리는 것, 전달하는 것,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용어의 의미는 주석의 목적을 설명해 준다. 주석은 성경 본문을 연구하여 저자가 본래 수신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히 찾아내는 작업이다. 우리가 바울서신을 주석한다면, 우리는 바울이 수신자들에게 전달하기를 원했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3) 주해

주해는 주석과 같은 의미로 사용될 경우도 있고, 강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주해는 주석처럼 한 단어나 한 구절만을 설명하지 않고 문단 전체의 내용을 설명하되 본래 저자가 본래 수신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찾는 데 강조를 둔다. 이 경우는 주해가 강해의 특성을 활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주해는 내용적인 면에서는 주석의 특성을 살리고, 설명하는 방식에서는 강해의 특성을 활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상근 목사는 그의 주석을 ‘주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영어로는 ‘커멘터리’(Commentary)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그의 주해는 주석과 강해의 측면이 있다.

 

(4) 강해


강해(Exposition)는 강해는 성경을 연구하여 성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기 원하는지 찾아내어 설명하는 것이다. 강해는 성경 본문의 뜻을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성경 본문의 뜻을 현시대에 적절하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δουλο?)이란 용어의 강해는 해석자가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종의 개념, 즉 집안에서 부리는 하인 정도의 개념이 종의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노예의 개념과 같이 자신의 자율적 판단과 행동을 시행할 수 없고 오직 주인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임을 현대 독자들에게 설명해 주는 작업이다. 주석은 성경이 무엇을 말했는지를(said) 찾는 작업이라고 말한다면, 강해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says) 찾는 작업이다.

 

3. 성경 해석학과 관련된 학문

 

성경을 기초로 하는 학문 가운데 성경 해석학 이전에 다루어져야 할 학문이 있고 성경 해석학 이후에 다루어야 할 학문 분야가 있다.


정경론(Canonicity)은 성경 연구 분야 중 제일 먼저 다루어야 할 분야이다. 정경이 결정되지 않으면 성경 해석도 본문 비평도 할 수 없다. 정경론은 어느 책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인지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성경의 66권이 정경으로 수납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따라서 정경화의 과정은 역사적인 것이었지만 기억할 것은 성령이 교회를 인도하여 영감된 책을 정경으로 수납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정경을 정경답게 하는 것은 하나님 계시 여부이다.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은 정경이 결정된 뒤에 따라오는 학문 분야이다. 본문 비평은 비평적인 전제를 가지고 성경 본문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에 영감으로 기록된 원본이 없고 사본들만 있기 때문에 여러 사본들을 연구하여 원본을 찾는 연구 분야이다. 우리에게 사본들만 있고 원본이 없다는 사실이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하지 못한다.


총론(Introduction)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분야이다. 해석학 이전에 시행되어야 할 분야이다. 성경 각 책의 저자는 누구이며 언제 기록되었는지? 그 성경이 기록된 역사적 배경은 어떠했는지? 등에 관해 연구하는 분야이다. 성경이 일반 역사책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책이기 때문에 어떤 역사적 형편 가운데서 기록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성경 해석에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또한 성경이 유기적으로 영감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저자에 관한 연구, 수신자에 관한 연구, 역사적 형편 등 역사적 연구가 필요하다. 성경 본문의 역사적 형편을 알지 못하고는 성경의 본뜻을 터득하기 어렵다.


정경론, 본문 비평, 총론적 연구 다음에 성경 해석을 할 수 있다. 성경 해석은 해석학의 원리를 적용하여 본문의 바른 뜻을 찾아내는 것이다. 성경 해석 시 주의해야 할 것은 본문의 의미를 찾아내야지 본문에 자신의 사상을 첨가시켜 그것이 마치 성경 본문의 뜻인 양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 해석학 이후의 학문 분야는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이 있다. 성경신학이나 조직신학 모두 성경주석을 근거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성경주석은 성경신학의 조종을 받으면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성경신학은 성경주석을 근거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성경주석과 성경신학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조직신학 역시 하나님의 메시지 전달을 기본으로 하는 성경주석을 통해 신학의 체계를 수립한다. 조직신학이 사변적으로만 흐르게 되면 성경의 본뜻과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성경신학이나 조직신학이나 성경계시의 유기적인 전체 조직을 생각한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성경신학은 계시의 역사성에 관심을 더 두고 조직신학은 주제별 연구에 관심을 두지만 기본적인 것은 하나님 메시지의 전달이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복음이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설교학이나 설교도 성경해석학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먼저 성경해석이 있고난 다음에 설교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해석학의 정의

 

해석학(hermeneutics)은 헬라어 ‘헬메뉴오’(ερμηνευω)에서 유래되었다. ‘헬메뉴오’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말하다는 의미, (2) 설명하다는 의미, (3) 번역하다는 의미이다. 원래 이 단어는 헬라신화의 헤르메스(Hermes)와 연관이 있다. 날개 달린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신이었다.

 

헤르메스가 인간의 이해능력을 초월해 있는 것을 인간이 파악할 수 있도록 전환시켜 준다. 그의 사명은 인간의 세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의 의미 연관을 인간의 세계에서 이해되는 의미로 옮겨 주어야 했다. 그래서 이 단어의 여러 다양한 형태들은 어떠한 사물이나 상황이 이해불가능한 것에서 이해가능한 것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헬라인들은 인간의 이해능력이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인 언어가 헤르메스의 덕택이라고 믿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헤르메스가 사도행전 14:12에 언급되었다.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말하자면 바울은 사도로서 복음의 전달자이다. 마틴 하이데거는 철학 자체를 ‘해석’이라 보고 해석학으로서의 철학을 명시적으로 헤르메스와 연관 짓기도 했다. 철학에도 의미전달의 개념이 있는 셈이다. 따라서 헤르메스에서 유래된 성경해석학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론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해석학은 성경 메시지의 전달에 관한 학’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메시지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인격과 구원사역이라는 복음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사도요한의 복음서 기록 목적과 같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따라서 성경의 목표는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도록 하는데 있기 때문에 성경해석의 목표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믿어 죄 사함 받아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도록 성경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정규철 목사(총신대학교 대학원에서 “성경무오교리에 대한 역사적 증명”이란 제목으로 신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http://reformednews.co.kr/8178

 

출처: 영적분별력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