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비키, 『칼빈주의』, 신호섭역, 지평서원, 2010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추천의 글(윤종훈교수)
본서는 조엘 비키 박사를 종심으로 일곱 신학자들의 집필로 완성된 칼빈주의 최대의 역작으로 손꼽힌다. 역사적이며 체계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서술된 칼빈주의 교과서로 적합하다.
비키 박사는 청교도 운동의 전문가이자 후기 종교 개혁 시대를 연구한 학자로서, 칼빈주의의 출발을 존 칼빈에 머무르지 않고 신구약성경을 시발점으로 하여 초대교회 성경적 교부들을 중심으로 중세의 피터 왈도를 위시한 왈도파와 영국의 존 위클리프, 보헤미아의 요하누스 후스, 토마스 브래드워딘, 리미니의 그레고리 등에서 그 연원을 찾고 있다. 즉, 칼빈주의는 칼빈 한 사람의 신학 사상의 총체가 아니라, 성경중심주의이자 개혁신학의 신앙과 사상과 삶의 총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칼빈주의 심장- 청교도!
비키 박사를 위시하여 여덟 명의 개혁주의자들은 칼빈주의가 영미 청교도 시대를 맞이하여 칼빈주의 심장으로 발전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청교도들은 칼빈의 제네바학교를 통해 양육된 가장 이상적인 개혁주의 신앙인들이었다. 이들은 영국의 로마 가톨릭 신학과 알미니안주의적 잉글리칸 신학에 반기를 들고, 가장 성경적이고도 개혁주의적인 신학과 신앙과 삶을 이루어 가기 위해 투쟁하며 헌신하였으며, 화형의 형틀을 천사의 얼굴로 맞이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의 전사들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모토로 삼은 칼빈의 신학 사상을 기초로 하여 청교도 신학자들은, 구원의 서정 중 소명, 믿음, 회개, 거듭남, 칭의, 양자의 영에 대하여 성경에 입각한 구체적인 설명과 아울러 신자의 사상과 삶의 열매로서의 성화를 강조함으로써 칼빈주의가 거듭남과 예정에 국한된 사상적 체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임을 제시한다. 또한 이러한 성화의 시대적 사명과 책임의 막중함을 적시해 주고 있다.
칼빈주의의 핵심 - 하나님 영광! 그리스도의 삶!
본서는 칼빈주의의 핵심은 ‘하나님 영광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삶’을 이루고자 성화의 삶을 추구하며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삶을 구현’하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 준다. 또한 이처럼 성도가 성화를 이루어감에 있어서 성화의 주체이자 조성자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성화의 가장 중요한 수단임을, 성경을 근거로 논증하고 있다.
신자와 그리스도의 신비적 연합으로 베풀어 주시는 복음적 은혜의 통로를 통해서만 신자의 성화가 점점 아름답게 이루어져 간다는 절대 진리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칼빈주의의 결실 - 예배의 갱신과 회복!
본서는, 개혁주의, 성경주의, 칼빈주의가 동일한 사상이며, 칼빈주의 신학은 예배의 중요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음을 자세히 그려 주고 있다. 마틴 루터가 로마 가톨릭적인 미사를 수정하여 보완된 예배를 제시하고자 하였음에 반하여, 칼빈주의자들은 초대교회의 공동체 중심적인 예배와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고 삶 속에서 이를 확증하는 역동적인 산 예배를 구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예배의 일환으로 말씀의 중요성과 설교 중심적인 예배를 추구하였다. 청교도였던 리처드 백스터는 적용이 없는 설교를 생명력을 상실한 것으로 일축하였다.
칼빈주의-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임하도록!
본서는 성경에 기초한 삶의 신학의 일환으로서, 칼빈주의자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실천적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자녀들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양육하여 가정과 교회와 지역사회와 전 세계에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키워 낼 수 있는지 그 방법도 상세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또한 노동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칼빈주의 정치관과 윤리관을 성경적으로 풀어서 설명하면서, 도덕적 율법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율법폐기론자 또한 비성경적임을 논증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을 위시한 성경적 사람들이 숙고해야 할 필독서!
오늘날 한국교회를 위시하여 세계교회들이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 등 현대사조에 물들어 죽어 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혼란기에 가장 성경주의적, 칼빈주의적인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세워 줄 수 있는 영혼의 교과서인 본서를 독자들이 숙독하게 될 때, 신앙과 삶에 대변혁을 불러 일으키는 놀라운 결과를 산출하게 될 것으로 확신하는 바이다.
부디 몇 번에 걸쳐 숙독하시고 묵상하여서 정확한 신앙고백에 입각한 삶의 신학과 신앙관을 수립하여 한국교회가 새롭게 되는 은혜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바이다. (pp 12-16)
「칼빈주의」를 출판하며/ 조엘 비키
나는 수년 동안, 교회와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며 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방식으로 저술된 칼빈주의의 지성적이고도 영적인 강조점을 다루는 책을 찾았다.
나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성경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이며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매력적이면서도 실제적인 칼빈주의의 특징을 설명해주는 동시에 어떻게 칼빈주의가 진정으로 우리가 창조된 목적, 즉 소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목적에 부합되는 삶을 추구하는지를 분명하게 시사해주는 책을 찾고 있었다.
칼빈의 신학적 업적은 너무나 광대해서 인간의 삶과 사회와 문화의 모든 국면들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칼빈은 인간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기 위해 우주와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국면을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두려고 하였다. 바로 이것이 칼빈주의가 단순히 한 가지 주요 교리 또는 칼빈주의 5대 교리, 혹은 칼빈주의 10대 교리 또는 칼빈주의 20대 교리로 제한해서 설명될 수 없는 이유이다. 칼빈주의는 삶 그 자체만큼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칼빈주의의 포괄성은 참되고도 열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청교도주의를 통해 가장 극명하게 표현된다. 청교도들의 신학과 삶은, 그들이 어떻게 한쪽 눈으로는 영원을 바라보고 다른 한쪽 눈으로는 세상을 보면서 전 생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는지에 대해 아주 많은 것들을 교훈해 준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나의 통렬한 소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칼빈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시는 성경적 진리의 체계임을 믿는다.
나는 십 대 때 아버지의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을 샅샅이 살펴서 청교도 학술 서적들을 밤마다 읽었다. 아마 무엇보다도 그것이 나에게 가장 큰 유익을 끼쳤을 것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청교도들은 여전히 나의 영혼을 향해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다.
6부 ‘칼빈주의의 목적’(송영적 칼빈주의‘)에 관해서는, 사무엘 루더포드의 서간문보다 나를 감동시켰던 책은 없다. 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서간문을 침대 곁 책상에 두고 읽으면서, ’흑암과 빛이 같으신‘(시139:12) 주권자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한 영감을 얻곤 했다.
나는 본서가 칼빈주의자들인 독자들이 칼빈주의의 역사적 진리를 알고 그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따라 사는 데 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종교 개혁적 유산을 모른다면, 그러한 무지는 무관심을 낳을 것이며, 무관심은 칼빈주의 신학의 철회와 포기를 낳게 될 것이다.
나는 당신이 개혁주의 사상을 연구하기를 간청한다. 견실하고도 명성 높은 칼빈주의자들의 저작들에 몰두하기를 바란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같은 16세기의 고전을 읽으라.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존 플라벨의 「생명의 근원」(마음 지키기)과 같은 17세기 고전들을 읽으라.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를 읽으라. 19세기에 와서는 옥타비우스 윈슬로우의 「성령의 사역」과 스펄전의 「다윗의 보고」를 읽고, 20세기에 와서는 로이드 존스의 「산상수훈」과 존 머리의 「조직 신학」을 읽어보라.
우리가 우리의 종교 개혁적 유산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세상의 소금이 되지 못할 것이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마5:13).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칼빈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심각한 오설들을 제거하고 많은 영혼들에게 믿음과 확신을 불러 일으키시며, 삶의 모든 국면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믿게 하는 데 이 책을 사용하신다면, 이 책을 집필한 나의 노력은 충분하게 보상될 것이다.
1부 칼빈주의의 역사
1장 칼빈주의의 기원
“칼빈주의의 확산은 비범했다. 민간과 군대의 힘으로 유지되었던 카톨릭주의와 정치 종교로 살아남았던 루터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칼빈주의는 대부분 일관된 논리와 성경에 대한 충실성에 기초해 왔다. 그 결과 칼빈주의는 한 세기 만에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찰스 밀러
칼빈주의는 개신교의 종교 개혁이라고 불리는 유럽의 16세기 종교적 갱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운동은 결코 한 지역이나 어떤 시간에 머물렀던 현상이 아니다. 종교 개혁의 선구자들이 있었다. 피터 왈도와 알프스 지역에 거주했던 그의 추종자들, 존 위클리프와 영국의 롤라드파, 그리고 존 후스와 보혜미아 지역의 그의 추종자들이 있다.
이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악습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이 사실이 대단히 중요하다. 루터도 초창기에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악행을 정화하고자 하였을 뿐이다.
교황주의의 남용. 중세 시대의 교황권은 신학적이고도 실제적인 면에서 가장 많이 남용되었다. 부도덕한 행실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었고, 성지 순례 여행, 미사, 유골 숭배, 낭송, 묵주 기도 등의 복잡한 체계를 매개체로 하여 상업 종교가 성행하고 말았다.
교황주의의 거짓된 권위. 개혁 선구자들은 성경을 연구하면서, 교황에게 머리로서의 사도적 권위가 있다는 가톨릭의 주장에 의문을 던지게 되었다. “교회가 세워지는 반석”(마16:18)은 베드로 자신이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결론 내렸다. 교황들의 잔인한 핍박은 교황들을 적그리스도로 간주하게 되었다.
말씀의 속박.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일반 신자들에게서 성경을 빼앗았으며, 그것을 교회의 종교 회의와 주교들과 학자들과 교회법학자와 풍유적 해석자들에게 귀속시켜 버렸다. 개신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계급주의적 속박으로부터 성경을 구출하고자 노력했다.
말콤 왓츠, “로마 가톨릭교회는 정경의 순수성을 자신들이 추가한 가경과 혼합하였으며,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에 위조된 그럴듯한 막대한 전승을 더하였고, ‘신부들의 만장일치적 동의’와 ‘성모 마리아의 교회’에 따른 해석만을 인정함으로써 성경의 권위를 손상시켰다. 수많은 정교한 예법과 의식을 동반한 미사의 중요성을 찬미함으로써 설교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성경의 권위를 격하시켰다. 결국 설교는 타락했고, 실상 거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종교 개혁자들은 이에 강력하게 항거했고,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했다.”
수도원주의의 조장. 개신교회는 수도원주의를 영성으로 가는 유일하고도 최고의 길로 생각지 않았다. 모든 신자들이 만인제사장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세속적 직업과 관계된 ‘열등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수도사들과 수녀들의 ‘고등한’ 종교적 삶을 구분하는 가톨릭의 비성경적인 구분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중보의 강탈. 개신교회는 마리아와 성인들의 중보, 그리고 은혜가 자동적으로 성례로 변화한다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화체설을 배격했다.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형태의 중보를 반대했다.
개혁주의(칼빈주의) 신앙의 확산
스위스의 쯔빙글리와 쯔빙글리가 죽은 후에 그것을 수립하고 조직했던 하인리히 불링거가 개혁주의 전통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위대한 대표자이며 영향력 있는 해설자인 칼빈은 제네바를 개혁주의 도시의 표본으로 삼았다. 제네바는 16세기의 가장 중요한 개신교 중심 도시가 되었다. 칼빈이 전 서구 유럽을 위한 개혁자들을 훈련시키고 교육시키기 위해 세웠던 학교 때문이기도 했다. 유럽 개신교 출판의 중심지가 되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와 주석과 설교와 지도력을 통해 개혁주의 개신교를 체계화시켰다. 개혁주의와 칼빈주의라는 용어가 사실상 동의어가 되었다. 그러나 칼빈은 종교 개혁 운동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반대하였으며, 개혁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청교도주의는 1560년부터 시작되어 1700년대 초기까지 이어졌다. 청교도들은 영국국교회가 종교 개혁을 충분히 단행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청교도들은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예배의 정결함, 그리고 주교의 통치를 장로회주의라는 방식으로 대치하는 교회 정치의 정결함을 요구했다. 또한 그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위대한 거룩과 정결함을 요구했다.
제임스 패커, “청교도 운동은, 교회와 나라와 가정과 교육과 전도와 경제와 개인적 훈련과 헌신과 목회적 돌봄과 권한에 있어서 국가적이고도 개인적인 영적 갱신이라는 비전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복음주의 거룩 운동이었다.”
청교도주의는 교리적으로 볼 때에는 매우 단호한 칼빈주의였으며, 경험적으로 볼 때에는 따뜻하고도 전달력이 강했다. 또한 청교도 운동은 복음적으로 볼 때에는 매우 공격적이고 과감하면서도 아주 부드러웠다. 그리고 교회적으로 볼 때에는 하나님 중심적이고 경건했으며, 정치적으로 볼 때에는 왕과 의회와 백성들 사이의 관계를 성경적이고도 균형 있게, 양심에 따라 조정했다.
개혁주의 운동은 두 가지의 매우 유사한 신학의 체계로 발전했다. 하나는 「벨직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도르트 신조」라는 세 가지 공통적인 신조를 교리적 신앙고백으로 삼고 있는, 네델란드로 대표되는 대륙의 개혁주의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 즉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에 잘 표현된 영국-미국의 장로교주의이다.
오늘날의 칼빈주의
종교 개혁의 신학은 수십 년 동안 개신교 복음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칼빈주의 신학은 유럽의 계몽주의나 미국의 피니주의와 같은 여러 가지 영향들로 인하여 혼합되고 희미해졌다. 그리고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는 19세기에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과 다시 출현한 알미니안주의로 인하여 서구 세계의 칼빈주의 신학이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더욱더 지성주의와 박애주의가 지배하는 형태로 흘러가고 있다. 무론 이것들은 16세기의 신학을 폐기 처분해 버렸다.
또한 1960년대 이후로 칼빈주의 작품들에 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칼빈주의자들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칼빈주의의 미래는 아주 밝다. 왜냐하면 칼빈주의가 하나님의 전체 경륜을 믿고 실천에 옮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많은 것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는 명민한 신앙과 따뜻한 마음의 영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것들이 합쳐질 때 비로소 가정과 교회와 사업장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힘 있는 삶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결국 이것이 성경과 칼빈주의와 삶 그 자체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다.
2장 칼빈주의 신앙고백서
피터 클럭,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은 가톨릭교회나 희랍정교회나 루터파 교회들의 신앙고백서들보다 훨씬 더 다양했다. 여러 나라들이 지리적 혹은 정치적 고립으로 인해 그들 고유의 신앙고백서들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순전하게 믿고 있던 하나님의 말씀의 뼈대 안에 항상 머물렀다.”
초기 칼빈주의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신앙고백문을 만드는 데 헌신했다는 것이다. 신앙고백서들의 권위는 오직 본질적인 고유의 권위를 소유한 성경으로부터 연원되어야 하며, 반드시 성경에 종속되어야만 한다. 16,17세기의 개혁주의 교회들은 몇 가지 계통의 신앙고백서들을 만들어 칼빈주의적 신앙을 증진시켰으며, 로마 가톨릭교회와 다른 개신교회 단체들과 개혁주의 교회를 구분하였다.
이 가운데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들이 가장 선호하고 열렬히 지지하는 일곱 개의 신앙고백서들은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도르트 신조」,「제2스위스 신앙고백서」「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대요리문답」 그리고 「소요리문답」이다. 이것들은 ‘살아 있는’ 교리적 표준이라고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21세기의 수많은 개혁주의 교회들이 공식적으로 이것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벨직 신앙고백서」(1561)
현존하는 일곱 개의 신앙고백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벨직 신앙고백서」는 칼빈의 계획으로 1559년 프랑스 개혁주의 신앙을 진술한 프랑스 신앙고백서를 따라 만들어졌다.
개혁주의 조직신학의 전통적 교리 순서를 따르고 있다. 신론, 인간론, 그리스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우리’라는 대명사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따뜻하고도 경험적이며 인격적인 정신을 잘 나타내는 고백서이다.
신앙 고백서가 작성된지 1년 후에 청원자들은 고백서와 함께 진술문을 스페인 왕 필립 2세에게 보냈다. “모든 합법한 일에 대해서는 정부에 순종하겠지만 이 고백서에 진술된 진리들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해야 함을 잘 알고 있으므로, 등이 벗겨지고 혀가 잘리고 입에 재갈을 물고 온몸을 불에 던질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나 고백서와 청원서는 스페인 정부 당국자에게 개신교회에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설득하지는 못했다. 고백서를 작성한 드 브래 목사는 1567년 그들의 신앙을 피로 봉인한 구백여 명의 순교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 고백서는 네델란드 개혁주의 교회들에 받아들여졌고, 도르트 종교회는 이 고백서를 개혁주의 교회들의 모든 성직자들이 동의해야만 하는 교리적 표준서로 채택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1563년)
이 문답서는 독일 팔라틴 지역의 선제후 프레드릭 3세의 요청으로 하이델베르그에서 28세의 우르시누스와 26세의 올레비아누스에 의해 작성되었다. ‘비범한 권세와 아름다움, 공인된 대작의 요리문답’이라 불리운다.
이 문답서는 한해 동안 매주일 설교할 수 있도록 52개 부분으로 나누어 놓았다. 명료하고도 온화하게 교리들을 설명하며, 그 내용은 객관적이기보다 주관적이며, 교리적이기보다는 영적이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위로의 책’이라고 불렸다. 경험적이고도 실제적인 이 요리문답은 네덜란드에 산재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 요리문답은 천로역정만큼이나 널리 보급되었다. 신학적으로 확실한 칼빈주의를 따르면서도 그 어조가 온화하고 그 정신이 평화적인 이 ‘위로의 책’은, 가장 널리 사용될 뿐만 아니라 따뜻한 개혁주의의 요리문답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1566년)
이 고백서는 1562년 하일리히 불링거의 개인적인 고백과 증언의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30개의 장과 2만여 단어에 육박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개혁주의 신학의 치밀한 교과서와 같다. 성경에서부터 시작하여 개혁주의적이고도 칼빈주의적인 조직신학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제1장)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선택을 고찰하게 만드는 거울이심(제10장)에 대하여 다룬다.
16세기 후반의 개혁주의 신학을 성숙하게 진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링거의 노력과 믿음에 관한 가치 있는 증언인 이 신앙고백서는 오늘날에도 헝가리 개혁교회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도르트 신조」(1618-1619년)
도르트 종교 회의는 1618년 11월부터 1619년 5월까지 7개월 동안 154차례의 회기로 소집되었다. ‘알미안주의의 5대 오류에 대한 칼빈주의의 5대 답변’이다. 1. 무조건적인 선택과 구원 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이다. 2. 그리스도의 죽음은 온 세상의 죄를 속하기에 충분하지만, 그 구원의 효력은 택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다. 3.-4.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타락하고 오염되어서, 구원에 대하여 자유의지를 행사하거나 거기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은혜 가운데 불가항력적으로 택자를 부르시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5.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그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해 노력할 때 연약함으로 인하여 고난당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세상 끝날까지 인내하게 하시고 보존하신다.
이 신조는 3대 신앙고백서(벨직,하이델) 중 교회 총회가 작성한 유일한 신조이며, 당시 모든 개혁교회들의 견해를 제시한 신조이다. 네덜란드와 외국의 모든 대표자들은 서명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년)
웨스트민스터 종교 회의에서 신학자들이 작성하였으며 종교 개혁 이후 기독교회에 가장 영향력 있는 문서 가운데 하나이다. 이 고백서는 「소요리문답」과 함께 장로교주의에 관하여 칼빈의 「기독교 강요」보다 훨씬 더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한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을 매우 잘 표현한 신앙고백서라고 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1648년)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1648년)
이 문답서들은 그리스도인의 순종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완전한 이해를 함께 제시한다. 웨스트민스터 종교 회의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일상의 실제적인 상활에 적용하기 위하여 잘 구성된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각과 삶을 위해 가치 있는 지침서이다.
로버트 갓프리, “17세기 청교도들은 가장 사려 깊고 경건하며, 기독교회 역사상 가장 심오한 학생들이었다.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는 그들의 이러한 노력의 요약과 추출물과 같다.”
이 일곱 개의 살아 있는 신앙고백서들은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16,17세기 칼빈주의 신학의 비범한 통일성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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