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의 매력은 무엇인가?(1)
이승구교수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2003학년도 신입생들의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개혁신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학교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신 분들은 누구나 개혁신학에 대한 매력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아직도 이 말의 뜻이 실감 나지 않을 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개혁신학의 매력으로 느끼는 바를 조금이나마 소개하는 일이 필요한 듯합니다.
물론 이 문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개혁신학과 관련해서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에 대한 철저한 인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모습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있는 이들은 가장 성경에 충실한 하나님 개념을 제시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인 개혁신학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개념을 가장 성경에 충실하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가장 잘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전체를 창조하시고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분이시며, 따라서 우리의 주권적인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여러 신학적 표현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let God be God)하는 일에 충실하려고 하는 것이 개혁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그리고 지금도 온 세상을 붙들고 섭리해 가시는 분으로서 이 세상 전체에 대하여 온전한 주권을 가지고 계시니 그 점을 바르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개혁신학은 늘 강조해 왔습니다. 월필드(B. B. Warfield) 같은 이는 "칼빈주의자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뵈온 이이다"고 여러 번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한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고 그에 충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신성 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엄위(嚴威)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찌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다른 신학적 표현들도 때때로, 특히 예배와 관련해서, 이런 개혁신학적 이해에 가까이 온 일이 있고,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런 노력들을 높이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과 수납은 우리만의 독특한 개념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되고, 실질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인정해야만 하는 정확하고 바른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참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그 누구나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을 말하고 그 주권에 자신을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주권에 대한 인정을 그저 우리가 가진 신학의 표현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고, 오히려 모든 사람이 성경에 근거하여 바르게 가져 나가야 할 바른 입장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 일은 여러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바르게 강조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의 주권이 바르게 인정되지 않을 때, 그것이 왕권에게 전가된 것으로 말하는 소위 왕권 신수설(the divine rights of the king)이 나타났으며, 이에 저항하는 이들은 주권 재민(主權 在民)과 국민의 주권(people's sovereignty)을 강조하면서 '백성의 소리'(vox populi)가 곧 '하나님의 소리'(vox dei)라고 하기도 하고, 또 그것이 지나쳐서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부인하는 데로 나아가는 일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실로 모든 주권이 철저히 하나님께 있으며 우리는 그 누구든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주권을 잘 받아들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주권 아래서만 개인의 권리도 있고, 국민의 권리도 있고, 도대체 이 세상의 모든 권리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무시되고 사라지고 나면 결국 인권의 기초가 사라지게 되므로, 실질적으로 모든 권리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되고 맙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제한적으로 제시하며, 하나님께서 스스로 당신님의 주권을 일부를 포기하신 듯이 표현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크심의 표현이며 사랑의 표현이라고 잘못 제시하는 일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우려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분위기에 반(反)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의미 심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주권이 그저 구호로만 언급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주권에 대한 강조가 개혁신학에 대한 반감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권을 강조하는 이들이 말만하고 실질적으로 하나님 주권에 충실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을 본 이들은 그 경험의 결과로 우리의 하나님 주권에 대한 강조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감과 반동적인 반응을 나타내기 쉬운 것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그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잘못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구호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세계 전체와 역사 과정 전부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통제권과 주재권(主宰權)을 인정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주관하심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심지어 그 구체적인 과정을 우리가 잘 모르고, 우리로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에라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서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입을 가리우는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의 과정도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통제하시는 손길 아래 있음을 믿고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진전해 가야 합니다. 또한 이는 우리의 모든 학문 활동에서도 우리의 생각을 주관하는 원리로 나타나야 하고, 우리의 다른 모든 활동에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부디 이 학교에서 그리고 이후에 평생토록 우리가 하는 모든 공부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들 사이의 모든 관계성에서 참으로 주권적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표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명실상부한 개혁주의적 학문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수행해 가는 이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주권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찬연히 빛나고, 하나님의 뜻만이 구현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historiaDei
글쓴이 : 張子房 원글보기
이승구교수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2003학년도 신입생들의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개혁신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학교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신 분들은 누구나 개혁신학에 대한 매력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아직도 이 말의 뜻이 실감 나지 않을 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개혁신학의 매력으로 느끼는 바를 조금이나마 소개하는 일이 필요한 듯합니다.
물론 이 문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개혁신학과 관련해서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에 대한 철저한 인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모습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있는 이들은 가장 성경에 충실한 하나님 개념을 제시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인 개혁신학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개념을 가장 성경에 충실하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를 가장 잘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전체를 창조하시고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분이시며, 따라서 우리의 주권적인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여러 신학적 표현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let God be God)하는 일에 충실하려고 하는 것이 개혁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그리고 지금도 온 세상을 붙들고 섭리해 가시는 분으로서 이 세상 전체에 대하여 온전한 주권을 가지고 계시니 그 점을 바르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개혁신학은 늘 강조해 왔습니다. 월필드(B. B. Warfield) 같은 이는 "칼빈주의자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뵈온 이이다"고 여러 번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한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고 그에 충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신성 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엄위(嚴威)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찌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다른 신학적 표현들도 때때로, 특히 예배와 관련해서, 이런 개혁신학적 이해에 가까이 온 일이 있고,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런 노력들을 높이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과 수납은 우리만의 독특한 개념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되고, 실질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인정해야만 하는 정확하고 바른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참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그 누구나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을 말하고 그 주권에 자신을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주권에 대한 인정을 그저 우리가 가진 신학의 표현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고, 오히려 모든 사람이 성경에 근거하여 바르게 가져 나가야 할 바른 입장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 일은 여러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바르게 강조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의 주권이 바르게 인정되지 않을 때, 그것이 왕권에게 전가된 것으로 말하는 소위 왕권 신수설(the divine rights of the king)이 나타났으며, 이에 저항하는 이들은 주권 재민(主權 在民)과 국민의 주권(people's sovereignty)을 강조하면서 '백성의 소리'(vox populi)가 곧 '하나님의 소리'(vox dei)라고 하기도 하고, 또 그것이 지나쳐서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부인하는 데로 나아가는 일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실로 모든 주권이 철저히 하나님께 있으며 우리는 그 누구든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주권을 잘 받아들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주권 아래서만 개인의 권리도 있고, 국민의 권리도 있고, 도대체 이 세상의 모든 권리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무시되고 사라지고 나면 결국 인권의 기초가 사라지게 되므로, 실질적으로 모든 권리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되고 맙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제한적으로 제시하며, 하나님께서 스스로 당신님의 주권을 일부를 포기하신 듯이 표현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크심의 표현이며 사랑의 표현이라고 잘못 제시하는 일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우려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분위기에 반(反)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의미 심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주권이 그저 구호로만 언급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주권에 대한 강조가 개혁신학에 대한 반감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권을 강조하는 이들이 말만하고 실질적으로 하나님 주권에 충실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을 본 이들은 그 경험의 결과로 우리의 하나님 주권에 대한 강조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감과 반동적인 반응을 나타내기 쉬운 것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그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잘못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구호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세계 전체와 역사 과정 전부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통제권과 주재권(主宰權)을 인정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주관하심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심지어 그 구체적인 과정을 우리가 잘 모르고, 우리로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에라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서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입을 가리우는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의 과정도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통제하시는 손길 아래 있음을 믿고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진전해 가야 합니다. 또한 이는 우리의 모든 학문 활동에서도 우리의 생각을 주관하는 원리로 나타나야 하고, 우리의 다른 모든 활동에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부디 이 학교에서 그리고 이후에 평생토록 우리가 하는 모든 공부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들 사이의 모든 관계성에서 참으로 주권적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표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명실상부한 개혁주의적 학문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수행해 가는 이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주권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찬연히 빛나고, 하나님의 뜻만이 구현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historiaD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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