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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는 이 세상에서의 부귀와 성공을 부정하는가? / 김명도 교수

by 【고동엽】 2021. 11. 6.
칼빈주의는 이 세상에서의 부귀와 성공을 부정하는가?

률립 신학 연구원
김명도 교수
www.tulipministries.com

요즘 많은 목사들은 “기독교의 목적은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물질적 축복만 누리는 것“ 이라고 말하는 반면에 칼빈 선생이 주장하는 “개혁주의” 신학은 이와 반대로, “기독교의 근본 목적은 죄에 빠져 죽게 된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알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태복음 16장이나 요한복음 16장 빌립보 1장에서 성도의 생활은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주님에게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의 물질 축복이 지상 목표가 아닙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내 영혼을 구원 받는 일이 제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이 칼빈의 생각이고 이것이 개혁주의 운동이고 이것이 본 “튤립 교육 선교회”의 목표입니다. 사람이 부귀영화를 누리고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엇이 유익합니까? 성도는 어려움도 당할 수 있고 심지어 죽음도 당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핍박이 어던 시절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순교의 제물로 주님에게 바쳐졌는가를 John Foxe 의 “Christian Martyrs" 라는 책을 통해서 또 Philip Schaff 의 ”Church History“ 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하는 성도는 반드시 핍박을 받게 마련입니다. 바울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 디모데후서 3:12에서 이 진리를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이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는 환난과 핍박을 당해도 담대하라” 고 요 16:33에 가르치십니다. 바울신학에서는 빌 1:29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만이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으면 부귀영화 를 누린다는 가르침은 가장 비성경적인 이단적 가르침입니다. 잘 믿는 성도도 가난할 수 있고j, 지나가는 유탄에 맞을 수도 있고, 자동차 사고를 당하여 불구자가 될 수도 있으며, 암에 걸려서 일찍 갈 수도 있습니다. 성도에게 무병장수의 보장은 없습니다. 성도가 반드시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칼빈 선생은 평생을 가난과 싸우며 27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야했지만 자족(自足)하며 오로지 주의 일에 정진(精進) 하여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낙을 삼았습니다. Robert McCheyne 목사는 나이 27세에 목사가 되어 30에 세상을 떠나 결국 3년을 사역했지만 80년을 자기 욕심만 채우며 길거리에서 남의 존경을 받기를 원하는 요즘의 타락한 목사들보다 복 있는 삶을 살다가 가셨습니다.
Fanny Crosby 라는 분은 생후 6주만에 병을 알아 앞을 못보게 되어 평생을 장님으로 살았으나 그 분이 작사한 찬송가는 필자가 좋아하는 “인애하신 구세주여,” “나의 갈길 다 가도록” 등 1,000 곡이 넘으며 후에 뉴욕에 맹아학교를 세워 초대 교장이 되었습니다. Johannes Kepler 는 천체망원경(天體望遠鏡)을 발명한 독일의 과학자입니다. 첫째 부인은 병들어 사별하고 둘째 부인은 사치가 극심하여 낭비벽
(浪費癖) 으로 Kepler 를 괴롭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불효했습니다. 몸이 불편해도 눈썹이 촛불에 그슬리도록 연구하면서 오로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연구를 계속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요즘 부귀영화를 외치는 목사들의 신학계에 풍미하며 나름대로 상당한 수입을 올 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Bruce Wilkinson 의 “Jabez's Prayer" 란 책이 얼마나 많이 팔려 나갔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모두 아베스처럼 형통하고 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Joel Osteen 은 그의 아버지가 하두 가난하게 목회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새로운 목회 사타일을 도입했고 ”Your Best Life Now" (우리 말로는 “긍정의 힘”) 이란 책을 써서 수백만권의 매상고를 올렸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집사나 장로. 심지어 목사들도 앞을 다투어 이런 책들로 서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책들에 십자가와 부활이 있는가요? 없습니다. 어떤 가르침이건 “십자가” 와 “부활”을 말하지 않은 가르침은 복음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복음의 진수는 “십자가” 와“부활”이며 바울의 가르침의 핵심도 바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갈 2:20 참고). 그럼 왜 요즘엔 십자가와 부활이 없는 Joel Osteen 의 “긍정의 힘“ 같은 책, Rick Warren 의 ”목적이 이끄는 삶“ 같은 책들이 인기를 누리는지 의문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유는 디모데 후서 4:1-5에 나타나 있습니다. 스스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고 사람들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 아님) 을 기쁘게 하는 설교를 원하므로 목사들이 그런 설교를 하고 또 그런 책들을 쓰기도하고, 그런 책들을 읽으라고 교인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속이는 행위이니 사기입니다. 남의 영혼을 파괴하는 무서운 사기(詐欺)입니다.

요즘 나오는 책들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개 이런 종류의 책들이고 또 뉴에이지 운동에 관한 책 (신비주의 를 가르치는 책) 들이 많이 출판되어 미국의 정통장로교단 이나 북미주 개혁장로교단 등 바로 선 교단들에서는 교계를 어지럽히는 “신사도 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 Movement”이니 “알파 코스(Alpha Course 운동,” “에큐메니칼 운동(Interfaith Movement,” “뜨레스 디아스 운동Tres Dias,” “인터콥,” “IHOP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운동" "Emergent 교회 운동” “두 날개 운동” “관상기도 (contemplative Spirituality), YWAM (예수전도회), ”이슬람과의 대화 운동(Christian Dialogue with Islam),“ ”기복신앙 (Word-Faith Movement)과 같은 불건전한 신앙운동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 “성경의 절대적 권위,” “성경의 생활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시며 그는 세상을 자기 뜻대로 통치하시며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사도신경을 외울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라는 말 속에는 단지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주 라는 한 가지만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조물주 일뿐만 아니라 만물을 다스리고 섭리하시며 보통은혜와 특별은혜를 공급하시며 인류를 보살펴 주시는 분임을 가르쳐 줍니다. 세상에 되어 지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God's absolute sovereignty) 아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집니다.

고로 성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Eugene Peterson 처럼 As above so below"(그의 Message 라는 성경의 마 6:10 번역) 라는 중세의 신비주의 수도사들의 비성경적인 Monism (단일론) 에 물든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생활은 가난하건 부유하건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돈 천만불 가지고도 불행하게 느낄 수 있고 백불을 가지고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빈곤에 처할줄 아는 비결을 배웠다” 고 빌 4장에 말하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으로 인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처럼 여겼다” 고 빌립보 2장에 그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사람의 복이란 물질적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만복의 근원입니다. (a+b+c)x=ax+bx+cx 라는 등식이 성립하지만 0 을 곱하면 모두 영이 되어 버립니다. 아무런 값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소유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성도는 성경의 절대적 권위 (Absolute Authority of the Bible) 을 높입니다.
성경은 원본에 있어서 정확하고 모호하며 조금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게시의 말씀이며 그 성경은 우리 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법칙입니다. 개혁주의 성도는 말씀을 소중히 여깁니다. 말씀을 귀히 여기는 분은 바로 “말씀” 자체인 주님을 귀히 여기는 분이고 말씀을 소홀히 여김없이 귓맛 좋은 말만 듣기를 원하는 자는 주님을 능욕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할 때도 주님은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 구하라‘ 라고 요한복음 15:7에 가르쳐 줍니다. 기도하면 무엇이나 마치 자판기에 동전만 넣으면 콜라나 사이다가 빠져나오듯,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란 단서가 있으니 “주의 뜻대로” 이룩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요즘의 문제는 성경의 권위를 외면 하는 일입니다.

성도는 성경을 생활화 (Live up to Biblical Teaching) 합니다. 성경은 우리 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법칙”입니다. 예배하는 것도 하나님이 성경에서 명령하신대로만 드릴 수 있습니다. 죄악된 사람이 제멋대로 고안한 방법으로 에배드리면서 하나님의 명령과는 관계없이 자기 멋대로 예배드릴 수는 없으며 그런 예배는 하나미이 받으시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구체적으로 례위기 10장
에 나오는 최초의 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경우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들 두 청년은 하나님이 명령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금향로에서 나온 불이 아니고 놋향로에서 나온 향불을 드렸더니 제단에서 불이 나와서 두 사람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일은 고전 10:11 이나 롬 15:4 에 보면 “우리에게 경고하기 위함“ 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아무렇게나 제멋대로 사람들의 비위에 맞도록 드리면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받으시지 않으며 반드시 문책한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 제56문 참고). “사람이 하나님에게 죄를 지으면 사람의 형별은 피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진노(wrath of God) 는 결코 피 할 수 없다‘ 라고 가르쳐 줍니다. 예배, 특히 ”열린예배“ 는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은 마치 “나답과 아비후의 예배” 같은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 사람이 고안해서 하나님에게 예배하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 누구에게도 그런 일을 허락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일을 고의적으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고 죄악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철저하게 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 (규정표준 예배모범) 을 지킵니다. 이 말은 성경에서 명령한대로 예배한다는 말입니다. 예배도 그렇고 생활도 그렇습니다. 모든 생활에서 성경이 표준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셩경말씀을 따라 살고 성경말씀 따라 죽는 것이 참다운 성도의 인생의 못토 (motto) 가 되어야 합니다.

칼빈주의 자는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 보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더 사모 합니다. 땅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의 것을 보라보며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싸우며 나아갑니다. 사람이 영원히 사는 영생의 도리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고 금이나 은같이 없어 질 물질이 아닌 예수의 보혈의 공로로 구속함을 얻어 영원토록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 주시는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성도가 이렇게 살아도 칼빈 선생 같은 어른은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가던 1564년 5월 27일 그날 자신의 혈육이나 가족도 없이, 그의 병상 옆에서 홀로 임종을 지켜보는 그의 사랑하는 제자 Theodore Beza 에게 “내가 한 일은 모두 보잘 것 없는 일, 나는 무익한 종이다” 라고 말하고 55세의 생을 마감하고 하늘에 올라 가셨다고 하니 우리가 과연 우리의 남은 육신의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세상의 부귀영화가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면 모든 것을 주의 뜻대로 우리에게 더해 주십니다.

-튤립 교육 선교회 회장 김명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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