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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컴

by 【고동엽】 2021. 10. 31.
오컴의 윌리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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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 Occam, 1280년 - 1349년)은 영국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사이자 철학자이다. 영국 서리 주의 오컴 출신이다. 윌리엄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사로 지극히 청빈한 삶을 살았다. 유명론의 선구자로서 그는 일반적으로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인정 받고 있다. 방법론적 원리인 오컴의 면도날로 유명한 오컴은 신앙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다 자유주의적으로 생각하였고 종교개혁기에 루터가 좋아했던 유일한 스콜라 철학자였다.
목차
생애[편집]
영국 사리 주의 오컴 마을에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회에 속하고 옥스퍼드에서 배웠으나 파리에서 교편을 잡았고, 당시 세상을 시끄럽게 하던 교황권(敎皇權)과 세속권(世俗權)의 싸움에 흥미를 갖고 세속권을 지지하였다. 《명제집(命題集)》의 내용에 관해 교황청의 심문을 받았고 아비뇽에 호출당했으며, 1326년 그의 학설은 이단 선고를 받았다. 2년 후 교황청의 추구를 피해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와 마찬가지로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4세 밑으로 도피하여 보호를 요청했다. 도피 이후에도 그는 교황을 공격하는 글을 몇 편 발표하였으며, 뮌헨에서 죽은 것으로 추측된다.
주요 사상[편집]
그의 철학상 업적은 유명론의 혁신으로, 추상적인 것은 사유 속에 개념으로 존재하는데 지나지 않고 실재하는 것은 인식되는 개체뿐이라고 하였다. 다만 신앙에는 다른 진리가 있으며, 이러한 면에서는 신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신은 노새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하며, 신의 지배하에서는 비합리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오컴은 신앙을 위해서 신앙과 지식을 일관되게 구별하고자 하였고 철학적 문제를 신학적 관점에서 비판하고 신학을 철학적으로 반성하였다. 오컴은 고유한 의미에서 과학에 대한 엄격한 정의를 얻으려고 하였으며 고유하게 과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지식은 보증된 전제로부터 필연적 귀결로 나오는 논증적 지식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좋은 공동사회' 건설이야말로 군주의 의무라 하고, 그렇지 못한 독재자를 죽이는 권리를 국민이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교회에 관해서는 탁발승단(托鉢僧團)과 같은 완전한 무소유가 이상이라고 말하며 교황을 비난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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