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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추수 감사설교

한나의 감사 찬송 (사무엘상 2:1-10)

by 【고동엽】 2021. 10. 29.

한나의 감사 찬송  (사무엘상 2:1-10)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마침 사무엘상을 강해하는 중에 한나의 감사 찬송이 담긴 기도를 접할 수 있어 강해하는 사람으로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넘칩니다. 본문은 한나의 유명한 기도가 나옵니다. 이 기도는 감사의 찬송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눅1:46-55에 나오는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의 유명한 찬가(magnificat)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고통과 눈물로 인생을 날려버릴 것 같던 한 여인이 기도를 통해 이 놀라운 감사의 찬송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어 부른 한나의 이 노래는 구속적 의미에서는 장차 오실 메시야께서 구원의 역사를 펼치실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기름 부음 받은 그리스도께서 악의 세력을 이기시고 부활 승리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1,2절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한나의 입에서 기쁨이 넘치는 감사의 기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찬송입니다.

악한 자와 교만한 자에게서는 자기 자랑과 남을 시험에 들게 하고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못된 말이 나옵니다. 1장의 브닌나가 그러했습니다. 그에게서 찬송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찬송이 나온다면 그것은 가증된 것입니다(약3:10).

그러나 지금 하나의 입에서는 감사의 찬양이 나옵니다. 그런데 찬송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나는 이미 기도하여 그의 마음의 슬픔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을 뿐 아니라 아들 사무엘을 얻었고 그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런 한나가 지금 감사하며 기도하는데 그의 마음이 즐거운 이유는 여호와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얻고 난 후 아들 때문에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들을 주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 때문에, 또는 그 분이 주신 어떤 것 대문이 아니고 그 분으로 인하여 기쁘고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그의 예언서의 결론을 이런 노래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합 3:17,19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철들고 나니 어머니 그 분 자체로 감사하고 아버지 그 분 자체로 감사입니다. 아들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딸이 있는 것 자체로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 기쁨을 주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냥 그 자체로 감사한 적 없으십니까? 하나님을 향해 그런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1장의 한나는 마음이 슬픈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마음이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진 것입니다. 기도하고 응답받으면서 그는 기쁨의 찬송을 부르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영적 각성을 위한 금식기도를 진행중입니다. 내일부터는 저녁 기도회도 진행합니다. 이런 기도 중에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기쁨과 감사, 찬송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슬프고 격동됨이 많아 먹지 못하고 애태우던 한나가 2장에서는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도 슬픔이 찬송으로 변화되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내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으며”


1절에서 내 뿔이 높아졌음을 노래합니다.

성경에서 뿔은 두 가지 의미로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는 교만함이나 인간의 죄성을 의미하는 부정적적인 경우입니다(시75:5-7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또 다른 하나는 존귀함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물론 후자입니다. 무시 받고 조롱당하던 한나가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진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잘나서 잘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셨음을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자신의 뿔이 높아진 것이다. 고개를 들지 못하던 여인이 머리를 들고 찬송할 수 있게 된 것이 여호와 때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높이시는 분은 여호와십니다.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 같아도 결국 그것은 스스로 무너지는 날을 초래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시며 높이시면 누구도 당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내 힘으로 높아진 줄 착각하는 자는 넘어질 때에야 비로소 인간의 힘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알게 됩니다.

우리의 뿔을 높이실 하나님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의 자녀된 우리가 감사하며 찬송할 때 우리의 뿐을 높이 들어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실 것입니다.

3절에서 한나는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브닌나의 교만을 보았습니다. 자기에게는 자식이 있는 것이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알고 한나를 격동케 하며 슬프게 한 브닌나는 교만한 자입니다.


인생 역전이 있습니다


4,5절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뒤집힙니다. 앞뒤가 바뀝니다.  힘이 있다고 자랑하던 자들이 그 힘을 잃고 넘어진 것 같고 패배한 것 같았던 자들이 일어섭니다. 부유하던 자가 가난해 지고 가난한 자가 존귀함을 입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면 이런 인생 역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정하십니다. 누구를 세워야 하실지, 어떤 사람을 꺾으셔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분별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 앞에 서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를 높이실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겸손한 자가 조그만 것에도 감사합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감동받는 그런 영적인 민감함을 지니십시오.


우리에게도 이런 감격의 노래가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래할 수 있는 체험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시편이 은혜로운 것은 대부분이 체험한 성도들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을 능력과 은혜를 체험한 신앙의 노래요, 삶의 고백입니다. 특히 다윗의 체함과 고백, 찬양과 노래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우리 모두의 노래요, 찬양이 될만합니다. 성경도 많이 읽다 보면 그것이 노래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고난이 노래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윗의 노래의 특징이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노래의 마지막은 찬송입니다. 고통이 찬송으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힘들게 살지만 깨끗하고 정직하게 사는 자들이 결국은 누래 부르는 그런 세상을 우리는 꿈꾸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의로운 부자가 하나님의 일에 쓰여 지고 영원히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는 것을 보게 되어야 합니다.

천국에서 새노래를 부르기까지 이 땅에서도 매일 새노래를 부릅시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체험하며 노래하십시오.


출처/김관선목사  사무엘상 강해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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