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인간의 구성 요소 (이분설)

by 【고동엽】 2021. 10. 22.

1. 인간의 구성 요소

 

사람이 진화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재라는 사실이 확립되었다면, 이제 사람이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살펴 보자.

역사상, 사람이 몸과 영과 혼의 세 실체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소위 '삼분설'(三分說, trichotomy)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람이 이성적 영, 동물적 혼, 그리고 몸의 세 실체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초대 교회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닛사의 그레고리, 다메섹의 요한 등의 교부들이 이러한 견해를 취하였다. 삼분설은 초대 교회의 어떤 이단자들과도 관련이 있었는데, 그노시스주의는 사람의 영이 신적 본질의 일부분이므로 범죄할 수 없다는 비성경적 주장을 하였고, 아폴리내리스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혼만을 가지셨고 신적 로고스가 그의 영을 대신하였다고 잘못 생각하였다.

사람이 몸과 영혼의 두 실체로 구성되었다는 소위 '이분설'(二分說, di- chotomy)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었다. 그것은 초대 교회의 터툴리안과 어거스틴, 중세 교회의 안셈, 종교 개혁 시대의 루터와 칼빈의 견해이었고 그 후 개신 교회들의 절대 다수의 견해가 되었다. 그러면 이분설의 근거는 무엇인지 성경적으로 정리해보자.

 

1-1. 이분설의 근거

이분설의 근거는 한마디로 영(spirit, 히브리어 루아크, 헬라어 프뉴마)과 혼(soul,?히브리어 네페쉬, 헬라어 프쉬케)이라는 두 말이 성경에서 구별 없이, 교대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따라서 그것들이 한 실체를 나타내는 두 개의 용어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있다. 그 구체적인 예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성경은 인간[혹은 인성] 전체를 묘사할 때 어떤 때는 몸과 영, 어떤 때는 몸과 혼이라고 말함으로써 영과 혼을 구별하지 않는다.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 고린도전서 5:3, 5,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둘째로, 성경은 죽음의 묘사에서, 어떤 때는 영이 떠난다, 어떤 때는 혼이 떠난다고 말함으로써 영과 혼의 구별이 없음을 증거한다. 누가복음 23:46,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사도행전 7:59, (스데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창세기 35:18, (라헬)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셋째로, 성경은 죽은 자의 회생(回生)의 묘사에서도, 어떤 때는 영이 돌아온다, 어떤 때는 혼이 돌아온다고 말함으로써 영과 혼을 구별치 않는다. 누가복음 8: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열왕기상 17:21, 22,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넷째로, 성경은 죽은 자의 묘사에서도, 어떤 때는 영들, 어떤 때는 혼들이라고 말함으로써 영과 혼의 구별이 없음을 증거한다. 히브리서 12:23,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 요한계시록 6:9, "죽임을 당한 영혼들[혼들, 프쉬카이]." 요한계시록 20:4,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

다섯째로, 흔히 삼분설에 의하면, 영은 보다 고상한 기능을 하는 것이고, 혼은 보다 저급한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동물에게도 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하나님께도 혼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영과 혼을 구별하지 않는다. 전도서 3:21, "인생의 혼[, 루아크]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 루아크]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시편 11:5, "여호와는 (악인을) . . . 마음[]에 미워하시는도다." 이사야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이사야 42:1,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예레미야 6: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예레미야 9:9,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아모스 6:8,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그 혼으로] 맹세하였노라."

또한, 성경은 사람의 종교적 활동들을 영에게만 돌리지 않고 혼에게도 돌림으로써 영과 혼의 기능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누가복음 1:46, 47,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이와 같이, 성경에서 영과 혼은 구별 없이, 교대적으로 사용된다. 그것들은 별개의 두 실체들이 아니고, 한 실체를 가리키는 두 용어에 불과함이 분명하다.

성경에 삼분설을 보이는 듯한 구절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들은 성경의 전체적인, 보다 명확한 빛 아래서 해석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데살로니가전서 5:23,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는 말씀은 인성 전체("")의 성화를 강조하면서 영과 혼을 반복하여 말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 . .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는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깊은 곳을 꿰뚤어 감찰하심을 강조하면서 영과 혼을 반복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1-2. 영혼의 활동

그러면 영혼의 활동은 무엇인가? 이분설에서 볼 때, 몸은 비생명적, 물질적 실체이며, 영혼과의 결합으로만 생명체로서의 기능들을 할 수 있다. 몸의 죽음은 몸에서 영혼이 떠나가 버리는 것이며, 죽은 몸에서 몸의 특질을 본다. 그러나 영혼의 특질은 생명과 인격성이다. 사실, ''이라는 말(루아크, 프뉴마)은 또한 '호흡, 생명의 기운'을 의미하며, 또한 ''이라는 말(네페쉬, 프쉬케)도 성경에서 빈번히 '생명'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인간의 생명 원리인 영혼은 또한 인간의 인격적 요소를 형성한다.

마음(레브, 카르디아, heart)이란 일반적으로 영혼의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의 활동들은 지식, 감정, 의지의 요소들로 요약되며, 그것에 양심이 덧붙여질 수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의지의 활동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의지가 인식이나 감정과 독립하여 움직인다고 본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의지는 그 자체 외의 어느 것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으며(의지의 자결정성), 따라서 의지의 활동은 매 경우에 우발적이다. 이것을 '비결정론'이라고 한다.

다른 이들은 의지가 인식이나 감정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움직인다고 본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의지는 그 자체 외의 여러 다른 요소들, 예를 들어, 이유, 동기, 권면, 먼저 있은 일들 등에 의해 결정되며, 이와 같이 의지의 활동은 자신의 지식, 감정, 욕망, 경향, 성격 등과 관계된 영혼의 총체적 행위이다(영혼의 자결정성). 이것을 '결정론'이라고 한다. 물론, 영혼은 어떤 외계의 세력에 억압됨이 없이 자발적으로 동작한다는 의미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며, 따라서 그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가진다.

양심이란 도덕적 분별력과 선한 경향성이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에 심겨진 하나님의 율법이요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의 법정이다. 로마서 2:14, 15, "양심 . . .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 그러나 양심은 하나님을 섬기는 선하고 깨끗한 마음이지만 더러워질 수 있고 심지어 완전히 마비될 수도 있다. 사도행전 23:1,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디모데전서 3:9, "깨끗한 양심." 고린도전서 8:7, "양심이 더러워지느니라". 디모데전서 4: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영혼의 활동 혹은 마음은 몸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지식은 뇌와 감각 기관들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감정도 대개 몸의 감각 기관들과 분리시켜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이라고 할 때, 그것은 몸과 분리된 영혼의 순수한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영육의 결합 상태에서의 영혼의 활동을 의미한다. 특히, 사람이 구원 받은 후에 성화의 불완전은 단순히 중생한 영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몸과 결합된 영혼 즉 영육의 통일된 인격체의 문제이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주제별 설교〓 > 설교.자료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과 영감  (0) 2021.10.22
사도행전에 나타난 개종자  (0) 2021.10.22
여성론 ( 여자에서 결혼까지 )  (0) 2021.10.22
인간론 교리 역사  (0) 2021.10.22
인간론  (0) 2021.10.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