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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직분을 어떻게 정하는가?

by 【고동엽】 2021. 10. 20.
교회에서 직분을 어떻게 정하는가?
(Seeking Office in the Church?)


W. B. Slomp
W. B. Slomp 목사는 알베르타 에드몬톤에 있는 임마누엘 케나다 개혁교회 목사입니다.
본 글은 광주개혁교회 홈페이지(http://cafe.daum.net/kgreformed)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당회가 잘못된 이유로 잠재적인 직분자를 제외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교회의 직분에 있어서 공백을 채워야 할 끊임없는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반복해서 그런 많은 공백들이 채워지고 있다는 점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교회에 지도력을 공급해주시는 일을 계속하신다는 점에 감사해야할 것이다. 좋은 지도가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종종 실망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왜 누구는 선택이 되고 다른 사람은 선택되지 않는지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제도에 결함들을 보고서는 성경적인 표준이 적당하게 적용이 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묻는다.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직분이 사람을 찾고 사람이 직분을 찾지 않아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그 질문은 이렇다. 누가 적격한가, 어떻게 그들의 자격들이 결정지어지는가, 그리고 그 제도는 결점이 있는가?
누가 적격한가?
기술적으로 장로들과 집사들의 경우에 어떤 남성 회원이든 그가 수찬회원이고 주님과 그의 백성들에게 진지하게 그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보여주는 회원은 직분에 피선거권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동적으로 배제된다. 그 이유는 너무 젊거나 너무 연로하기 때문이거나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건강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남자라고 해서 물론 교회에서 덜 중요하다거나 다른 이들보다 가치가 적은 회원들은 아니다. 정반대로 주님께서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 결코 직분자로서 봉사할 수 없는 심각한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을 그분의 왕국을 증진하기 위해 쓰신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다스리기에 적임자를 쓰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성경적인 기준이 그들의 피선거권을 판단하는데 적용되어야만 한다. 이런 표준을 적용하는 일에 디모데전서 3:1-13절과 디도서 1:5-9절에 있는 구절들은 일반적으로 그 강조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구절들이 총망라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한 그리스도인의 모든 자질들이 고려되어야만 한다., 성령님의 열매에 관해 말하고 있는 구절들과 다른 그와 비슷한 구절들이 마찬가지로 평가하는 데에 추가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한 당회는 잠재적인 직분자가 잘못된 이유 때문에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자와 주저하지 않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어떤 사람을 명부에서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유혹이 된다. (It is tempting, for example, to leave someone off the list who holds others accountable and who is not afraid to speak his mind.) 그와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당회들은 실수할 수 있으며 실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적받는 것이 필요하고 승인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회중은 지도력에 실망하게 될 것이고 고통을 당할 것이다.
직분을 사모함
앞에서 말한대로 사람들은 때때로 직분자 선출의 과정과 결과를 놓고 실망을 당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직분을 진정으로 사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일찍이 그들 자신들을 직분을 위해 여러 가지 면에서 준비했다. 하지만 때로는 빠뜨려지게 된다. 그들은 공정하지 못하게 교회에서 직분자로서 섬길 기회를 거부당하게 되었는가? 바울이 디모데전서 3:1절에서 말한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이 본문은 교회에서 직분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한 자리가 주어져야만 한다고 제안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본문에서 바울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은 단순하게 교회에서 직분을 사모하는 것이 선한 일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직분 얻기를 소망하는 것(desiring)과 직분 얻기를 고집하는 것(insisting) 사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직분이 사람을 찾아야만 하고 사람이 직분을 찾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것이 우리가 읽은 내용이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5:4절에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조심스럽게 디모데서에 있는 구절을 그것이 기록된 문맥의 빛 가운데서 살펴본다면, 바울이 이 본문에서 의미하는 것이 선명하게 된다. 바울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대단히 곤란하였다. 직분자가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사람들은 박해를 당하였다. 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직분의 기능을 갖는다는 것은 그와 같은 박해의 가능성이 많아지게 하고 가혹함이 커져갈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바라던 직분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어나곤 했던 큰 희생들을 보았으며 직분과 함께 오는 책임도 보았다.
그 문맥 안에서 바울은 효과있게 말한다. “만일 여러분이 교회에서 직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실제적으로 선한 일을 사모하고 있다. 왜냐면 여러분이 그 직분을 사모할 때 그때 여러분은 고결한 과업(a noble task)을 사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의 서신 전체에 분명하게 한 것처럼 직분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는 알고 있다. 그는 스스로 많은 고난과 많은 욕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 직분이 그 자신의 과업에 대한(of its own) 많은 보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쉽게 바울에 의해서 토론된 상황에 대해 하나의 평행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현재 상황에서 가르치는 장로, 목사의 직분에 대한 진술을 볼 때 그렇다. 오늘날에 목회를 위해 훈련을 시작하려고 신학대학에 자신을 헌신하는 출석하는 극소수의 사람이 있다(who present themselves). 많은 젊은이들은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기꺼이 희생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공부가 너무 길고 너무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도리어 일해서 돈을 벌기를 더 벌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공부하는데 마음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그 대신에 또 다른 전문적인 경력을 쫓을 것이다. 목회는 많은 다른 직업들 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여러분의 시간을 더 많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목사로서 여러분은 유리집(a glass house)에서 산다. -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항상 공적인 시선을 받는다. 여러분은 비판을 받게 되기가 쉽다. 덧붙여서 목회의 물질적인 보상은 종종 다른 전문적이거나 사업경력자들처럼 높지 않다.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목사가 되는데 요구되는 희생을 감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떤 학업이나 준비의 과정을 따르는 것이 자동적으로 직분에 여러분을 적격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디모데전서 3장에 있는 바울의 말씀은 읽는 사람에게 다른 것들을 생각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마찬가지로 우리가 교회에서 목사의 직분을 추구할 것인지를 반향 할 때 기억나게 해준다. 그는 우리에게 그것이 존귀한 과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준다. 그것은 당신이 사모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다. 그 상급은 다른 경력자들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목회는 다른 경력자들 가운데서 상급들을 찾지 않는다. 목사로서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과 영혼들을 다룬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역으로 종일 분주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운 상급으로 돌아온다.
똑같은 사실이 모든 직분자들에게도 진실이다. 장로가 된다는 것은 당신의 시간과 당신의 정력에 대한 요구들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당신이 자신을 비판으로 쉽사리 상처 입게 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지도하는 자리(leadership position)에서 당신은 항상 사후비판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감당해야하는 많은 희생이 있다. 장로나 집사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목사와 같이 많은 보상 - 영적인 보상들이 있다. 가장 큰 보상은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신앙을 갖게 하는 일에 하나님의 손에 도구가 될 수 있고 치료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당신이 비평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주안에서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 아주 큰 기회이다.
개인적인 영예(Personal honour)?
Given all of this, 앞서 제시된 논점으로 돌아가자. 어떤 사람들은 상습적으로 그 명단에 오르지 못하거나 회중에 의하여 거절당한다. 정말로 아마도 그들의 모든 조건들이 정당하게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은 주님 앞에서 성경적인 기준에 따라서 선택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회중을 통하여 부르시며 그러므로 회중은 누가 직분에 봉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발언권을 가진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에서 얻은 본보기이다. 교회가 사도들의 업무를 경감시켜주려고 집사를 필요로 했을 때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들을 선출하는데 가담되었다.(행6:1-6). 그들은 누가 직분에 합당한 성경적인 조건들을 가졌는지를 결정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인 영예를 위해서 직분을 추구한다. 다른 사람들은 영향력있는 직분자가 되기에는 적합한 기질을 갖지 않았다. 야고보가 말한대로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3:1).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직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직분을 사모한 자들이 선택을 받지 못하였을 때 참으로 실망이 된다. 하지만, 다음의 일정한 공부나 준비의 과정이 자동적으로 어떤 사람을 직분에 적격한 자가 되게 해주지 못한다. 거기에는 고려해야할 다른 문제들이 있다.
그분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당신의 위치가 무엇인지는 문제될 것이 없다.
직분자를 선출하는 제도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죄된 사람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가 없다. 우리는 확실히 완벽한 직분자들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그것이 낮추고 있는 이유이다. 그래서 그들의 죄의 원한 가운데서도 그들을 직분에 봉사하도록 주님께서 선택하신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직분자들은 성경적인 지시에 따라 선택이 되었다. 더 나은 제도는 없다.
선택받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왕국에서 열매가 풍부하게 되도록 하기에 바람직하게 되기 위해서(to in order) 당신이 목사나 장로나 집사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For those who are not chosen, it is important to remember that you do not have to be a minister or and elder or a deacon to in order to be fruitful in God's kingdom.) 주님을 섬기는 다른 방법은 많이 있다. 그분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당신의 위치가 무엇인가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 때에 맞게(For then)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고 그것이 그 전부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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