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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성탄절 설교

(이한규 목사 성탄절 설교) 주님이 찾아오시는 마음 (사 8:5-8)

by 【고동엽】 2021.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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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찾아오시는 마음 (사 8:5-8)
- 설교 : 이한규 목사

< 주님 안에만 길이 있습니다 >

어느 날, 한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 인생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되려고 절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까 불교계가 너무 썩고 더 회의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불교대학을 세우겠다는 꿈을 가지고 땅을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매입 과정에서 사기꾼에 속아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그는 간수에게 목탁과 불경을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간수가 성경을 넣어주었습니다. 성경을 받고 그는 “좋다! 기독교의 약점을 알려면 성경을 한번 읽어보자!” 그래서 성경을 죽 읽다가 누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이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옛날 불경을 읽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불경에도 한 과부의 아들이 죽은 얘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 죽은 아들을 안고 부처님에게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부처님은 아랫마을에 가서 죽음을 맛보지 않은 집의 물 한 사발을 죽은 아들에게 먹이면 아들이 살아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랫마을로 내려갔는데 그런 집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실망을 품고 돌아오자 부처님이 “그게 인생이야! 모든 사람은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두 장면을 비교하면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린 예수님을 생각하니까 신기하게도 인생의 회의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결국 목사님이 되어 지금 불자들에게 예수님만이 희망이라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 주님이 찾아오시는 마음 >

오늘은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강절 둘째 주일입니다. 이때 우리 마음도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어떤 마음에 찾아오실까요? 오늘 본문이 있는 다음 장인 이사야 9장 6절에서는 메시아의 강림을 예언하는데, 그 메시아의 강림을 위해 어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지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어떤 마음에 찾아오실까요?

1.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

이사야가 한 아기의 탄생을 예언하던 당시 국제 정세는 유다 백성에게 아주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긴급성을 알리기 위해 오늘 본문 바로 앞의 3절 말씀을 보면 이사야는 자기 아들 이름까지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름은 “신속하고 급히 약탈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그 이름에 다메섹과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의해 약탈된다는 예언이 담겨 있습니다(4절).

그리고 본문 5절부터 그 앗수르의 위험이 유다에게도 미칠 것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렇게 된 이유가 6절 이하에 나와 있습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이 구절에서 ‘실로아 물’은 우리가 흔히 실로암이라고 알고 있는 작은 샘물로, 바위틈에서 흘러나와 예루살렘 성의 동편을 끼고 흐르면서 예루살렘에 생명수를 공급해주는 젖줄입니다.

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하나님의 잔잔한 은혜와 잔잔한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 백성들은 이 실로아 물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고 아람 왕인 르신과 북 이스라엘의 왕인 르말리야의 아들(사 7:1)의 힘과 화려한 모습을 더 부러워했습니다. 그런 감사가 없는 태도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저주스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가 없는 마음입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저주받는 것을 무서워하지만 사실 어떤 저주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삶만 있으면 어떤 저주도 결코 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기도할 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능력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로 만드는 데에는 얍복강의 야곱처럼 축복을 달라고 떼를 쓰고 몸부림치는 간절한 모습도 필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감사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가 있는 사람에게 더 주고 싶습니다. 하나님도 감사가 있는 사람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가 되게 하는 관건도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도 응답을 원하고, 더욱 큰 축복을 원하면 먼저 감사부터 해야 합니다. 때로는 기도 응답이 없는 것 같아도 감사하면서 계속 기도하면 기도 응답이 없는 것 같은 것이 가장 위대한 기도 응답이 됩니다. 반대로 감사가 없으면 기도 응답이 주어지고 축복이 주어진 것 같아도 그것은 ‘불행을 예고하는 성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축복은 ‘축복 자체’보다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면 축복도 속히 오고, 받은 축복도 오래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으면 축복도 오기 힘들고, 가끔 축복받은 것 같아도 금방 허무하게 사라져버립니다. 기복주의가 무엇입니까? ‘복을 기원하는 것’이 기복주의가 아닙니다. ‘복을 받고도 감사하지 않고 나누지 않는 것’이 기복주의입니다.

우리는 많이 구하고, 축복도 많이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축복받은 다음을 잘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축복받고 입을 딱 씻고, 안 받은 척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받은 것을 다 날아가게 하십니다. 반대로 어떤 분은 축복받고 그 받은 축복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열심히 바칩니다. 그렇게 축복받았지만 겸손함을 잃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이 잘 풀리지만 기도의 줄을 놓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더욱 큰 축복을 구해도 결코 기복주의자가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기복주의자가 아니고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시면 큰 믿음을 가지고 크게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마음에 찾아오십니다.

2. 주님 안에서 만족하는 마음

본문에서 유다 백성들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아의 아들을 부러워한 결과 어떻게 됩니까?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물을 작게 생각하고 세상의 큰물을 좋아하다가 결국 그 세상 물이 홍수가 되어 덮쳐 오히려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때로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 잔잔하고 무미건조한 것 같습니다. 반면에 세상은 힘이 있어 보이고, 세상의 무대는 화려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의 성공입니다. 그런 외적인 것에 이끌리면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눈앞의 성공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고 “어떤 조치도 아멘이고, 어떤 상황도 아멘입니다.”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성공과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는 사람이 성공과 응답을 얻고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불평과 불만에 빠져 사는 사람보다 훨씬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얻게 된 성공과 응답은 오히려 더 큰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당 정자동에서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 같이 기도하던 한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 남편은 서울대 약대 출신으로 제약회사 부사장까지 지냈습니다. 그런데 월급쟁이 생활에 염증을 느껴 50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크게 약국을 차렸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분은 아주 내성적이어서 사업 체질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퇴직금을 다 잃고 약국을 그만두었습니다. 얼마나 실망이 되겠습니까? 가끔 권사님의 입에서 남편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나왔습니다. 남편이 회사 다닐 때는 최고로 알았는데 순식간에 퇴직금을 다 날려버린 남편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 컸습니다.

그분 남편은 잠시 쉬다가 성남에서 작은 약국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약국이 남편에게는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기도제목을 내놓았습니다. 한 채 남은 집을 빨리 팔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IMF 직전에 라이프 아파트 47평은 4억 4천만 원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IMF로 집값이 엄청나게 떨어지면서 2억 7-8천만 원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더 떨어질 것 같아서 다급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결국 집이 2억 8천만 원에 팔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도와주셨다!”고 좋아했습니다.

그 여유자금으로 덕소에서 약국을 크게 차렸습니다. 그 다음부터 연락이 없었습니다. 1년 후에 다른 분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는데, 그 사업도 실패했고, 그 권사님이 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권사님은 몇 개월 넘기지 못하고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그때 차라리 집이 팔리지 않은 것이 낳았습니다. 성남에서 작게 할 때에는 그런 대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이 팔려 “응답되었다!”고 좋아했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더 큰 실패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집값이 서서히 회복되더니 지금은 집값이 그때보다 2배 이상이 뛰어 6억까지 올라갔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리고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주기도문에서 가르쳐주셨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우리에게도 최선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시고, 기도제목을 허락하시는 것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선의 조치임을 믿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으로 기도 응답을 속단하고, 성공을 속단하고, 인생을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철저히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잠시 승승장구하는 것 같아도 반드시 한꺼번에 미끄러지는 때가 올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하나님께 떼를 썼습니다. 심지어는 위협까지 했습니다. “하나님! 일주일 내로 이 땅을 팔아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믿지 않을래요.” 그런데 정말 일주인 안에 땅이 팔렸습니다. 그래서 “할렐루야!”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팔지 않는 것이 더 큰 이익이었습니다. 땅을 팔자마자 엄청나게 땅값이 오른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했으면 나았을 뻔했습니다. “하나님! 일주일 안에 이 땅을 팔아주세요. 그러나 팔리지 않아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할래요.”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해도, 어떤 시련과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눈앞의 성공으로, 눈앞의 모습으로 축복과 응답과 성공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병에 걸리면 실패한 인생이고, 병이 나으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은 바르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아들이 중병에 걸려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교회생활과 기도생활과 물질생활을 새롭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기적적으로 나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 다시 교회생활과 기도생활과 물질생활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의 아들은 건강한 몸으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 건강이 성공의 기준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물질도 성공의 기준이 아닙니다. 물질이 없을 때에는 부부가 서로 위해주며 살다가 로또에 당첨되어 가정이 깨지고 자녀가 망가지는 경우를 뉴스를 통해서 얼마나 많이 봅니까? 우리는 한 가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성공을 재고, 축복을 재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헌신하는 마음이 후퇴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해야 합니다. 무엇인가 있어야 합니다. 있지 않으면 이 사회에 얼마나 속상한 일이 많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작은 일에도 상처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물질도 있어야 하고, 실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땀과 열심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땀은 있어야 하고, 외모는 없어도 성실함은 있어야 하고, 실력은 부족해도 믿음은 풍족해야 합니다. 그처럼 주님은 주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마음에 찾아와 큰 축복과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본문 6절에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은 하나님의 잔잔한 말씀을 상징합니다. 말씀 중심적인 생활은 너무 단순한 것 같습니다. 반면에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신앙형태가 있으면 더 진짜 같고 더 잘 믿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 무속신앙에 빠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무속신앙에 빠지는 분들에게는 시련의 사슬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단은 눈속임의 천재입니다. 사단의 3대 무기가 있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먹게 하는 기적의 유혹, 높은 데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는 화려한 왕자병과 공주병의 유혹, 그리고 자기에게 절하면 세상 부귀영화를 주겠다는 세상적 성공의 유혹이 사단의 3대 무기입니다. 그것들은 다 화려합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유혹과 연출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은 무미건조한 것 같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깊은 믿음을 주고 사람의 영혼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열왕기상 19장을 보면 낙심한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일어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강한 바람 가운데도 계시지 않고, 비람 후의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않고, 지진 후에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 후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있었고, 그 세미한 음성이 결국 엘리야를 낙심과 두려움에서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좋아하지만 진짜 사람의 영혼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입니다.

요새 영어가 참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잘 들으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 것입니다. 영어를 잘 들으면 출세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으면 후세까지 축복받고 내세의 큰 상급까지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가 열리면 축복의 문도 열립니다.

4. 넉넉하게 기다릴 줄 아는 마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너무 성급합니다. 그래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을 버리고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물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짜 은혜는 오래 걸려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살면서 항상 “주는 것은 빨리 하되 받는 것은 늦게 받아도 좋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 관계에서도 “하나님께 드리고 헌신하는 것은 제일 빨리 하겠다고 하되 은혜 받는 것은 천천히 받아도 좋습니다”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천천히 받아도 좋다고 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좋은 것, 더 훌륭하고 영속적인 것을 더 빨리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토머스 칼라일이 쓴 ‘프랑스 혁명사’라는 유명한 역작이 있습니다. 칼라일은 그 혁명사를 7년 동안 썼습니다. 드디어 원고가 완성되었습니다. 출판되기 전에 그 원고를 친구 존 스튜어트 밀에게 한번 읽어보게 했습니다. 어느 날, 밀은 그 원고를 읽다가 피곤해서 서재에 원고를 늘어놓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보니까 하녀가 원고가 널린 것을 보고 버리는 것으로 착각해서 그 원고를 난로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밀도 기가 막혔고, 칼라일도 기가 막혔습니다. 칼라일은 얼마 동안 극한 괴로움 속에 지내다가 스스로 타일렀습니다. “내가 7년 동안 쓴 프랑스 혁명사도 소중하지만 내 인생이 더 소중하다. 여기에서 좌절하지 말자! 프랑스 혁명사보다 더 소중한 내 인생의 혁명을 이루자!” 그렇게 자기를 격려하고 다시 집필을 시작해서 더욱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칼라일은 말했습니다. “길 가다가 돌부리를 만날 때 약자는 걸림돌로 생각하지만 강자는 디딤돌로 생각한다.” 우리는 영혼의 강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의 10년 수고가 물거품이 되고, 20년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고난을 만나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수고는 수고 자체로 하나님 앞에 기억된바 될 것이고, 그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면 하나님께서 더 위대한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 주님만 바라보고 사십시오 >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구절에서 이사야는 임마누엘 예언을 통해서 우리의 희망은 주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때로 우리가 시련을 당해도 우리가 주님 안에 있다면 궁극적으로 우리 성도는 반드시 승리의 역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 안에만 있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보다 더 깨끗해지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순수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충성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은 결코 우리를 비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날, 미국의 한 저명한 심리학자가 수시로 우울증에 빠지는 자신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내가 왜 이럴까? 왜 가끔 자살 충동이 들까?” 그는 위험을 깨닫고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병원에서 나와 다시 학교에서 가르치고, 환자를 치료하고, 저술활동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울증이 찾아오면 다시 스스로 병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일을 여러 번 반복하던 중에 그는 자신의 주기적 우울증의 원인을 깊이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내 삶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성찰하던 중 그는 자신의 거짓된 삶이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내 모르게 유지해왔던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청산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아내 앞에 설 때 마음에 자유가 생겼고, 동시에 큰 평화가 내리면서 그 이후로 우울증이 그쳤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주님 외에 우리가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마음을 돌리면 우리는 영적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때 사단이 찾아와 같이 놀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된 것을 청산하려고 결심하고 실천하면 그때부터 주님의 우리 마음에 찾아와주시고, 동시에 심령에 놀라운 자유와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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