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다 (눅2:1-14)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우리는 방금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의 천사는 분명히 우리가 듣고 말한 대로 여기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 천사는 단지 내가 여러분들에게 그의 존재를 알리고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서 우리가 함께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 여기 남아 있습니다.
주의 천사는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만일 그가 그 소식을 전한다면 정신을 판다든가, 불신, 거만한 생각은 사라져 버립니다. 왜냐하면 주의 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직접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1."오늘날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다"라고 주의 천사는 말합니다.
(1) 첫째, 베들레헴에서 그 아기의 탄생의 소식은 말하자면 우리 나라에 이디오피아의 황제가 도착했다고 하는 그런 소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그 황제가 우리 나라를 좋아하도록 아첨을 떨고 수행원들도 그들의 손님으로서 마찬가지 인상을 받게 하기 위해서 아첨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내 가 관심을 가져야 하지 ? 이것은 전적으로 그와 그들 사이의 문제인데 말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이 소식을 듣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대조적으로 주의 천사는 베들레헴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오늘날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다"라고 합니다. 당신을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기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기꺼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그는 그 자신을 비우사 당신이 높아지도록 하셨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그는 자기 자신을 주셔서 당신 이 들림을 받아서 그에게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우리와 함께 일어나고 우리를 위해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2) 베들레헴의 아기의 탄생소식은 어떤 교재에 있는 한 진술과 비교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교수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인류에게 구주가 나셨습니다."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류는 나를 포함하지 알고 단지 다른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쉽게 추측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의 천사는 그 목자들에게 지시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시합니다. 그의 소식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바로 "당신에게 오늘 날 구주가 나셨다 ! " 당신이 누구든지, 당신이 그 소식을 이해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당신이 훌륭하고 경건한 사람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바로 당신에게 입니다. 그 소식은 당신을 위해서 계획된 것입니다. 당신의 유익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일어났습니다. 다시 한번 더 말하면 그 사건은 우리를 제외하고서 일어란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3) 베들레헴의 아기의 탄생소식은 아침에 배달되는 우편물보다 다른 영향을 미칩니다. 우편 배달부가 왔을 때 우리는 궁금하게 묻습니다. “나에게 온 것 뭐 없습니까?" 그리고 편지를 받아들고서 그것을 읽으려고 돌아섭니다. 우리는 어깨너머로 훔쳐보려는 다른 사람에 대해 화를 내면서 혼자서 그 편지를 읽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적인 일이니까요. 대조적으로 베들레헴의 사건은 전혀 사적인 일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오늘날 구주가 나셨습니다. " 주의 천사는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개별적으로 진실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 모두에게 말합니다. 그의 소식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놀라운 선물을 나누어 받은 형제자매처럼 우리를 함께 들어줍니다. 그 누구도 첫째가 아니며 마지막도 아닙니다. 아무도 편애함을 받지 않으며 덜한 사랑도 받지 않습니다. 모두 다 가장 중요하며 단 한 사람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구세주와의 교제가 없는 곳에는 형제 사이의 교제도 없습니다. 형제 사이의 교제가 없으면 구세주와의 교제도 없습니다. 전자는 후자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천사가 "당신에게"라고 부르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당신에게-오늘날 ! "이라고 주의 천사는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태어났을 때는 오늘 !이었습니다. 한 새로운 날이 밤 가운데서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은 언제든지 떠오르는 해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 새날은 단지 그리스도의 날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날입니다.
(1) 사람들은 "오늘"을 과거라고 부르거나 "옛날 옛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주의 천사는 그가 그때 목자들에게 말했던 것과 똑같은 소식을 오늘도 전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역사 속에서 뿐 아니라 또한 세계의 역사 속에서, 우리 인간의 새로운 관계와 조건 속에서 가능리 있는 새로운 시작에 대해서 듣습니다.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서로 밀어 주며 새로운 시작을 시도합니다. 인간의 경험은 그러한 확신의 보증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의 천사의 보증입니다. 구세주가 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새로 운 날이 밝아 왔습니다.
(2)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포함합니다. 확실히 또한 내일입니다 첫번 크리스마스날에 태어나셨던 그분은 이제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서 통치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기다려 보자“라는 말은 위험한 말입니다. 우리가 내일 어디에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확실히 구세주는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는 우연히 스위스 작가 제레미아스 고트헬프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삶은 빛이 아닙니다. 빛은 또 다시 비출 수 있습니다. 삶은 단지 한 번 지상에서 타도록 하나님께 부여받은 불입니다. "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이 불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3. 지금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오늘날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다." 이것이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당신에게 오늘날 구주가 나셨습니다. 구세주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구세주는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서 돕는 자시며, 자유케 하시는 자시며, 구속하는 자이십니다. 그는 그렇게 될 수 그렇게 하십니다. 그는 우리 곁에 서서 우리를 구원하시며 주로부터 이끌어 내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가, 곧 구세주이기 때문에 삽니다.
구세주는 우리의 공로나 도움이나 대가를 치름이 없이 행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행하도록 요구되어지는 모든 것은 우리의 손을 뻗어서 선물을 받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구세주는 어떤 조건이나 예외가 없이 단지 우리 모두가 그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이 우리 모두와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분입니다. 그가 사람이 되셨을 때 그는 우리 모두의 형님이 되셨습니다. "너희에게 오늘날 구세주가 나셨다.“
주의 천사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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