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인생
(벧전1장24-25)
< 총동원초청주일설교>
오늘은 우리 교회 초청 받아 나오신 분들과 교회 나오신지 얼마 안 되는 분들을 위해서 설교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기를 “인생은 무엇입니까?”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인생은 나그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과거 많이 불렀던 유행가 중의 하나가 최희준 씨가 부른 ‘하숙생’입니다.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라 했습니다.
성경에서도 인생은 나그네라고 표현한 곳이 많습니다. 야곱도 바로 앞에서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고 했습니다.
대상 29:15에서 다윗도 인생을 나그네라고 했고, 시39:12에는 인생을 객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손님이라는 것입니다. 히11:9에도 인생을 나그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왜 인생을 나그네라고 표현했습니까?
(1)인생은 잠깐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동안 살다가 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인생을 여러 가지로 비유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약4:4 인생을 안개라고 했습니다.
안개는 햇빛이 비치면 금세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시102:3에서는 인생을 연기라고 했습니다.
연기는 불을 피우면 나지만 불이 꺼지면 역시 곧 사라지고 맙니다.
욥7:7에서는 인생을 호흡이라고 했습니다.
콧김이라고 말한 곳도 있습니다.
인간은 3분만 숨을 쉬지 못하면 죽습니다.
시78:39에서는 인생을 바람이라고 했습니다.
과학적으로 바람은 따뜻한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움직입니다. 바람은 잠깐을 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벧전1:24에서는 인생을 풀이라고 했습니다.
풀은 봄에 났다가 차가운 바람이 불면 죽고 맙니다. 짧은 생명력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잠깐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말에 초로인생(草露人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풀끝의 이슬 같다는 말입니다.
흘러가는 세월은 길고 한가한데 사람의 생명은 풀에 놓인 이슬처럼 잠깐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어여쁜 얼굴이 내일이면 주름살로 가득한 얼굴로 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어떤 분들은 나는 아직 건강하고, 젊으니까, 아직도 내게는 생명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건강도, 젊음도 순식간에 지나가고 마는 날이 온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2)나그네란 이유는 죽을 때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눅12:19에서 보면 부자가 풍년에 큰 소출을 얻고 혼자 신나서 독백하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강물이 흘러 한없이 흘러도 바다는 넘치는 법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탐욕도 한이 없습니다. 30평에 살면 50평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100평, 200평집에 살아도 인간의 탐욕의 구멍을 메울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그 욕심을 따라 끝없이 움켜쥡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더 나가서는 악착같이 모은 엄청난 돈이 자기 영혼을 죽이는 독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분이 재미난 말을 했습니다. “돈이란 돌아야지 생명력이 있어서 나도 살고 남도 살게 하지만, 돈을 쌓아두기만 하면 결국 자기를 돌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923년 시카고의 에지워터 버치 호텔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여기 참석한 사람들은 9명의 재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25년 후에 결과는 비참하게 마쳤습니다.
① 강철계 - 슈와브는 파산하고 죽었고,
② 비료계 - 인슐은 부정 축재로 파산되었습니다.
③ 가스계 - 홉스는 정신병 환자가 되었고,
④ 소맥계 - 고튼은 파산하여 출국하였습니다.
⑤ 증권계 - 휘트니는 형무소에서 복역하였으며,
⑥ 정치계 - 휠은 허무한 생애를 비관하였습니다.
⑦ 은행계 - 프레저는 자살했고,
⑧ 금융계 - 리비모어도 자살했으며,
⑨ 대 기업가 - 크루기는 자살했습니다.
돈이나 명예를 위해 살던 사람의 말로는 세상에서도 비참하게 마칩니다. 어느 부자가 땅이 얼마나 많은지 만석지기였습니다.
그 면에서는 그 부자의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닐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산삼을 수없이 달여 먹었어도 죽는 날이 왔습니다. 부자가 죽는 순간에 자녀들에게 토지 문서를 모두 가져오라고 한 후 그 문서들을 하나씩 보더니 마침내 가슴에 끌어안고 눈물을 쭉 흘리더니 숨을 거두더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너무나 허무한 것은 우리가 죽을 때는 금가락지 하나도 못 가지고 간다는 사실입니다.
(3) 나그네라는 이유는 반드시 그 여행을 마치는 때도 오기 때문입니다.
꽃이 피는 날이 있으면 지는 날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이 태어나는 날이 있으면 반드시 죽는 날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 히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어느 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하숙생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숙생은 항상 그 집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날인가 떠나야 합니다. 그 날이 바로 죽는 날입니다. 누구나 때가 되면 죽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인생이 끝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은 죽은 후에 육신은 썩어 없어지지만 그 영혼만은 영원히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죽은 후에는 영혼은 어떻게 됩니까?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영혼들은 천국에 가서 영원한 복을 상급으로 받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던 영혼들은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한 벌을 받는다고 성경을 말씀합니다.
오늘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이여, 그리고 교회는 나오시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계신 분들이여, 이 세상에서 허무한 나그네 인생으로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들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을 믿으심으로 영원한 천국의 복을 상급으로 받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나그네 인생이 아니라 순례자 인생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면 나그네 인생과 순례자 인생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나그네는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순례자 인생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입니다. 나그네는 오늘은 이 곳에서 유숙하다가 내일이면 또 다른 곳에 유숙합니다. 목적지가 없이 떠다닙니다. 그러나 순례자들은 멀리 성지(聖地)를 향해 떠났다가 때가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렇습니다. 순례자 인생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로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자임을 분명히 알고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었을 때 ‘사망(死亡)했다.’고 표현합니다. 죽어서 망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이 죽으면 ‘돌아갔다.’ 혹은 ‘소천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순례자는 어디서 왔는지, 죽어서 어디로 가는 지 분명히 아는 인생입니다.
또한 나그네는 이 세상에서 목적 없이 살지만, 순례자는 자기가 온 목적을 압니다. 멀리 성지 순례를 간 분들을 보면 열심히 목적대로 순례하다가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두고 돌아옵니다. 나그네는 이 세상에서 욕심만 부리면서 살다가지만, 순례자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청지기 사명을 다하다가 갑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지라도 그 돈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시는 줄 알고, 자기가 쓸 만큼 쓰고 나머지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삽니다. 부자라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있고 아닌 자가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도 청지기 정신으로 선한 일을 위해서 쓰는 부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된 인생을 삽니다.
그러나 같은 부자라도 자기 욕심만 위해 움켜쥐는 자는 결국 자신도 망치고 자식들도 망치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나그네 인생을 사십니까? 순례자 인생을 사십니까?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잠깐 지나가는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욕심을 부리며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지는 불행한 인생이 되지 마시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청지기 사명대로 살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께 돌아가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순례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자, 그러면 순례자 인생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십시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은행통장이나 계약서를 상당히 중시여깁니다. 우리가 은행에 1억을 예금하고 나서 그 증거를 무엇으로 믿고 있습니다. 통장입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만 믿고 1억을 예금했다는 것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가 어느 3억 짜리 아파트를 산후에 돈을 지불하고 무엇을 받습니까?
계약서나 등기문서를 받고 내 아파트인 줄 믿는 것입니다. 만약 어느 분이 은행에 1억을 예금하고 돌아와서 ‘은행이 나를 속인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한다면 남들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웃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행통장이나 계약서, 혹은 등기문서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계약서가 무엇인 줄 압니까? 성경입니다.
성경을 구약, 신약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24절에서는 인생은 풀의 꽃처럼 허무한 날이 오지만 25절에 보면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하면서 영원토록 변치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변합니다. 심지어 토지문서나 계약서도 나라가 바뀌면 쓸모없는 날이 올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계약서인 성경 말씀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성경 말씀에 보면 우리에게 놀라운 약속이 나옵니다. 그래서 복된 소식, 복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무슨 계약을 하십니까?
(1)예수님의 십자가 피만 믿으면 무슨 죄든지 용서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려고 해도 막고 있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무슨 죄든지 용서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성경 요1서1:9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계약하셨습니다.
(2)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인 줄 믿는 자는 영이 살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 그 때부터 인간들의 영혼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 되시는 예수님이 순종하심으로 이제 저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자마다 영혼이 살게 하시겠다고 계약하셨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3)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지옥 대신 천국으로 보내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다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이지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멸망의 심판을 면해 주시고 천국 가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영원히 지옥 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구원의 길, 천국의 길을 값없이 주신다고 하시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 계약 조건은 단 하나 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고 그만 따르면 이런 구원의 은혜, 천국의 은혜를 주시고 더 나가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까지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특별 보호해 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 청지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순례자 인생을 살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능력의 종교, 변화의 종교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으로 인해서 나그네 인생에서 순례자 인생으로 바뀌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강하게 나타냈던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황해도 안악군에 김익두라는 망나니가 살았습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16세 되었을 때 과거를 보려고 서울에 올라갔으나 보기 좋게 낙방하였습니다. 17세가 되면서 장사를 시작하였으나 그것도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때부터 술을 많이 마시고 놀음을 좋아 하는 생활로 타락하게 되였습니다.
나중에는 악명 높은 불량자가 되어서 안악군 일대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정도이었습니다. 얼마나 힘이 센지 누구나 그에게 대항하는 자는 모조리 때려 눞힐 정도가 되었으므로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시장에 가는 도중에 서낭당 앞을 지나게 되면 ‘오늘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안악 시장에서 그가 술을 외상으로 마시고 냉면을 외상으로 먹고 갚지 않는 것은 예사였으며 그렇다고 해서 잘못 건들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는지 모르기 때문에 한마디도 그에게는 독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여선교사가 그에게 전도지를 주며 예수 믿기를 권고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전도지를 받아 쥐자 코를 풀고 그 종이를 돌려주며 그 선교사를 희롱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여선교사가 “청년, 그렇게 하면 코카 썩지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큰 두려움과 감동을 주면서 교회 나오고 싶은 마음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안련 선교사가 인도하는 집회에 몰래 참석하면서 마음에 크게 찔림을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한번 결심하니까 대단합니다.
그는 세례를 받을 때까지 그는 l0개월 동안을 말이나 행동, 술담배를 삼가 조심하였고 한결같이 기도하면서 성경을 1백독 할 정도로 생활을 경건히 하였습니다. 하루는 술친구가 찾아와서 술을 마시자고 유혹하자, 그는 “지금 약을 먹는 중이어서 술을 마실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무슨 약을 먹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지금 신약과 구약을 먹고 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가 세례를 받은 후에는 얼마나 변했는지, 한번은 냉면집에서 일하는 아이가 보기도 싫고 밉기도 하여 뜨물 찌꺼기를 그가 지나가는 옆에 확 뿌렸습니다. 주인은 그 광경을 보고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지 고 그 애를 몹시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익두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지나갔습니다. 주인은 말하기를 “오늘은 그가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냥 지나간 모양이나 다음 장날에는 우리 집은 망하게 되었다.”라고 하면서 크게 걱정하였습니다.
다음 장날이 되어 김익두가 그집 앞을 또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 “예수 믿으시오.”라고 전도하면서 “나는 옛날의 김익두가 아니고 새 김익두 올시다. 당신에게 지은 외상값은 후에 다 갚아 드리겠오.”라고 함으로 불안해 하던 주인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김익두가 나중에 유명한 부흥사가 되어 수많은 병자를 고치는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능력의 종교요, 변화의 종교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은 욕심을 따라 사는 나그네 인생을 살다가 지옥에 가는 자들이 되지 마시고 예수님을 믿으심으로 순례자 인생을 사십시오. 그러므로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큰 은혜와 복을 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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