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성장(에베소서 4:11-16)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몹시 무더운 날씨입니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덥고 숨이 막히는 더위는 인간 체질에 가하는 하나의 고통입니다. 그러나 모든 식물은 이 더위 속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더위에 생명이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식물은 태양을 향해 자라나는 해바라기처럼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이 성장에서 깊은 진리를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 있는 식물은 땅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땅으로부터 수분과 영양을 섭취합니다. 땅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식물은 마르지 않고 뜨거울수록 더욱더 잘 자라납니다. 문제는 뿌리이며 어디에 내렸느냐 하는 것입니다.
좋은 옥토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식물은 햇볕이 뜨거울수록 더욱 잘 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흙이 얕은 곳에 있든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식물은 햇볕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시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인격도 어디에 그 뿌리를 내렸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더위를 감당하기 위해서 그늘을 찾고 부채를 찾고 선풍기, 에어콘을 찾지 않습니까? 제가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할 때 그 대학은 도서관 전체가 냉방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어찌나 시원하고 서늘한지 여학생들은 쉐타를 준비해 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나면 감기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당시 제 차에도 냉방장치를 하였는데 항상 머리가 아프고 감기에 자주 걸렸습니다. 우리는 더울 때 시원하게 하려고, 또는 추울 때 따뜻하게 하려고 냉․난방 장치를 이용하지만 바로 그것이 우리 몸의 조화를 깨뜨려 건강을 잃게 되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울 때 땀을 흘리고 추울 때 떨면서 살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열치열"이라는 우리 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더위 속에 더욱더 활동하고 땀을 흘림으로써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몸과 마음이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위를 탓하지 말고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의 성장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그의 높은 인격에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장 목표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적인 요소가 성장하려면 마치 식물이 성장할 때 뜨거운 태양이 필요하듯이 많은 시련과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게 되면 그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장은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는 조화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바를 내가 알고"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것은 믿는 바와 아는 바가 동시에 균형을 이루어 서로 협력하여서 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성장이 필요합니다.
믿음이란 대체로 구원받는 믿음과 은사의 믿음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구원받는 믿음이란 누구나 가져야 하는 기본적이요, 절대적인 것임에 비하여 은사의 믿음이란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을 넘어서 모든 시련과 환난을 극복하고, 때로는 산을 옮길 만한 이적을 행할 수도 있는 선물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은사의 믿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전혀 믿을 수 없는 일까지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바로 은사적인 믿음입니다.
믿음의 성장이란 언제나 지적(知的)인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는 것이 자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깨달음이 따르지 못하면 믿음에는 감격이 없고 확실한 터가 잡히지 못하며, 깨달음 없이는 믿는 바를 증거하지 못합니다. 깨달음이 있으면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성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알기는 알지만 여전히 마음은 싸늘하기만 하다면 아직도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입니다. 내 마음에 뜨거움을 주고 모든 의심과 나약함을 넘어설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성장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깨달음과 가슴으로 뜨겁게 받아들임과 실천하는 신앙으로 성장하여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의 믿음의 폭과 대상도 역시 자라야 합니다. 순조롭고 행복한 때에만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를 믿었습니다만 이제는 질병, 환난, 시련 속에서도 살아 계셔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정도의 믿음으로 깊어져야 하겠고, 대상과 폭도 더욱더 성장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흘 전에 저는 어느 수양관으로 학생 수양회를 인도하러 갔었습니다. 수양관 못 미처 콘크리트가 가로 질러 있는 곳에 큰 냇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가던 날에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는 위로 차를 몰고 지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많은 비가 내려 하룻밤을 자고 나니 그 냇물은 엄청나게 불어 흙탕물이 콸콸 흐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라 관리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사흘간 비가 오지 않아야 사흘 후에 차가 지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를 인도하려면 이 시간부터 비가 오지 않아야 할텐데….
그래서 그 때 하나님께 조금 미련한 기도를 해보았습니다. "하나님, 사정이 여차여차 하오니 어찌합니까? 비가 오지 않아야 제가 주일날 교회에 갈 수 있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저 쪽에서 장마 구름이 시커멓게 몰려오고 일기 예보에도 비가 온다고 합니다. 정말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비구름만 덮여 있었을 뿐 한 방울의 비도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저녁 늦게 차를 몰고 돌아왔습니다. 오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너는 '하나님! 비가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못했는가? 저는 그 때 하나님께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어떠한 전쟁과 희생과 모순 속에서도 깊이 역사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그의 깊은 뜻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성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욱 성장하여야 하겠습니다. 호세아 6:6에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배움으로써 믿음도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을 안다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을 받고 싶고 또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랑의 대상에게 아무 의심 없이 자기를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가끔 자신이 사랑을 하는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가끔 보고 싶거나 생각이 나면 마치 그것이 사랑인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르고 싶은 마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 비판이 있고 갈등이 있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한낱 감상일 뿐입니다. 사랑의 성장이란 그가 나를 따르고 닮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있기를 바라고 내 뜻이 이루어지기보다는 내가 그 사람의 뜻과 같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사랑하심을 아는 자는 하나님께서 내 편에 서 주시기를 바라지 않으며, 오직 내가 완전히 부정된 모습으로 하나님 편에 서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는 "주여, 나의 뜻을 완전히 부정하시고 오직 주님의 뜻만 따르고 주님의 뜻만 내 안에 있게 하여 주옵소서." 좀더 명확하게 표현한다면, "내 뜻을 강제로 꺾고서라도 때릴 때는 때리시고, 칠 때는 치심으로써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적으로 위탁(Total commitment)하는 마음이며 사랑의 성장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여 사랑이란 멀찍이 떨어져서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깊고 넓은 사랑에 감격하여 완전히 묻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중에 믿음이 자라 가는 모습입니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에 부모님을 안다고 하지만 진실로 안 것이 아니고 점차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칭찬보다도 매가 더 귀중했음을 깨닫고, 또 그의 웃음보다는 눈물 속에 그의 큰사랑이 있었음을 알게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도 어머니의 사랑을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성장하여 어머니가 되었을 때 진정한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자라라"고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사랑을 받던 자세에서 사랑을 주는 자세로, 받을 것을 생각하던 마음에서 이미 받은 것을 감사하며 만족하는 자세로, 친구나 좋아했던 사람만을 사랑하던 자세에서 원수나 나를 미워하거나 나에게 무관심한 자까지 사랑하는 자세로 성장하여야 하겠습니다. 진실과 거짓이 혼합되어 살아가던 생활에서 거짓을 떨쳐 버리고 점차 진실만을 나타내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점점 거짓과 어두운 삶이 없어지고 하나님과 모든 사람 앞에서 떳떳하고 깨끗한 심령이 되어 담대한 힘을 얻고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성장하여야 하겠습니다.
다시 본문에서 우리에게 "범사에 자랄지라"(every circumstance)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경우에서든지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영국 신학자들이 어느 집에 모여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하심에 대하여 거창하게 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상하고 철학적이며 신학적 용어로써 서로 말을 주고 받았지만 도저히 의견은 합하여지고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가 희미하다느니, 하나님이 침묵을 지킨다느니,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죽은 것이 아니냐는 등의 지나친 농담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때에 그 집에서 일하는 아이가 차를 끓여 나오다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으기 놀랐지만 차를 탁자 위에 놓은 후에 용기를 내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제가 들으니 하나님은 침묵한다, 하나님은 돌아가셨다라는 말씀들을 하시는데 매우 놀랐습니다. 저의 경우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뜰 때에는 하나님이 눈을 뜨게 해주셨다고 생각하고, 세수할 때는 '하나님이여, 내 마음도 깨끗이 씻어 주세요'라고 하며, 청소할 때에는 '하나님, 제가 이렇게 방을 깨끗이 함과 같이 이 세상을 깨끗이 쓸게 해주세요'라고 기도 드립니다. 밥을 할 때에는 '하나님이여, 영의 양식을 허락하여 주조서'라고 기원합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렇게 내 주위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면서 그녀는 방을 나가더랍니다. 그 말에 그 때 거기에 모인 신학자들은 그 말이 옳다면서 무릎을 꿇고 다같이 기도하고 진지한 토론을 계속했더랍니다.
범사에 자란다는 것은 거창한 신학적 용어를 빌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풀 한 포기를 보시면서도 하나님이 그들을 입히신다고 말씀하셨고, 공중에 나는 새를 볼 때에는 하나님이 저들을 먹이신다고 말씀하셨고, 또 풍랑이 일어날 때에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의 고난이 다가올 때에도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이르기까지 자라야 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이 땅에 살다가 죽을 때에도 또 한 번 하나님은 사랑하시라고 고백하며 죽어야 하겠습니다. 이 정도의 믿음까지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더위와 추위, 성공과 실패 등의 시련과 환난을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깊숙이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생수를 받아 마실 수 있는 신앙만 있다면 이러한 무더위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바칠 것은 피와 땀과 눈물뿐이다"라는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어칠 경의 유명한 연설이 있습니다. 피가 요구될 때에 피를 흘리고 땀이 필요할 때에 땀을 흘리며 눈물을 흘려야 할 때에 마땅히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노예가 되는 동시에 가난과 고통스러움밖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장할 때에 성장하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믿음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이 더위에 말라 죽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지 못하면 어려운 시련 속에서 살아 남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 성장함으로 범사에 그에게 이르기까지 자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기도: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무더위 속에서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적인 더위로 짜증만 부릴 것이 아니라 이 더위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저희가 들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이런 무더위와 시련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심령이 되게 하옵시며, 오히려 더 큰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속에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있음을 깨닫게 하옵시고, 그러한 신앙과 진실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서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빌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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