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하나님은 어떤 사이일까? 잠29:19
오늘은 잠언 29:19절 봉독합니다.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종은 말로만 해서는 말을 안 듣는다..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는 과연 어떤 사이일까요?
아주 가까운 사이인 사람도 있고요.
조금 먼 사이인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좋지 못한, 제일 밑바닥의 사이, 또는 관계는
오늘 본문처럼 '매를 맞아야만 말을 듣는 종'과 같은 관계.. 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시고, 우리는 종인데
그냥 말씀하시면 듣지 않고
꼭 매를 들어야만
겨우겨우 말을 듣고 하는 종!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닐까?'
여러분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
가장 많은 퍼센티지가
저는 여기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매를 맞아야만
겨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
수도 없이 와서 예배드리고
설교를 듣지만
그냥 듣고 흘려버리고
행하지는 않고
그러다 하나님이 참다 참다, 견디다 견디다가
드디어 징계,
사랑하시기 때문에
회초리를 들으시면
그제야 매를 맞고
정신 차려서 하나님 말씀 들으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들으라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한다.
너희들이 말로만 하지 않고
꼭 매를 들어야만
말 듣는 그런 종과 같구나' 하는 잠29:19
그런 책망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말하면 듣기는 듣지만
그건 기뻐서 순종하는 게 아니고
매 맞기 싫어서, 하나님이 무서워서
하나님 말 안 듣다가 벌 받을까 봐 무서워서
듣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매 맞고 말 듣는 사람보다야 낫지만,
그러나 그것도 그렇게 하나님이 썩 기뻐하시는
아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제일 좋은 사이는 어떤 사이일까? 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문득 한용운이라고 하는 시인의
<복종>이라는 시가 생각났어요.
아주 좋은 시입니다.
"남들은 자유를 좋아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이 시인이 참 기가 막힌 말을 했어요.
저는 이 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그러면 좋겠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기보다
하나님의 종처럼 하나님께 복종하고 싶어요.
나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좋아요.
그것은 자유보다 더 달콤해요..'
그게 왜 그런지 아세요?
하나님을 사랑할 때
아주 뜨겁게 사랑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감정이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라 하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 없습니다.
왜요?
그러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게 하나님께 대한 나의 고백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꼭 매를 들어야만
그냥 순종하는
그런 어거지 교인
그런 말 안 듣는 종과 같은 사이 말고
겨우 매 맞을까 봐
하나님 말씀에 억지로 순종하는
그거 말고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서
하나님 말씀하시면
이해가 되든 안 되든
힘들든 힘들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그 말씀에 복종하려고
왜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테니까
하나님이 좋아하실 테니까
'하나님,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고 싶어서
나는 복종하는 걸 좋아하여요.'
내가 이런 사람 되면 참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지요.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 선생님이 부르는 줄 알고
엘리를 찾아가죠.
엘리가 알았어요.
'하나님이 이 아이를 부르시는구나'
그때 엘리가 사무엘에게 굉장히 중요한 말을 가르쳐 주지요.
'다시 하나님이 너를 부르시거든 이렇게 해라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여러분 이것이 예수 믿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나는 순종할 거예요.
순종하고 싶어요.
순종하고 싶으니 말씀해 주세요.'
이게 우리의 신앙 고백이고
하나님 믿는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였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복종을 좋아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요?
지금 얘기하고 있지만
그거는 사랑할 때만 가능하거든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보통 사랑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푹 빠져서
푹 빠져서
하나님을 열애할 때
하나님을 열애할 때
이런 관계가 이루어질 거 같아요.
'어떻게 하나님을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해요.
옛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부모님들이 짝지어 주신 신랑 만나서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잖아요.
그래서 첫날밤에 신랑 얼굴 처음 보고 결혼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시대가 있었잖아요.
요즘은 말도 안 되죠.
어떻게 보지도 못한 사람을 그러겠어요?
그러니까 사랑하지 않고 결혼한 거예요.
결혼하다가 나중에 사랑하는 거겠죠.
만나야만 사랑할 수 있어요.
그렇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첫 번째 하나님을 만나야 돼요.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하나님 만나는 게 참 어려워요.
왜요?
하나님 보이질 않거든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거
그거 참 어려워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길이 말씀이에요.
여러분 말씀을 계시라 그러잖아요.
여러분 하나님을 어떻게 볼 수 있나?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당신을 보여 주시면 볼 수 있어요.
그것을 우리는 "계시"라고 그래요.
계시를 리빌(reveal)이라고 그러잖아요.
리빌(reveal)이라는 말은 베일을 벗긴다..
하나님이 베일을 스스로 벗었으면
하나님이 보이는 거예요.
그 계시가 말씀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여러분 벳새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어요.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했어요.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버나움으로 배 타고 건너가게 했어요.
위험했거든요.
예수님이 임금 되기를 기다렸던 제자들이거든요.
예수님이 임금 되면
한자리 하겠다 라고 하는
세상적인 야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좇던 제자들이기 때문에
그 자리는 매우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위험한 자리였어요.
그래서 떠나라 했어요.
그런데 제자들이 그 말씀에 순종했어요.
순종하고 싶지 않은 말씀에 순종했어요.
토 달지 않았어요.
배를 타고 가는데요.
가버나움에서 바람이 불어와서
거세게 불어서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럴 때 저 같으면 뱃머리를 돌릴 거예요.
'풍랑이 심해서 못 갔습니다.'
그리고 그냥 자기 머물고 싶은
벳세다에 머물렀을는지 모르는데
제자들은 그냥
맞바람 치는 바람과 싸웠어요.
그때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셨어요.
그때 예수님이 내니 두려워 말라 하셨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가지고
기뻐서 배로 영접했다.. 하는 말씀이 있어요.
제가 이 상상을 해 봐요.
만일 제자들이
가버나움에서 이렇게 바람이 불어서
풍랑이 일어서 못 가게 되어서
뱃머리를 돌려서 벳새다로 행하다가
예수님을 만났으면
얼마나 수치스러웠겠어요.
이렇게 육체적으로는 만났어도
진정한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니까 기뻐서 영접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제 신앙 생활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깨달음으로 생각해요.
내가 이해하지 못 하는 말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풍랑 일고 어려움 겪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 할 때
하나님과 만나는 거예요.
말씀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요.
그다음에 하나님을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되면
여러분
저희들 가려던 땅에 무사히 가게 되었다..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요.
그렇게 되게 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사랑하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한용운 시인의 시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사람들은 자유를 좋아한다지만
저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복종은
그 자유보다 더 달콤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복종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세상에 복종하라
그러실 리 없지만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나는 그것은 복종할 수 없어요.
그 말에 복종하면
하나님께 내가 복종할 수 없잖아요.
이렇게 고백하면서 예수 믿고 살아가는
우리 날기새 식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풍랑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과 같아요.
우리 날기새 식구들 중에는
저와 같이 암 투병 중에 있어서
정말 거친 풍랑을 항해하는 사람도 있지요.
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또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인간관계 때문에 어려움
많은 풍랑 속을 걸어가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 바다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도 그 풍랑을 걸어갈 수 있고
정복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고
그럴 줄을 믿습니다.
우리는
종은 말하면 듣지 않고
매를 맞아야만 말을 듣는다..
그렇게 예수 믿는 사람 말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
또 간증
그리고 하나님 사랑해서
정말 복종을 좋아하는
그런 예수 믿는 사람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좋아해서 전에 우리 찬송 부를 때는
너무 자주 불렀던 찬송이 하나 있어요.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말씀대로 했더니 증거가
말씀이 이루어져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받은 증거 많도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게 너무 좋아요.
그래서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옵소서'
세상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는 그 욕심 갖게 되는
그런 신앙의 높은 경지에
우리 사랑하는 날기새 식구들 다 이르러서
험한 풍랑도 이겨내고
바다도 걷고
암도 이겨내고
경제적인 사회적인 모든 어려움도 다 이겨 내고
그 자리에서 말씀 때문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고
간증하고 살아가는
우리 저와 여러분 다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종은 말하면 듣지 않고
꼭 매를 맞아야만 듣는다.'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수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귀로만 듣고
삶으로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 징계하시는데
매를 맞으면 그때 무서워서 정신 차리고
매를 맞으면 그때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들 임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한용운 시인의 복종이라는 시를 생각했습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마음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람들은 자유를 좋아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 하려고
그래서 제멋대로 제 맘대로 살려고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주의 종이 듣겠습니다.
이런 고백하며 살아가는
우리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풍랑이는 바다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졌다가
예수님 만나서 기뻐 영접했듯이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 살아내는
우리나라에서 식구들 다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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