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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금이 은혜 받을 기회입니다.

by 【고동엽】 2021.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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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은혜 받을 기회입니다.

 

1.지금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감당할 수 없는 시험, 고난을 당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누구든 나에게 도움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평생에 가장 큰 사랑과 도움을 베풀어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 사랑과 도움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 것입니까? 인간에게도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도움이 될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어떤 남편이 아내의 병상에서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아내가 저렇게 고통을 받는데 나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어요” 그렇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가지고는 있으나 그 사랑은 제한적이요 영원하지를 못합니다. 부모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시면 그 사랑은 끝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그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하시며 네 영혼을 지키시리라(시 121:7)”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2.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입니다.

미국의 22대 대통령인 클리브랜드의 생애는 이러합니다. 그의 청소년 시절은 방탕과 갈등의 세월이었습니다. 날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습니다. 술을 마시고 돈을 내는 적은 한번도 없었고, 걸핏하면 시비를 걸어 닥치는대로 부수고 파괴하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어느날 그는 우연히 교회 앞을 지나가다가 건물에 붙어 있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순간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말씀이 클리블랜드의 가슴을 예리하게 찔렀습니다. 그 말씀은 사형선고처럼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느새 술도 깨고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옆의 친구가 술집에 가자고 그의 손을 잡아 끌었지만 그는 뿌리치고 교회로 들어 갔습니다. 그는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드디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후 30년이 흘렀습니다. 클리블랜드는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클리블랜드가 대통령이 되던 바로 그날 클리블랜드를 떠나 술집을 찾았던 친구는 범죄의 삶을 살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클리브랜드가 교회 앞에 섰던 그 순간은 그에게 허락된 은혜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기회를 잡은 사람은 새 삶을 얻었고, 놓친 사람은 사망의 길로 내려간 것입니다.

신앙적 기회는 오직 육신의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육체의 장막을 벗는날 지옥의 형벌에 이르러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이 당신이 구원받고 은혜받을 때입니다.

 

3.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아침 일찍 전화가 왔습니다. 나이는 60세. 교회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인데 간경화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인데 세례를 받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고에 찌들어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두려움에 질려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한영혼에 대한 연민과 더불어 화가 났습니다.

‘60 평생을 살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다가 이제까지 세례로 못받고 죽기 전에 세례를 받으려 한단 말인가? 젊은 시절을 다 무엇하다가 이제 왔단 말인가? 영혼보다 술이 더 좋았다는 말인가? 가족보다도 세상이 그렇게 좋았단 말인가? 자신의 영혼이 그렇게 귀중한 것임을 알지 못했단 말인가?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묻습니다. “예수님 우편에 달렸던 강도처럼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어도 구원을 얻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안믿고 죽기 직전에 믿겠습니다” “당신이 언제 죽을지 아십니까?” “그것야 모르지요” “그렇다면 지금 믿으십시오” 마지막을 기약하며 미루는 사람, 그에게 영원히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기회는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분, 믿다가 믿음을 버리신 분들, 하나님은 오늘 간절히 당신을 부르십니다. 오늘이 기회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들 속에 하나님은 여러번 당신에게 기회를 주시면 부르셨습니다. 상황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우연히 접한 전도지를 통해서 그런데 지금까지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이 다시 한번 하나님이 당신에게 허락하시는 기회입니다. 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두손들고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그가 당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삼으면, 목자 삼으면 여러분 삶의 모든 것을 그가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내게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그가 부르십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일회용품들을 많이 있습니다. 인간이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사용 후에 닦거나 빨아서 다시 사용하기보다는 한번 쓰고 버리는 물건이 많아졌습니다. 샴퓨와 세제, 치약 칫솔, 아기 기저귀, 심지어는 일회용 옷까지 생겨 났습니다. 이렇듯 자주 접하는 일회용품들을 보면서 인간은 스스로가 일회용임을 알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인간은 일회용입니다. 一生입니다. 장수와 영생은 인간의 소망이요, 과학과 의학을 통한 재생까지 꿈꾸고 있으나 하나님은 인간의 영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확약하셨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보면 인간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죄가 인간 가운데 들어오게 되었고, 그 죄의 결과는 온 인류에게 미쳤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 이래로 시작된 인류의 죽음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죽고, 셋이 죽고, 역사 이래로 가장 오래 969살을 살았던 므두셀라도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5장은 누가 얼마만큼 살았다는데 주안점을 두지 않고, 누구나 다 죽는다는데 중점을 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죽습니다.

영생을 꿈꾸고 발버둥치는 인류에게 이 선언만큼 비극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개인이나 역사에 종말을 선언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한 사랑의 배려입니다. 죄악 가운데서 영원토록 사는 것보다 그 삶을 끝내고 죄와 사망이 없는 천국에서 영원한 새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섭리를 깨달으시고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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