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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연단 (창 39:1-6 )

by 【고동엽】 2021. 4. 26.

고난의 연단 (창 39:1-6 )
상도교회/김이봉 목사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
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
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
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
담하였더라) <창세기 39장 1-6절>

1. 하나님은 연단의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을 혹독하게 연단하였습니다.
요셉이 당한 고난은 우리 주님이 당한 고난과 상통됩니다.
왜냐하면 죄 없이 당한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총애(寵愛)를 받고 있다는 그것으로 이복(異腹) 형들로부터 질투와 미움을 받았고,
더욱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자기들을 찾아온 동생을 이 모진 형들은 물 없는 구덩이에 쳐
넣어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형들 중 하나가 그럴 필요까지 있겠는가 하여, 마침 자기들 앞으로 지나가는 미디안
상인에게 종으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죄 없이 억울하게 젊음의 시절을 보내야 하였습니다.
이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참으로 요셉은 억울하게 팔려갔습니다. 기가막힐
일입니다. 원통한 일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요셉과 같이 젊은 날에 불행스러운 과정을 지내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 가운데서도 이와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한 분들이 있다면 요셉을 생각하면서 하
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그 모든 억울함을 통하여 연단의 인물
이 되었기에 당대의 최고 강대국의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까지 올라 갈 수 있었다고 봅니
다. 믿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고난의 연단은 무엇인가 의미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공연히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쓰실 사람들은 쓰기 전에 먼저 요셉과 같이 연단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
다. 그래서 하나님은 연단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마치 자유분방하게 지내던 젊은이들이 고된 훈련을 통하여 용감한 군인으로 만들어지듯, 하
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연단하여 쓰십니다.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원수 사탄의 세
력과 대항하여 싸우려면 반드시 연단의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언제나 연단은 젓갈의 숙성과 같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젓갈은 처음에 냄새가 나서 비린내 때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것이 잘 숙성이 되면 단 맛을 내는 것처럼, 사람의 사람됨도 연단을 통하여 숙성되지 못한
사람은 비린내 나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서나 배척을 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당히 고난으로 연단 된 사람들은 모든 사람에게 단 맛을 내게 하는 것을 볼 수 있
습니다. 잘 숙성된 젓갈은 비린내가 나지않고 감치는 맛을 내듯이 고난으로 연단 된 사람은
모든 일에서 단 맛을 내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고난의 연단을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예수 그리
스도도 고난의 종으로 묘사된 이유가 그런 이유입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를 묘사할 때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
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하는 말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
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질고를 아는 사람이
었기에 그가 우리의 구세
주가 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하
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먼저 쓸려고 할 때 고난의 풀무에서 연단을 하시
는 하나님이란 점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은 연단하는 중에서도 요셉과 함께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지 않는 줄 알지만, 그런 것이 아니란 말입
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요셉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요셉이 하필이면 보디발의 집으로 팔리어 가게 된 것도 하
나님의 섭리의 손길이었습니다. 만일 요셉이 다른 사람의 종으로 팔려갔던들 애굽의 총리대
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겠는가? 할 때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같은 값에 높은 지위
에 있는 가정으로 팔리게 된 것 자체가 우연이 아니란 말입니다. 애굽의 바로왕의 시위대장
이면 당시에 최고의 권력자이었습니다.

요즘 우리식대로 말하면 청와대 경호실장에 해당되는 직위일 것입니다.
그런 집으로 팔려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동행을 의미합니다. 요셉은 그 집에서 열심히 일하
였습니다. 최선을 다해 봉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주인에게 신용을 얻게 되었고, 가사(家事)의
모든 것을 맡아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하나님이 복을 내리어 형통케 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요셉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이 고난 중에 있을 때도 함께 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
래서 하나님은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평안할 때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들어 쓸려고 할 때는 고난으로 연단 시키면서 그
고난 중에서도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있을 때 성도들은 그것을 연단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연단의 고통은 하나님이 버린 것이 아니라 훈련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이것은 마찬가지이입니다.
요셉과 같이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있다면 요셉이 행한 것 같이 최선을 다해 현실을 극
복해야 하겠습니다.
현실을 도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맞아들이고, 그 현실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최
선을 다 해야 하겠습니다.
요셉은 바로 그 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낙심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했습
니다. 그래서 그는 보디발에게도 신용을 얻었고, 옥사장에게도 신용을 얻었습니다.

6.25를 겪은 세대들에게는 비슷한 경험들을 다 했을 것입니다.
대학시절의 낭만이란 거의 없을 정도로 현실의 삶들이 급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먹고 살기
에 급급했던 시절이란 말입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런 세월을 어떻게 보낼 수 있었을까?
새삼스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입은 옷이란 군복 염색을 한 것들이었고, 신발이란 자기 발보
다 큰 구제품에서 얻어 신은 것이었고, 신사복이란 역시 구제품에서 얻어서 줄여 입었거나,
새로 뒤집어 만들어 놓은 옷(일본어로 우라까이)들이었습니다.
저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가 사는 형편에서는 무엇인들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한가
지도 없습니다. 단벌 신사에 넥타이도 하나요, Y셧츠도 하나로 너무 오래 입어 깃(일본어로
에리)이 낡아지면 그것만 따로 사다 달아 입고 다니던 그 시절을 거쳐왔기에 오늘도 나는
옷에 대하여 팔과 다리만 들어가면 그것이 옷 인줄 알고 있습니다. 어느 여름날 주일 저녘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밤에 논두렁 길을 가다가 다리를 헛 짚어 논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온통 흙탕물로 옷이 더러워졌을 때, 저는 요셉의 인내를 되씹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
습니다.

나를 이렇게 연단하시는 하나님이 이 이상 더 내려갈 데가 없도록 까지 내려가는 연단을 시
키시는 하나님이란 것을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그 후에 대학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영장을 받게 되어 학보병으로 입대하게 되었는데, 저는
솔직히 말해 군대 생활에서 도리어 더 편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들은 어려운
군대 생활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세끼 밥을 다 주지, 입을 옷과 소모품까지 다 주지, 건빵
주지, 담배 주지(담배는 모았다가 인심 쓰는 일에 잘 썼음) 그러니 도리어 일찍 사회에서 연
단을 받은 것이 실제 군대 생활에서는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을 일찍 그렇게 연단시킨 하나님의 뜻은 후에 잘 나타났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하는
말 중에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이곳에 보내어 오늘의 흉년을 면케 하시고 우리를 살리려
하였다"는 말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두려워하여 떨었지만, 요셉의 마음은 그렇지 아니했습니다. 지난 세월의 고난
을 오늘의 자기를 만들어낸 하나님의 연단이라고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이 필요합니다. 현재 고난 중에 있는 분들이 있다면 후일에 여러
분이 어떤 위치에 있어 귀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연단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요셉을 들어서 최고의 지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요셉의 지난 세월의 고난은 내려가는 길이 아니라 올라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요셉
이 한번의 눈물을 흘릴 때마다 한 걸음씩 상승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가장 최악의 자리
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난 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연단을 신앙으로 받아들였기 때문
입니다.
요셉이 당한 인생의 갈림길의 가장 큰 위기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이었습니다. 혈기왕성한
젊은 나이에 날마다 집요하게 접근해 오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
가 어찌 이런 죄를 범할 수 있겠는가?
라는 철저한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바로 이점이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입니다.

인간적 욕망으로 보면 가장 쉽게 출세하고 성공할 수 있는 찬스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요셉이 이 과정에서 실패했으면 모두가 끝장이 될 뻔하였습니다.
이 고난의 연단에서 통과되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바로왕 앞에 서게 하였고,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고, 흉년기간 동안 가족들을 살릴 수 있었고, 또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
할 수 있게 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바로 이 과정을 통과한 요셉과 같이 연단 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요셉은 <물질>과 <정욕>과 <명예욕>의 시험을 이기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당한 시험과도 같습니다.
주님도 육체의 욕망, 정신적 욕망, 종교적 욕망의 시험을 다 이기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그에게 인간적인 수많은 고난
의 연단으로 다져진 인격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만일 요셉이 그러한 고난의 연단이 없었던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좋은 찬스를 만났을 때 넘
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 같았으면 얼마나 좋은 찬스입니까?
돈과 권력과 향락을 한꺼번에 쥘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었겠습니까?
연단 되지 못한 사람들이 권세를 잡으면 쉽게 돈에 탐심을 내게 됩니다.
연단 되지 못한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쉽게 타락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요셉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고 또 우리 자신도 그렇게 되
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민족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려면 고난의 연단을 통과한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백성의 아픔을 알고, 가난하고 없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 좋은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총리의 자리에 올라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7년 동안 풍년이 들때 낭비하지 않고, 방방곡곡에 창고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남아도는 양식을 사서 쌓아 들였습니다. 그 후에 연이어 가뭄이 들어 흉년이 닥쳤을
때 곡간의 문을 활짝 열어 모든 일반 백성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기근을 면케 하였습니다.
이 소문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모든 나라들이 궁핍하였을 때 애굽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애굽으로 가면 쌀을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이 야곱의 귀에까지 들려졌습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너희는 애굽으로 내려가
양식을 사올 생각들을 하지 않느냐고 아들들에게 재촉하여 결국 애굽으로 쌀을 구하러 내려
갔다가 요셉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요셉과 같은 총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부정축재 하지않고, 이권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백성들을 위한 애국애족하는 정치 지도자
가 나타나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일찍이 톨스토이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라야 인생의 참 맛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눈물 젖은 빵이 무엇이겠습니까? 고난의 연단으로 다져진 인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
까? 고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귀공자들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일반 서민층의 고통을 알며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펴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
지입니다.
고난의 연단으로 다져진 신앙의 사람들이야말로 온갖 고난을 극복해낼 수 있는 용기와 지혜
가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 가운데 지금 고난의 연단 속에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연단 속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함께하심을 믿어
야 합니다. 하나님이 를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더 큰 그
릇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지금 연단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욥도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나를 연단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밑바닥까지 내려갔으면 이제는 다시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도 무덤에까지 내려갔으나 그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
름을 주사 하늘 아버지의 보좌에 앉게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신앙을 가지고 오늘의 고난의 연단을 승리로 끝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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