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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한 증인, 스데반! (행 7:54-60)
사람은 그가 현재에 얼마를 가졌 는지, 또 얼마나 알고 있는지, 혹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어
떤 직분을 맡 았는지 뭐 이런 것에 의해서 평가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가지 고 있
는 소원, 그것이 문제입니다. 비록 이루지 못한 소원이라도 간절 한 소원, 그리고 그가 가진
행복관 이것에 의해서 평가되는 것입니다.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닙니다. 미래를 향한 그
의 간절한 소원, 그 것이 뭐냐에 따라서 평가됩니다. 쾌감과 행복은 같은 게 아닙니다. 쾌감
이란 오감을 만족케하는 충족에 서 오는 것이고 행복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그 관계에서
오는 것이올 시다.
여러분, 여러분 마음속에 깊은 마지막 소원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고 싶은 욕
망을 지니 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다 그러 합니다. 먹어야 사니까. 특별히 이 강아지를
키워보면 강아지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아직 눈도 뜨기 전에 냄 새를 맡고 어머니의 젖을 가
서 물고 빠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갖 다 대고 못
빠는데 이것들은 눈도 안 뜨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가서 젖은 빱니다. 거기에 생명력
이 있고 생명적 본능이 거기에 나타 나고 있습니다. 먹어야 하는 것이 니까요. 그리고 무엇
을 먹느냐 어 떻게 먹느냐 그것이 문젭니다. 요 새 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만나보면 특별히
연세가 높은 분들은 그런 얘 기를 합니다.
"이 치아가 다 빠져 서 틀니를 하고 보니까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요. 그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맛이 없다는 거예요. 이게 틀니를 가지고 먹으니까 영 음
식 맛이 없다. 그러니깐 사는 재미 가 없다 그런 말씀들을 하십니다. 그야 말로 구제할 길이
없는 겁니 다. 어쨌든 먹는다는 게 중요하고 먹는 재미가 중요합니다. 어떤 때 는 이것만 관
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 습니다. 그건 그 수준의 사람이니 까요.
또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 성취감이올시다. 그래서
무엇을 하 느냐,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중 요합니다. 그래 그런 말하지 않습 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다. 그래 당신이 하 고 싶은 일이 뭡니까 묻고 싶어
요. 그것이 바로 당신의 가치와 수준을 결정하니까요.
또 하나는 만나고 싶은 거예요. 만나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고 그런 마
음이요. 누 구를 만나고 싶어하느냐, 누구와 함 께 있을 때 행복하냐, 이런 것이 그 사람의
사람됨을 결정합니다. 또는 가지고 싶은 게 많아요. 소유욕! 이것을 위하여 몸부림을 치며
사는 데 도대체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무 엇을 가지고 싶어하는가, 또 어떻게 가지고 싶으
냐? 뭐 이런 문제가 사 람됨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올시다. 이것은 인간 관계에서 내 진실이 인정
받고 내 충 성이 인정받고 나 사람됨이, 또는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혹은 존경을 받
으면서 인정받고 싶은 그 런 것, 이 욕망에 끌려 삽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보다 가장 위 에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되고 싶 은 욕망입니다. 여러분
은 어떤 사 람이 되고 싶습니까?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나의 나됨
이 있는 겁니다. 난 한 평생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모델을
찾습 니다. 표본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 을 부러워하고 살았습니까? 여러분 아무리 생각해도
역사적인 인물이든 주변의 사람이든 간에 '나는 아무도 존경할 수 없다. 아무도 믿을 수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면 그 사람은 구제불능한 사람입니 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올시다. 내가 존경하고 모방하고 싶고, 흠모 하고, 사모하고, 존경하고, 부러워하 고 '
저 사람처럼 됐으면 좋겠다' 하 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우러러 보 며 살 수 있는 그런 사
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능하면 그의 주변에 서 그와 함께 하며 살 수 있다면 더 더욱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점점 닮아가기 때 문입니다. 저는 예수님 당
시에 예 수님 주변에 있던 제자들이 몹시도 부럽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 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의 그 모든 것을 보면서 가까이 살았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당신
이 되고 싶은 사람이 누굽니까? 어 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그것이 문제 입니다.
저는 성서적으로 볼 때 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장점도 있고 단점 도 있고, 좋은 점 또 실
수한 점도 많이 있어요. 나름대로 모두 특징 이 있습니다만은 제가 개인적으로는 스데반을
제일 높이 존경하고 모델 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6장 15절에 보면 '
천사의 얼굴 같더라'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 다. 천사를 본 일은 없지만은 그 말의 뜻은 알
것 같습니다. 천사의 얼굴! 천사의 마음이 있었기에 천 사의 얼굴로 비춰집니다. 얼마나 훌
륭한 인격입니까. 그리스도인의 별명이 혹은 속성에 의해서 증인이 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
은 어딜 가든지 증인입니다. 그리스도를 증 거하고 그리스도의 교리를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진리를 증거할 뿐만 아 니라 특별히 부활 생명의 증인이요 부활 신앙의 증인입니다. 부활의
증인은 순교로 그 신앙을 증거하게 됩니다. 어디 가나 우리는 증인이 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간혹 이렇게 여행을 할 때, 저는 부득이 정장을 하고 나섭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에
맞이하는 분 들 가운데는 그래요. 아 이거 열세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깐 좀 비행
기 안에서 캐쥬얼하게 입고 그렇게 입고 내려올 줄로 알았대요. 그런데 넥타이를 매고 정장
을 하고 나서니까
"아 불편한데 어떻게 그렇 게 하고 오십니까?"
그렇게 인사하 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 제가 대답 을 합니다.
"어디 가나 소망 교인 이 있습니다. 우리는 소망 교인 앞 에 바르게, 단정한 모습으로 나타
나 려고 합니다. 불편하지만 잠을 자 도 넥타이를 매고 자야됩니다."
왜 요? 그게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확실하게 자나, 깨나, 먹으 나, 가나, 오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의 증인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스데반을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이 충만한 사
람이예 요. 그래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어 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한번 보십 시다. 먼저는
그가 우러러보고 있 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 람들이 이를 갊니다. 당장 돌을 들 어
치려고 하는 그 무서운 사람들 앞에서도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았습 니다. 그것이 위대한 신
앙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의 고향이요 앞으로 가야 할 곳이니까요. '하늘 을 우러러보
았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올시다. 우러러 볼 때에 거 기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는 좀 어려울 때 사람을 봅니다 세 상을 봅니다 물질을
봅니다. 그리 고 낙심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보며 나도 미워하고 그러다가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그것이 필요합
니다.
자 이제 보세요. 이렇게 우러러 보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스데반 을 본 사도바울이 먼 훗
날에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골로새 3장 1절에서 이렇게 증거하 고 있습
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
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 본 것을, 보는 것을 본 그
증거를 본 사도바 울이 뒤에 그것을 그대로 바울이 메 시지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위를 보라!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를 생각하라 위를 보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얘기입니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인입니다. 어떤 경 우에도 위를 보아야 합니다. 거기 에
오늘 본문에 보니
"인자가"라고 한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에 계실 때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지칭하는
칭호가 '인자'입니다. 제 자들이 그리스도를 향해서 예수님을 향하여 부른 호칭이 '그리스도
'입니 다. '메시아'올시다. 여기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신학적인 긴 설명은 하지 않
겠습니다. 인자라고 하는 말은 가장 높은 이름입니다. 그리고 역사 끝에 하나님 친히 계시
자로 임하는 바로 그 분에 대한 칭 호가 인자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 은 십자가 지시기 직
전에 재판 받으 실 때에도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 리라'고 명백하게 선언하십니다. 이 렇게
백 번 이상이나 인자, 인자 말 씀하셨는데 제자들을 통하여
"당신 은 인자입니다. 인자여"라고 부른 일이 한번도 없습니다. 오직 스데 반이 딱 한 번
"인자가 하나님 우편 에 계신 것을 내가 바라본다"고 인 자라는 말이 제자의 입을 통해서
처 음으로 나타납니다. 놀라운 얘깁니 다.
성경에 보면 많은 믿음의 사람들 에게 실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모세의 이야
기를 좀 하면 은 그가 여러 번 실수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위를 보지 못하 고 백성
을 보았기 때문이요. 백성 들이 원망할 때 원망하는 백성을 보 다 보니까 원망하는 백성을
원망하 며 망령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 때도 위를 보았더라면 전혀 다른 결 과가 나왔을
텐데 위를 보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땅을 보고 원망하는 백 성을 보고 세상을 보았어요. 그
만 실수하게 됩니다. 여러분, 단 순간 도 위를 보는 그 마음과 시선을 하 늘에 초점을 맞추
고 사는 것에서 잠 깐도 흐트러져서는 안됩니다.
또 한가지는 이 스데반은 가장 큰 위대한 장점은 용서하는 겁니다. 알고 보면 자기를 죽이
겠다고 지금 소리를 지르는 이 사람들이 바로 옛 친구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입니 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왜 베드로 가 죽지 않고 스데반이 죽습니까? 그는 지성인이요, 학자이기 때문
입 니다. 헬라파 유대인의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 하나가 예수 를 믿게될 때에 많은
유대사람들과 유대교회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생 기기 때문에 이 사람을 죽이려 드는 겁니
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 모여서 스데반을 죽이겠다고 아우성 을 치고, 이를 갈고, 돌을
던지는 바 로 그 사람들이, 바로 엊그제까지 자기의 친구입니다. 동료들입니다. 그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지만 그는 저들을 용서했습니다. 저들은 저를 향하여 이를 갈고 미워했지만 저
는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십자 가에서 하신 말씀처럼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 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 수의 제자에게는 원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라도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야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원 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결코 사랑의 극치가 아닙니다. 이건 기본
적인 것이올시다. 여기서부터 시작합니 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도 우리가 하나
님과 원수 되었 을 때 그가 우리를 사랑했어요. 원 수 사랑이요. 그리스도인이 베풀어 야 할
사랑의 기본적인 사랑도 그것 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원수가
없어요. 적어도 아무도 미워하는 사람이 없 어야합니다. 깨끗이 용서해야합니 다.
특별히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마지막으로 기도합니다.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주세요."
의인을 죽이는 죄, 그리스도인을 향 하여 돌을 던지는 이 무서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
아달라고 합니 다. 모르기 때문이요. 저들을 불쌍 히 여겨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누 구에게
돌리라는 겁니까?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름지기 저는 생각합니다. 내가 좀더 기
회 를 가지고 좀더 온유하게 잘 설득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격한 행동이 폭발하지는 않았
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저들이 발악 하며 돌을 던지는 것에 상당부분의
잘못이 나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주세요."
이 것이 그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여 러분 어떤 허물, 어떤 잘못도 책임 을 남에게 돌리는
것은 그리스도인 이 아닙니다. 내게 돌렸어요. 그 잘못이 내게 있는지도 모르겠습니 다. 이
렇게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 님이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 아주세요. 간절하게 기도합
니다. 이것이 자유인이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또 좀더 나아가서는 그는 전적으 로 하나님께 생을 위탁했습니다.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내 생 명을 받아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 합니다. 여러분 제가 63년에 처음 으로 미국 유학
을 갔을 때, 우리 나 라에는 아직도 자가용 문화가 없을 때입니다. 가서 목사님의 차를 탔
는데, 이거 자기가 허리띠를 매면서 벨트를 날보고 매라고 하더라고요. 이거 생전 처음 매니
까 이상하더라 고요 이거 비틀어 매는 게. 그리고 이 분은 운전대 앞에서 벨트를 딱 맨 다
음에는 잠깐 기도해요. 그래 서 나도 따라서 기도하다가 언제 한 번 물었습니다. 워 샤인이
라고 하 는 목사님인데 묻기를
"나는 식사기 도도 배웠고 잠자리 기도도 배웠습 니다마는 벨트 매는 기도를 못 배웠 는데
이 벨트 매고는 뭐라고 기도하 는 거요."
거 좀 가르쳐달라고 했 습니다. 했더니, 껄껄 웃으면서
"간 단하지.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지. 가다가 언제 사고 날지 모르니까, 꽝
하면 안되니까 미 리 기도하고 떠나는 거지."
그저 우리 생각 같아서는 무사히 가게 해 주시고, 잘 가게 해주시고, 돌아오게 해주시고
……. 자기 마음대로? 그 건 아니요. 설사 어느 시간에 '꽝' 하더라도
"하나님 영혼을 받으시옵 소서"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도 사 는 거예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 녁기도가 뭔지 아십니까? 우
리는 잠자리 기도할 때도
"잠 잘 자게 해 주시고……."
우리 집 아이들도 기 도하는 걸 보면
"무서운 꿈꾸지 않 게 해주시고, 건강하게 내일 아침 일어나서 또 활동하게……."
거 얘 기가 많습니다. 장황한데. 그렇지 않아요,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 에 부탁하나이다."
그런데 어떤 사 람은 같이 자보니까 코고는데 심하 게 골 때는 꼭 죽는 것 같더라고요. 드
렁드렁하다가 또 잠깐 멈추었다 가, 아이구 죽었는가 하면, 또 살아 나고 하더라구요. 아 그
힘들대요. 그 코고는 사람들이요. 그런데 이 언제 죽을는지 알아요? 뚝하면 가 는 거예요.
뭘 그 일어나서……. 언제 제대로 살았다고 그런 기도합 니까? 그저 잠자리 기도는 이렇게
하는 거예요.
"아버지여, 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자다가 가더라도 아버지께 가게 해주세
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마 지막으로 드린 그 기도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평상시에
드리는 잠자리 기도입니다. 그게. 이렇게 기도하 다가 마지막 떠나는 날도
"내 영혼 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 고 기도하며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걸 알아야돼요. 모든 생 명, 모든 운명, 모
든 되어지는 일을 Totally Commit, Commitment 하나 님께 완전히 위탁하는 그것이 그리
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스데반은 죽어갑니다마는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과 같았어요. 왜? 그 마음이 천사니까. 이렇게 죽어감으로 해서 스데반은 죽어서 큰 영광을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 고 이것을 지켜본 사도 바울은 이제 다시 그의 뒤를 따라 한 평생
수고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상한 것은 제가 신학대학에서 바울 신학을 강의 해보았지만, 여러 해 강의하면서 자세히
연구해보니까 요 사도 바울의 신학이라는 것은 스 데반이 마지막 죽기 전에 설교한 그 내용
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 지 못합니다. Christianized the Old Testament, 구약성경을
신약화 하고, 구약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 자가의 의미를 증거하고, 교회를 증 거하고 있는
데요 이것은 놀라운 신 학적 기초가 됩니다. 그러고 보면 바울은 스데반의 제자입니다. 그리
고 한 평생을 살아갑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참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참다운 그리스도인을
한 사람 만나 고야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행복했던 것은 그가 참 그리 스도인
을 먼저, 증인된 그리스도인 을 먼저 만났다는데 있습니다. 그 리고 중요한 후계자를 남긴
것이 아 니겠습니까?
지난 5월 31일자 타임지에서
"A Surge of Teen Spirit"
라고 하는 제목 하에 중요한 기사가 났었습니 다. '10대의 심령 부흥'이라는 제목 입니다.
여러분 다 아시는 대로 4 월 20일날 있었던 콜로라도의 덴버 라고 하는 곳에서 거기 고등학
교에 서 젊은 청년들이 총으로 난사해서 많은 사람, 수십 명이 죽은 것을 알 고 있을 겁니
다. 그 죽은 사람 가 운데 하나. 여학생이, 캐시버넬 (Cassie Bernall)이라는 학생이 죽기 전
에 총을 들이대고 너는 하나님을 믿느냐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때에 애가 총구 앞에서
"There is a God, and you need to follow along God's path."
"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을 뿐만 아니라 너는 하나 님의 길을 따라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때에 총을 쏩니다. 이 여학생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지켜본 많은 학
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이 캐시를 '적은 순교 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많은 학생
들이 깃대 앞에 보였습니다. 그냥 무릎을 꿇어서 기도를 했습니 다. 영적 운동이 온 전국에
퍼져서 10대의 젊은이들이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말합니다.
"Cassie was born for this."
"내 딸 캐시는 이 일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 났다."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한 밀알이 땅 에 떨어져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 습니다. 놀라운 얘기가
아닙니까?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유토피아 를 쓴 토마스 모라고 하는 분이 교 수형을 당
하게 될 때 형장에서 마지 막으로 이렇게 증거한 일이 있습니 다.
"성경에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옆에 바울이 서 있었 습니다. 그가 바울을 위해
서 기도 하고 죽었고 바울은 뒤에 회개하고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바울과 스데반이 만나 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 다. 나는 이 자리에서 죽지만은
당 신이 언젠가 회개하고 하늘나라에서 형제와 같이 반갑게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이러고 죽었습니다. 얼 마나 위대한 얘기입니까?
여러분 도대체 어떤 사람으로 태 어나고 싶습니까?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까? 어떤 사
람으로 남 고 싶습니까? 어떤 사람으로 죽고 싶습니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승리란 자기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원수를 이길 때, 거 기에 참 승리가 있는 겁니다. 승리
와 성공과 참 행복의 원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순교적 증인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을 때
그 앞에 영광이 있을 것이고 사나 죽으나 그는 승리 자로 가장 위대한 자유인으로 살아 가
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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