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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은 무엇인가 11

by 【고동엽】 2015. 2. 26.
예수사랑은 무엇인가 11
13. 예수사랑은 정의를 세우는 사랑 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오전6시)
3 또 제삼시에(오전9시)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정오12시) 제구시에(오후3시)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오후5시)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오후6시)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태는 이어지는 16 절에서,
'이와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되고 먼저된 자로서 나중되리라' 고 해석합니다.
처음 신앙한 사람들에게 경고의 의미가 있다고 해석합니다. 이 구절은 옛 이집트 사본과 번역본에는 없습니다. 2 세기 경에 첨가된 것으로 봅니다.(에레미아스 예수의 비유 분도출판사 31-32)
초기 교부인 이레니우스부터 루터 그리고 오늘날까지 첫 째된 자에 대한 경고로 해석합니다. 꼭 이렇게만 해석해야 할까요
농장 주인을 12 시간이나 일시키는 악덕 기업주라는 등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성서는 그 시대의 삶의 정황에서 자기 시대의 사람들이 읽히도록 쓰여진 글 입니다.
우리는 보다 인권이 신장된 오늘의 시대에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습니다.
ㄱ. 늦게 와서 1 시간만 일한 사람이 하루 일당을 받은 의미
열심히 일한 사람이 마땅한 대우를 받는 것이 합리적 사회 입니다. 예수가 합당한 사회 질서를 깨뜨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으로서 한 가정의 하루 양식 값 입니다. 예수가 포도원 농장 주인을 통해 보인 의도는 한 가정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입니다.
농장 주인은 한 시간 일한 사람이 노름 등으로 놀다가 일을 못했는지 즉 악한 사람인지, 병으로 아파서 즉 당시 통념으로 죄인인지 묻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루의 생활비를 가지고 집으로 가서 가족과 안식을 누려야 한다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구원하시는 의 입니다.(위르겐 몰트만 희망의 윤리 대한기독교서회 132p)
신앙인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참여합니다.
그것이 구원받음 입니다.
예수가 합리적 친숙함을 깨뜨리고 신앙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나는 타인에 대한 책임으로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타인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 입니다. 나는 타자를 떠받치는 주체성인데, 대체 불가능하고 피할 수 없는 주체성 입니다. 이런 불가능성은 죽음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보다 더 무겁습니다.(임마누엘 레비나스 신, 죽음, 그리고 시간, 그린비출판사 205-206p)
특히 예수의 요구는 약한 사람에 대한 우리의 책임성 입니다.
예수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 입니다. 품삯으로 생활이 가능한가 아닌가가 문제 입니다.
예수말씀은 각자가 처한 현실과 시간이 은혜의 자리 입니다. 자기처지와 시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처지나 시간은 없습니다.(칼 바르트 교회교의학 대한기독교서회 4-2 1073p)
예수그리스도는 은혜를 주기 위해 회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있은 후에 회개하기를 바랍니다.(세리 삭개오와 간음한 여인의 경우 등)
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1 시간 일한 품꾼에게 12 시간 일한 다른 사람과 동일한 일당을 지불한 의미
그저 늦게 온 일꾼이 불쌍한 차원이면 모든 일꾼을 보낸 후에 지급하면 말썽이 나지 않습니다. 예수 설교도 이런식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을 일은 없고 국가 봉사 대상을 받았을 겁니다.
예수는 능력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의 동정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보이길 원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을 허물려고 한다는 생각에, 사회 지배 세력이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고 예수를 죽였습니다.
힘의 획득과 능력의 보장은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통용되고, 모든 질서를 규정하는 기본 가치 입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적 신관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서 지배하는 힘 입니다. 이에 따른 신앙도 신에 상응해서 힘과 지배를 통해서 세계 질서가 통용됩니다.
인간은 힘과 지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워 지려고 합니다.
이렇한 법과 선지자의 시대는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까지로 끝났습니다.(누가16:16 마태14:12 참조)
이제 예수의 시대인 하나님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나라에서 사랑의 본질은 지배가 아니며 타자에 대해 힘을 갖지 않습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의 기본 임금을 얻어 자기와 가족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나라는 사랑으로 작동되는 세계임을 나타냅니다.(김균진 기독교신학 2 새물결플러스 478p)
여러사람이 보는데서 1 시간 일한 사람에게 하루 품삯을 준 것은 여러사람의 죄를 고발한 것 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준 것 입니다. 약한 자 배려 없는 능력주의는 착취 입니다.
포도원 품꾼 비유는 자신의 능력만 믿고 달려가며 소외되는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회를 고발한 설교 입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죽였습니다.
예수 설교는 능력 있는 일꾼들에게, 당시 지배 세력인 종교 지도자들에게, 오늘날의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자를 외면하는 능력자들에게 회개를 요청합니다.
비정규직은 같은 노동을 하고 정규직의 절반 정도의 임금을 받습니다. 이 임금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51 % 였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30.6 % 로 줄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근로자가 비정규직으로 고통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정규직 직원을 고용한 그리스도인 사업주는 부끄로워해야 합니다.
ㄷ. 정의란 무엇인가
전두환이 만든 정당 이름이 민주정의당이고, 정글 경쟁을 정의라고 우기는 TV 조선의 고정 출연자 명함이 정의연대 대표 입니다. 유대 지도자들도 정의를 세우기 위해 예수를 죽였습니다.
누구나 자기 기준의 정의를 세우려해서 사회가 혼란합니다.
성서는 정의를 어떻게 말할까요?
주전 8 세기 멸망하기 전의 북이스라엘은 참혹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신발 1 켤레 값에 안해와 자식을 팔았습니다. 부자들은 소고기가 질기다고 송아지를 잡아먹고 포도주를 대접으로 마셨습니다.
돌 무화과 나무 농사꾼인 예언자 아모스는,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제사지내는 곳을(벧엘, 길갈, 브엘세바) 찾아 다니지 말고, 성문 밖으로 나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합니다. 그는
정의가 강같이 흐르게 하라고 합니다.(아모스5:24)
예수사랑은 정의를 동반합니다. 하나님나라는
1 시간 일한 사람의 존엄을 지킴으로써 정의를 세운 포도원 주인과 같습니다
여러분과 가정에 평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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