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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설교편◑/김동호목사 명설교 (155편)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108:1~13

by 【고동엽】 2013. 4. 8.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108:1~13                    

                                                                        

오늘 본문 시편은 표제가 ‘다윗의 찬송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인 57:7~11 (108:1~5) 과 60:5~12 (108:6~13)을 하나로 합친 것입니다.

   

아마 다윗에 의해 처음 쓰여졌으나

포로 귀환기에 찬미용으로 두 시편을 합성하여 다시 쓴 것으로 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렇게 거의 같은 시편이 반복(중복)되어 나오면, 의아함을 갖게 됩니다만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면 시편은 그 본질이 '찬양과 기도'인데,

여러분, 우리가 찬양하고 기도할 때도.. 얼마나 반복하는 말이 많습니까!

 

매 번  새로운 찬양과 새로운 기도의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기도 때 반복은 당연하죠.

그리고 같은 찬양과 같은 기도를 드릴 때마다, 그 느낌과 그 감정은 늘 다르지요!

 

우리가 설교할 때도,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가져와서 설교를 완성할 때도 있습니다.

본문 저자는, 다윗의 시편에서 너무 은혜를 받은 나머지.. 57편과 60편에서 조금씩 가져와

본문 시108편을 완성한 것입니다. 워딩은 거의 일치한다고 합니다.

 

 

◑1~2절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마음을 fixed, 고정시켰다는 것입니다.

약4:8에서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했는데, 

우리 마음은, 기도나 찬양을 드릴 때, 세상 염려 걱정 욕망으로.. 두 마음을 품기 쉬워요.

영성신학에서 그런 마음을 '분심' 즉 나눠진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기도할 때, 찬양 드릴 때.. 제일 먼저 갖춰야 하는 자세는 '마음을 정하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분심을 없애는 것입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싱글 포커스를 갖는 것입니다.

보통 이 과정은 '회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분심이 생기고 집중이 안 될 때는, 그 세상 것을 '회개'해야 하는 신호인 것입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얼마나 참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런데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다윗이 이 고백을 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

 

왜냐면 정황상, 지금 다윗은 동굴 깊은 곳에 은신해 있습니다.

거기서 어떤 소음을 냈다가는, 금방 자기를 몇 달 째 추격하고 있는

사울의 정예부대 3천 명에게 당장 잡혀 죽임을 당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쥐죽은 듯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숨어 있어야 되는 상황에.. 요란스럽게 그 고요한

새벽을 깨운다니... 이게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목숨 걸고 새벽을 깨운 것이죠!

 

여러분 '새벽을 깨운다'는 뜻이 뭘까요?

왜 새벽을 깨우기로 마음을 정하였을까요?

 

지금 다윗이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지 않고, 사울 왕의 추격에 의한 근심 때문인지

그저 잠자리에 누워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궁리 그만 하고

'내가 일어나 기도해야 되겠다' 하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뭘 또 깨우느냐면,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2

이건 찬양을 깨우겠다는 뜻입니다. 즉 찬양을 부르겠다는 말입니다.

 

지금 다윗은, 삶이 너무 힘들고 지치고 우울해서 찬양할 마음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래서 비파 벽에 걸어 놓고, 수금도 걸어 놓고.. 그래서 비파도, 수금도 잠자고 있는데

다윗은 '내가 마음을 정하고 정하였으니,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비파와 수금을 깨울 것이다! 나의 새벽을 깨울 것이다!' 이것이 시108편입니다.

 

◑7~9 하나님이 그의 성소에서 말씀하시되 내가 기뻐하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발을 벗어 던질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시편 60편에서 인용한 것이지만, 시60편 상황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갑자기 동문서답 처럼, 다소 엉뚱한 찬양을, 기도의 말을 꺼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뭔 말을 하려는 것인지.. 척 감이 오지 않습니다.

 

다윗이 7~9절을 말한 것은, "그가 기도 중에 받은 감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예언"이라고 봐도 됩니다.

'하나님이 그의 성소에서 말씀하시되'  :7 .. 이것은 다윗이 예언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즉 정황상, 다윗은 지금 아주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아마 아둘람 굴에 갇혀 있는데

하나님이 장래의 비전을 그에게 보여주시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 예언의 내용은:

-국내적으로는, 세겜 숙곳 길르앗 에브라임 므낫세 유다 등지를 자기에게 주실 것이고,

-국외적으로는, 모압 에돔 블레셋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10~11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할꼬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상황이었어요.

'하나님 혹시 나를 버리신 것 아닙니까, 저를 돌보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군대와 함께 하지 않으십니까?'

 

왜 그런가 하면, 다윗이 기도하고 찬미하는 중에는

뭐가 다 이루어질 것 같고, 

국내의 지역들도 다 장악하게 될 것 같고

외국의 나라들까지 다 다스리게 될 것 같은데..

기도를 마치고, 현실을 보니까... 여전히 아둘람 동굴이요,

당장은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게 없습니다.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할꼬?'

 

그러니 현실은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신 것 같지요.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지금 동굴 속의 현실은, 다윗의 삶이 가라앉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힘들어서

새벽에 그저 엎치락뒤치락하고, 희망이 잠들고,

절망에 빠졌고, 찬양할 마음은 하나도 없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화나고 근심하고.. 이런 상황인데,

 

느닷없이 다윗이 '내가 마음을 정했어 (결심했어), 내가 새벽을 깨울 거야!

그리고 비파와 수금을 깨울 거야!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할 거야!'

라고 자기 삶의 태도를 바꾸고, 결심한 것입니다.

 

 

◑적용

 

작년 4월 달에 제 (김동호 목사)가 암을 발견하고, 또 항암 하면서 많이 힘들고 그랬을 때

제가 다시 벌떡 일어날 수 있었던 게

<날마다 기막힌 새벽> 즉 유튜브로 매일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새벽시간 때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은혜로 저는 암투병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암에 걸려서 그렇게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고, 늪에 빠진 것처럼 빠져들 때,

이렇게 기분이 가라앉아서 지내지만 말고,

'새벽을 깨워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암에 대한 불안과 삶의 무거움에 짓눌리기 전에

‘내가 은혜에 짓눌려야 되겠구나. 그래서 그것을 이겨내야 되겠구나..’

그래서 생각한 게 <날마다 기막힌 새벽>시간인데,

즉 제가 '새벽을 깨운' 것입니다.

 

그리고 또 시작한 게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찬송가 부르는 것!

그런데 제게 있어서, 설교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찬송하는 것이었어요.

 

사실 찬송은 아직도 조금은 힘들어요.

숨은 가쁘고 새벽에 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죠.

 

그런데 제가 찬양해야 살 것 같더라고요.

찬양은 참 큰 힘이 있어요.

 

결국 제가 지나고 보니까 '내가 다윗처럼 해서 살았구나!'

내가 새벽을 깨워서 말씀 선포하고, 그 은혜 받은 말씀으로 기도하고,

비파와 수금을 깨우고, 즉 새벽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래서 제가 살아났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지금 저는 항암을 끝내고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제 삶을 보니까,

이제 제 인생이 등산으로 치면, 저는 지금 하산 중이거든요.

 

제가 암은 잘 관리하고 있는데, 제게 30년 넘은 지병인 당뇨도 있지요.

갑상선도 아슬아슬 하지요. 늘 지켜보는 중이에요.

 

자꾸 눈도 흐려지고.. 뭐 이런 건강 문제들이 생기니까 기분이 우울해 지더라고요.

제 삶이 자꾸 자꾸 가라앉더라구요. 그게 노년의 삶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앞으로 점점 더 하겠죠.

 

이렇게 지병이나 노화로 인해 우울한 삶을 살기 쉬운 노년들에게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메시지를 주십니다.

다윗처럼 마음을 정하라는 것입니다. 결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도 마음을 정했습니다. (결심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새벽을 깨우겠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비파와 수금을 벽에다 걸어놓지 않겠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송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고

믿음으로 장차 받을 승리와 영광을 기대하며,

 

오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오늘 하나님께 새벽을 깨우고

그래서 암과 우울한 삶에 지배당하지 않고, 포로 당하지 않고

그것을 이겨내며 승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 하는 결심을 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삶이 녹록지 않지요? 삶은 참 무거워요.

철 없는 아이 때는 뭘 모르니까 까불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이리 뛰기도하고, 저리 뛰기도 하지만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이게 우리 삶이잖아요!

 

근데 무슨 노래가 나오겠습니까?

뭐가 좋아서 찬송이 나오겠습니까?

 

몸이 이곳 저곳 고장 나고,

삶에 이것 저것 어려운 일이 생기고

죽음이 시시각각 찾아오고 있는데,

새벽에 잠도 안 오고 (우울하고 자포자기해서) 몸을 뒤척이지만 않겠습니까?

 

그럴 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새벽을 깨우고, 믿음을 깨우고, 찬송을 깨워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저도 살고, 여러분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본문에서 이렇게 얘기해요.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송하겠습니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1~2

 

이게 어제는 다윗의 고백이었고,

오늘은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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