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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현대 신학 바른이해

by 【고동엽】 2009.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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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신학 바른이해       
 
  20세기가 실제로는 1901년부터 시작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세계 제 2차 대전이 발발했던 1914년 부터 20세기가 시작된다고 하며, 신학적으로는 Karl Barth의 로마서 주석이 나오던 1918년 혹은 1919년 부터 20세기라고 한다.

또 미국에서의 20세기 시작은, 소위 대공황이 시작되어 이 땅에 낙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환상을 깨고서 자기 자각에로 되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1929년을 20세기의 시작이라 한다.

19세기는 과학의 발달로 구라파의 산업혁명이 거의 완결된 때였다. 그후 많은 신무기들을 생산하여 많은 식민지를 정복하므로 구라파인들의 시야는 더욱 넓어지며 그들의 통치영역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사상적으로도 무한한 진보의 가능성을 믿는 학설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특별히 1959년경에 나온 다윈의 진화론의 ‘종의 기원’이 서양 사람들에게는 아주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후 서구인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영역도 넓어지고 자연을 지배하는 영역과 세력도 말할 수 없이 확장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19세기 사람들은 무한한 진보와 발전의 가능성을 믿었고 이성을 지도자로 해서 나아가는 한은 모든것이 분명하게 다 실현될 줄로 믿었다.
 
그뿐 아니라 19세기는 1884년, 그러니까 19세기 말엽에 우리나라가 복음을 받을정도로 기독교가 선교에 있어서 크게 성공하여 전 세계적으로 확장한 해로써, 아시와와 같은 미개지역에 그리고 아프리카, 저 산호반도들에 까지 선교가 확장되었던 선교의 세기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20세기는 선교가 상당히 후퇴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서구가 탈 기독교한 상황이 되고 말았지만 19세기에는 서구가 정말 복음의 전파에 열을 가하여 제세계적으로 복음이 확장되자 이들은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온 인류를 포용할 수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또 자기들이 사는 그 사리에도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의 사랑의 원리가 상당히 확장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세계 제 1차 전쟁이 나기전 19세기말 1899년에 Adolf von Harnack은 베를린 전체 學部(신학부만 아니라)를 모아놓고 기독교의 본질을 강의했는데 그때 제일 중요한 주제는 기독교 종교개혁 이후에 300년을 사는동안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인)가 사랑을 실천해 오므로 아직은 만족할 수 없지만 이와 같은 추세로 나아가면 우리의 모든 생활영역이 사랑의 정신으로 완전히 변화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것은 서구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구라파가 그럴 때 미국에서 같은 경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소위 미국의 사회복음주의를 부르짖던 라우센부쉬(Walter Rauschenbush)도 지금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이 온 미국의 생활영역을 침투했는데 정치와 경제영역만 기독교의 사랑이 정신으로 이루면 이 땅이 완전히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미국이 기독교정신에 의해서 점점 선해지고 잘 되어가는 것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이 라우센부시의 주장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뉴욕 유니온 신학교 교수였던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에 의해서 깨지기 시작했다. 니이버는 사회복음주의가 기독교정신을 가지고 우리의 손으로 좀 더 나은 유토피아에 가까운 사회, 즉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을 깨트렸다. 인간은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만 사회적으로 단체에 들어가서는 윤리적인 표준으로 일하지 못하고 단체의 유익을 위하여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일하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므로 인간의 이상세계의 건설은 불가능하다고 라우센부시와 미국인의 생각을 정면으로 깨버렸다.

이와 같이 19세기의 사상들은 20세기에 와서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기독교 정신에 의해서, 그리고 자연과학의 활용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사람의 힘의 완력으로 많은 통치영역들을 확대하자 식민지역에서 대량의 쌍 물자들이 구라파와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그러므로 서구인들은 자기의 이상으로 또는 기독교의 힘에 의해서 그러한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하여 진보하고 발전하면 이런 자연과학적인 합리적인 공식과 기독교이 사랑의 정신으로 인간들이 꿈꾸던 이상세계, 즉 유토피아 또는 사랑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1914년 세계 제 1차 대전으로 인해서 자기들이 손으로 건축한 그 찬란한 서구의 문명을 자기들의 손으로 허물어 버린 것이다.

특히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20세기 사상에 유명한 공헌을 한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 때 군목으로 일하면서 시체들 속에서 잠을 잤다. 그것이 그가 헤겔 철학에 굳게 매였던 데서 실존철학으로 돌아선 계기가 되었다.
 
틸리히는 이 경험으로 서구 사람들을 지배하던 유토피아적인 이상주의와 그들이 공약한 새로운 세계가 크게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있던 그런 의식구조들은 완전히 허물어지고 새로운 지각에로 되돌아 왔다. 그는 이 때의 경험으로 두 세계가 교차하는 그런 교차라고 제 1차 세계대전을 설명하였다.


그러니까 헤겔은 그의 전 철학사에서 모든 인류 역사와 자연의 전체 진보과정을 소위 이념 혹은 절대이성, 또는 세계정신이라고 하는 그와 같은 로고스(Logos)의 작용이 자기를 현시하면서 저 낮은 단계에서 높은 사상적인 단계에로 올라가다가 헤겔과 같은 큰 철학자에 의해서 진보 발전해 가면서 완성되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헤겔의 영향에서도 항상 正,反,合에 의해서 새로운 단계로 밑의 것을 지향하면서도 正과 反이 변증법적으로 투쟁하고 충돌할 때에 그 양쪽을 지향해 가면서 그 좋은점들을 포용하여 제 3에 가면서 운동하고 운동해서 항상 변증법적인 발전과 진보를 거쳐서 더 나은 세계로 혹은 자기 자신에로 충분히 이르러 온다. 그리고 혹은 헤겔의 말대로 이데아(Idea) 혹은 절대이데아가 점점 이런 완전에 이르러가는 과정 즉, 그런 완전의식, 혹은 절대의식의 단계가 소위 그들이 말하는 神개념이다.
 
그러면 그 神이 자기자신(혹은 말을 바꾸어 절대정신)으로 되돌아 가느냐? 그것은 철학자의 의식이다. 철학자의 의식에서 자연과학적인 측정에서 벗어나서 모든 사물의 본질을 다루고 사고하고 깨닫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자연과학적인 발전이 많아지니까 다르지만, 철학은 책상을 만든 사람이 책상 길이를 정확하게 재는 그런 지식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과학이 어떤 지식에 대해서 다 확실하게 옳다해도 철학은 그것이 정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권리, 즉 이성에 의해서 반성되고 사고되어 완전하고 분명하고 확실한 보편타당한(어떤 면에서 “보편타당”이란 말이 맞는 말은 아니지만) 지식인가를 따진다.
 
그렇게 완전히 반성되고 개발되어 그 안에 자기가 지나온 모든 과거를 다 포용하면서 완전할 수 있는 그런 보편타당한 지식, 그런 의식을 하는 것이 철학이다. 그러니까 모든 학문은 그 대상에 대해서만 맹목적으로 한다.

헤겔은 철학자의 완전한 의식으로 분명하게 사고된 지식, 즉 철학적인 절대 배경인 그 보편개념을 철학자의 의식에 나타난 절대정신의 역활로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19세기까지 그런 철학적사고가 이성으로 포착한 보편타당하고, 영구히 타당한 진리를 포착하고 만들어 낼 수가 있고 계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지식의 무한한 확대 가능성을 생각해 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과학자들은 천체 물리학에서도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더 이상 그 별의 연대를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물질의 기본단위를 따지는 미시세계도 소립자가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상 없는 것이 입증되었고, 그것은 우리가 지어낸 법칙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에 고유한 법칙이 있어서 파장과 소립자가 상반되지만 또 상호 보완하므로 상보성원리 그리고 양자의 법이 세워졌다.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물질의 현상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옳으냐 할 때 고민이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창조 되었으면 물질의 기본단위가 있을 줄 알았는데 물질이 에너지 즉 파동으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지성인들이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의 표현”이라는 그런 사고가 많은 호소력을 갖는 것이다.

그러니까 19세기 혹은 제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거시세계나 미시세계와 같은 이 현상세계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진리까지도 다 이성으로 탐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큰 벽에 부딛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본질의 정의는, 인간은 본래 합리적인 존재여서 합리성이 인간 본질이라 하면서 인간이 두 다리를 가지는 것은 우연적인 것이지만 이성은 합리적인 것으로 그 지성적인 것이 본질이라고 한다.
 
이 사고가 서구 2천년사의 계속된 지배적 사상이다. 그래서 이성을 활용하므로 인간에게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다 해결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니까 18세기는 이성이 종교를 생산해 내는 해였다.
 
그런데 그렇게 이성으로 모든 만능을 이루어낼 것으로 생각했는데 제 1차 세계대전을 만나서 다른 외부의 세력이 아닌 인간 자신의 손으로 자기들이 세운 문명을 다 부숴버린 것이다. 이것은 서구 지성인들에게 참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18세기에도 낭만주의가 한참 팽배하고 있을 때 리스본에 지진이 일어나서 4천 명이 죽었다. 나라 인구도 얼마 안되는데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이때 하나님이 이 세계를 합리적으로 지으셨고 또 다스리면 이런 불합리한 천재지변으로 그 많은 사람이 죽느냐고 반문했다. 그래도 이성에 대한 확신 그 신앙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은 그들에게 의미가 달랐었다.

그렇게 이성을 신뢰하고 확신에 차 있던 서양 지성인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전쟁을 일으켜 제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손으로 세운 문명을 깨트리므로 서구 지성사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그래서 인간의 합리적인 데 대해서, 영원한 진리에 대해서, 진보 발전에 대해서 신뢰를 받았던 그들의 사고가 깨어지게 되었고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불합리적인 존재란 것을 깨닫게 되면서 항상 인간 외부로만 향하던 데서 인간자신의 내부로 돌아와 인간 실존의 연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서 실존주의에 대한 좋은 책들이 나오면서 “인간의 기본이 무엇인가? 인간의 본질은 지성이다. 지성은 실용적인 것이 아니고 진리 자체를 탐구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이야 실용주의 시대여서 모든 것이 실용적으로 응용되는 것만 최고로 좋고 또 그런 지식을 좋아하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문과대학이나 공과대학 보다 물리대에서도 순수물리학이 훨씬 좋은 것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것은 실존주의 영향으로 순수한 지적인 할동으로 세계의 구조를 바로 탐구하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철학하는 사람들이 그 지적인 할동에로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을 했던 것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대표적인 사람인데 그는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불합리한 존재란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렇다면 인간의 능력 또한 무한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유한하고 불합리한 존재는 이 현상계를 넘엇 더 멀리 확대 적용하여 어디든지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 개인이 생을 마치고 죽을 때 무상함을 느끼는 정도를 넘어서 소위 인간의 이성으로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는 그런 확신에서 인간은 불합리하고 유한하며 그 유한이 죽음을 만들어 내므로 실존주의에서는 남의 일처럼 여겼던 죽음을 자기 문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예컨데 옆집에 김아무개가 죽을 때는 별로 심각하지 않으나 중병에 걸려서 정말 죽음이 자기 문제로 다가올 때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절망적이고 좌절이 넘치고 공포에 쌓여서 떨게 되는가? 그러니까 인간이 그토록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불안하고 죽음 앞에서는 죄의식이 있고 불합리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1914년이 20세기을 시작하기 위한 사건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1918년에서 1919년에 20세기가 시작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Karl Barth가 바로 그 전쟁 기간에 그 로마서 강해를 썼던 것이다.
 
Karl Barth는 회상하기를 그렇게 기독교 본질을 강의하면서 사랑의 종교를 외치던 자기의 선생 Adolf von Harnack으로 부터 시작하여 89명 신학자들이 제 1차 세계대전 수행에 가표를 던져 찬동을 했고 서명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서, 죄의 심각성을 그토록 강조하던 종교개혁자 칼빈의 글로 다시 되돌아간 것이다.
 
칼빈이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능을 말하면서 인간이 할 수 없음을 탄식하며 절규하는데, 이것은 인간 본성에 대해서 깊고 예리한 통찰을 한 것이다. 계속해서 칼빈이 말하기를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죄를 필연적으로 짓는다고 했다. 이 말은 우리가 죄를 짓고 싶으면 짓고 안짓고 싶으면 안짓는게 아니며 또 강제로 밀어서 짓게한다는 말이 아니라 타락한 본성이 죄를 필연적으로 짓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우리가 죄를 지으면 죄과에 대한 용서를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또 하나의 메커니즘을 형성해서 제 2의 천성으로 역사하여 더 죄를 잘 짓도록 역사하여 끊을 수 없도록 한다. 우리의 경험을 보더라도 내 힘으로 안 하려고 하면 긴장과 함께 더욱 심하게 강박하여 영의 법으로 혹은 복음의 권세가 아니면 도저히 끊을 수 없도록 세력 행사를 하여 죄를 짓게 한다.

Karl Barth는 이렇게 인간의 죄과를 말하는 종교개혁의 글들과 소위 키에르케골의 변증법, 즉 실존주의 사상에로 되돌아 간다. 그러므로 20세기 실존주의는 Karl Barth에게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하이덱거가 20세기 최대의 형이상학자로 인정을 받지만 Karl Barth 이후에 “존재와 시간”이란 책을 썼던 것이다. 그러니 Karl Barth 이전까지 종교는 저 하나님에 대해서 연구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왜 종교적인가를 연구하여 특히 인간의 종교의식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해명하는 것을 신학의 사명으로 여겼다.

루이스 벌콥 교수는 그의 조직신학 서론에서 “인간은 치료 불가능하니 종교적이다”라고 했고 키스트 막커(Simon J. Kistemaker)도 “인간은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다 종교적이라”고 했는데 이 때 철학도 마찬가지 인간이 갖는 이 종교의식을 정교하게 학적으로 분석하고 해명한 것을 철학자의 영역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슐라이허막허(Friedrich Ernst Daniel Schlieiermacher) 이후의 이후의 내재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하나님께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종교 감정을 대상으로 연구하여 인간으로 끝이 난다.
 
물론 Karl Barth가 완전히 개혁신학으로 돌아왔다고는 할 수 없으나 최소한 이제까지의 신학적 흐름과 판도를 안전히 바꾸는데 유명한 공헌을 한 것이다. 그래서 신학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이제까지 완전히 내적인 종교체험과 종교의식만 계산하던데서 문제를 다시 제시하여 소위 전통적인 종교개혁이 출발한 하나님 말씀에로 되돌아가는 일이 시작되었는데 그런 면에서 Karl Barth가 로마서 강해를 냈던 1919년이 신학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20세기를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 19세기를 이해해야 되겠다. 19세기가 중요한 것은 이때 부터 전폭적으로 내재신학이라는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칸트의 공헌이 결정적으로 크다 하겠다.
 
언제든지 그랬지만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의 사고방식에서는 이성의 능력과 그 범위가 무한대까지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칸트는 순수한 이성 자체만을 연구하여 그 이성의 능력가 권리가 어떠한지를 밝히기 시작했다.


칸트 이전에는 소위 합리론이다 해서 인간의 이성으로 논리적인 사고의 전기, 즉 개념에 의해서 모든 체계를 설명할 수 있고 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밖에 있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합리론에서는 밖에 있는 대상경험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개념이고 이성으로 모든 사물의 체계를 구성하고 그 본성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밖에 있는 경험이라든지 현상세계는 어떤 것이냐?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미 이성이 해놓은 것을 증명해 주는 보완조치 밖에 안되었다. 그러니까 합리론에서는 이성 자체에서 모든 사상 체계와 세계의 구조와 본성이 다 흘러 나온다. 그러니 이들은 인간 이성으로 못할 것이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칸트는 이성 자체를 연구 했으면서도 오히려 이성의 능력과 그 활용 범위에 관해서 축소하는 일을 했다. 이제까지는 이성이 영원의 세계, 무한의 세계까지 학장하고 침투하지 못할 부분이 없었지만 칸트에게서는 그 범위를 현세계의 영역으로 좁히고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경험의 내용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보편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 그리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것, 그리고 이성이 진리가 아니라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사물의 이해가 중요했고 그것이 진리의 표준이고 진리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영원한 진리 같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사물의 경험, 구체적인 내용의 이해가 결정적이고 중요하다. 보편 타당한 진리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대에서 구체적으로 경험된 사실이 진리를 결정학 종교의 진리까지고 경험으로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그것은 영국의 데이빗 흄의 영향이 칸트에게 작용했던 것이다. 이제까지 다 합리론을 생각했고 칸트도 합리론을 믿고 있었으나 흄의 영향을 받고 부터는 이성으로 마음대로 공상해서 체계를 이루어 놓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험의 근본은 감각인데 우리의 구체적인 감각기관을 통해서 구체적인 외계의 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면 칸트에게 있어서 도대체 경험이 어떻게 성립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 경험에 의존하면서 어떻게 학문이 학문으로써 성립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지금 데이비드 흄은 18세기 사람으로, 지식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그런 인상이 연상작용, 즉 습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경험의 결합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완전한 경험, 많은 사람이 다같이 공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경험을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이야 다 파편적인 지식개념 이지만 그러나 학문이 성립하려면 눅수든지 다 공통으로 이해되어지는 보편타당성이 있는 지식이라야 한다. 그래서 칸트는 어떻게 순수학이 성립할 수 있느냐를 생각했다.
 
그럴려면 근본지식의 재료는 단지 이런 외부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그런 인상들 혹은 표상들을 그냥 무질서하게 습간으로 연결하다 보니까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 인과율의 법칙이 그냥 성립한 것이 아니라 이런 감각경험에다 이성이 법칙과 질서를 넣어 주므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감각경험에다 이성이 법과 질서를 넣어 주므로 이 둘이 합치하여서 지식이 성립한다. 그러니 칸트에게 있어서 지식은 단지 경험으로, 경험에서 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고 경험과 함께 시작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 현상내의 경험이 이성 때문에 질서있게 우리 안에 들어 온다.

이전의 합리론에서 처럼 인간이서의 영역은 공간적으로 무한대로 시간적으로 영원한 세계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이성이 스스로 경험까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지식은 이성 자체로 공급한 것과 감각기관을 받아들인 표상 혹은 감각기관에서 들어온 재료 그런 것을 합쳐서 이루어지므로 인간 이성이 알 수 있는 영역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이 경험될 수 있는 세계로 축소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현상세계 혹은 현상계라 한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이니까 이런 말이 실감이 날 것이다. 영일만에 석유가 난다고 믿고 믿음으로 투자를 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으니 이제 석유가 나오는 줄 알고 정말 좋아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했으니 석유가 나와야 할텐데 왠일인지 석유는 나오지 않아서 낭패가 컸다.

그러나 자연과학에서 확실하게 안다고 하는 것은 검증해서 증명이 있어야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 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學”이 체계를 구성해서 학문이 될려면 꼭 뺄 수 없는 중요한 첫째 요건은 주장하는 이론에 대한 확실한 증거, 증명, 즉 신임장이 제시되어야 한다.
 
 어떤 이론이나 가설을 낼 때에 필요 불가결한 것이 증거자료인 것이다. 신학도 마찬가지 학문이기 때문에 누구의 경험적 자료든지 아니면 성경의 증거를 제시하든지 둘 중 하나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경험적인 증거를 대면 자유주의가 되고 신비주의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증거자료로 삼는다. 그러므로 신학도 그냥 되는게 아니라 성경과 교리사적인 증거, 또는 교부들의 증거를 인용해서 한다.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쓸 때에도 쓸데없이 성경을 인용하고 교부들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에는 반드시 증거물, 증명할 재료, 즉 신임장을 제시해야만 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일만에 석유가 있다고 알 수 있는 것은 실제로 탐사를 해서 매장량이 얼마만큼 있는지를 확인해서 증거물을 뽑아 올렸을 때 이런 과학적인 조사를 미리 해서 석유가 얼마만큼 있다는 것을 알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성은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 때에는 분명히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접촉할 수 있는 것 만을 안다고 한다. 그래서 칸트는 감각기관이 접촉하여 경험이 가능한 영역까지만 이성이 알 수 있는 영역이며 그것이 현상계라 한다. 그것이 곧 경험세계, 즉 시간과 공간이 있는 세계, 즉 그것은 물질의 세계 뿐이다.

그래서 자연과학에서는 2천년동안 이런 천태만상의 물질의 기본단위가 무엇인가를 찾아 보았다. 그러나 결국은 찾지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말했듯이 원자를 물질의 최종적인 기본단위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전자와 핵이 있고 핵 속에는 양자, 중성자, 중간자들이 수없이 많은데 결국 물질인 입자로 남는데 아니라 파동과 결로 남는데 파동은 물질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을 에너지와 등치 시켰는데, 물질을 빛의 속도로 가르면 완전히 에너지로 변화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잡히는 것은 없고 신기루가 되어 물질에 현상계의 설명마저도 없는 것이다. 지금 과학이 상당히 발달했으나 다 허무맹랑한 가설의 영역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두뇌사고에 의해 활동할 뿐 영이 보이지 않아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라 한다.
 
그것은 감각기관의 경험이 가능한 물질의 세계, 시간과 공간이 있는 세계, 인과율이 적용되는 세계, 에컨데 불을 때면 연기가 나고 난로가 따뜻하고, 햇빛이 비치기 때문에 창가에 서면 따뜻하고, 오래 공부하고 수면이 부족한 원인 때문에 피곤한 결과가 있고 해서, 항상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원인을 추적할 수 있는 세계에 살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이 사물을 알 수 있을 뿐, 영이나 내세는 경험 불가능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으로 배척해 버린다.

그러면 어떻게 내세를 말하고 영혼을 증명할 것인가? 성경으로 증명 한다는데 성경은 어디서 왔는가? 성경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 계시라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할 길이 있는가? 종교사학적으로 그 출처를 파 헤쳐봐도 그런 증거가 없는데 영감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신학계에 일기 시작했다.
 
불투만 같은 사람은 궁켈의 제자로서 양식사학파를 완성한 사람인데, 이런 사고 때문에 그의 복음사라고 하는 것이 순수한 계시의 전개가 아니라 초대교회가 예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것이 복음서로 나타났을 뿐, 복음서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예수 그리스도의 산물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산물이라고 하므로 더이상 하나님 말씀으로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칸트 이후 슐라이어막허에 의하면 종교는 증명이 불가능하므로 지식의 일로가 아니라 물질의 세계를 만지면 알 수 있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이고 神의 세계는 그 느낌으로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종교를 지식의 영역에서 분리하여 감정의 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백묵을 안다고 할 때, 백묵인지 아닌지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안다. 그렇지만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그것은 느낌으로 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슐라이어막허는 종교란, 절대의존의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슐라이어막허의 아버지가 개혁교회 목사여서 그 영향을 받았던지, 그가 개혁교회 냄새를 풍겨 절대의존이란 말을 쓰는데 그냥 비판없이 그 말이 맞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만일에 그대로 믿는다면 인격적인 절대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의존의 감정, 즉 느낌이 하나님이 되는 귀결에 이르고 만다. 흔히 우리는 믿음의 세계만 이야기하면 되는데, 그 선을 넘어서 다른 학문과 연결을 시키면 말문이 막히는데 변증학 공부를 다시 더 해야할 필요가 많이 있다.

이렇게 슐라이어막허가 종교를 감정의 일로 정의하는 배후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서 있다. 그래서 슐라이어막허를 칸트 이후의 신학자라고 한다. 또 칸트에게는 흄이 서 있다.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라는 말을 했는데 예를 들면 집을 짓다가 그만둔 것을 보면 거기에 시공자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집을 지을 때 시공자가 짓는 것을 여러번 반복적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공되지 않은 집을 볼 때도 배후에 시공자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확대해 보면 이와 같은 큰 세계는 하나 뿐이어서 여러 집을 건축한 것을 경험하듯 그런 식으로 여러 세계가 건축된 것을 아무도 경험한 일은 없다.
 
그렇다면 세계는 하나 뿐인데 이 한번의 경험을 가지고 이와 같은 세계의 건축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낼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흄의 이야기인데 그러니까 세계에 대해서나 하나님에 관한 것은 알 길이 없고 감각기관으로 증명되거나 포착되지 않기 때문에 지식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칸트는 그런 감각할 수 없는 세계, 드러나지 않은 세계를 예지계라 하고 드러난 세계를 현상계라 한다. 이 현상계는 볼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이런 도식을 전제하는 자연과학에서도 안다는 것은 우리가 달에 대해서 확실한 것은 몰라도 검증이 가능하고 그래서 달에까지 가서 보고 알듯이 검증이 가능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검증이 가능한 영역은 감각기관으로 접촉이 가능한 현상세계 뿐이다.

그러나 영혼의 존재가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 para psychology 혹은 이상심리학인데 여기서는 투시나 원시 같은 서로 감정을 통하는 것을 따지는 學인데 이런 것들은 감각기관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닌가?
 
그러나 para psychology에서는 분명히 여기 앉아서 볼 수 있는 거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보며, 내가 한번도 본적이나 이야기해 본 일이나 그 사람의 글을 읽어본 일이 없는데 저쪽 사람의 생각과 통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소위 물질로 표현된 것만을 제일로 하는 공산세계의 대학에서 이 이상심리가 제일 많이 연구되고 있다니 괴이한 일이다. 이들까지도 그 이론이 공리공론이 안되기 위해서 자기 생각을 혹은 추측을 사실로 하여 그 생각을 증거로 한다.

나를 따르면 정통이 되고 따르지 않으면 이단시 해 버리는 이런 부류의 사고방식은 학문의 세계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분명히 자기의 말을 할 때는 거기에 상응한 증거물을 제시해야만 그 말의 타당성이 성립한다.
 
그러나 이들처럼 감각기관의 영역만으로 지식의 영역을 한정한다면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은 알 길이 없게 된다. 그러니 하나님에 대해서, 신에 대해서 혹 영혼이나 내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 수가 없게 되어버리는 귀결에 이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으니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이 깨달아져서 안다고 믿는다. 결국 기독교의 진리를 가지고 기독교를 판단하는 일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주관적인 이야기와는 다른데,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진리를 받게 하시고 혹은 믿게 하셔서 하나님을 믿고 아는 사람으로 변화 시키므로 아는 것이다.

종교에서 제일 기본이 되는 존재가 영혼의 존재 또는 내세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인데, 저들의 도식에 의하면 우리는 전혀 그런 것을 알 수 없고 모른다는 결론이다.
 
영혼을 본 사람이 있는가? 어떤 시골 할머니 한분이 혼 나가는 불을 보았다는데 왜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가? 또 목사님 같은 신령한 세계를 믿고 전파하는 사람은 왜 보지 못하는가? 어느것이 진짜 바른 경험인가? 그런 것은 보편타당성이 없으므로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하나님은 물체를 알듯이 알 수 있는 분이 아닌데,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아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실적으로 아는데 아니라 신학체계에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힐난한다.
 
어느 정도는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사실은 우리가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서 우리의 바른 신학인 개혁신학과 신앙을 정립할 필요를 더욱 느끼면서 반성을 촉구한다.

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듯 그렇게 부름을 받았는가? 혹시 그렇게 음성이 들렸다 해도 목소리가 내 속에서 오는 소리인지 하나님에게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어떻게 구별하며, 또 검증할 수 있겠는가? 증거를 요구할 때 제시할 수 있겠는가? 여의도에 63층 빌딩이 있다고 했을 때는 가서 확인하여 검증이 가능하고 미국에 100층이 넘는 빌딩이 있다면 한국에서 그와 비슷한 계속적인 같은 경험을 하니까 내가 실제로 안봐도 수납할 수 있지 않은가? 또 그것이 어느 때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어떻게 수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줄 안다면 무슨 근거로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흄의 도식을 받은 칸트는 神은 현상계에 속하지 않고 예지계에 속한다고 인간의 감각영역 밖으로 내어쫓고 지식영역을 현상계로 국한하면서 만약에 하나님이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접촉이 가능하고 눈으로 보고 검증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벌써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며, 하나님이기를 그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벌써 현상계에 포함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경험 되었다면 그것은 내 감정이고 그런 감정은 내 속에 일어난 내재적인 사건일 뿐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 영역 밖에서 왔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內世界的인 주관적인 이야기로는 하나님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점자를 이용해서 적고 보지는 못하지만 손으로 만지고 느껴서 감각하여 시간과 거리, 그리고 길을 알고 지식을 포착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현상계 밖의 예지계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본다. 그러나 칸트는 믿음으로 보지 않고 우리가 알 수 있는 세계는 감각세계, 현상계 뿐이고 신은 예지계에 속하여 우리의 경험이나 과학에 의해서 검증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우리가 전통적으로 하나님은 존재하고 이와 같은 성품을 가지신 무한한 영적 인격적 하나님으로 알 수 없으니 하나님에 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제껴둔다.
 
그래도 신학은 하나님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니까 하나님을 말해야 할텐데, 알 수 없으니 말할 수 없다 하여 지식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것이 칸트가 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내린 결론이다. 이 결론에 근거하여 슐라이어막허는 그래도 기독교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종교를 감정의 일로 말하여 버리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슐라이어막허는 칸트의 이론에서 신학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기 초월해 계시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서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를 감정 느낌의 일로 보아 내재신학을 시작한다.

우리 중에도 이와 비슷한 성향을 보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나는가? 어떤 느낌에서 만나는가? 중생의 체험이라고 한다. 예수 믿고 정말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평안한 마음이 생기면 하나님이 와 계시는 것 같이 느끼지 않는가? 그러니까 슐라이어막허의 질문은 그것은 감정의 일이니까 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미국 그랜드캐년에 가면 정말 아름다운 그 경치가 장관이다. 그런데 남편이 그 낭떠러지를 보다가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하자. 그때 그 여자에게서 감탄이 나오겠는가? 남편이 죽은 그 여인의 감정은 결코 그랜드캐년의 그 경치가 좋을리 없다.
 
그 여자에게는 결코 좋을리 없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여인의 감정이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린다. 여인의 감정이 아름답다 하면 아름답고 아름답지 못하다 하면 그것은 아름답지 못한 것이 되어 버린다. 많은 경우 우리의 경우가 이와 같을 때가 많다. 결국 우리도 내재주의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말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슐라이어막허가 내재신학을 인간의 감정에서 출발한 것은 그가 진센돌프에게서 나온 경건주의 운동에 가담하여 모라비안파와 접촉을 했고 소위 느낌을 강조하는 낭만주의 시인들, 문인들, 그리고 철학자들과 많이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종교는 느낌, 즉 감정의 일이고 주관적인 체험의 일인 것이다.

루터교의 경우도 루터의 중생체험에서 출발하므로 루터교도 중생체험을 많이 강조한다. 우리는 중생의 체험이 있는가? 아니면 교회를 다니다 보니 기도도 많이 연습하고 성경도 많이 읽어서 교회의 규칙생활에 자연히 훈련되어 젖어들어서 신학교도 오게 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 느낌, 감정으로 그것을 경험한다.
 
하나님이 내게 와 계신 것 같이 느껴지면, 유대인이 온 세계가 자기들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더 나아가면 율법 지지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믿듯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렇게 역사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니까 세계가 다 나를 위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철저히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느낀다.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 성경이 뭐라고 해도 믿으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중생체험에서 내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려 한다. 그래서 중생을 많이 강조한다.
 
우리가 중생체험을 가지면 하나님의 신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 오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성령님이 내게 오시사 나를 새사람 만드시고 이 기쁨과 이 평안의 충만한 감정을 내게 허락하셨다고 좋아한다. 그러니 우리가 중생체험에서 하나님 만나기를 추구하면 종교감정 혹은 체험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내재신학으로 들어가는 문턱에 선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신학에서는 초월해 계시는, 객관적으로 계시는 하나님으로 부터 신학을 출발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내재신학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중생의 체험에서 접촉점을 찾아 기독교로 들어 온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출발점, 즉 출처의 계시가 중생체험이 아닌가? 하나님이 나를 성령으로 변화시키지 않는가? 더 구체적으로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오셔서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새사람 만들고, 나로 하여금 기쁨이 있게 하고, 평안이 넘치게 하고, 그리고 모든 세계가 나를 위해 움직이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자녀로 삼으셨으니, 이런 은혜와 감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중생의 체험의 자리, 즉 감정의 자리, 느낌의 자리가 아니냐고 악수를 청하면서 교묘히 들어온다. 이것은 개혁신학이 아니고는 막아낼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기독교가 분별 없이 내재신학을 두 팔을 벌리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18세기에 들어와서는 객관적으로 계신 하나님에게서 시작하던 전통적인 신학의 전제를 버리고 인간의 감정에서, 인간의 종교성에서 신학을 출발하여 종교체험을 강조하면서 그 일환으로 중생체험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을 어디서 만나는가? 어쩌다 영을 본 사람이 있어서 좋지만, 어떤 사람은 보고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한다. 또 그 경험의 그본이 다 다르다. 그래서 어느 경험이 진짜 표준되는 경험인지 다 달라서 표준을 정할 수 없다.
 
그것이 종교적인 경험의 문제점이다. 그러니 종교적인 경험을 표준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신앙을 다시 검토해 보고 생각해 보자. 어디서 예수를 만나는가? 우리의 대답은 중생의 체험에서 종교적인 경험에서 만난다는 것이 한결같은 대답일 것이다.
 
산에 올라가서 만나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를 타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제임스 오웰처럼 인공위성을 타고 달나라 갈 때 실제로 만나는 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느낀 것이지 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을 지식의 대상으로 알 수 있는데서 시작할 수 없다는 현대신학에 동의하여 종교적 감정에서 중생의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려 하고 구체적 체험을 중요시 한다. 그러니 사변적인 데서 경험적이 된 것이다.

우리 한국도 이처럼 기도원과 성령체험의 부흥회가 난무하고 오순절 운동이 적극적으로 지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개혁신학과 신앙은 감정을 부인하고 목석이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중생하면 영의 사람의 감정으로 순화되어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이룬다. 특히 오순절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체험해 보았느냐면서 아무리 그것이 영원한 보편의 진리라도 개인 경험으로 짓밟아 버린다. 아예 진리를 분별할 분별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신학의 임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종교적인 감정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기술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모든 신학의 출발점을 하나님에게서 세계 안으로 가져오고, 특히 인간의 경험 안으로 혹은 느낌으로 끌고 와서 이제는 출발점이 인간의 감정이고 최종 참조점도 내 종교적 체험이 되므로 인간에서 출발하여 인간에게 되돌아 간다.
 
이것이 그의 내재신학이다. 이 내재신학에서는 “우리는 절대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들이 말한 종교는 절대자가 있는 것처럼 그냥 매어 달린다. 절대자가 있어서 거기에 내가 종속되기를 원할 뿐이다. 절대자는 알 길이 없으므로 있는 것처럼 자신을 내어 맡기는 절대의존의 감정이 종교라 한다.
 
그러므로 근세신학은 Schleiermacher의 내재신학 이다. 그래서 Schleiermacher를 내재신학의 아버지, 혹은 근세신학의 아버지라고 하여 19세기에 제일 중요한 신학자로 높인다. 그것은 전통적인 신학을 완전히 180도 회전시켰기 때문이다.
 
그가 쓰는 용어가 19세기 이후 신학 용어와 같기 때문에 근본진리가 같은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가 전통적인 용어를 사용해도 그 내용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그러니까 전통적으로는 객관적으로 창조주로써 절대적 존재로 계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계시에서 모든 것을 끌어내므로 전통적인 신학을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한 것이다. 소위 “글라벤스레벨”, “복음주의 신학론”이란 책은 완전히 종교적인 체험으로 종교의식에서 그의 모든 신학을 재구성하는 대표적인 책이다.

내재신학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락 할 때 그 의미는 전통적인 견해와 전혀 다르다. 이미 말했듯이 예지계에 속하는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은 알 수 없으므로 우리의 지식의 대상이 못되고 또 형상계에 속하면 그는 神일 수가 없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존재론적인 면에서 초자연적으로 삼위일체로 선재해 계신 하나님의 아들, 즉 삼위일체 제 2위격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우리는 신에 대한 생각이 약하고 또 변하며 때때로 바꾸지만 예수에게는 神意識, 즉 종교적인 체험, 또 그 의식의 도가 무한하다는 그런 면에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가 우리의 구주라고 할 대도 그가 선재해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써 도성인신 하시어 십자가에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큰 역사를 하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구세주라기 보다는 그가 갖는 그 무한한 신의식이 그를 믿을 때 우리에게 전달해 온다는 의미로써 구주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의 기독론이며 구원론에 있어서도 실제로 죄에서 구원받아 천국가는 구원은 없다. 물론 18세기가 슐라이어막허 같은 자가 나오도록 준비를 했지만 19세기 부터 이렇게 하늘과 땅의 차이를 내는 큰 전기를 갖는다. 그러므로 내재신학에서 “믿는다” 할 때 객관적 계시가 있고 계시자가 있기 때문에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적인 의식을 믿음이라고 할 뿐이다.
 
그가 쓴 “종교에 대하여”(Uber die Religion)이란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현상계, 즉 유한세계는 무엇인가? 무한자 혹은 절대자가 자기를 현시하는 방식 혹은 매개체이다.” 이것은 그가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아서 나온 이야기인데 스피노자는 이 현상세계를 그 유일한 실체, 혹은 절대자를 나타내는 형태 혹은 양태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현상세계에 우리와 전혀 다른 질적인 것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것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비에 속한다. 그 신비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는 없지만 구체적으로 나타날 때는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예컨데 거대한 산 아래 섰을 때 쏟아지는 폭포 그 장관을 볼 때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데 이런 신비한 현상이 종교를 느끼게 하며 종교를 생산해 낸다고 한다. 그러니 Schleiermacher에게 감정은 배제할 수 없는 필수적인 요인이다. 또 그는 종교가 지식의 영역이며 과학이 되며 종교일 수 없으며 감정이기 때문에 배척할 수 없다고 말한다.
 
Schleiermacher에게는 모든 종교현상은 종교의식일 뿐이며 모든 사건이 계시와 종교적인 현상이 이 세계 내의 사건일 뿐, 초자연적으로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主語도 述語도 모두 다 인간일 뿐이다.
 
 여기서 예수는 저 초자연의 세계에서 온 존재가 아니라 이 현상계에 속한 존재로써 다만 무한한 종교감정으로 신 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분명히 해줄 뿐 아니라 또 다른 이에게 神意識을 갖게 하는 훌륭한 종교교사요, 탁월한 윤리교사일 뿐 아니라 완전한 인간 완성이요, 종교 천재라고 하면서도 그의 초자연성을 부인한다.

사실 Schleiermacher는 예수의 피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포도주 대신 물을 마시며 성찬식을 한 사람으로 예수의 보혈의 공효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내재신학자에게는 교회도 예수에게 무한히 있는 신의식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모인 단체일 뿐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된다.
 
이 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성경이 제시하는 가장 구체적인 예수의 인간성을 어떻게 귀결 지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가장 신뢰할 만한 정확한 예수상을 구현하는 일이 19세기의 중요한 신학의 과제였다.
 
그러나 19세기 말경 부터 20세기 초까지 진행되었던 역사적 예수 탐구는 학적으로 가장 잘못된 비기독교 사상으로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변증신학자 불투만이 나와서 역사적 예수 탐구를 무너뜨리므로 그 제자들에 의해서 새 역사적 예수 탐구가 시도 되었다.
 
이렇듯 역사적 에수 탐구의 덕으로 예수는 탁월한 윤리의 교사, 종교의 천재가 되고 모든 것은 인간으로 시작해서 인간으로 끝나는 데에로 더욱 나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헤겔 이후 포이에르바하(Ludwig Andreas Feuerbach)가 신학은 신학이 아니라 인간학이라 했고 또 사람이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에 의해 창조 되었다고 했다. 헤겔의 종교철학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자연풍경을 그린 그림은 사실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화 혹은 추상화를 그렸을 경우는 대행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화가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 자기 안에 있는 생각 혹은 의식 밖에 있는 나무와 풀들과 같은 자연에 투영해 놓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저 그림을 보면 화가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듯이 저 밖의 사물들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생각으로 저 사물들을 만드셨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물 자체는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나무면 나무로 인식해 주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다.
 
그러니 자연에서 인간 의식으로 되돌아 온다면 그것은 Idea로 혹은 사상으로 안다. 또한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수준으로 오면 하나님을 경배하고 생각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경배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 자기 자신을 많이 알리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종교의 수준은 아직 종교의 본질을 직접 직관하는 단계는 못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많이 나타내기 위해서 여러 다른 상징들과 상징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른 미술이나 예술의 차원보다 하나님에 대한 것이 직접적으로 가장 많은 데가 종교이지만 신학도 상징적인 지식을 많이 써야 하니까 본질적인 지식 자체를 다루지 못한다.
 
철학은 하나님을 직접 대상 하면서도 상징적인 용어는 쓰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그 본질 자체대로 의식하는 것이 어딘가? 철학자의 인지 즉 철학자의 마음의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철학자의 마음의 의식에 자기를 가장 많이 알리셨기 때문에 철학자의 의식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자기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헤겔은 말한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자신을 계시한 것이 되고 그 말을 바꾸면 결국 인간의 의식이 하나님을 만들어 내는데 귀착한다. 그러니까 헤겔 이후 포이에르바하가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 의해 인간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이라고 하면서 인간을 인간이 논하므로 신학은 결국 인간론, 혹은 인간학이라고 했다.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기에 신학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문제가 많은가?”라고 질문하면서 최근에 폴 틸리히는 기독교가 너무 작아서 제한이 너무 많으므로 관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 있다(Panen theism). 그런데 결국 현대 기독교가 많은 제약을 만들어서 전능의 하나님을 너무 축소시켰다고 했다. 결국 기독교의 진리에서 벗어나 인간에게 필요한 하나님을 만든 것이다. 여기에 남는 것은 인간 뿐이다.

그런데 19세기 말엽 부터 20세기 초에 들어오면서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각도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예수의 선포에 종말론적 긴장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18세기에서 19세기 까지의 예수는 정말 친숙하고 훌륭한 종교의 교사요, 탁월한 윤리 교사이며 인간의 완성자로써 참으로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있는 친근한 존재였는데 이제 다시 예수의 선포와 행적을 살펴보면 우리와 친근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접근하거나 하나가 될 수 없는 생소함이 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일상적인 종교나 증거를 필요로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선포에는 우리가 이해 못할 생소한 종말론적 선포, 아주 급박한 하나님의 나라가 곧 도래한다는 긴박성이 그에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예수의 선포는 우리가 마음대로 조정하거나 어거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을 결코 말하지 않고 심판으로 오시는 하나님,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시는 그런 하나님인 것을 선포했다. 그러므로 그런 예수의 삶 속에서 발견한 것은 예수는 우리가 그렇게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Johanes Weiss는 “Die Pkdigt Jesu”, 즉 “예수의 선포”라는 책에서 최초로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바로 그 뒤를 이은 사람이 Albet Schweitzer 이다.

슈바이쳐에 의하면 예수가 자기 일생에 하나님께서 자기 나라를 가지고 오시는 걸로 믿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고 선포했다.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 자기의 인격에서 자기를 심판하시고 자기의 나라를 세우실 것으로 믿고 기대했는데 그것이 실지로 이루어지지 않자 예수는 자기가 비극적인 죽음을 죽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강제로 끌어 들이려 했다.
 
그런데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 종말론적 예수의 선포의 국면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은 심판주로 오시는 분으로 말을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친숙한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Rudolf Otto가 “Des Heilige”, 즉 “거룩”이란 책에서 “종교라고 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 마음대로 내것으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그것은 억압하는 존재가 아니라 Mysterium, 즉 신비이다.
 
그래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다만 신은 우리와 동질선상에 있는 존재가 아니어서 종교의 대상으로 나타날 때는 두렵고 떨리는 존재로 혹은 두렵고 떨림으로 나타난다.
 
모세의 경우도 호렙산에서 불이 나타날 때 두려워 했고 그래서 신을 벗었다. 그런 것은 무엇이라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한다. 또 베드로도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 두렵고 떨면서 나를 떠나라고 했다.
 
그러니 그것은 인력으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런 영역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Otto가 하나님을 전통적으로 친숙한 존재에서 우리와 동일선상에 들어올 수 없는 존재, 우리하고는 별개라고 하는 전적 타자라는 개념을 준비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자 이고 또 심판자로 오실, 전적으로 우리와는 다른 존재란 것이다.

슈바이쳐는 이 타자의 관념, 즉 미래 종말에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을 변증신학으로 순간, 현재 심판하시는 결단으로 바꿨을 뿐이다. 그러니 슈바이쳐를 비롯한 현대 신학자들의 종말도식은 미래적 종말 도식이 아니라 매 순간 순간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심판으로, 변증법적인 도식으로 바뀌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에서 내려와 심판하는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와 동일선상에 놓인 것이 아니라 벗할 수 없는 전적인 타자로 오신다.

이렇게 헤겔의 영향으로 다윈의 진화론의 힘을 입어 무한한 진보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으로 잘되어 나가는 것으로 철저히 믿고 있던 서구인들에게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자기들의 손으로 건설한 문명을 자기들의 손으로 파괴한 이것을 도저히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이제까지 전쟁중 최악의 전쟁으로 가장 많이 사람을 내세우던 자들이 가장 많은 사람을 죽였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데 큰 충격과 회의가 일어나면서 인간은 죽음 앞에서는 유한한 존재로 우리의 이성도 죽으면 끝나는 불합리한 존재인 것을 깨닫게 되었고 무엇이든지 가능하다고 믿언 이성으로 포착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제 1차 세계대전이 진행중인 그 무렵 Karl Barth가 모든 신학공부를 마치고 처음으로 제네바의 옛날 칼빈의 교회에 와서 부목사로 일을 했다. 그리고는 스위스 Safenwil에 가서 목회를 했다.
 
그는 선생 Adolf von Harnack에게 배운데로 비평적 방법으로 종교사적으로 열심히 연구하여 설교를 했었다. 그런데 교인들이 자기 설교는 들으러 오지 않고 주말이면 다 산으로 가고 시골이라서 어린 아이들만 온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러 와야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의 설교를 외면한 것을 보고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목사는 커텐을 열어놓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고민을 했다.
 
그래도 지각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목회하러 왔는데 답답함과 괴로움이 참으로 많았던 것이다. 그때 그는 자기 선생에게 배운 자유주의 신학 가지고는 도저히 안되는 줄을 안 것이다. 그 때 마침 키에르케골의 저서들이 독일어로 번역되기 시작했고 키에르케골은 변증법적으로 전개하여 하나님은 우리와 전적으로 다른 존재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무한한 거리가 있다고 썼다.

스위스에는 두 종류의 종교개혁 교회가 있다. 그것은 칼빈의 노선과 다른 노선인데 Karl Barth는 종교개혁자의 교회로 되돌아가서 무명의 인사로서 그는 로마서 강해를 쓰기 시작했고 그 첫판이 1918-19년에 나왔다.
 
그는 그 책에서 역사 비평적인 방법으로 서양문화가 갖는 그 선에서 연속되는 그 신학작업을 강렬하게 비판하고 인간과 하나님이 같은 선에 서 있다는 자료를 깨부수기 시작했다. 그때는 전쟁 중이기 때문에 위기의식이 가장 높아져 있었고 또 전쟁이 끝날 무렵의 그 위기의식이 Karl Barth의 변증신학을 탄생시킨 것이다.

Karl Barth의 책이 출판되자 지금까지 내재신학으로 그처럼 평화롭던 곳에 그것이 폭탄으로 작용하기를 시작했고 신학계가 온통 깜짝 놀란 것이다. 사실 Karl Barth 자신도 그렇게 큰 반항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했지만 전통적으로 놀던 신학자들의 신학의 주제를 빼앗아 간 것이었다.
 
그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전통적인 개신교 신학의 주제를 다시 찾아주면서 새방향을 선정해 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서구 19세기에서 20세기 사회로 넘어오는 큰 전환점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내적으로 말씀해서 오신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위로 부터 말씀해 오시는데 오실 때 마다 그냥 심판주로 심판하시기 위하여 위기에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렇게 큰 반항을 일으킬 줄 몰랐기에 그 변화를 어린아이가 밤중에 종탑에 올라가서 떨어지려고 해서 붙잡은 것이 종 줄이었다. 그래서 매달렸더니 종이 사방에 울려 사람들이 다 잠에서 깨어 버렸다. 종을 칠려고 했거나 사람을 깨울려고 하지 않았지만 깨우게 되었다는 비유를 들어서 그때는 설명한다.

이때 그의 선생 Adolf von Harnack이 제일 먼저 Karl Barth의 신학적인 전개를 반대하였고 그가 제일 많이 논쟁을 벌인 것은 그의 선생 Adolf von Harnack 이었다. Adolf von Harnack은 “네가 그 길로 가면 이제까지 기독교가 쌓아온 역사적인 비평방법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Karl Barth는 신학 강의를 하러와서 신학 강의를 한 것이 아니라 설교 원고를 읽었던 것이다. 1921년에 재판이 나왔는데 그는 대학교수로 청빙되었다. 여기까지가 Karl Barth에게 오기까지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엽가지의 신학사상의 대략이다.

현대신학은 1919년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200년 이전 계몽주의자 칸트에 의해서 소개되었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부터 인간으로 출발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로 바꾸어졌으니까 쿠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한다.
 
Karl Barth가 로마서 주석을 쓰던 1918년에서 1919년 이전과 이후의 달라진 신학적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계몽주의, 즉 자율주의 이다. 칸트가 계몽, 즉 성숙이 무엇이냐 할 때, “자기 발로 서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주어진 이성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교회의 권위에 의존하여 교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외적 권위에서 놓여나서 자기 이성을 활용하는 것이 계몽인데 칸트와 현대 계몽주의 정신에는 다 이런 사상이 있다.

우리는 Karl Barth 비판이 없어서 Karl Barth가 그전과 차이점이 아직 없고 결국 근본적으로 같다고 하니까 무슨 이야기인 줄 몰라서 Karl Barth가 종교개혁으로 완전히 돌아간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결국 Karl Barth는 전통적인 의미의 개혁신학에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근세인의 의식에 의존하고 또 이성에 의해서 표준을 삼는 신학에 머무르고 만다. 결국 Schleiermacher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야 맞다.

결국 이성이 계몽한다는 말은 낙원에서 부터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외적인 그 말씀의 권위에서 벗어나 먹으면 죽는다 했는데도 독립된 이성으로 죽을지 어떨지 내 판단에 의해 먹어본 것이다.
 
그러니 현대신학은 Karl Barth가 서 있는 공동 地盤 위에 칸트가 같이 서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태도이다. 하나님의 외적인 권위의 말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의 이성으로 자기의 종교적인 의식으로 했기 때문에 Karl Barth가 인간에서 새롭게 하나님 말씀에로 되돌아 간 것 같아도 결국 칸트를 지나서 에덴동산까지 간다.

이런 면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중세의 종합된 사상은 자연을 초자연적인 면에서 해방시켜 놓았다. 사실 인간의 마음을 잘못 전개해 놓았지만 희랍세계에서의 인간 마음은 종교를 어떻게 구성했느냐 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상의 밑바탕에 종교적인 전제가 들어 있다. 그러나 그 전제들은 성경적 기본 전제들을 배척하기 때문에 항상 상호 모순되는 두 개념으로 종교적인 전제들을 만들었다. 그것은 변증법적 철학적 사고인데, 신학과 종교 뿐 아니라 모든 사상을 지배하는 종교적인 공동 전제인데 그것이 희랍적 사고인 형상과 질료이다.  

 

모든 신학사상을 지배하는 종교적인 전제가 형상과 질료이다. 그러나 희랍사람들에게 있어서 더 기본적인 것은 무한하게 연속하여서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아니하고 살아 움직이며 흘러가는 그런 연속된 흐름인 질료에 더 근본원리를 둔다. 생명도 그냥 흘러가는 것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것은 흘러가는 생명원리에 거스리는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것은 그 흐름을 반대로 거슬러 일어나는 것이다.

왜 죽음이 오느냐? 그 원리를 어기고 형체화, 즉 형상화 되었기 때문에 죽음이 온다고 한다. 희랍철학 사고에서 그런 것은 합리론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생명이 무한히 흘러가고 돈다고 하는 사고방식 저변에 희랍 국민 전체에 종교의 기본이 전제되어 있다.

Dionisus는 장난의 신을 섬기는 흑암의 신이다. 그런데 백성들은 형상이 있는 이런 종교의식 속에서 살았다. 모든 것이 의식 속에서 흘러 내려간다. 그러다가 구체화 되는 것은 남는다.
 
생명은 영원히 흘러가는 것이며, 구체화 되는 것은 개별화 되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흐름은 개별화 되는 것, 형체화 되는 것을 막는다.
 
하나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이 흐름에 젖어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다.
 
희랍사고에는 신이 개인의 운명에 개입해서 돌이키고 간여할 수 없다. 그것은 어둠의 연속적인 흐름, 그런 것을 상징하는 것이고 통속적인 형상의 빛에 나타나는 빛은 계몽된 사람들, 철학자의 계몽된 사고에서 나타난다. 이 두 흐름은 절대로 조화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 어둠에 빛, Apollo 신으로 대치되는 형상이 장난의 신으로 나타난 Dionisus와 합쳐졌다. 이 두개의 모순 개념이 함쳐진 것이다. 그래서 이 둘을 조화하기 위한 노력이 희랍철학의 영향이다. 이들은 이 둘을 모든 것의 기본으로 삼았다.
 
형상과 질료는 조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늘 변증법적으로 전개되고 사회에 긴장이 된다. 하나를 강조하면 절대화(ism)는 발생한다. 왜? 변증법적 긴장이 있으니까!

이들이 하나님을 절대화 하는 것은 변증법적 도식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참 절대자의 근원을 떠나서 다른 것으로 참 절대자를 대체하기 때문에 우상 숭배이다.
 
그러니까 창조세계의 일부를 절대화하여 참 절대적인 절대자를 대체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의 파기자인 인간은 참 절대자를 배제해 버렸으니까 자기가 절대자를 만들어서 거기에 자기를 종속시켜야 한다. 피조물의 기본 특성은 의존성인데 그래야 자기를 종속시켜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자에게 자기를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참 절대자를 배제했기 때문에 결국 피조물을 절대화하여 대신 대체하면서 자기를 거기에 매달아 종속한다. 그러므로 여기는 긴장과 모슨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반대되는 두 개념을 합쳤기 때문이다. 두 개념 형상과 질료에서 질료는 형체 없이 무 규정적으로 계속해서 흐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체화 되고 형체화 되는 것을 막는다. 결국 그것을 용납하지 않고 없애버린다. 그런 때 형상은 어떤 형태로 나타난 그런 것이다.
 
그래서 형체화 됨으로 개별적으로 個物이 되어 나타나는데 질료가 그것을 헌다. 이것을 희랍철학은 운명이라 한다. 운명의 경우는 신들도 거기에 전혀 간섭하지 못한다. 그 때 형상은 이데아 혹은 빛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두 개념이 형체화 되는 것은 흐름에 바로 모순 개념이다. 그런데 희랍사상은 이런 반대되는 두 개념을 합해가지고 형상화 하기에 여기에도 변증법적 긴장이 있다. 그러니 항상 한쪽 형상이 우위를 차지하면 질료가 보복을 한다. 결국 철학은 이것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것을 소위 계몽된 지성인들이 종교로 표시한다. 그리고 이 변증법으로 만상을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으로 이것을 정식으로 표현을 했지만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모든 個物은 형상과 질료가 합해서 된 것이다. 백묵은 백묵이라는 개념 그것이 형상, 혹은 이데아와 질료가 합해서 된 것이다. 책상은 책상이라는 개념과 나무란 질료가 합해졌다.
 
그러면 나무는 무엇이 그 형상이고 무엇이 그 질료인가? 책상을 만드는데 나무는 방금 책상이라는 개념의 질료였다. 그러면 나무는 다른 하나의 형상으로써 무엇과 무엇이 합친 것인가? 나무라는 개념에다 무엇을 합해서 나무가 되었는가? 이것은 형이상학적인 도식이지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못된다. 흙은 어떠한가?
 
흙이라는 개념에다 어떤 질료를 합한 것인가? 흙이라는 질료를 합치면 흙이 되는데 그러면 결국 무 규정자에 도달한다. 결국 그것이 원시 질료인 것이다. 물질은 결국 규정되지 않는 규정될 수 없는 그런 것에로 되돌아가고 만다.
 
그래서 플라톤에게는 흙과 먼지와 머리카락 같은 그런 이데아가 저 천상 세계에 있다고 그랬다. 사실 이것도 한계개념에 봉착한다. 흙이나 나무에 이르면 무엇이라고 정의될 수 없는 원시 질료재료에 돌아간다. 그러니까 둘은 상관개념이지 명확히 구분된 것이 못된다.
 
그래도 항상 질료는 흐름으로, 형상은 형체로 나타날려고 하는데 이렇게 나타나려는 것을 흐름은 없애려고 한다. 두 개의 모순 개념이 합쳤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변증법적인 일이 야기 된다. 이것이 희랍철학의 존재론을 설명하는 기본 도식이다. 그러니까 형상도 철학적인 개념 같고 질료도 그냥 철학적인 개념 같아도 그 근본은 두 개의 대립된 종교의 전제들이 합친 것이다.

이런 형이상학적인 것 하나가 중세에 건너 왔는데 중세에는 자연에다 은혜를 합친 도식에 선다. 자연에다 은혜를 합친 것, 자연은 본래 주어져 있는 것이요, 그래도 고유한 존재로 있는 것이다. 그런 개념은 형상과 질료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독자적인 면이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가 못된다. 불완전하고 미비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에다가 은혜가 온다. 자연은 고유적으로 있는 것이고 은혜가 와서 끌어올려 앙양을 한다.

로마교회도 기독교이니까 앙양만 말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로마교회도 은혜가 와서 죄 문제를 해결하고 치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은혜는 부족한 자연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린다. 자연개념은 희랍철학에서 왔고 은혜는 기독교에서 온다.
 
은혜가 와서 죄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그러나 죄문제의 해결은 회복이 아니라 죄를 해결함과 동시에 높은 차원으로 앙양시킨다. 이렇게 함으로 처음 기독교의 은혜가 가져온 자연에 내린 과격 선언은 없어지고 은혜와 자연이 둘이 조화함으로 은혜를 첨가하면 그저 있는 것보다 좀더 나은 상태로 되는 것으로 말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비단도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만 수를 놓으면 얼마나 좋은가? 부드럽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보기는 더 좋아서 금상첨화격 이듯이 은혜가 와서 자연을 끌어 올린다고 한다. 이렇게 자연과 초자연, 자연과 은혜의 이원론적 2층 구조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자연이성으로 자연영역을 알 수 있으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삼위일체 신비 같은 것은 은혜로 아는 것이지 자연이성으로 자연을 탐구함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못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영역은 자연이성으로 자연을 탐구함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연의 사물 본성의 이치 같은 것을 탐구하는게 아니다. 빵을 굽는 사람은 빵 굽는 일에 바빠서 사물의 일이 어떻고 그 본질이 어떻고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다.
 
물론 우리 한국에는 쌀을 자급자족하니까 농사짓는 사람은 쌀로 돈 바꾸기 바쁘지 쌀의 본질이 어떻고 따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농부가 해준 쌀밥을 먹고 여유있어서 쌀의 본성이라든지 이런 것을 따지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조금 더 보편화하면 하나의 學으로 될 때에 그런 것은 자연의 이성으로 했어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성 그 자체와 자연 그 자체가 죄 때문에 타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부족한 정도이다. 그래서 은혜가 와서 그 부족을 보충한다. 그리스도 성육신의 은혜와 삼위일체 신비같은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없다. 그러니까 그런 경우에는 신앙을 통해서 믿음으로 은혜로만 알 수가 있다.

이 두 개념은 상당히 많은 경우에 희랍적 사고와 기독교적인 것과 합친 것이기 때문에 아주 어려운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나중에 인간의 이성만 취택하게 되면 자연은 필요없게 되고 은혜만 강조하게 되고 은혜를 취택하면 이성의 길이 배척되게 된다.
 
그래서 중세가 끝날 때 이성과 자연을 많이 택하여 근세 계몽주의가 되고 은혜만을 택하는 종교개혁이 나왔다. 이것과 함께 세번째 기본전제가 있는데 이것은 희랍적 사고, 즉 자연개념에다가 기독교의 은혜 두 개의 전혀 상반된 것을 합친 것이다.

그 다음에 근세에 들어와서 소위 자연과 자유이다. 자연은 그대로 두고 은혜라는 개념을 자유로 바꾼다. 그런데 이제는 중세 때와는 다른 의미로 자유와 자연이 역사하는 것이다. 자연은 인과율이 적용되는 그런 세계로써, 완전히 물질의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그런 세계이다. 인과율이 그 기본이고 인간은 그것을 넘어서서 자유를 가진 인격이어서 자유를 가진다. 그래서 근세인은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 그 理想이었다.

이제까지 인간이 너무 자기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하고 외적인 권위에 얽매여 살면서 하나님 말씀의 권위, 그리고 모든 것을 신부에게 물어서 하고 신부님 가르쳐 준대로 하고 신부님 해석한대로, 상담한대로 했다.
 
신부님 말이 곧 하나님 말씀이었고 교황의 말이 곧 하나님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이성을 활용해서 자기가 판단하는게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율법적인 속박에서 또 자연의 속박에서 해방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지만 종교개혁이 가져다 준 그 자유는 죄로 부터 자유이고 나를 얽어매는 악으로 부터 자유이며 해방이었다.
 
그런 은혜가 가져오는 자유와 해방의 개념을 근세인들은 역으로 바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은혜로 부터 오는 죄로 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외적인 권위의 종속화된 것에서 자기 스스로 자기 발로 서는 것, 더 이상 외적인 권위를 어떤 형태로든지 받지 않는 것, 그것을 진짜 자유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외적인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제 발로 자기의 주어진 시점에서 주어진 재능을 활용하여 자기가 판단하고 선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외적인 권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유를 다시 해석했다. 또 인간은 자연으로 부터 많은 속박을 받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자연과학이 발달하니까 길을 다니기 편리하게 만들고 질병도 막아 전염병도 막을 수 있고 홍수도 막을 수 있고, 한재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자연은 신들의 거소요, 영역이어서 거기서 일어난 것은 신들의 영역이기 때문에 감히 사람들이 접근했다가는 사람이 크게 벌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마음껏 다스리고 통제하고 다스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이 발달하게 되므로 자연의 이치와 법칙을 알아서 적용하면 자연을 어거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베이컨이 한 말 가운데 “지식이 힘”이란 말은 그것을 두고 한 말이다. 질병은 다 하나님의 진노로 생각했는데 병명이 무엇인가 연구해서 주사를 맞으니까 전염병이 없어졌다.
 
자연의 이치를 알아서 자연을 어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자연을 마음껏 지배하므로 자유를 100%로 누릴려고 했다. 자연을 지배함으로 자연 위에 자유를 누리는 것이 근세인의 이상이요 모든 외적인 권위로 부터 해방되고 또 자연의 억압으로 부터도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의 비밀을 하나씩 하나씩 캐내어 그것을 지배하므로 인간의 자유를 확대해 갔다. 무서운 동물들도 그 동물의 생리를 잘 이용하면 다 다룰 수 있다. 호랑이 하면 벌벌 떨었는데 지금은 다 잡아다가 동물원에 넣어놓고 구경한다.
 
그렇게 이성을 활용해서 자연을 마음껏 지배하므로 자유를 확보하려고 한 것이가. 그것이 근세인의 이상이요 이성을 마음껏 활용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성의 무한한 탐구의 영역을 이성에게 열어준 것이다. 이성으로 못할게 없이 이성으로 다 할 수 있도록 믿게 했다.

그런데 자연과 자유, 이 둘이 서로 상반된 개념이다. 자연은 필연의 법칙이요, 다위의 세계요, 자유는 인격의 세계, 인간의 세계인 것이지, 자연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현재처럼 자연과학이 발달해서 자연 위에 큰 행사를 한 때가 없었다. 그러나 자연계에 행한 이러한 자유의 행사가 인간에게 까지 적용되므로 굉장히 자우로운 것 같지만 말할 수 없이 제한되어 있다.
 
근세 현대인 만큼 개인의 내적 무력감을 절감한 때가 없었다. 자연은 필연의 법칙이고 자유는 당위의 세게이다.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상반된 두 개의 개념, 자연과 자유가 서로 다툰다. 그러니 늘 긴장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위를 말하면 실존주의가 되는데 그래서 실존주의는 인간의 존엄, 인간의 자유를 위해 기계문명을 막으려 한다. 그렇지만 어디 막아지는가? 현대문명이 가는 길을 막을 길이 없게 되었다. 우리 교회들도 전부 다 개교회주의로 있는 한은 해결할 길이 없는 것이다.
 
정책의 문제를 항의해 보아도 개교회 뿐이니까 힘이 없다. 자유의 이 두 개념은 그 전체에 있어서 서로 상반된 두 개념이 합친 것이니 변증법적 긴장이 있다. 참 자유는 종교개혁이 가져온 은혜에서 온 자유이고 다른 것은 세속화한 자유이다. 그러니 상반된 두 개가 합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인 만큼 무력하고 무능감을 절감하는 때가 일찌기 없다. 왜 그런가? 다 그릇된 종교적인 전제 위에 입각해서 서 있기 때문이다. 자유가 근세인의 신앙이요, 자연도 마찬가지인데 그렇기 때문에 바른 學이 안 나오고 ism(이데올로기)이 나와서 사회를 파멸로 이끈다. 소위 모든 사람들에게 이 모든 철학의 전제에 있는 종교적인 전제를 발견해 내는 일을 도예베르트가 했다. 그것이 그의 훌륭한 공이다.

그러면 성경은 어떤 전제이냐? 창조와 타락과 구속이다. 여기서만이 변증법적인 긴장이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인간에게 참 자유와 생이 보장된다.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바르트의 이야기 중에는 근세인의 기본 전제되는 자연과 자유의 원리가 그의 신학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도 그것이 아니고 근세인의 근본 종교적인 전제가 바르트 신학에도 지배하고 있다.

여기 무한정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자연이다. 그리고 자유도 인간의 이성으로 마음껏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그런 이치를 말한다. 그래서 자기 사고를 지배하는 아무런 외적 통제가 없는 것을 자유라고 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기본 전제가 그 바탕에 흐르고 있다.
 
이 자연과 자유의 개념으로 근세인들이 세계를 다 설명하였다. 이 자연의 개념으로 기독교를 배척하기 위해서 최초로 나온 것이 영국의 理神論 혹은 自然神論이다. 이신론에 의하면 그 이상 외부의 간섭과 보충이 필요없이 자연은 그 자체로 충족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연이라는 큰 기계를 만들어 놓으시고 그 이상 자기가 간섭하지 않아도 돌아가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자기가 직접 지은 자연에서 후퇴하신 것이고 더 이상 간섭하실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무신론의 원조상이 되었다. 그게 그럴듯 하고 좋게 보인다. 하나님이 전능하시사 천지를 만드셨으면 게속해서 간섭하고 일하실 필요가 있겠는가? 자식들도 늘 간섭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 서게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자율이 생긴다. 인간이 인간 자신에게 법이 되는 것이다. 그 말은 인간이 이성을 표준으로 해서 이성을 지도자로 해서 이성이 내린 판단을 바르고 합당한 것으로 믿고 그렇지 않는 것은 배척한다는 뜻이다.

근세인은 참이고 거짓이고를 이성에 의해서 판단한다. 그리고 선악의 판단도 마찬가지로 이성으로 한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의해서 선악과 진위를 판단하고 믿는게 하니다. 이성의 판단에 비추어서 맞으면 옳고 안맞으면 틀린 것으로 결정한다.
 
 2+3=6, 이것은 수학공식에 안맞으니 틀린 것이다. 1+1=1, 이것은 될 수 있다. 만년필 뚜껑을 열면 두개, 다시 끼우면 하나가 된다. 1+1=1의 경우 사과를 하나 놓고 또 하나를 놓으면 둘이 된다. 2+3=5인데 6이라고 하면 착각을 한 것이다. 지각에 안맞기 때문에 거부한다. 진위와 선악을 이성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한다. 그러니까 모든 진위와 선악의 최후 심판이 이성이다.

그러니까 자율이란 말은 인간은 피조물인데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법을 그 권위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그것을 버리고 자기의 이성과 판단을 모든 것의 표준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거짓 자율이다. 물론 자율해서 스스로 서야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 의존심이 많아서 제 정신으로 제 스스로 서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자율이 아니다. 현대인은 진리에 대한 궁극적인 표준, 그리고 최후의 심판관을 바로 이성으로 삼는데 이렇게 되면 안된다.

칸트에게 있어서 인간의 자율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 自證하신 그 하나님의 계시 대신 인간의 자율적인 이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더 이상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 결정한다.
 
그런데 그 이성이 개개인들에게 있는 것도 되지만 누구든지 다 보편타당할 수 있는 이성, 온 인류에게 공통된 그 이성, 어느 특수한 사람들이 갖은 그와 같은 이상한 직관, 통찰, 투시, 그런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갖는 보편한 이성, 그런 것이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에 합당히 이르도록 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내가 한다고 한다. 할 수 없는 죄인이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구원자가 밖으로 부터 오실 필요가 없게 된다.
 
인간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성을 신적인 높은 존재로 본다. 보통 탁월한 존재가 아니어서 인간의 이성을 神的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 사고 때문에 그런다.

근세 칸트 이후의 신학은 다 칸트의 기본원리를 집행한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이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영역이 현상계라 해서 그 위에 혹은 그 밖의 세계를 예지계라 한다.
 
그리고 현상계만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무엇을 안다고 할 때는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백묵이라고 하는 것도 보고 만져서 아니까 백묵이라고 한다. 그러나 귀신 이야기나 물 위로 걸어서 강을 건너는 이야기나 지옥에 갔다온 이야기는 감각적 감각기관으로 알 수 있는 경험의 대상이 못된다.
 
그 영역은 우리 인간의 감각능력으로 알 수 있는게 못되기 때문이다. 안다고 할 때 들여다 볼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의 특징이 외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것을 가져다가 실험해 보고 분석해 보고 검증해서 말하고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정확하게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시추를 해 본다.
 
실제 금이 있는지 은이 있는지 확힌해 보고 그 증거들이 나오면 금, 은이 있다고 한다. 그냥 봐서 표증은 안 나타나도 그 속에 있다고 투시하는 사람이 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면 지옥에 가 보았는가? 마음 속에 있는 지옥을 보았다는데 부인해 버리라는 것이다. 실제 고통을 느끼는 것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거절해 버리면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 때는 경험으로 가능한 것을 안다고 한다. 하나님을 안보고도 믿는다는데 감각기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존재는 현상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을 우리가 알려면 하나님이 현상계, 시공의 제약속에 들어오셔야 우리가 알 수 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원인을 추적할 수 있는 그런 것만 과학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믿어서 아는 것 말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만지고 우리의 이성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세계를 칸트는 현상계라 하고 그 이상은 예지계라고 하여 하나님을 초월의 세계, 저 예지계로 추방해 버린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은 현상계이고, 그 이상의 세게, 예지계, 혹은 물 자체의 세계는 알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도 物자체, 즉 예지계에 속한 분이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알려면 우리의 감각기관에 접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칸트가 이처럼 이성의 한계와 능력에 대한 설정을 했기 때문에 칸트 이후의 모든 신학과 철학는 칸트의 원리를 그대로 이해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하였다. 철학도 경험을 강조하게 되었고, 신학도 현상계 밖에 있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체럼을 강조한다.
 
 계시하고 하는 것도 저 현상계 밖의 초월의 세계에서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世界內事件, 혹은 內世界的事件으로 간주하였다. 다시 말하면 밖에서 계시가 온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으로 부터 계시된 사건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일은 계시란 구체적으로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 안에서 순간 순간 결정되고 일어나는 결단이라는 것이다. 즉 계시는 명제 형태로 오는 것 즉 주어와 술어를 가진 문장의 형태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계시가 內世界的事件으로, 밖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니라 안으로 부터(ab inter) 나오기 때문이다. 모든 경우에 계시는 안으로 부터 인간의 신적 요소로 부터 오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편을 우리가 계시로 수납하는데, 그러면 시편이 안으로 부터(ab inter)인가, 혹은 밖으로 부터(ab extra)인가? 우리는 시편은 초자연적 계시이고 밖으로 부터 온 것을 믿는데, 그러나 칸트 이후 도는 슐라이어막허 이후에 완전히 경우가 바뀌었다.
 
모든 것을 內世界的 현상으로 혹은 분명한 용어로 설명하도록 되어졌다. 이것이 현대의 신학작업 이다. 18세기에 정착한 중요한 신학 작업의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모든 신앙의 내용을 그 당대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18세기의 개신교신학 작업의 원칙이 되었다. 기독교가 혹은 계시가 당대의 그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당대인들에게 말해야 하며 다른 방법으로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철학이 18세기 이후 부터는 초자연의 영역을 생각하지 않고 內世界的 사상으로 진행되는데 이런 사상에다 기독교를 변형시키고 있다.
 
계시가 초자연적에서 오지 않고 內世界的 사건이면, 신의 존재도 초자연적으로 있는지 없는지 말할 수 없게 된다. 다만 현상계 내로 들어온 일에 대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불트만의 비신화화도 근세인의 사상과 같다. 그리고 칸트의 원칙에 의해 충성되이 일을 진행한다. 우리가 믿는대로는 성육신을 보좌에 계신 이가 땅에 내려 오셔서, 여인의 몸으로 들어가서, 육을 입으시고, 사람으로 나오셨다.
 
그들에 의하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정말 그런 존재가 저 밖에 계시는 분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어지게 된다. 그것은 알 수 있는 것이 현상세계 뿐이어서 칸트에 의하면 이런 것들은 현상계에 맞지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기적중의 기적이고 신비이지만 이들에게는 어려운 문제중의 하나로 대두되게 된다.

하나님이 여인의 몸에 들어가시고 사람으로 오신 성육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러니 18세기 이후의 신학책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진술했어도 그 내용은 전통적인 신학이해와 반대가 된다.
 
그런 초자연적으로 계시다가 초월해 계신이가 어떻게 들어 오셨는지 초월을 연결할 길이 없다. 그래서 완전히 시공내에 역사안에 살았던 사람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만 생각한다. 역사에서 출생하고, 낳고, 죽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어떤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겠는가? 뭐라고 전도해서 예수 믿으라고 해야할 것인가? 이런 과학적 사고로 예수는 완전히 역사에 소속되어 역사에서 출생하고 역사에서 죽게 되어 버린 것이다.

어떤 의미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그러면 고난주간, 부활주간에 어떤 설교를 해야 하는가? 예수의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로 입증되었다 해도 문제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그
 
러니 성육신도 內世界的, 生物學的 사건이 되고 만다. 불트만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동정녀 탄생을 부인해 버린다. 그는 우리가 안다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분이 없는데, 초자연적 존재를 우리가 만났으며, 만남의 증거는 예지계에 속하지 않고 현상계에 속한다는 결론이 된다. 그처럼 증명이 된다고 한다면, 감각세계, 시공세계에 속하게 된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존재로 볼 수 없다.

키엘르케골이 역설적으로 강조하는데, 무한한 질적으로 다른 영원하신 이가 시간 속으로 들어 오셨다. 즉 무한하신 이가 유한한 세계로 들어 오셨다. 그러면 유한 속에 무한이 담기워질 수 있는가?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는 것이 불가능하듯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신학의 문제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남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기독인들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면 믿지 않는 실정이어서 계시가 합리적이 아니고 불합리한 것인데 어떻게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1+2=3이 아니고 2 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런 계시를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처녀 탄생과 성육신, 부활은 현대인들에게 그와 같이 불합리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은 종교현상학적 사건으로 처리하고 內世界的 사건으로서 다루어 버린다. 神을 만난 사람이 어디 있으며,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 입증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도 역사적 산물로 귀속해 버린다.

좀 더 심각한 문제는 계시가 오면 이성을 희생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니 성경에서 시작해서는 일이 안되게 되어 있다.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 두 부류가 있는데 자연과학자들은 초자연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리학의 법칙을 이야기 하는데 그 배후에 지성이 있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창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물질로 나타난 것만 보아 알기 때문이다. 물질로 표현된 것을 형상과 질료라고 할 때, 경험론이 대두되기 전까지 강조점이 질료에 있었는데 경험론이 들어 오면서 부터 질료가 문제가 아니라 물질에 표현된 것 뿐 그걸 넘어서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존재와 경륜과 창조를 믿음으로 전제하는 것이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증명으로 나아가면, 증명할 길이 없다.
 
그러니 존재하는 것을 믿는 것 뿐이다. 즉 그것을 넘어서서 믿는 것이며, 믿음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은 믿음은 지식의 분야가 아니라 한다. 그것은 지식으로 증명해 버리면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학문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의 영역을 학문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심을 전제 한다.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무한하신 분을 전제하고 믿는데 전제한다는 것은 믿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만이 전제로 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과학 역시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자연의 제 일성 때문에 자연을 탐구해서 법칙을 발견한다. 물론 그것이 얼마만큼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자연의 제 일성을 모든 자연과학이 증명함 없이 전제하고 시작할 뿐, 증명하지 못한다. 왜 제 일성인가를 자연과학자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 일성을 바르게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는 창조주 하나님의 경륜 뿐이다. 현대신학이 항상, 멀리 있는 사람들,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이런 요소는 우리 안에 있다. 다만, 자연과학자들은 훨씬 더 일관성 있게 전개하고 그러나 우리는 단지 신앙이라는 것 때문에 다소 주춤할 뿐이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바로 이런 문제에 칸트가 분기점이다. “칸트 이전에 칸트 없고, 칸트 이후에 칸트 없다”는 말은 칸트 이전의 사상과 칸트 이후의 사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바른 개혁신학과 바른 진리는 안 가르치고 부흥가 축복만 가르치며,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제는 고등학교에서도 철학과 논리학을 가르치는데, 우리는 철학 책을 읽을 때 혹은 그런 사상을 분별할 눈이 없다.
 
칸트 이전과 이후의 용어는 같으나 안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받아 들인다. 그리고 그것은 철학의 일이니 성경만 가지고 된다고 하지만 지금 철학과 신학이 구분된 것이 아니다.

데이빗 흄은 18세기 영국 스코틀란드의 철학자인데 개혁교회 출신이다. 스코틀란드의 개혁교회인데 교회의 분위기들이 너무 그를 배타하도록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죤 낙스 때문데 스코틀란드는 장로교이며 개혁신앙 아래 있어 왔지만 지금은 바르트 영향 아래 다 있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지식의 영역에 있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감각 뿐이다. 감각적 재료 곧 표상이다. 즉 외부에서 들어온 인상이다. 이런 것들은 습관이 지배적이다.

내 경험으로도 웨스트민스터에 있을 때 3년 내내 동쪽과 서쪽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잠실 살다가 서초동으로 갔을 때도 어디가 남쪽인가를 오랫동안 따져야 했다. 습관이 쉽게 무엇을 생성해 내는 것이다. 흄은 인과율이라는 것을 자연의 법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인과율이란 반복해서 경험하므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즉 모든 경우에 인가율의 형성은 우리의 습관이며 관습이다. 인과율을 자연의 법칙이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인상과 그것에서 나오는 Idea(관념), 그것이 부합해서 여러 세계가 되었을 뿐이지 우리가 밖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생래적 관념, 즉 神 존재를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래적으로 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들도 알아야만 된다. 인도에서 이리에 의해 키워진 두 아이들이 있었는데 이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영국의 경험론이 제기하는 바는 생래적 관념이 있으면 어린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리 소년은 아무 것도 몰랐다. 그래서 안다는 것은 속에서 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 밖에서 끌어들여 오는 것, 경험으로 부터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주장은 좋은 생각도 일단 밖에서 들어와 가지고 나가는 것이며 독창적이 아니라 한다.
 
 이렇게 되면 많은 경우의 인과율이 습관게 관한 것이 된다. 즉 난로 가까이 가면 따뜻해지는 것도 자꾸 경험했으므로 따뜻하다고 느낀다. 그러면 인과율이라 하는 것이 밖에 객관적으로 쓰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도 분명히 말할 수 없다.
 
늘 우리에게 있으니까 있는 것으로 인정할 뿐이다. 그러나 자연과학도 수치가 나오니까 사실인 것 같아도 가설의 영역에 속한다. 인간의 규정을 수치화한 것이다. 뉴우톤 때는 절대적인 공간, 절대적인 시간을 상정해서, 여기에 타당한 법칙이 반드시 그대로 나탕하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할 물리학자는 없다. 절대적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여기서 적용되는 만유인력 법칙이 그대로 다른 것에 타당하다는게 성립되지 않게 되었다. 또한 밖에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 것도 정말 확실히 증명할 수 없다. 더구나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증명할 길이 없어지고 말게 되었다.

앞에 집을 짓다가 헐어버렸는데 우리는 헐기 전에 수많은 경험으로 집을 완성할 줄 알았다. 그것은 계속 같은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것, 이 세상의 불완전한 것들이 앞으로 재림 때 완전해진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경험하지도 못한 것이다. 경험이 반복되어야 증명할 수 있다고 흄은 말한다. 그러니 이 세계에 조물주(author)가 있다고 상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인과율도 확실한 것을 알 수 없다. 영국의 대부분의 경험론에 의하면 회의주의가 대부분이다.
 
감각재료를 가지고 있을 뿐 그 이상은 없다. 즉 인과율을 그 배후에로 증명할 길이 없다. 태양동승도 우리가 보아왔던 우리의 습관의 산물이지 우리의 주거지를 떠나면 그것이 똑같이 반복된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인과율은 습관에 의해 우연적으로 연결된 것 뿐이다.

이 기본 입장을 칸트가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 인과율을 생각하면 학문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칸트는 인과율을 인간이 세운 보편 타당한 법칙으로가 아니고 우리의 이성이 넣어준 법칙으로서 보편 타당하다고 한다.
 
인과율을 무한정 적용하면 안되고 인과율을 적용할 수 있는 한계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시공세계 거기에만 국한을 한 것이다. 그 외에 그걸 넘어서서 하나님이라든지 구원이라든지 불멸같은 것은 경험할 길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지식의 영역에서는 도저히 다룰 수 없는 영역이 된다. 그러면 현대인에게 하나님이 어떤 존재로 요청되느냐?

우리의 모든 경험을 다 합쳐보자. 우리의 경험, 서울에 있는 사람의 경험, 대한민국 사람의 경험, 온세계 사람의 경험을 다 합치면 그것은 뭐가 되는가? 어떤 개념에 이르러 가는가? 모든 사람의 경험을 다 합치면 그것이 세계라는 개념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는 개념이다. 세계 경험헤 보았는가? 얼마만큼 경험을 했는가?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일하는 한 규제개념이지 세계를 누가 경험했는가? 그런 것은 전부 다 현상과 우리의 경험 전체를 다 통괄하는 통일 원리로 서 있을 뿐인데, 이 궁극적인 개념을 하나님으로서 상정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험을 다 모으니까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한계개념에 이른다. 그건 한계개념이지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 세계보다도 그렇게 만들어 주는 기본개념 그것을 하나님이란 개념으로 한계개념으로 설정한다. 하나님은 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한계개념으로, 모든 것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고 한계개념으로, 체계를 위한 하나의 한계개념으로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경험해 본 사람 있는가? 그러나 우리의 의식구조, 우리의 속에서 좋은 것도 나오고, 선한 것도 나오고, 음탕한 것도 나온다. 이런 모든 현상들이 어디서 나오는가? 그냥 우리의 육체에서만 나오는가? 근원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영혼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 다 나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영혼을 보고 또 경험을 했는가? 그러니 영혼도 경험의 통일개념으로 근원되는 개념으로 한계개념으로 필요하다. 실제로 있는 것을 누가 알 것인가? 영혼, 세계, 하나님 은은 우리의 경험의 영역으로 접촉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계개념, 즉 체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전제함이 필요하다고 칸트는 말한다. 지식의 영역으로는 하나님과 세계와 영혼의 존재를 알 길이 없다. 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한계개념으로 설정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지식 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인간 공동체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니 지식만 가지고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윤리로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윤리관을 살펴보자. 윤리를 이야기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참된 선행 아닌가? 방아쇠를 들이대서 내놓는 것은 죽기싫어 내놓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낼려면 사람이 자유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유를 증명할 수 있는가? 많은 경우에 객관적으로 가치가 같은 것을 두 가지 놓고 선택하라고 하면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까 중세 때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말(馬)이 있는데 양쪽에 동등한 가치 있는 먹이를 주었다. 어느쪽을 먼저 먹는가? 결국은 어디를 선택할 줄 몰라 결국 말라 죽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있는 자유는 완전한 자유인가? 선택하고는 이미 어떤 일이 일어난 다음에 후회한다.
 
자유가 있으면 후회하도록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증명할 길이 없지만 윤리생활이 바로 될려면 자유를 전제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칸트는 실천에서, 윤리의 영역에서 자유를 전제한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 짧은 세상에 이걸로 그친다면 뭐가 되겠는가? 우리 인간의 근본이 윤리적, 도덕적인 존재로 세상에서 완전한 사람이 못되고 덕을 현세에서는 완성시키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세까지 연장시켜 우리의 덕을 완성시켜야 되지 않겠는가?
 
즉 우리의 삶이 현세에서 끝나버린 것이 아니고 내세에까지 연장된다고 전제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세를 요청한다. 그저 내세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의 선악을 벌하시고 상주시는 그런 분이 계셔야 할 것으로 요청한다.

지금 이런 이야기는 단지 20세기 후반부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플라톤의 국가론과 법을 읽어도 세상에서는 의로운 것, 좋은 것이 아니고 불의한 것, 악한 것이 좋다. 왜? 악을 크게 일으키면 영웅이 되고 사령관이 되고 정치인이 되고 나라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악하고 불의한 것이 좋다. 그렇게 국가론이 시작되고 이야기를 전개할 때, 그것이 2천년 전의 일이 아니라 그것은 오늘의 이야기도 된다. 지금이야 우리 한국사회도 7계를 범해도 다 관대해서 다 그럴 수 있는 것으로 통상화 된다.
 
그런데 하나님이 안계시고, 내세가 없으면 얼마나 자유롭게 하겠는가? 그러니 하나님란 존재가 계셔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하나님을 알 길이 어디 있는가? 천지를 창조한 신이 어디 있는가? 그렇지만 그 하나님이 윤리세계를 위해 있으면 좋다는 것이다. 있기를 바라고 요청할 뿐, 실제 있는지는 모른다. 이것이 칸트가 말하는 神觀이다.

윤리의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의 관념의 필요성 때문에 하나님의 관념을 생성해 낸다. 없어도 되지만 윤리생활을 하려면 하나님과 내세와 자유가 전제 되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영혼의 존재도 전제해야 한다. 우리도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지 않는가?
 
어떻게 생겼는가? 그래서 그런 정도의 한계개념으로 인간 필요의 요청으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런 하나님은 현대 칸트철학 이후에서는 자리가 없다.
 
그러니 하나님이 인간에게서 분리되어 있고, 더 이상 알 수 있도록 연결되는 길이 없다. 단지, 하나님이 계시다 하는 것이 무엇인가? 칸트에 의하면 우리 인간이 윤리의식을 갖는 것이다. 칸트가 인정한 유일한 신 존재 증명으로 우리가 윤리의식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 神意識을 갖는 것이다.

그러니 칸트가 현상계와 예지계로 구분하는 것이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Historie와 Geschichte, 즉 달력상의 역사와 의미로서의 역사로 분리되었다. Historie는, 아침에 일어나면 해가 뜬다. 그러면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학교에 가고 피곤하니 저녁에 자고 더 이상은 없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삶이 뭐 대단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요, 달력상의 시간, 날짜의 일일 뿐이다. 그러다가 그 사람에게 큰 轉機가 일어났다. 술을 먹고 늘 방탕하던 사람이 어느날 改過遷善해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살기로 결심했다 하자.
 
그때 그 사람이 새로 시작한 삶은 이전의 삶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선포에 그 사람 마음이 변화되어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물론 해는 뜨고 진다. 밥은 먹고 잠은 잔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살던 삶의 차원은 전혀 다른 차원이 되었다. 정말 그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때의 그 시간은 시간적으로는 짧아도 그 의미에 있어서는 얼마나 귀중한가? 그것이 바로 Geschichte 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분명히 Historie에서 발생했다. 달력상의 역사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달력상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하고 의미없게 생각한다. Geschichte에서 생긴 일로 돌린다. 그걸 구분 못하니 뭐가 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 Historie에서 생겼으면 누구든지 가서 사진을 찍어야 되지 않겠는가?
 
예수 부활을 사진 찍어야 될게 아닌가? 이들에 의하면 사진 찍어둘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부활을 만났는가? 생각해 보자. 불신앙이니까 자유주의자들이니까, 그렇게만 해버리지 말고 생각해 보자. 다 만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엠마오로 가는 길에도 두 제자 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달려갔던 두 제자들 중에 요한은 못 만나고 베드로는 만났다. 같이 갔던 여인들도 막달라 마리아만 주님을 만났다.

지금 현대신학의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는 우리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불트만과 바르트의 이런 역사관이 즉 Geschichte가 그와 같은 의미의 역사라면 불트만에 와서는 새로운 시간의 구분이 생겼는데 현재, 미래, 이 세상, 현재세계는 부조화의 세계이다. 악이 성한 세상이다.
 
 그러나 미래가 오면 자유가 생기는 것으로 인간이 자유로워지고 압제와 탈취로 부터 해방된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이 본래 자기 자신의 인생에로 되돌아가고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자유의 세계에 도달한다. 이런 미래가 불트만의 이야기이다.
 
 전에는 밑에서 위로 생각하던 것이 이제는 앞에서 자유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 앞에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소망을 미래에 두고 미래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그의 역사관과 신학을 전개한다.

계몽주의는 역사적 비평적 방법을 수집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앙의 내용을 권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인간의 자유성에 의해서 판단하게 되었다. 이것은 최근 현대의 역사주의(Historicism)가 그 공헌이 크다 이 역사주의가 등장하기 전에는 그래도 이성의 영원한 진리를 믿었다.
 
그런데 사고가 더욱 역사적이 되고 부터는 모든 시대에 타당한 영구한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다 그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으로 말한 그 진리는 역사적인 시대제약성을 갖고 만세에 타당한 진리가 못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 자연까지도 역사화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도 역사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진리가 그 시대에 타당한 것이라고 해서 지금도 이 시대에 맞는 타당한 진리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귀결에 이르렀다. 그러니 성경이 어떻게 해서 역사적인 문서로 이루어졌는지를 역사적, 비평적 방법으로 탐구하는 것이 역사 비평적 방법이다.
 
이 역사비평적 방법으로는 모든 것이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타당한 객관적 진리라는 그런 지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들은 기독교 계시라는 것도 역사적인 상황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그 시대 상황에서 살피고 과감하게 비판을 시도한다.

또 자연과 하나님에 관한 理神論的 개념은 초자연적 하나님의 개입을 배제하며, 축자영감설의 교리도 다 배제한다. 이것은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무신론이란 논의가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역사를 다스리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참 하나님은 한분 뿐이라고 하는 그와 같은 주장을 반동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부정하는 무신론이 가능한데 그 무신론을 시작하게 하는 그 이론이 소위 理神論 혹은 自然神論이다.

이 자연신론 혹은 이신론은, 하나님이 세계라는 기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세계기계(창조)는 참으로 훌륭한 기계여서 만들 때 그 안에 법칙과 질서와 사물의 본성을 넣었다. 그래서 그것으로 완전해서 신이 더이상 간섭하고 섭리하는 그와 같은 일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라고 하는 큰 기계를 만들어서 저절로 돌아가게 해 놓았으니 하나님은 더 이상 자연의 일에 또 인간세상의 일에 개입하시고 보존하시고 섭리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 만들 때 부터 저절로 굴러가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창조로 부터 또는 인간세계로 부터 하나님의 섭리를 배제하므로 이 역사적 비평적 방법이 본격적으로 가능하게 되는 地盤을 조성했다. 자동기계 처럼 모든 자연은 절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이 들여다 보고 계속 만질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결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인간세계와 그의 창조를 간섭하신다는 그와 같은 주장을 완전히 배격하게 되었다.

이런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계셔서 그 섭리 때문에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있는 역사적인 산물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논리는 잘 안맞게 되었지만 첫째,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神言)과 둘째, 성경을 구분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성경에 보면 귀신의 말도 있고 사울이 신접한 여인들과 대화한 말도 있다. 그것도 하나님 말씀인가? 또 성경 역사서에 보면 다른 것을 인용한 말도 있다. 역사서에 보면 첫째, 사건의 기록이 있고 둘째, 인용이 많다. 역사서 뿐 아니라 여호수아서에도 인용이 있다.

그리고 선지서를 보면 선지자가 받은 멧세지가 기록으로 옮겨가기 전에 계시가 말씀과 환상의 형태로 왔다. 그런데 이 말씀과 환상으로 온 형태가 그대로 성경에 다 기록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단 계시를 수납한 사람의 이해과정을 통과해서 왔다. 그래서 선포된다.
 
그 다음에 기록된다. 그러나 이 기록도 선포될 때 즉각 기록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시일의 간격이 있다. 예례미야의 경우를 보더라도 예례미야가 선포를 했고 그 후에 바룩이 기록을 했다. 그리고 불러주어서 기록한 것도 있다.
 
그러나 처음 계시가 왔을 때 그냥 기록되는 것도 아니고 바로 선포된 것도 아니고 상당한 시간을 두고 기록되었다. 그러니까 처음에 온 계시와 기록간에 상당한 시일과 내용의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동일재생산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계시는 기록된 계시 뿐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특별계시의 범위가 기록된 성경의 계시보다 더 넓다. 왜냐하면 받은대로 다 기록하고 쓴게 하니며 선포된 대로 다 쓴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선지자에게 멧세지가 왔을 때 그대로 동일 재생산이 아니다.
 
선지자의 이해과정을 거쳐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성경으로 기록되었다. 그렇게 되니 이런 과정들 때문에 비평주의자들은 중심 메세지와 나변의 것을 구분하고 하나님 말씀(神言)과 성경을 구분한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진정으로 하나님 말씀이 무엇인가를 찾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러니까 이 성경 기록 속에는 역사서나 선지서의 사건도, 인용도 많다. 그러니 그중 직접 선지자가 처음 받은 계시의 핵심 내용이 무엇이냐를 찾고 그것만 하나님 말씀이라 한다. 역사 비평주의자들(자유주의)은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성경 속에 神言 즉 하나님 말씀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하나님 말씀이 담겨져 있지만 기록된 성경이 모든 하나님 말씀 자체라고 믿는다.

다음 단계로 그것은 성경에서의 기록, 혹은 계시의 이야기고 우리들의 현실적인 설교로 옮아가 보자. 목사들이 고난주간에는 고난주일 설교를 많이 할 것이다. 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면 그것만 읽지 않고 설교를 하고 그 설교를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가? 성경을 이해하도록 우리는 풀어서 설교한다. 어느 것이 진짜 하나님 말씀인가? 성경이 진짜인가? 설교가 진짜인가?
 
성경과 설교가 다 하나님 말씀이라면 설교 듣는이들이 졸거나 또 은혜를 못받는 경우는 어떤가? 선지자들이 말씀을 선포할 때는 선지자가 나라가 망하리라 하면 그 말씀과 함께 나라가 망한다. 지금은 설교후에 “수고 하였습니다”라고 말은 해도 “감사합니다”란 말은 좀처럼 드물다. 왜 그런가? 설교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자유주의가 멀리 있는게 아니다.
 
그럼 설교 내용 전부가 다 하나님 말씀인가?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면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야 되고 또 성령 받고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기쁨과 평안이 생겨나야 된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기쁨의 역사도 일어난다.
 
그런데 왜 냉냉한가? 또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데 교회안에서 하나님 말씀 듣는 사람이나 교회 밖의 사람이나 다른게 무엇인가? 어떤 선교사의 이야기를 빌리면 현재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과 틀린 것이 별로 없다. 구분이 있다면 불신자는 주일날 놀러가고 신자는 교회에 와서 예배하려고 모이는 차이 밖에 없다 하는데 우리가 이미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그동안 교회 부흥 성장 많이 하고 민족 복음화는 많이 했는데 한국사회는 달라진 것이 없다. 그리스도인이 이처럼 많이 생겨났으면 이 사회가 변화되어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별 변화가 없다. 정말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선포했다고 할 것인가?

그러면 선포한 내용이 어디까지 하나님 말씀인가? 또 왜 설교가 하나님 말씀이 되는가 생각해 보자. 왜 은혜를 받는가? 우리의 실제 문제이다. 결코 멀리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자유주의가 아니다. 하지만 실제 방법상에서 자유주의적 요소들을 크게 벗어났다고 할 수 일을런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목사들이 하는 설교에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그 설교 속에 하나님 말씀도 있도 내 말도 있고 잘못이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성경은 설교를 안하고 덮어두어도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하는가?
 
잘 생각해 보자. 기록된 말씀이 있고 선포하지 않아도 말씀으로 역사하는가? 선포해야 말씀으로 역사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설교로 선포한 것 만이 하나님 말씀이다”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록된 자체가 선포된 것이라는 말과 설교자는 안내한 것 뿐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많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역사 비평주의자들은 하나님 말씀과 성경 사이에 구분을 자꾸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 말씀이 성경에 들어 있다면 그 핵심 진리만 분명하면 다른 부분에 오류가 있어도 상관 없다고 하는 귀결점에 이른다. 그러니까 성경을 연구할 때 다른 과거의 문서들 처럼 역사적인 방법으로 연구한다.
 
그래서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유주의의 근본은 그 핵심진리, 즉 하나님 말씀이라고 인정된 수 있는 부분은 믿을만 하고 권위가 있지만 그 나변의 역사적인 사실들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기록된 말씀이 혹은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선포되지 않고도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하는가? 또 사건 전달만으로 역사하는가를 잘 생각해 보자. 그리고 선포된다 해도 어떻게 될 때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하느냐?

여기에서 역사와 신앙의 과격한 분리 문제가 있는데, 가령 판넨베르그가 예수의 부활을 빈무덤으로 말하기 이전까지 우리가 예수의 부활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분명히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 그렇다면 역사적 증거가 있는가? 누가 사진 찍었는가? 제자들 몇 사람 외에 부활자 그리스도를 누가 만났는가? 대제사장이 만났는가, 서기관이 만났는가, 바리새인이 만났는가? 복음서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도 보고가 서로 상충된다.
 
베드로도 부활하신 주를 처음 만났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마가복음도 그렇다. 좀 자세히 반복해서 4복음서를 함께 대조해서 자꾸 반복해서 읽어보기 바란다. 어떻게 같이 일치하고 어떤 것이 차이가 있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는 2천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분명히 믿고 선포해 왔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고 요구할 때 이 세계가 이렇게 변화하여 새로워진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다 신앙인 이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만난적이 없다.
 
대제사장, 제사장, 서기관, 왕이 만나지 못했다. 만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몇명의 여인과 베드로, 엠마오로 간 두 제자, 갈릴리 바닷가의 11명의 제자였다. 그리고 바울에 의하면 그의 동생 야고보에게 나타났고 오백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역사적인 증거자료로 제시할 수 있느냐? 증거가 무엇인가? 빈무덤이 증거인가? 그렇게 설명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자들이 밤중 미명에 찾아가니까 그것이 예수 무덤인 줄 알았더니 다른 곳이었다고 그들의 착각으로 돌린 사람도 있다. 반박할 수 있는가? 무덤에 예수의 시체가 없으니 부활했다고 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부
 
활이 해가 뜨는 달력사건에서 몇월 몇일 몇시에 일어난 사건이면 사진을 찍어야 되지 않느냐고 역사주의자들은 다그친다. 사진 찍을 수 있었다면 대제사장도 천부장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수 있었어야 할 터인데 그러지를 못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자들은 이미 예수를 믿는 자들 이었다. 그러니 신앙의 눈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만났다. 그러면 부활을 대표적인 증거의 사실로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역사적인 사건에 기초를 둘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레싱의 말을 빌리면 “기독교 신앙은 대표적인 사건과 넘지 못할 큰 도랑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그런 문제점 때문에 현대 역사주의자들은 기독교의 역사적인 사건은 부인해 버리고 기독교의 핵심진리만 취하고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 그 진리의 내용, 그것만 붙잡는다.

불트만 이야기도 다른게 아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으니까 예수가 부활했다고 선포한 내용을 받으면 받아들인 사람의 마음에서 부활한 것이라고 한다. 반대로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고 믿으면 부활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니 그 내용을 받은 사람의 마음의 일이지 객관적, 역사적 사실로 실제 부활한 예수에 대해서 알 길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가 사실로, 실제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즉 부활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는 차이가 발생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변화를 부활이라고 한다.
 
그들은 예수가 사실적으로 부활했다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냥 받아들여 믿으면 그 믿음에로 믿는 그 심리 현상에로 부활한 것이다.

레싱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 마찬가지 이다. 계몽주의 이후에 모든 자유주의 근본이 그렇다. 그런데 2천년 동안 교회는 부활을 선포해 왔다. 그러니 이들도 같은 용어를 쓰기 때문에 우리도 쉽게 받아들인다. 예수 자신이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했다 하나님 아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대제사장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처형했다고 한다.
 
 나사렛의 예수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대제사장들이 받아들였으면 처형하지 않았을 것인데 거부했으니까 처형했다고 한다. 여기서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경륜 때문에 돌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들은 단순히 안죽을 수도 있었는데 영웅적인 죽음으로 혹은 실패로 본다.

 

 1919년 이후


슐라이허막허가 전통적인 신학을 180도 회전시켜 놓았다. 하나님 말씀에서 인간의 감정으로 초월해 계신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에서 인간의 체험내에 들어온 하나님으로 전환 시키면서 인간의 종교감정을 모든 신학과 종교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러니까 신학이 하나님에게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시작하여 인간을 통해서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오게 되었다. 主語도 述語도 마지막 目的도 모두가 다 인간이 궁극적이 되어 버렸다. 神學은 人間學 외에 다른 것이 못되게 되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모두가 인간의 감정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슐라이허막허는 개신교 전통에서 나왔다. 루터의 종교개혁 때 큰 중생의 체험, 그것이 합리주의 교의학인데 그 반박으로 모라비안파의 경건주의로 나왔다. 결국 루터에 의해서 계속되었다. 그것이 다시 웨슬레에게 넘어간다. 웨슬레도 영국교회를 떠날려고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칼빈주의 예정론을 배척하고 선행에 이르는데 좋게한 예정에 이르는 선행의 강조를 많이 했다. 그리고 웨슬레가 갔던 그 신앙의길로 감리교회가 가고 있다. 그것이 알미니안 신학과 합세를 해서 미국의 부흥운동이 되고 성결운동이 되고 오순절운동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멀리 있는 알미니안은 배척하지만 오순절운동은 좋아한다. 교회를 부흥시켜 주기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는데, 웨스트민스터 신앙이 되었든지 알미니안에서 왔든지 알 바 아니요, 교회부흥이라는 결과만 좋으면 좋다는 태도가 아니겠는가?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서 만나는가? 깊은 산으로 가서 만나는가? 큰 기도원에서 만나는가? 금식기도를 하면 거기서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시는가? 언제 어디서 만나는가? 회개하고 중생할 때 만나지 않는가? 일반적으로 어디서부터 하나님을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우리 민족은 경험을 강조한다. 중생의 체험이 있고 특별한 은사체험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우리 개신교는 한결같이 중생의 체험을 강조한다. 하나님 만나는 자리가 어디인가? 중생 때 만나지 않는가? 중생하므로 오는 그 기쁨, 뿌듯한 느낌, 온 천하가 콩알만큼 작아져 보이는 그 느낌, 거기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러니까 개신교가 출발점으로 한 그것으로 슐라이어막허가 돌아온다.

이상과 같은 질문을 따라서 가다보니까 출발점이 하나님에게서 인간의 감정으로, 인간으로, 내 체험으로 간다. 그리고 인간으로 시작하여 인간을 거쳐 마지막 결정도 인간이 내리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의 종교심이, 인간의 그 종교성이 모든 物의 근원으로 삼게 되었다.

그런데 칼 바르트는 그것을 180도로 다시 역회전 시키는 일을 시도했다. 본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Deusditit)는 데로, 하나님 말씀하신 데로 되돌아 간다. 그럴 때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할 때 우리와 같은 내재해 있는 그런 분이 아니다.

 

그러나 바르트의 하나님도 우리와 구분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제까지 우리가 해 오던 윤리, 즉 우리의 인간성을 잘 개발시켜서 나아가는 그 윤리, 그 윤리가 무엇인가? 서로 사랑하는 것, 법도 좋지만 사랑이라 하여 하나님을 그 윤리, 즉 사랑과 일치시킨다.

 

전쟁하지 않고 권력자들이 자기만 살려고 하지 않는 그런 사랑이 실현되는 사랑의 길을 목표로 한다. 그러니 기독교의 윤리도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초월적으로 주신 계시가 아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종교가 목표한 길이 무엇인가를 사랑의 길에서 찾는다. 사랑의 길에 하나님이 붙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문화에 대해 우리가 어찌해야 되는가? 간음하면 되는가? 그러면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 문화가 그렇게 규정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윌커스의 “십자가와 깡패”란 책에 보면 창녀로서 마약을 사용하던 여자가 성령의 역사로 변화되어 신학을 하고 결혼을 해서 목회일을 했다. 깨끗한 숙녀가 되어, 미국사회의 중류 이상의 사회가 바른생활의 법으로 사는데 거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전에는 깡패 소굴에서 창녀로 마약을 쓰고 술을 마시고 타락했는데 변화했다. 윤리가 그를 변화시켰다고 한다. 그 윤리는 하늘에서 왔는가? 아니다. 우리 문화가 그러면 안 된다고 해서, 그 윤리에 의해 변화된 것이다 라고 하여 문화의 영역과 기독교 윤리와 동일시 취급한다.

지금 자유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님도 자유주의자들에 의하면 그들이 제시하는 윤리와 다른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서구가 지향하던 그 이상적 문화와 하나님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과 문화, 즉 윤리는 한 동일선상에 선다.

 

하나님은 단지 인간의 문화, 즉 이상세계를 말하는 대명사에 불과하게 되었다. 실제로 계신 분도 아니며 우리와 상관 없고 이상을 이루는 표어에 불과하다.

그러니 칼 바르트는 슐라이어막허의 내재주의를 때려 부수기 위해서 하나님을 전적인 他者로 해야 했다. 그 분은 그냥 우리 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밖으로 부터 말씀으로 오셔야 한다. 와서 우리의 소유가 되면 또 내재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일을 이루는 것을 부인하고 다만 밖에서 위기의식만 일깨우고 떠난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가지며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가 아닌가? 바르트의 주장에 의하면 말씀하실 때 거기에 계셔서 순간적으로 말씀하시고 그것로 심판하신다. 그 말씀이 와서 우리의 소유가 되면 다시 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선적인 타자로 보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주장한다. 이런 말씀은 순간적으로 반짝하는 불꽃이고 계시의 말씀은 아니다.

바르트에 의하면 성경과 계시가 일치하지 않는다. 다만 성경은 과거 계시사건의 기록일 뿐이다. 과거 계시사건의 기록은 그 사건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신문에 어떤 사건이 생겼으면 그 사건기록을 보고 사건의 전모를 쉽게 안다.

 

그렇지만 바르트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인간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그때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분명히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섰다.

 

그러나 그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 말씀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할 때 Diebibelist의 ist가 하나님 말씀과 성경의 等値의 의미가 아니라 ‘된다’는 뜻이다. 그냥 ‘ist'는 ’이다‘란 뜻인데 바르트가 사용하는 ist의 의미는 그냥 등치가 아니라 말씀이 된다는 의미에로의 ’이다‘로써 하나님 말씀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하나님 말씀이 되느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때 우리에게 비로소 하나님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설교 문제와 생각해 보자. 우리는 바르트를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에 있지만 그러나 바르트가 그냥 허공에서 만들어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늘 읽어도 잘 깨닫지 못하다가 훌륭한 말씀의 설교를 듣고 그 말씀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은혜를 받았다고 감사를 표한다. 그러면 은혜를 받았다고 할 때 어떻게 은혜를 받는가? 그 은혜 받았다고 하는 말을 하는데 어떤 뜻인지 잘 생가해 볼 필요가 있다.

바르트는 성경에 있는 인간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하나님 말씀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설교가 성경의 핵심을 전달할 경우에 하나님이 함께 말씀하시므로 하나님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을 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영향력을 미친다고 한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 옛사람이 죽고 그리고 새사람이 산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십자가의 권세로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다고 믿는다. 사실 믿을 때 원리적으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된다. 그러나 옛사람이 다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옛사람과 새살람을 시기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을 역사적으로 시간상에 줄을 그어놓고 명확하게 구분하여 말할 수 있는가? 물론 옛사람과 새사람을 나누는 분기점을 시간적으로 정할 수 있다.

 

그 전에는 옛사람 뿐이었는데 예수 믿어서 그 순간에 새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제라고 규정하기는 불가능하다. 옛사람이 다 없어지고 새사람만 현재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안에는 옛사람과 새사람이 동시적으로 역사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옛사람이 죽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심판의 선포로 믿고 그래서 내 죄를 사죄해 주신 것으로 믿고 받아들이며 그 십자가의 권능이 내 옛사람을 처형했다고 믿음으로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내게 큰 역사가 온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믿는 바와 같다. 그러나 이런 주관적인 십자가의 효능은 이미 하나님의 경륜안에서 객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바르트는 이것을 부인한 채 결과 만을 보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것이 하나님 말씀이 된다고 말한다.


바르트의 주석은 변증법적이라고 한다. 여기서 변증법적이라고 할 때 이 말은 하나의 진술이 진술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동일하게 역 진술이 가능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골의 변증법에서 빌려 왔는데, 사실 우리가 갖는 신학적 진술은 역설적이지 종합할 수 없다. 헤겔처럼 무엇이든지 두루두루 뭉치면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그런 것이 되는게 아니고 역설적이다.

가령 우리가 계시자 혹은 성육신을 생각해 보자. 성육신은 하나님의 사건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다. 무한하신 분이 어떻게 유한 시공세계에 공간으로 들어 오실 수 있는가? 들어 오실 수 없지 않는가?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무한하신 분이다.

 

그런 무한하신 절대자가 유한세계에 들어오시는 것이 성육신인데, 어떻게 유한이 무한을 붙들고 있을 수 있는가? 종교개혁의 전통적인 명제 중의 한 원칙이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인데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 절대자가 어떻게 상대자의 속에 오시며 그 영원하신 분이 어떻게 시간내에 들어 오시는가? 하나님은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여인의 몸으로 들어 가시는가? 우리는 전통적으로 당연하게 믿어왔는데 이런 기독교의 진리는 모두 역설적이다.

내게 있어서도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이 하나님이 여인의 몸으로 들어 가셨다는 이 진리이다. 그러니 바르트는 어떻게 그것을 하나의 문장으로 바로 말할 수 있느냐? 그러니까 부정되는 문장이 동시에 와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변증법적이다.

그러면 우리의 경우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 지성으로는 안된다. 그러니 신앙으로 신앙의 도약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이 역설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의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이요, 핵심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이 되시는가?

 

 어떻게 무한자가 유한자가 되시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감추어지셨지만 계시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혹은 자기의 뜻을 계시 하시니까 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본성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우리에게 알리셨다. 그것이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가 계시 하셨으니까 아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바르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러면 다 알 수 있는가? 만일 다 알 수 있다면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계시를 그친 것이라고 반론을 편다.

 

그리고 “하나님이 더 계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 계시했으면 하나님이 계시를 그친 것이고 그 귀결은 하나님이 이 현상계의 사물의 하나가 된다”라고 역진술을 하면서 우리가 믿는 근본 진리를 뒤엎는다.

 

사실 하나님은 자신을 자세히 알리셔도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그것이 하나님의 不可解性인데 그것도 인식론으로 생각해 보면 또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不可解性을 늘 말하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다고 할 때 어떻게 아느냐고 하면 이것은 사변적인 문제가 된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후계자 멜랑톤(Melanchton)이 유명한 말을 했는데 그것이 멜랑톤 이후 독일신학을 지배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 본질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사역을 앎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성육신하시고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본질 자체를 알 수 있는 것이냐?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했는데 언제 제자들이 그의 영광을 보았는가?

내가 리델보스(Herman Ridderbos)와 이야기할 때 그 내용을 한번 토론해 본적이 있었다. 불트만 학파에서는 부활의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언제 그 영광을 보았겠느냐고 물었는데 리델보스도 예수님 在世기간에 다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부활전 사건을 가지고 말해야 바르지 않느냐고 반문했더니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러니 바르트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자신을 계시하셨지만 백성들은 알지 못했다. 더구나 부활체를 보이신 것은 누구에게나 보이신 것이 아니고 믿는자들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시고 타인에게는 은폐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식과 우리의 지식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은 무한하다고 신학을 배워서 안다. 그러나 무한이 무엇인가? 또 하나님은 영원하다고 배운다. 그러나 영원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단순하다고 할 때 단순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여기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고 유기되엇다고 말했는데 그런 逆陳述은 완전히 辨證法的 思考이다.

바르트는 우리가 믿는대로 일부가 선택되고 일부가 유기되었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 바르트의 선택교리는 어떤 사람의 말대로 찬란한 빛 뿐이고 바르트는 유기가 없다. 칼빈주의 같은 일정한 수가 선택되고 일정한 상당수가 유기되는 그와 같은 빛과 어두움이 동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빛만 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에게서 유기 되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인류는 유기 되었다.

 

 주님은 “엘리 엘리 람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하고 십자가 상에서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단 하나의 대표로 하나님에게서 유기 되었으므로 모든 인류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가 유기 되므로 유기됭ㅆ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선택하셨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모든 인류가 선택되었다고 한다.

 

바르트에게는 선택 뿐이고 유기는 없다. 그러니 만인 구원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화해론이 바르트에게서 나온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모든 인류의 인성이 귀한 값을 가지고 앙양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처럼 천당갈 사람과 지옥갈 사람이 나누이는 것이 아니라 한 밝은 빛 뿐이어서 선택 뿐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Yes와 No로, 십자가에 못 박으셨으나 다시 부활시키셨다. 버리셨으나 다시 선택하셨다. 그러니 Yes라 한다.

그리고 죄인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고 그러면서도 죄인이라 한다. 이것은 루터가 한 말인데, 루터는 우리 인간은 의인이자 곧 죄인이라 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함을 받았다(Dustus Sum et peccator).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은 면에서는 의인이지만 우리 자체로는 죄인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면 기독교신학은 역설적으로 전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런 역설적인 면을 바르트는 변증법적으로 끌고간다.

 

그리고 Yes와 No에 있어서 마지막은 No로 기울어지면서 결국 부정적인 면으로 기울어진다. 그리고 계시라고 하는 것은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원칙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말을 들으신 것이 아니라 의인의 말을 들으신다고 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면 죄인에게 말씀하실 수 없다. 그렇지만 죄인에게 계시가 이르러 온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죄때문에 못오셨는데 어떻게 죄인에게 오실 수 있느냐?

 

그런데 성육신으로 오시고 계시가 이른 것을 보아서 우리가 의인이라는 것을 안다고 한다. 이런 변증법적 모순으로 진리를 결정하려는 것은 결국 기독교의 복음진리를 파괴하는 귀결에 이른다.

이제까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내재였는데 바르트는 그 반대극인 하나님의 전적인 초월을 말한다. 그러니까 완전히 우리와 같은 존재여서 이제 전적인 他者로, 하나님을 우리하고는 무한한 질적인 차이를 갖는 그러한 존재라고 한다. 바르트의 초월성은 우리의 사물중에 하나처럼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형태로 계시되는가? 사람형태 인가? 관념의 형태로 계시는가?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세계내에 있는 어떤 대상을 다루듯이 결코 대상으로 취급할 수 없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우리는 들어야 되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무엇을 논한다는 것은 그것을 대상으로 다룬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그런 분으로 생각할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은 말씀하시며 그 말씀을 듣고 말씀을 건낼 수 있는 분이지 결코 사물처럼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그러니까 바르트는 성경도 마찬가지여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그것이 현상계 내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게 못딘다. 만일 붙잡으면 벌써 하나님 말씀이기를 그친다. 그것은 우리가 말슴을 붙잡는다면 우리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타자로 생각하듯 그의 말씀(계시)도 우리의 논의의 대상이 못된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오되 탄젠트(Tangent) 형식으로 온다. 그래서 그림에서와 같이 A란 점에서 만난다. 그러나 B 지점 같이 안으로 오지는 못한다. 안으로 들어오면 그것은 우리의 소유가 되기 때문에 그때는 벌써 우리가 그 말씀을 어거하고 조종하게 되기 때문에 말씀이기를 그친다.

 

그래서 자유주의나 보수주의나 다같이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소유했다고 하는 자들은 “복된 소유자들”(Possident beati)이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하나의 대상으로 우리의 것으로 다룰 수 있을 만큼 들어와 버리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 말씀이 말씀되기를 그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말씀이 수직으로 오시는 오는데 그 경우 말씀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탄젠트 형태로 오는데 그때는 반드시 심판으로 온다. 질적으로 우리와 전혀 다른 분이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하실 때는 우리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심판주로 오신다. 그것을 받아들이며 그것이 곧 의미로서의 역사, 즉 부활이라고 한다.

어떤가? 우리의 설교가 심판하는 설교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못 만나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설교가 교인들이 그저 들어도 좋은 정도로, 그저 통상 쓰는 용어로 은혜되는 정도가 아닌지...? 진짜 하나님을 만나면 통회하고 애통하고 할텐데 그런 것이 없고 “그것 들어서 좋다”, “교회 올만 하다”는 반응이다.

 

그러니까 자유주의는 성경에 하나님 말씀이 들어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내는 것이 자유주의의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칼 바르트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바르트는 그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이 된다고 한다. 그럴 경우는 위에서 직접 말씀하시는 형태로 와서 심판한다고 한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전적인 타자로 항상 주체로 계신 분이지 우리의 대상이 되실 수 없는 분이다. 그러니 우리가 소유하고 어거할 수 있는 존재가 못되는데, 그런 존재를 우리가 말해야 되니까 항상 역설적인 진술 밖에는 못한다.

 

무한한 존재를 유한한 말로 해야 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말씀하실 때는 위에서 직접 순간순간 말씀하신다. 말씀이 우리의 시공내로 들어와 버린 것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음대로 어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소위 하르낙(Harnack)과 빌레몬 헤르만(V. Hermann)등 유명한 바르트의 선생들에 의하면 성경 속에서 비평적 방법으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가장 확고한 예수상을 건설하는 것이 바르트 이전까지의 자유주의 신학의 목표였다.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신앙으로 착색되지 아니한 예수상을 구체적으로 믿을 수 있는 재료들을 모아가지고 정말 예수가 어떤 존재인가를 구성해 내는 것이 그들의 과제였다.

 

그 방법으로는 역사적 비평적 방법들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는 예수상을 건설하는데 복음서에서 핵심되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래서 가장 정확한 신뢰할 만한 예수상을 건설하는 일이 주 과제였는데 불트만과 함께 바르트는 전적으로 이것을 배척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는 그들의 신학이론 때문이다. 이미 설명했지만 하나님의 계시, 즉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속으로 혹은 시공내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원의 외부의 한 점에서 탄젠트 식으로 만나고 지나간다.

 

그 순간 위에서 부터 직접 심판하는 형태로 오는 것이지 그것이 우리의 소유가 되도록 오는 것이 아니다. 이에 근거헤서 한 예수상을 건설하는 시도가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만일 역사적인 사실들에 의해서 예수상을 건설해서 신앙한다면, 예수가 어떤 존재인가를 믿을 수 있는 여부를, 역사가 결정하게 되고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믿는다 해도 역사가 믿을 수 있는 재료들을 다 모아서 정리하여 완전한 예수상을 만들어 놓기까지 우리는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키에르케골이 말했는데 그것을 그대로 이들이 말한다.

이러한 역사주의는 예수가 진짜로 부활했는지의 여부를 역사적인 사실에 의해서 받아들이려면 역사가 정확한 검증을 해 가지고 사실을 구성해야 한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역사가의 손에 우리의 신앙이 결정되고 좌우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믿음의 도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못되게 된다. 그 이유는 역사는 과거의 사건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이 역사가 결정한 역사적 사실에 의존하기 때문에 죽고 사는 사활의 문제가 못되게 된다. 만약 다른 역사가가 다른 이론을 내세우면 회의주의에 빠져 버린다. 그러니 바르트에게는 역사적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의 선생 빌레몬 헤르만과 하르낙 등에 의해서 20세기 초엽에 역사적 예수 탐구가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반동으로 후기 불트만 학파에서 새 역사적 예수 탐구가 나왔다. You quest historical Jesus.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새 탐구 혹은 새 물음”. 왜 여기 You가 붙었는지 이 배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바르트는 신앙의 역사는 역사적 사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에게 임해온 하나님의 음성은 아브라함 만이 받았고 그에게만 죽고 사는 명령이었지 다른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의 믿음의 도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변증학파 불트만이나 바르트는 역사를 둘로 나눈다. 믿음은 지식에 의거하거나 역사적인 사실에 의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 만으로 되엇으니 구원에 이르는 것은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역사적인 예수 지식은 상관이 없아는 것이다. 그래서 Historie와 Geschichte 둘로 나누는데 Historie는 달력의 역사로써 해가 뜨고 지고 그리고 우리가 일어나서 세수하고 법먹고 출근하여 일하고 웃고 울고 싸우고 다투고 즐거워하고 좋은 음식과 좋은 환경과 욕망을 충족하므로 만족해하는 달력상의 일기장의 역사를 말하는데 그런 인간사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생에 큰 삶의 轉機가 일어났다. 그가 죽을 병에 들었다. 죽을 병이 든 사람에게 고급 자동차나 절세 미인이나 좋은 불갈비며 하려한 권세나 명예가 무슨 가치와 의미가 있는가? 모든 것이 다 허무로 떨어진다. 그 불치의 병으로는 그 고통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물론 세상에 견디기 힘든 일이 많지만 그래도 힘든 것은 육체적인 고통 같다.

 

병으로 오는 고통 시자가 예수의 고통은 마취주사도 없이 당했는데 그래도 로마 군인들은 인정이 있어서 어떤 성경에는 쓴 쓸개즙을 탄 포도주를 주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일종의 마취제이다. 그들은 너무 예수의 고통이 크니 마취를 시키려고 했다.

 

예수는 거절하셨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조직이 무너져 내리는 그 고통, 정말 힘들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내가 지금까지 잘 살려고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망하던 삶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죽음 앞에 모든 것이 허무로 떠내려 가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때 부터 얼마동안은 물질과 탐욕에 연연한데서 벗어나서 선한 생각을 하며 자기 본래적인 삶에로, 인간적인 본래의 심정으로 되돌아 온다.

 

이제까지 인색하던 생각을 버리고 나누어 주기도 하고 다 그런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그런다. 죽음을 앞에둔 사람의 生과 돈을 모으려고 아둥바둥하는 生과는 그 의미에 있어서 같은 生이 아니다. 시간의 의미나 인생의 가치가 같은 것이 아니다. 바로 그런 가치있고 의미있는 생의 역사를 가리켜서 Geschichte 라 하는데 독일어 밖에 이런 구분의 단어가 없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으로 발생되엇느냐 하는 것은 의미 없으니 부활했든지, 神話가 되었든지, 거짓이 되었든지, 있든지 없든지 상관할 바 아니고 그 부활의 의미를 받아들여서 내가 기쁨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고 평안이 오면 되기 때문에 구태어 빈무덤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그 안에 오류도 많이 있고 고대 동방 종교들의 神話들도 많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하나님 말씀이 된다고 하니 그는 현대주의자 이다. 그러니 바르트에 있어서는 글자 하나에 오류가 있고 없고에 죽고 살고 따질 필요가 없어진다.

 

나는 죽고 살게하는 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여러분은 어던지 모르겠다. 그러니 성경도 오류가 있는 인간의 책이라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할 때 그것이 내게 神言이 되니까 성경 자체에 오류가 있느냐 없느냐, 어느게 진짜냐 가짜냐를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는 옛날 자유주의자들도 옳은게 아니고 보수주의도 옳은 것이 아니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 계시를 전적인 他者로 강조한다.

바르트의 눈에 자유주의자들 까지도 옳은게 아닌 것은 성경을 하나님 말씀이요 계시의 문서라고 마음대로 비평적 방법으로 쪼개고 나누고 어거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바르트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을, 계시를, 전적인 他者로 하여 하나님 말씀을 성경책 하고 일치시키는 데서 떠나서 분리 시켰다.

 

그런 의미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했어도 결국 계시가 성경으로 형태화 하여 나타나지 못하게 막는다. 만약 계시와 성경을 일치하지 않고 분리하면 성경은 인간의 심리의 결정으로 끝나고 만다. 그래서 결국 바르트도 근세주의자 이다.

그러면 성경이 성경 계시로써와 하나님 말씀이 된다는 것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인데, 어떤가? 어디를 읽으면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할 것인가? 일본에서 강도가 성경을 읽다가 손이 범죄하거든 찍으라는 말씀을 읽고 손을 찍었다는 예가 있다.

 

그러면 그런 말씀은 현실적이어서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했다고 한다. 도적질 하던 자가 그때 그 말씀이 임하니 말씀의 큰 세력을 행사하여 손을 찍게 했으니 하나님 말씀으로 역사했다고 했다.

바르트는 항상 진리가 변증법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바르트에게는 진리가 항상 명제 형태로 오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결국 진리의 개념만을 가르친다. 본래 진리는 그 말의 진실이 사실과 일치해야 되지 않는가? 말이 한가지 진술을 했어도 그 다음 반대되는 부정적인 진술로 보충되게 되면 주된 사실과 맞지 않는 것이라고 Harvie M. Conn이 비판했는데 그도 단순하게 비판하고 있다.

변증법적 방법으로 이해하면 하나님을 전적인 他者로 강조하니까 계시하셔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그러면 결국 알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나님과 무한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혹은 계시)을 결국 알 수 없다는데 이르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본질에 대해서 다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그 사역을 보고 아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서 계시된 만큼은 바로 아는 것이 확실하다.

계시를 Geschichte 영역에 넣으면 우리 기독교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종교인데 역사적 사실이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으면 기독교가 기독교로 존립할 수 없다. 그러니까 항상 내재론의 신학자들 처럼 하나님의 말씀계시를 마음대로 조종하고 가르치는 것을 교정하려는 시도는 그런대로 인정할 수 있지만 부활을 Historie 달력상의 역사에서의 일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실존주의 線의 영역의 일로 하면 기독교가 서있는 그 기초가 상실된다. 결국 기독교를 허는 일이 된다.

이제 신정통주의가 독일을 넘어서서 세계에 퍼지고 일본이 특히 열열하여 한국에까지 건너 왔다.

Karl Barth는 계시가 수직으로 와서 시공내에 한 사건이 되지 않는다. 특히 성경계시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이고 특별히 고난주간 부터 부활후 40일간 까지의 사건이라면 성경은 그 사건을 기록한 증거들, 기록이고 증거물이다. 성경, 그 자체가 계시가 아니라 혹은 지시봉이라 한다. Karl Barth는 성경 자체가 계시 자체라 하지 않는다.

 

성경은 계시사건을 지시하는 지시물에 불과하고 증거물, 기록 뿐으로서 다만 계시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후 40일을 회상하게 하는 보조물이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 말씀이 되느냐? 그것에 대한 하나님 말씀이 위에서 내려와 성경을 통하여 증거하는 그 십자가 사건과 일치할 때 비로소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 된다고 한다. 혹은 하나님 말씀으로 쓰였다고 한다.

브룬너도 마찬가지 진영에 있기 때문에 브룬너에 있어서도 계시는 둘의 만남이다. 만남 없이 무슨 사건이 생겼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야 별 연애경험도 없이 만나니까 만남의 의의가 별 의미가 없지, 소설들을 읽어보면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날 때 얼마나 큰 사랑의 사건이 연출되는가? 둘이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만나 대화하는 사건이 계시라 하여 계시가 객관적으로 와 있는 것을 부인한다. 신정통주의자의 눈에는 객관적으로 와 있으면 그것은 전통적인 자유주의가 되고 보수주의가 된다.

 

그러니 변증법적 신학자들의 눈에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다 같이 보인다. 이는 다 같이 하나님의 말씀, 계시를 소유했다고 하며 성경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었다고 하고 보수주의자들은 성경이 계시 자체라고 하기 때문에 Karl Barth는 이를 둘 다 배척한다.

Karl Barth는 계시 곧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냐 할 때,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 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神人의 구속이 이루어졌는데 구속의 궁극이 무엇인가? 神人의 연합이다.

 

그러면 Karl Barth의 그 다음 단계는 계시, 즉 하나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보다 더 올라간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인연합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계시는 전부 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 특별히 부활부터 40일간이 계시의 사건이라 한다. 죄도 예수 그리스도아 연관해서 생각한다. 사람이 언제 죄인임을 아는가? 예수 믿게될 때 안다. 그러면 죄의 문제가 어찌 되었는가? 이미 해결되었다. 예수를 떠나서 죄를 아는가? 모른다. 예수를 만날 때는 이미 예수안에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버렸을 때 이다.

 

그러니까 예수 믿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Karl Barth는 자연계시를 인정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난 특별계시 뿐이다. 우리에게는 받을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변증법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이시다.

 

그런데 사람이 되셨으므로 정반대가 되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기를 포기하고 사람으로 존재하다가 부활하므로 다시 하나님의 존재로 되돌아간다. 그러니까 우리처럼 단순하게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반대극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칼세돈 신경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兩 本性이 혼합없이 변동없이 분리없이 분별없이 계시지만 Karl Barth에 의하면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는 정 반대극이 된다. 그러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Karl Barth에게는 성육신이 없다.

Karl Barth에 의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써 높으시다고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러니 하나님이 성육신해서 그 반대극으로 완전히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다시 높아지신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높으신 것은 의당한 것이라 하니 이것은 칼세돈 신경에 전적으로 배치(背馳)된다.

 

그러나 Van Til이나 Harvie M. Conn이 잘 모르고 성육신을 인정해 주는데 변증법적인 신학자들에게 실제로 성육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변증법적으로 있는 것이지 실제로 성육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Karl Barth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인류의 인간성 자체를 높이셨다. 그리고 높이 보시되 하나님이 성육신 하시므로 그 인간성을 그 전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앙양시키셨다. 그러니 인간성 자체가 존귀하다. 그것은 그 인간성에로 하나님이 인성을 입으시고 성육신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의 언어사건일 뿐 실제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인성이 얼마나 하나님께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존재인가? 그가 나치를 반대하고 그 탄압을 반대할 때 바로 이 교리를 내세웠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다 유기되었고 또 다 선택되었다.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유기된 자이고 선택된 대표자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안에서 유기되어 지옥 갈 자가 아무도 없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큰 구원에 이른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사랑이 크기 때문에 모든 인류를 다 그 사랑이 포용하신다.

 

그래서 다 구원을 얻는다. 그러므로 전도할 필요도 별로 절박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가 모두 다 그리스도안에서 구속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자와 불신자를 나누어서 적대시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니까 그 회해교리가 한국에도 도입되면서 부터 화해하자 해서 화해교리가 유행했다. 그래서 죄악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술 마시지 않고 담배 안피운다고 선을 그어놓고 그것을 적대시 하느냐?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라고 한다.

흔히 Karl Barth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역사의 한 지점에서 진노가 공의로 건너감이 없다. Karl Barth에게는 타락도 마찬가지 이다. 에덴 동산이 어디 있는가? 성경에는 동쪽에 위치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면 동쪽이 어디인가? 우리가 볼 때는 메소포타미아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발원하는 어느 지역으로 본다. 지금도 두루도는 화염검으로 지키는가? 볼 수 있으려면 땅에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안 보이니 땅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회수시켰다고 하는데 언제 회수 시켰는가? Karl Barth에 의하면 에덴은 지도상의 한 지점이 아니라고 한다. 성경의 명확한 지점이 없다. 그러니 Karl Barth는 에덴동산은 지도상에 점을 찍을 수 있는 지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타락도 지구상에 한 점을 찍고 하루 이틀을 셀 수 있는 역사상에 일어난 실제사건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분명히 우리 기독교는 역사상에서 생긴 사건이라고 믿는다. 아담의 존재를 역사적인 인물로 인정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는 꼭 인정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럴 필요성이 없어져 버린다.

내가 그 문제를 가지고 암스텔담에서 토론할 때에 하나님께서 노아홍수로 에덴동산을 쓸어버리셨다 했는데 그것도 증거는 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낙원을 홍수로 헐어 버리셨다. 그런데 Karl Barth에 의하면 역사상 원죄 상태에서 타락으로 넘어간 그런 것이 없다. 타락은 Geschichite 의미로서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실제 Historie 사건이 아니다.

Karl Barth가 그렇게 훌륭한 신학책을 많이 내고 성경신학을 많이 했어도 Karl Barth 신학으로 교히가 새로워지지 못했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평이다. 재래신학과 Karl Barth 신학의 차이점이 있다.

 

재래신학을 보면 성경만 인용해 놓고 말지만 Karl Barth의 조직신학 책의 다른 점은 주석을 실제로 해서 자기 신학을 전개하니 책이 방대해졌다. 그런데 문제점은 누구는 선택되게 하고 누구를 유기되게 할 수 있느냐? 아직 그들은 선택된 것을 모르고 있는 것 뿐이라 한다.

 

그러니 그것만 선포하면 된다는 것이다. 결국은 전도할 필요성이 없어진다. 있다 해도 소극적이다. 있다면 그 큰 사랑과 선택을 알려주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들로 선택된 자들로 깨우쳐 살게 하는 것 뿐이다.

 

그러니 Karl Barth는 역사상에 하나님의 진노가 자비로 넘어가는 시점이 없다. 그의 선태가 유기도 마찬가지 선으로 구분할 수 없다. 그러니 선택교리만 있다. 밝은 빛만 있지 배면에 어두움이 없다.

Karl Barth가 계시를 강조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게 아니라 만남이라고 한다. 언제 만나는가? 매 순간 만난다. 성경이 그 자체로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선포될 때 내 심령에서 내 존재 깊이에서 만나면 하나님 말씀이 된다. 만남, 대면, 대하로 된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명제형태로 계시가 오는 것이 아니다. 문장형태로 계시가 오는 것이 아니다. 계시가 내게 사건으로 와야 계시가 된다고 한다.


神話(Myth)와 史話(Saga) 즉, 전설은 다르다. 불트만이 말한대로 神話는 이 세계의 일을 저쪽 세계의 일로 말하는 것, 혹은 神의 일을 인간의 일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불트만은 칸트가 설정한 두 세계의 일을 충실히 한 사람이다.

 

그래서 저 초월의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어디 초월의 세계의 보좌에 앉아 계시다가 우리에게 오셔서 여인의 몸에 들어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 피가 무슨 마력이 있어서 죄를 씻겠는가?

그런데 전설은 완전히 역사성을 결여하지는 않는다. 상당히 많은 경우 역사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이 본래 우리의 인간구조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바꾸어 투사한 것, 그것이 전설이고 Saga라 한다.

 

그러니 에덴동산의 첫 조상의 타락 같은 것도 역사적인 시점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까 원죄라고 하는 것도 칸트의 말처럼 우리에게 있는 근본악을 말하는 것이지 실제로 어느 시점에서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으로 전이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같은 것도 Karl Barth에 의하면 실제로 그 큰 구속은 神人의 연합이고 하나님과 合一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변증법적 성육신은 그 일을 위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면 실제로 Karl Barth는 솔직하고 단순하다.

 

 동정녀 탄생을 못 믿으니까 전통적인 성육신을 못 믿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Karl Barth에게 성육신이 있는가? 변증법적으로만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부터 선재해 계셨다는 그런 것은 하나님께 두 神의 교리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와 구별된 第二位格, 혹은 인격으로 선재해 계셨다고 하는 것은 Karl Barth에게 있어서는 神話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사변적으로 생각하면 머리가 멍멍하고 해결할 길이 없다.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에 늘 매어 있어야 할 것이다. Karl Barth 신학의 용어들은 다 반복을 하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 그러니 그런 것들은 사실을 혹은 실제를 지시하는 지시물이다. 예를 들어 타락이나 아담의 원죄 같은 것은 우리의 인간 본래의 구조를 말해 주는 것 뿐이라 한다.

 

그러니까 창세기 3장 같은 것도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 지식과 하나님의 경배란 제목으로 Karl Barth가 사도신경 강해를 했다. 그때 한 질문자가 질문을 했다.

 

낙원에서 뱀이 말한 것이 발생했느냐? Karl Barth에 의하면 그것이 역사적인 어느 시점에서 타락이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뱀이 말했다는 것이 무슨 의의가 있는가? 계속 Geschichite 이야기를 했을 터인데 청중들이 너무 단순했고 못 알아들은 것이다.

 

타락이 Geschichite에서 의미상 생겼지 우리사는 Historie 이런 역사상에서 사진 찍을 수 있도록 타락이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질문을 하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성경말씀에 부착하지 않고 사변적으로 이야기 하려면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설교에서 이와 같은 어려운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해서는 참으로 어렵다. 성경적으로 제시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의 권위로 가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 있도록 해야 한다.

Karl Barth는 모든 계시가 그리스도와 연관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연계시를 소홀히 하고 도외시 한다. Karl Barth는 자연계시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연계시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 왔다. 그리고 창조자체에서 하나님께로 갈 수 없어도 거기에 모든 계시가 나타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이 강조한 특별계시가 정점에 이르렀는데도 모든 것을 은혜화 해 버리니까 자연신학이 Karl Barth에게 흥한다. 변증법적으로 말하니까 요한복음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림을 영화로 생각했다.

 

십자가가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제일 치욕의 극치인데 요한이 그것을 영광으로 보았다. 그래서 Karl Barth도 예수의 수난을 변증법적으로 본다. Karl Barth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사람이 되신 그런 성육신이 없다. 실제 사건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변증법적 의미에서만 개념적으로 논리상 있는 것 뿐이요, 언어사건이지 실제사건이 아니다. 말장난일 뿐이다.

전통적인 견해로 산위일체 제 2위격은 Karl Barth에게는 없는데 없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에게 내려와 있겠는가? 다시 반복하지만 칼세돈 신경이 변화없이, 변동없이, 혼합없이, 분열없이, 분리없이 그리스도의 양 본성이 있다는 그 내용중에 변동이라고 한 그 구절에 의해서 Van Til이 Karl Barth의 성육신 교리를 비판하지만 내가 보는대로는 Van Til이 그 면에서는 Karl Barth를 잘못 보았다. 전통적인 성육신이 Karl Barth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주권적인 자의에 의해서 반대극인 자리로 가서 인간이 되었다가 또 반대극에서 다시 반대극인 하나님으로 되돌아오는 자유와 능력을 가지신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완전히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가 완전한 그 사람에서 다시 완전한 하나님에로 되돌아가는 주권적인 자유를 갖는다고 Karl Barth가 말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한대로는 Karl Barth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성육신이 없고 변증법적인 말장난 뿐이지 실제로는 없다. 그렇게 따져서 전통적인 성육신 교리가 Karl Barth에게 없으면 결국 Schleiermacher를 180도 되돌이키려고 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어진다. 예수도 한낱 사람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Karl Barth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소위 화해교리, 혹은 구속인데 그 구속은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하고 사람과 사람이 연합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에게 제일 중심이다. 그래서 연합함으로 인간의 존재를 하나님이 존재까지 끌어올린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다고 한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죽음가 피로 하나님과 화해했다는 성경적 교리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근본이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존재를 이 피조수준에서 하나님의 자기 존재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궁극의 목표라 한다. 지금 성경의 선포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원수되어 있는 것을 그의 아들의 죽으신 그 피로 회복하고 화해하여 화목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Karl Barth의 화해가 무엇인가?

 

 神人合一, 즉 연합으로 피조물이 하나님의 존재의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Karl Barth의 주장은 종말에 인간이 피조수준을 넘어가는데 그것을 구원이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Karl Barth와 로마 카톨릭이 완전히 일치한다. 그래서 로마교회가 Karl Barth를 카톨릭이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Karl Barth에게서 만인구원설은 불교도와 유교도와 힌두교도 다 포함한다. 한스 킹(Hans Küng)은 그런 방면에서는 전제는 안했지만, 현대 사상들이 다 같다. 한스 킹은 교황무오설을 반대해 교황의 노여움을 사서 교수직에서 물러나간, 튀빙겐 대학의 교수였다. 그런데 종교개혁으로 로마교회가 구라파의 많은 교회를 빼앗겼다.

 

 영국, 스칸디나비아 제국들, 뎀마아크, 화란, 독일 등. 그러나 전통적인 라틴계, 이태리, 불란서,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레리아 그리고 서구의 반 정도는 전통적인 로마교회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 실세회복을 아시아 선교에서 추구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 한창일 때 로마교회는 아시아로 선교사를 보낸 이유가 거기 있다. 인도, 중국, 일본으로 선교사를 파송했고 그들이 와서 열심히 16세기 부터 400년 가까이 아시아에서 선교했다. 그러나 구라파에서 잃은 것을 결코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면 신대륙은 어찌 되는가? 미국과 카나다가 전통적인 개신교의 아성으로 남았다. 물론 그 위 19세기에 미국에서 로마교회가 반동 종교개혁을 일으켜 미국을 카톨릭화 하는데 숫자로는 열세여도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로마교회가 미국에서 그 실세를 많이 회복했다. 그래서 남미는 다 로마교회 이다.

그러면 기독교의 복음은 만인을 위한 복음인데 선교를 해도 실패하고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교회에로 들어와야 할텐데 아시아가 들어오지 않는다. 일본이 1억이 넘는 인구에 개신교가 50만, 카톨릭이 100만이나 200만 정도 될까 한다.

 

그러니 전체에 비해서 얼마나 되는가? 중국은 10억 인구이니까 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비율로 얼마 안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하여 구속하셨다는 사실에 선교의 당위성이 성립하는데 이렇게 오래도록 전도해도(그들은 전교라고 하는데) 성공하는 것이 없다. 그러면 그들을 구원의 밖에 두어야 하느냐? Karl Barth에게는 구원의 길에 다른 길이 없다.

 

불교도 자비를 말하지 않는가? 유교도 仁(어짐)을 말한다. 그리고 높은 윤리적인 차원을 제시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그 종교들은 결국은 하나님께 가는 것이다. 출발은 달라도 귀결은 같다는 것이다. Karl Barth는 하나님이 만인을 위해서 구속의 사건을 이루셨으니까 만인이 다 그리스도안에서 유기되었고 선택 되었으니까 그리스도가 최종적으로 선택된 자라고 한다.

 

그러니 그리스도안에서 다 선택되고 다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만 천당가고 불신자는 못 간단 말인가? 그런 식의 구원은 Karl Barth에게 없다. 그러니까 Karl Barth가 신학운동을 구라파에서 크게 일으켰어도 선교사를 보낸 교회가 몇 되는가?

불트만의 비평을 양식비평이라 하는데 불트만이 처음 시작한 것이 아니고 헤르만 궁켈이 소위 양식비평을 구약의 연구에 도입했다. 불트만은 궁켈의 제자이다. 그런데 마틴 디벨리우스(Martin Dibelius)가 신약학에는 처음 도입했다. 그리고 완전히 정착한 사람이 불트만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불트만의 과격한 이 양식비평을 반대하고 비판해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를 수납한다. 이 비평적 방법은 성경도 고대의 다른 종교적 문헌과 역사적 문헌과 똑같이 다루어야 한다고 최초에 말한 사람이 있는데 소위 경건주의 학파에서 나온 Semler란 사람인데 성경도 완전히 역사적인 책으로 생각하고 그러니 역사적 비평적 방법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했다.

 

 성경이 계시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고대 역사적인 종교적 산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여 실제로 성경을 말해도 계시를 부인한다. 불트만 이전 학파의 A. von Harnack이나 V. Hermann이 다 불트만의 선생인데 이들 중에 헤르만의 영향이 더 크다. 왜냐하면 하르낙과 거의 동시대 사람으로 불트만에게 실존적인 사고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일을 연 사람이 헤르만이다.

 

그런데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 초엽까지 이들에 의해서 역사적 예수 탐구가 있었다. 이것은 역사적 비평적 방법으로 가장 믿을 만한 예수상을 건설하려고 하는 것이 19세기 말엽에 모든 학자들의 이상이었다. 복음서가 제시한 가장 믿을 만한 신빙성있는 역사적인 예수상의 건설, 그것을 비평적 방법으로 공관복음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변증신학이 등장하기 전의 역사적 예수 탐구이다.

그런데 불트만은 자기 선생들의 그런 주장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반대를 했다. 공관복음서를 아무리 연구를 해도 믿을 만한 예수상을 건설할 수 없다. 그것은 공관복음서는 예수의 전기집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실을 전달하는데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신앙으로 완전히 조직된 초대교회(여기에서 한국의 미신적 토속신앙이 단군을 역사적 인물로 만들고 그들이 믿는 내용을 논리화 하고 조직화 해서 그들의 경전을 만들듯이) 신앙고백의 산물로 성경을 생각한다.

 

이들은 성경을 순전히 역사적인 사실의 보고 같아도 초대교회의 믿는 내용, 즉 신앙으로 활동했던 역사적인 예수상을 건설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불트만이 변증법에서 이신득의의 교리에 근거해서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 얻음이 역사적인 예수에 관한 지식을 얻어서 그 지식에 근거한 신앙을 가져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구원 얻은 것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듯이 선포된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 하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 역사적 지식을 소유하므로 의롭다 함을 갖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공관복음서에 나와있는 것은 무엇이냐? 순전히 초대교회 신앙의 산물이다. 그래서 이들이 말하기를 공관복음서를 보면 초기단계에서는 역사적인 나사렛 예수를 랍비라고만 했다.

 

그 다음 단계는 주님으로, 그 다음은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야로, 세상의 구속주로 점점 더 높은 단계로 표현하여 말하여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를 퀴리오스 예수스(κㄷρθξζ ⅩΘσξυζ) 즉 主 예수라고 불렀다.

 

그리고 메시야라고 까지 발전했는데 이 교회가 예루살렘을 벗어나서 희랍세계로 들어가서는 그 희랍의 종교사상들과 동방의 여러 신비종교들을 만났다. 그때 그들이 자기들의 신앙고백의 대상을 채택했다. 그 상황에서 예수에 대한 이해, 예수에 대한 교회의 신앙고백이 복음서라는 내용으로 결과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들에 의하면 복음서가 역사적인 예수의 실제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는 실제로 예수가 말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자기들의(초대교회) 신앙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실제로 예수가 말하고 행한 것처럼 꾸몄다. 그러니 초대교회의 그 상황에 따라 예수의 신앙고백 내용도 변화되고 변천한다. 그래서 그냥 일률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양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불트만은 계시고 뭐고 그런 것은 관계도 없고 그냥 이방 종교들의 발전과정과 똑같이 취급하므로 이 세상 여러 종교들 중에 조금 고등한 종교 정도를 만들었다. 예를 들면 퀴리오스(κㄷρθξζ)를 어떻게 예수에게 붙일 수 있었느냐? 로마 황제들에게 붙인 퀴리오스(κㄷρθξζ), 主란 칭호를 초대교회가 예수에게 붙였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는 메시야, 혹은 주님이란 칭호도 예수 자신이 한 것이 아니고 초대교회가 그런 신앙고백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복음서는 초대교회의 신앙의 산물이며 실제 역사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 신앙이 희랍세계로 가면서 넓어지므로 예수에 대한 이해의 영역도 넓어지는데 이것이 공관복음으로 표현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양식사학파 다음, 후기 불트만의 제자들이 편집사학파라는 편찬가설을 말한다. 이것은 양식사학파가 공관복음을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라고 하는데 편찬가설은 초대교회 신학이 공관복음을 결정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편찬가설은 초대교회라고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편찬자들이 자기들의 신학에 따라 편찬해낸 그 편찬자들의 신학이 복음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 양식비평과 편찬가설은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신성종 박사는 템플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주임교수가 인정을 했다. 그는 편찬가설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써서 학위를 받았다. 거기다 한국의 토착화 신학까지 겸했다.

 

 웨스트민스터에서 한국학생들이 요청해 그 논문발표를 했다. 그런데 공격하고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나만 문제를 지적하고 공격했다. 그러니까 한국에 토착화를 부르짖는 사람은 다 불트만의 이 신학을 이용해서 말한다.

 

옷을 한국식으로 하고, 노래를 한국식으로, 그림을 한국식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사람이 신앙체험을 우리식으로 설명한다고 하는 것은 반대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뒤에 있는 신학이 문제가 된다.

 

그런 것을 일관성 있게 밀게 되면 윤성범의 단군신화격으로 표현하는 데로 귀착하지 않겠는가? 현대신학도 모두 다 자기시대의 사상의 토착화인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무속신앙을 인정하여 표현하란 말인데 다를 것이 무엇인가? 소박한 수준에서는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그것을 신학으로 일관성 있게 믿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윤성범의 단군신화의 삼위일체로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푸는데로 귀착하지 않는가?”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편찬가설은 사탄의 신학이 아니라고 큰소리로 일축해 버렸다. 사탄의 역사에서 나온 것이지 어떻게 성경을 허는 이 신학이 사탄적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이 사람들의 주장은 예수님 자신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주장한 것이 한번도 없도 신학자들이 그렇게 꾸몄을 뿐이라고 한다. 나도 편찬가설을 잘 모르지만 양식사학파와 별다른 것이 없다. 다만 양식사학파는 복음서를 초대교회의 산물로 보고 편찬가설은 편찬자의 신학적 산물로 보는 차이 뿐이다.

불트만에게는 본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초월해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그런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것은 초대교회 신앙공동체가 자기들의 신앙을 한갖 인간인 예수에게 채색하여 덧입힌 신화적인 것이지 다른 것은 없다고 한다.

 

불트만은 바울의 인간이해를 기독교 이전의 영지주의 인간이해로 전부 풀었다고 했다. 그 이해를 지금 현대적으로 바꾸는데 좋은 것이 무엇인가? 하이덱거의 실존주의 철학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초대교회 당시 고대인들의 인간이해를 그 당시 형식을 빌려서 했다. 그러니 우리는 현대적 방법으로 이해하는데 제일 좋은 방식이 하이덱거의 실존철학이라고 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요, 구주라는 것은 다 신화라는 것이다. 우리의 일을 저쪽(하나님의 일)의 일로 투영해 내는 것 뿐이기 때문에 신화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 한다. 그러니 복음서가 역사적인 하나님이 아들된 인간 예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예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자꾸 헬라세계로 확장해 갈 때 그들의 종교에서 자기들의 신앙의 대상을 주님으로 호소해 가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메시야로 취택했을 뿐이다. 갈수록 신학적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교회가 도를 신격화 시킨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신약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는대로 예수께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그리고 말씀으로 제자들을 가르쳐서 신앙을 성장시키고 또 사도들이 그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쳐서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고 초대교회가 그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복음서를 썼다는 것이다. 초대교회 신앙이 혹은 초대교회 신학이 복음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양식사학파와 다른 것은 편찬가설이 편찬자의 혹은 편찬학파의 신학이 복음서를 만들었다고 하는 차이만 있다. 그러니까 그들의 주장대로 그 시대의 사상들의 영향을 완전히 다 받은 것이며 예수는 한낱 나사렛 사람이지 계시가 어떻고 하는 것은 다 신화적인 이야기라고 말한다.

 

 물론 우리도 예수를 나사렛 사람이라고 인정을 한다. 또 그들이 한가지는 인정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최후의 선언이다 하는데 그것은 맞는다. 그러면 부활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 십자가의 의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부활이라고 할 뿐 역사상의 실제 부활은 이들에게 없다.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내가 죄에서 놓여난다는 것이다.

지금 현대교회의 추세를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자. 예수 믿으면 세상것을 추적하고 사는데서 벗어나지 않는가? 하이덱거의 분석에 의하면 일상생활은 항상 조르게(Sorge)라 한다. 이 조르게란 말은 근심과 염려란 말도 되지만 관심이란 말이다.

 

우리는 항상 대상을 바란다. 우리의 의지도 그냥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떤 대상을 바란다. 우리가 안다고 할 때도 그냥 허공에 구름잡듯 아는게 아니라 어떤 대상을 지향한다. 대상 지향주의로 우리는 일상의 관심을 항상 대상을 지향한다. 좋은 주택, 좋은 음식, 좋은 가구, 좋은 자동차, 아름다운 장식, 호화로운 세상 榮華에로, 은숫가락 금젓가락으로 향한다.

하이덱거에 의하면 우리는 항상 대상에 매어 물질적인 것에 매여서 산다. 우리가 그런 대상 지상주의로 대상에 매어사는데 우리가 죽음에 직면하면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죽음 앞에서는 세상에 그와 같이 귀한 것들이 다 無와 같은 것이 된다.

 

그때 본래적인 자아에로 되돌아 온다고 한다. 기독교 신앙을 소유한 우리도 세상을 전부로 하고 사는데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선포를 받아들여 신앙을 가지면 그 전의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참 신앙은 본래적인 자아에로돌아와서 이제는 주님을 전부로 하고 산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로 하이덱거가 실존을 멋지게 잘 묘사를 했다. 바로 그런 하이덱거의 실존주의 식으로 현대적으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이 非神話化 다음에 실존주의적인 해석이다.

그러니까 양식사학파에 의하면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의 말이라는 것들도 예수가 실제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배에서”, 혹은 “때에”, “길 가실 때에” 이런 단어들은 편찬자가 전부 다 예수가 한 말인 것 처럼 만든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에 대해서 직접 알 수 있는 길이 없고 제 삼자들의 예수에 대한 대강적인 이야기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초대교회가 다 그렇게 만들었다. 초대교회 신앙의 산물이 곧 복음이 된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는 다 역사적 사실이다. 겨우 예수의 인간적인 행적만 기록한 정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의 큰 구원사건이 진행되고 있는데 “공자님이 어디 가시고 자공에게 말씀하기를” 하는 그런 식의 논어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가 한동안 진짜 예수가 존재했느냐 하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안 그러겠는가? 그런 주장을 적극적으로 밀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예수가 實在했느냐, 가공의 인물이냐를 의심하게 된다.

내가 “인도에서 예수의 생애”란 책을 한권 사 놓았는데 다 읽으면 서평을 쓸려고 한다. 그 책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까지는 인정을 한다. 그런데 죽지 않고 인도로 갔다는 것인데, 인도와 연결된 것에 대해서 내가 이해하기로는 초대교회의 중요한 사상 하나가 가현설(可顯設)이었다.

 

이것은 영지주의 주장의 영향으로 물질은 악하다고 생각하므로 하나님이신, 영이신 그리스도가 실제로 인간 예수와 결합할 수 없었는데 실제로 결합하신 것처럼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 가현설이다. 실제로 성욱신한 것이 아니고 가현이었다. 영지주의 영향에 의해서... 그러면 예수는 물질은 악하기 때문에 물질과 결합할 수 없다는 귀결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실제로 십자가에 못박혔느냐? 도마가 쓴것이 아니고 도마의 이름으로 영지주의 사상이 많이 들어가서 쓰여진 도마복음에 의하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때 예수는 변형하여 구레네 시몬이 되었고, 구레네 시몬이 실제로는 예수 자리에 대신 들어가고 말았다. 그런에 도마가 인도로 전도하러 갔기 때문에 그렇게 연결시켜서 소설을 하나 쓴 것이다. 그런 책은 사기꾼의 거짓말일 뿐이다.

양식비평으로 따지면 복음서는 예수에게서 실제로 나온 말이 아니고 예수와 그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며 계속 밀면 예수가 존재했다고 꼭 할 필요도 없고 존재할 아무런 의의도 갖지 않는다. 한동안 그와 같은 예수가 실재했느냐는 가설들에 대한 책이 나온 일도 있다.

지금 이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구전들 혹은 단위들을 교회가 엮었는데 지금 복음서 이전에 원천이 되는 것이 단위로 돌아다녔다. 그것들이 어떤 형태를 거쳐서 교회신앙에서 인위적으로 결합되었느냐? 그러니 그 껍데기를 벗기면 처음 출발한 본래 알맹이가 나올 것이다 하여 전승의 기본되는 기본단위를 찾아내자고 한다.

 

 이것이 양식비평인데 이것은 오히려 온건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복음서의 기본단위에서 지금의 복음서까지 왔느냐? 그 역사를 추적하는 것이 양식사들의 하는 일이다. 그런데 불트만의 이야기는 십자가를 인정하니까 역사적인 예수를 인정하는 것 같으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이 교회에서 만들어져서 돌아다닌 것이다

(פרופסור  שְׂצְליוּ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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