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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예화 모음 28편

by 【고동엽】 2011. 4. 3.

1. 29년 침묵 끝의 말

울드 부부는 1967년에 그들의 다섯 살 난 아더가 정박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울드 부부는 아이가 가족들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그 사랑에 보답하지도 못할테지만 아이를 정박아 수용소가 아닌 집에서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보답을 바라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울드 부부는 가급적이면 아이를 정상인처럼 대하려고 노력했다. 일요일에는 교회도 데려가고 평일에는 특수학교를 보냈으며 일부러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바보처럼 웃기만 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느새 열여덟 살이 된 아더, 울드 부부는 그동안 아들을 장애아 학교에 보내고 장애아들이 모여서 일하는 작업장에도 보냈다. 그러나 아더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더 좋아했다. 1991년 아더는 20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 아더는 장애인 작업장에서 단순한 전자장비를 조립하는 일을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캐럴이라는 새로운 책임자가 이곳에 발령되었는데 그녀는 아더에게서 어떤 숨은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곧 그녀는 아더에게 컴퓨터로 의사 소통법을 가르쳤다. 그것은 몇 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캐럴은 아더가 매우 똑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사실을 울드 부부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들을 작업장으로 불렀다. 그리고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주변환경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음을 증명해 보였다. 캐럴이 먼저 아더에게 '오늘 기분이 어떠냐'고 컴퓨터 자판으로 물었다. 그러자 아더의 손가락이 아주 천천히, 힘들게 움직였다. 컴퓨터 화상에 알파벳 한 글자 한 글자가 떠올랐다. 아더가 한 문장을 만드는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29년간의 침묵 끝에 아더의 마음이 완성되었다.
"이제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울드 부부는 울고 있었다.

2. 30년 간의 침묵

사업가인 짐이 빌리 그레이엄에게 말했다.
"저와 30년 동안 동업하는 폴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그에게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권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아, 부끄러운 일이군요. 함께 무릎 꿇고 하나님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기도한 후 빌리 그레이엄이 이렇게 권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즉시 폴에게 가서 당신 영혼이 구원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십시오. 새롭게 살아야 하며, 삶을 새롭게 영위하기 위해 구주를 받아들이도록 간청하십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짐은 폴의 사무실에서 아무 말 없이 서성거렸다. 이상히 여긴 폴이 물었다.
"짐, 매우 피곤해 보이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응,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아."
"그게 뭐지?"
"자네 영혼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네. 난 자네가 예수를 믿으면 좋겠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폴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몇 년 동안 나는 자네가 내 영혼이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해주길 바랐네. 예수께서 내 삶에 들어오셔서 새롭게 해주시길 그리스도께 기도하겠네. 자네와 함께 이번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그 분께 정식으로 믿음을 고백하겠네."

3. 톱밥 속에서 들린 시계 소리

얼음공장에서 일하는 남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톱밥이 쌓여 있는 곳에서 값비싼 시계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동료 와 함께 2시간 이상이나 시계를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그런데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을 때 어떤 어린 소년이 그의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꼬마야, 그 시계 어디서 찾았니?"
"예, 제가 톱밥 위에 앉아 있는데 시계 소리가 `째깍 째깍'하 고 들렸어요."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정신없이 요란하게 찾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조용한 가운데서 하 나님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조용한 가운데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4. 침묵하는 강자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 두 마리가 싸움을 벌였다. 무리 가운데 우두머리를 정하는 수컷끼리의 싸움이다. 여기에서 이기면 모든 암컷 호랑이들을 거느리며 좋은 먹이와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마침내 결전이 벌어졌다.한 마리가 우렁차게 포효하며 덤벼들었다. 그런데 또 한 마리는 침묵하며 이에 맞섰다. 어떻게 되었겠는가. 우렁차게 포효하던 호랑이가 용맹스럽게 싸울 것 같더니 도중에 그만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물러나고 말았다. 크게 소리 지르는 호랑이일수록 약한 놈이고 싸움에 진다고 한다. 진정 강한 호랑이는 오로지 침묵과 위엄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고 한다. 무조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이 세상, 호랑이가 보고 웃을 것이다.
/이정익 목사

5. 침묵하지 못하는 사람

스파르타의 정치가 데마라투스가 공회 석상에서 한마디의 말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자, 이를 본 그의 친구가 '여보게, 못나서 말을 않나? 아니면 할 말이 없어서 안하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대는 모르는 말일세! 못난 사람은 절대 침묵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네'라고 했다는 것이다. 말을 통제할수 있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미성숙한 사람은 절대로 말을 통제하지 못한다.

6. 침묵

일본 작가 엔또 슈샤구의 작품에 「침묵」이라고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에 들어온 기독교, 천주교가 박해를 당할 때 극심한 박해로 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당한 역사적인 사실을 주제로 해서 쓴 책입니다. 박해자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좋아하니까 그 십자가에서 죽어 보라며 다음과 같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즉 바닷물이 빠진 다음에 바다 한가운데에다 십자가를 세워 놓고 거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잠시 후 밀물 때가 되면 물이 점차 차 오릅니다. 그러면 물 속에 푹 잠겨서 꼼짝없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단숨에 죽이지 않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때에라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버리면 용서하겠다는 조건을 답니다. 두 사람의 교인이 여기서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물이 점점 차 오릅니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는 한 성직자는 멀리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침묵하시나이까?” 이런 순간에 왜 하나님은 잠자코 계시느냐고 목을 놓아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때 그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지켜 보면서 그 아픔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왜 그러시는 것입니까? 보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애처롭게 고난당하며 순교하는 자의 죽음을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 영혼이 일어나고 싶을 때 읽는 책 / 양원석

* 기도: 사랑의 주님, 영적으로 무지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깨닫게 하시고, 징계 뒤에 따라오는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 손길을 기뻐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존귀와 영광으로 나를 일으켜 세워 주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7.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음성

신앙인에게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는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왜 저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습니까? 저의 다급한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으면서 왜 그렇게 침묵하십니까? 얼마 전 일이었습니다. 저녁 6시 20분경에 아내와 저는 교회 앞에서 유치원 차를 타고 오는 딸 은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보니 행복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은혜가 좋아하는 맛있는 어묵을 요리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슈퍼마켓에 들르자고 졸라댔습니다. 웬만하면 은혜의 요청을 들어주겠지만 그 순간만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집에 은혜가 좋아하는 어묵을 준비해 놓았는데, 영양가도 없는 과자를 사주어서 입맛을 버리면 안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은혜는 엄마 아빠의 마음도 모르고 막 떼를 쓰며 울었습니다. 껌 사줘요! 과자 사줘요! 엉엉엉! 은혜야! 집에 가면 맛있는 어묵이 있어! 조금만 참으면 돼! 그래도 은혜는 그 잠깐의 순간을 참지 못하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울어댔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아내 울고 있는 은혜에게 재빨리 냄비에서 어묵 꼬치 하나를 꺼내 주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은혜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영양가 없는 껌과 과자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들의 종합적인 영양을 고려하여 잠시 침묵으로 대응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침묵 속에는 오히려 하나님의 위대한 음성이 들어 있습니다.
- 행복을 향기처럼 / 이한규

8. 침묵을 창조하라

하루는 어떤 부인이 성 빈첸시오 신부를 찾아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더 이상 남편과 살지 못하겠어요. 그 사람의 신경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를 넘어섰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이 다시 화목해질 수 있을까요?"
빈첸시오 신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부인, 울 수도원 앞뜰에는 작은 우물이 하나 있답니다. 수위에게 가서 그 우물물을 좀 얻어 가십시오. 그리고 남편이 집에 돌아오시면 그 물을 얼른 한 모금 입에 머금으십시오. 삼켜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겨예요."
착한 부인은 신부의 말대로 수도원의 물을 얻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 밤 늦게서야 귀가한 남편은 또 어느 날처럼 부인에게 불평과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전날 같았으면 부인도 마구 달려들었겠지만, 그녀는 빈첸시오 신부의 가르침대로 성수를 얼른 입안 가득 히 물었습니다. 그리고 물이 새지 않도록 입술을 꼭 깨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의 떠드는 소리가 점차 잠잠해졌습니다. 그날 밤 이들 부부는 더 이상 다투지 않고 무사히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부인은 남편이 신경질을 부릴 때마다 그 성수를 입 안 가득히 머금곤 했습니다. 그것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동안 남편의 행동은 눈에 띄게 변했습니다. 신경질도 줄어들었고, 오히려 부인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부인은 남편의 달라진 태도에 무척이나 기뻐하며 신부를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빈첸시오 신부는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 기적을 일으킨 것은 수도원 앞뜰의 우물물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의 침묵이죠. 당신의 침묵이 남편을 부드럽게 한 것뿐입니다."
/ 고진하

9. 그리운 말 한마디

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해지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사람을 얼마나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느낌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도록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안에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라도 해명도 변명조차 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유안진

10. 말

이런 우화가 있다. 어느 굴에 들어가면 절대적인 침묵을 요구하는데 만약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는 것이다. 하루는 바보 삼 형제가 그 굴을 들어가게 되었다. 들어가면서 그 중 제일 큰 형이 말했다. "너희들 이곳에서 말하면 죽는다."
그러면서 그는 죽어버렸습니다. 그러자 둘째 형이 " 것 봐, 말하면 죽지," 그러면서 그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셋째가 자신있게 말합니다. " 나는 절대 말 안할 거야" 결국 셋째도 죽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완전히 침묵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11. 침묵도 사랑이다

사람은 침묵이 필요합니다. 혼자 있든지 여럿이 있든지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우리의 행동과 작은 임무와 신상에 일어나는 혹독한 곤경에 소비되는 내면적 힘을 축적하는 것은 바로 침묵 속에서입니다. 침묵은 천지창조보다 먼저 와서 온 하늘을 말없이 덮었습니다.
- 도로시 헌트의 《마더 데레사 일일묵상집》 중에서 -

* 침묵에 대한 명언은 많다. 침묵이 그만큼 값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침묵이 왜 필요한지를 압축한 완전한 말은 그리 많지 않다. 데레사 수녀의 말에서 침묵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된다. 침묵도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자기와 모든 사물에 대한 그윽한 사랑이다.

12. 침묵 속의 가르침

젊은 철학자 에머슨이 대사상가인 칼라일을 찾아갔습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호수 주변의 산책로를 걸었습니다. 해질 무렵에는 둘 다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사색에 잠겼습니다. 두 사람은 단 한 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에머슨은 매우 기쁜 표정으로 칼라일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오늘 선생님께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칼라일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에머슨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나도 자네에게 한 수 배웠네. 자네는 매우 훌륭한 철학자가 될 걸세.”
두 석학은 침묵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많은 말보다 침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 한 주간, 침묵 가운데 전해지는 가르침을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 박재천/ 시인. 가정,효 아카데미 원장 >

13. 침묵의 지혜

태초에 침묵이 있었다. 창조는 침묵과 함께 시작되었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생각하셨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상상하셨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계획하셨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창조할 피조물을 품으셨다. 침묵은 하나님의 언어이다. 침묵은 말이 없다. 침묵은 말이 없는 언어이다. 소리가 없는 언어이다. 침묵 속에 담긴 언어는 무게가 있다. 깊이가 있다. 침묵 중에 나온 언어는 생명이 있고 넘치는 에너지가 있다. 침묵 중에 나온 언어는 사람들의 영혼을 살린다. 침묵 중에 나온 언어는 새 역사를 창조한다. 침묵 중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이 천지를 창조했다.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니다. 참된 말은 침묵 속에서 나온 말이다. 침묵으로 품은 말속에 참된 의미가 있다. 생명이 있다. 능력이 있다. 그런 까닭에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의 언어는 깊이가 있다. 침묵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지혜가 있다.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 우주에서 침묵만큼 하나님의 모습과 닮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침묵하는 자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 침묵하는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침묵을 맛보게 된다. 침묵은 고요함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고요히 자란다. 어린이들은 고요히 자란다. 서서히 자란다. 고요함중에 꽃이 피고 고요함중에 꽃이 진다. 고요함중에 태양이 뜨고 고요함중에 태양이 진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이 움직이는 것을 보라. 소리없이 움직인다. 식물은 소리없이 자란다. 곡식은 소리없이 영근다. 침묵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최상의 지혜이다.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다. 과실은 기다림을 통해 맛을 더해 간다. 풋사과는 신선하지만 깊은 맛이 없다. 사과의 깊은 맛은 기다림을 통해 더해 간다. 기다림은 맛을 더하게 하시는 하나님 은총의 선물이다. 침묵할 때 우리는 듣게 된다. 침묵할 때 우리는 드러난 언어 속에 담긴 감춰져 있는 언어를 듣게 된다. 언어 속에 담긴 세계를 알게 된다. 누군가 침묵 중에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그 사랑이란 언어 속에는 엄청난 세계가 담겨 있다. 침묵은 지혜다. 침묵할 때 마음은 고요해진다. 침묵할 때 마음은 맑아진다. 침묵할 때 마음은 깊어진다. 침묵할 때 마음은 부드러워진다. 침묵할 때 마음은 따뜻해진다. 그러므로 더 많이 침묵하라.
/강준민 목사(LA동양선교교회)

14. 침묵이 좋은 몇 가지 이유

침묵은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는 것을 도와줍니다.
침묵은 입에서 나오는 거친 말을 예방합니다.
침묵은 후회할 말들을 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침묵은 세상과 나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둘 수 있도록 해줍니다.
침묵은 다른 사람의 말을 더 들어줄 수 있게 합니다.
침묵은 무한한 인내심을 길러줍니다.
침묵은 언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바로 기도하게 합니다.
침묵은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 핑계였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침묵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합니다.
그리고 침묵하면 당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합니다.
/최용우

15. 침묵의 힘

어떤 의미에서 침묵은 현재, 과거, 미래를 하나로 만든다. 예를 들면, 사랑은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침묵에 의해서 흔히 드러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때때로 베풀어지는 예감과 통찰력은 이러한 침묵의 초시간적인 성격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 막스 피카르트의《침묵의 세계》 중에서 -

* 입을 열어 다툼이 되느니 차라리 입을 닫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말 때문에 싸움의 불길을 키우느니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침묵은 때로 끊길 뻔 했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주기도 하고, 그 사람과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시 연결해 줍니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며, 성숙된 인격의 한 표현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16. 비난과 침묵

말에 어폐가 좀 있지만, 누군가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은 무척 쉽고, 또 재미도 있습니다. 걱정해 주는 것처럼, 또 진심으로 위하여 충고해 주는 척하면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아픔을 끼쳐주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간간이 우리 주변에 불미스러운 추문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기대감과 비례해서 충격의 파장은 크고 소문은 확산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무책임하게 침소봉대하여 말들이 말을 낳고 또 말을 만들어 겉잡을 수가 없게 됩니다. 특히 사이버 상에서의 소문은 진위 확인은 고사하고 유통기한도 없이 가히 언어 폭력 수준입니다. 이럴 땐 말을 옮기지 말고 그저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해 주는 것이 어려우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도 좋습니다. 사실 추문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걱정한답시고 이리저리 글을 펴다 나를 정도로 우리는 걱정하지도 않으며, 또 실제로 당사자와 친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조금 더 혹평하면 그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호기심에 따라 소문내는 참새 입방아 노릇만 하게 되고 결국 상처를 재생산하며 마귀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남의 말은 좋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차라리 침묵이 나을지 모릅니다. 격려할 수 없다면 오히려 비난보다는 침묵이 그 사람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17. 가만히 들어주세요

누군가 힘들어 하고 있을 때 교훈이나 어떤 말을 해주기보다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더 위로가 될때가 있습니다. 깊이 슬퍼하고 절망하고 있는 이 앞에서 말은 그야말로 말일 뿐입니다. 어깨를 다독거려 준다든지 눈을 바라본다든지 하면서 침착하고도 평화롭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세요. 그의 이야기와 이야기 너머의 마음을 헤아려 주세요
오히려 더 든든한 위안과 설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슬픔이나 아픔에서 벗어나는 기간 동안 당신도 그만을 위해서 무언가를 준비해두세요. 예를 들면 그의 아픔을 함께하며 목도리를 짜서 준다든지 그를 위하여 하루하루 정성을 모은 저금통을 준다든지 그렇게 만드는 과정이나 시간이 들어간 것들을 선물해보세요 진정으로 귀 기울여준다는 것은 말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무처럼 바위처럼 떠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서 오래 지켜주는 것입니다.
/권대웅, <당신이 별입니다> 중에서

18. 조용한 물이 깊은 것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말들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말 중에 대부분은 남의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것도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아픈곳을 말하면서 그 말에서 기쁨을 찾으려고합니다 그러나 어떤이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자기를 드러내려 합니다. 그러나 어떤이는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할 뿐 입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말을 하지않고 생각을 합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은 여러 이야기를 생각없이 합니다. 자신이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확실한 이야기도 아닌 추측을 가지고 말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랑의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삶의 힘을 돋구어 주는 그런 말을 나눈다면 얼마나 우리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할까...
사람들은 드러내는 말 보다는 밝은 미소로 침묵으로 조용한 물이 깊은 것 처럼 깊이 있는 말로 사랑과 감동을 전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요?

19. 3·2·1 법칙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이 성공 비법을 제시한 적이 있는데,그 내용 중 하나가 “속내를 털어놓지 말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라”는 것이었다. 대인 관계의 3·2·1 법칙이 있다. 그것은 3분간 경청하고, 2분간 맞장구쳐주고, 1분간 말을 하라는 것이다. 남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굉장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정신과 의사들의 주된 일은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아무리 흥분한 사람도 한 시간만 말을 하면 화가 진정된다. 황하는 작은 시냇물이 흘러들어 오는 것을 막지 않았기에 그만큼 커질 수 있었다. 오늘날 엄청난 과학기술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통신망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했다. 휴대전화는 신체의 일부처럼 밀접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점점 고독을 느낀다. 아이들은 컴퓨터 속으로, 어른들은 텔레비전 속으로 빠져든다. 성경은 말한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남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진정 필요한 시대다.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20. 하나님의 침묵

본문: 시편 83 장 1 절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치 말고 고요치 마소서"

기도를 하여도 응답이 없을 때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이 주무시는 것은 아닐까?’라는 섣부른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현실이 너무 힘들고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도하며 기다려도 눈앞에 보이는 결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주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 행동 하나하나까지 알고 관심을 갖고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의 짧은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을 쫓아가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의 한정된 머릿속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동하시는 시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때가 무르익었을 때 과일을 수확해야 그 과일이 맛이 있듯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십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우리에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형편을 가장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시기를 고르십니다. 침묵의 시기가 지나면 하나님이 행동하실 때가 반드시 옵니다.
* 기도: 침묵 후에 이어질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며 기도하게 하소서.

21. 말을 아껴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교수에게 한 학생이 "교수님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교수는 "입을 적게 움직이고 머리를 많이 움직이게"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일에 골몰하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일에 골몰하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타인들의 흠만보인다. 그리고 타인들을 향해 독설을 퍼붓는다.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기 위해서는 60년이 걸린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하기 전에 반드시 두 번 생각한다.

22. 침묵 게임

부모님은 우리 형제가 어렸을 때 ‘침묵 게임’을 시키셨다. 가장 오랫동안 침묵하는 사람이 이기는, 많은 부모가 좋아하는 게임이다. 어느 날 몇 시간 동안 그 게임을 하고 있을 때(우리는 그 게임을 잘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침묵 게임을 할 필요가 없어.’ 하지만 나는 요즘도 전혀 다른 이유로 침묵 게임을 하고 있다. 진정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두려움 때문에 말하길 억제한다. 갈등이 있을 때 겪어야 하는 고통이 두렵고, 인간관계의 혼란을 정리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것이 두렵다. 당신을 괴롭히는 그 무엇에 대해 괴롭지 않은 척할 때, 본심과 달리 타인의 의견에 동의하는 척할 때 침묵 게임을 하는 것이다. 나는 수년 동안 서로 침묵 게임을 하는 부부들을 안다. 그들은 말싸움을 피하기 위해 그 게임을 하지만, 실은 친밀감을 회피하고 있다. 나는 직장에서 침묵 게임을 하는 직원들을 안다. 그들은 파문
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그 게임을 하지만, 실은 원망과 좌절 속에서 수년을 보낸다. 나는 믿지 않는 이웃이나 친구와 침묵 게임을 하는 교인들을 안다. 그들은 거절이나 부끄러움을 피할 수 있겠지만, 불신자들에게 영적 생명을 제공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지금 당신은 누구와 침묵 게임을 하고 있는가? 침묵 게임 뒤에는 항상 두려움이 있다.
「단순하게 믿으라」/ 존 오트버그

23. 침 묵

마음이 상했지만 답변하지 않을 때,
내 마음 내 명예에 대한 방어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때,
침묵은 양선입니다.
형제들의 탓을 드러내지 않을 때,
지난 과거를 들추지 않고 용서할 때,
판단하지 않고 마음 속 깊이 용서해 줄 때,
침묵은 자비입니다.
불평없이 고통 당할 때,
인간의 위로를 찾지 않을 때,
서두르지 않고 씨가 천천히 싹트는 것을 기다릴 때,
침묵은 인내입니다.
형제들이 유명해지도록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능력의 선물이 감춰졌을 때,
내 행동이 나쁘게 평가되더라도 타인에게 영광이 돌려지도록 내버려둘 때,
침묵은 겸손입니다.
그분이 행하시도록 침묵할 때,
주님의 현존에 있기 위해 세상 소리와 소음을 피할 때,
그분이 아시는 것만으로 충분하기에 인간의 이해를 찾지 않을 때,
침묵은 신앙입니다.
"왜"라고 묻지 않고 십자가를 포용할 때,
침묵은 순종입니다.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내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할 때
모든 것을 참으로 모든 것을 믿을 때
침묵은 사랑입니다.

 

24. 침묵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잠 13:3)

캐나다의 의학박사 윌리엄 오슬러는 침묵에 대한 귀한 말을 남겼습니다. “침묵은 가장 훌륭한 예술에 속한다. 생활의 분위기는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사소한 일, 즉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투덜거리거나 실랑이함으로써 어두워진다. 항상 모든 일이 우리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거든 침묵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라. 또한 항상 온화한 마음을 가지도록 애쓰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이 내는 불평으로 인하여 짜증을 내거나 힘들어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까지 하게 됩니다. 나중에 말한 것을 후회해도 일단 입으로 쏟아놓은 말은 도로 주워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함부로 했던 말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굉장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입을 지켜 꼭 필요한 말, 유익한 말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떠벌리지 않으면, 나중에 고통을 겪을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조심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25. 침묵

타우라스라는 산이 있다. 이 산은 독수리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독수리의 가장 좋은 먹이는 두루미이다. 두루미들이 타우라스 산을 넘을 때면 독수리들은 포식을 하는 날이다. 산을 오르는 두루미들을 독수리가 여지없이 공격하는 것이다. 독수리의 먹이가 되는 두루미는 소음을 내는 두루미이다. 타우라스 산을 수없이 넘지만 노련한 두루미는 거의 희생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행을 떠나기 전 입에 돌을 물고 가기 때문이다. 돌을 문 두루미는 돌 때문에 무사히 산을 넘는다.
그리스도인에게 침묵은 사탄의 먹이가 되지 않게 막아준다. 침묵은 하나님을 만나는 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어는 침묵이며 그리스도인의 침묵은 성화의 본질에 속한다. 말을 잘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침묵은 더 좋은 일이다. 물고기는 항상 입으로 낚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26. 침묵

[냅시]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세 가지의 침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하얗게 떨어지는 눈송이의 침묵이요,
둘째, 먼동이 트기 직전 한 시간의 침묵이며,
셋째, 죽은 자의 침묵이라고 했습니다.

27. 침묵의 언어

제가 아는 어떤 분들이 수양을 하는 방법으로서 한 시간 이상 나무와 대화하는 훈련을 합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나무 앞에서 침묵하며 동산을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본다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표현되지 않은 언어, 즉 인간이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원색의 언어를 날마다 새롭게 들을 수가 있고 읽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영상이고 이것이 영감이고 이것이 진짜 시인입니다. 그 말은 구태여 표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말은 시로 표현할 수조차도 없는 줄로 압니다. 그 말은 일종의 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누구나 종교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자연에는 엄청난 침묵의 언어가 있습니다. 생명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깨끗한 것입니다. 신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28. 한 마디를 안했던 사람

영국의 사상가이자 역사와 문필에 능통했던 토마스 카알라일은 아주 신경질이 많아서 자기 부인을 학대하여 부인이 거의 자살하려고까지 했다. 그의 부인은 한번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부인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고 좋은 남편이 아닌 것 같았고 살아도 희망이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 그 부인은 죽었다. 누가 보아도 부인은 억울하고 토마스 카알라일은 자기 부인에게 좋지 않은 남편이었다. 그러나 토마스 카알라일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내 속을 모른다. 단 5분만이라도 좋다. 아니 2분만이라도 좋다. 내 아내가 한 번만 다시 살아난다면 꼭 한마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내가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죽었다. 나는 이 말을 영원히 전할 수가 없게 되었다. 누가 이 사정을 알아주랴? 누가 이 마음을 알아주랴? 사실은 나는 내 아내를 사랑했다." 이 사람처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항상 주님과 가족과 친구와 모든 사람에게 소망을 고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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