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과 칼빈 추종자들의 광란의 역사
칼빈과 그의 추종자 칼빈니스트들은 무슨 이유로 사람을 죽였을까?
로마 카톨릭 교황권의 악독을 그대로 배우고 실행한 칼빈(깔뱅)은 거듭난 자의 표상이 아니며 단순한 실수도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보기에는 아무리 잘 보아도 무리가 있다. 그래서 재침례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동조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칼빈은 성경대로 믿는 재침성도들을 박해하였던 것이다.
(4) 재임기간 4년 동안 13명을 목 매달아 죽인 칼빈
칼빈의 옆에서 칼빈의 행적에 대하여 직접 목격한 카스텔리오는 증언하기를 '칼빈이 통치한 처음 5년동안에 비교적 작은 이 도시(제네바)에서 ---13명이 교수대에 매달리고---'(Stefan Zweig. op.cit. p.128)라고 하였다. 칼빈은 13명의 사람들을 교수대에 목매달아 죽였다. 그야말로 칼빈이 통치하는 기간에는 매 달마다 사람 죽이는 악마의 잔치가 계속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칼빈 목사가 재임기간 동안 다른 사람들을 불로만 태워 화형시켜 죽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목만 잘라 죽인 것도 아니다. 목을 매달아 죽인 인원만도 13명인데 이렇게 사람들을 잔악하게 죽이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교부들과 어거스틴 그리고 칼빈으로 이어지는 교회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12제자들에 의한 원시초대교회가 자기 사상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목 매달아 죽이라고 하였는가?
이와같은 만행이 가능한 배경을 보면 칼빈은 '이 부패한 도시(제네바)에 실질적인 도덕과 기율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칠,팔백명의 젊은이들을 처형할 교수대가 필요하다'(Stefan Zweig. op.cit. p.88)는 것이 그의 구호였다.
이러한 외침은 제네바 시 안에서 어떤 통치와 살육이 자행될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칠,팔백명의 젊은이들을 처형할 교수대! 칼빈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이었나를 짐작케 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냉정하게 주시해야 할 것은 제네바 시의 1만 3천 명의 시민들은 그렇게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부패한 도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결론은 무엇인가? 칼빈의 교리적 허구에서 흘러나오는 잔악한 그의 생각과 행위들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5) 1545년 제네바에서 발생된 흑사병으로 인한 마녀사냥
제네바에서는 1542년부터 1545년까지 페스트라는 흑사병이 기승을 부렸다. 그러자 무고한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참혹하게 고문하여 흑사병을 퍼트린 장본인이라는 자백을 받고 마녀사냥을 시작하였다.
'흑사병의 원인이 되는 연고를 집에 발라 전염시킨 혐의로 고발된 사람들이다. 이 흑사병의 전파자는 마술을 행하고 악마를 숭배했다는 혐의로 고발되었다'('유럽의 마녀사냥', Brian P. Levack, 소나무 김동순 역, 2003.10.10. p.229)고 한다.
제네바에서 '몇명의 극빈자가 체포되어서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악마의 배설물로 만든 고약을 문 손잡이에 발라서 페스트를 온 도시에 퍼뜨렸노라고 자백하기에 이르렀다. 칼빈은 인문주의자 답게 그따위 노파같은 헛소리를 치워 버리지 않았다. 점점 더 수세에 몰리던 그는 중세식의 망상을 확고한 신념으로 옹호하게 되었다.'(Stefan Zweig. op.cit. 1998. 4. p.90)고 하였다.
그 결과, 대규모 마녀사냥이 1545년에 제네바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Brian P. Levack. op. cit. p.229). 그 후에 1567년-1568, 1571년, 그리고 1615년에도 제네바에서 페스트로 말미암은 마녀사냥이 이루어졌다.
1545년 흑사병은 그 이전부터 이미 칼빈의 점점 더 가혹해지는 조치들로 인하여 그의 가장 충실한 추종자들마저 분노하던 때였다(Stefan Zweig. op.cit. p.88).
유럽에서 자행된 마녀사냥의 많은 목적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분쟁을 해결하고 보복하기 위해, 적이나 정적들, 경제적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시야를 돌리기 위해서 사용되는 경우가 유발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그리고 1543년에서 1545년 사이에 페스트가 유행하자 이 흑사병을 두고 칼빈과 카톨릭 사이에 공방이 오고 갔는데 로마 카톨릭은 비난하기를 '개혁자들의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칼빈은 '그것이 개혁자들의 불신앙에서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로마 교회의 우상숭배에 기인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칼빈', 大韓基督敎書會. 李鍾聖. 1992.3.30. p.224)고 하였다.
제네바 사람들은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기에 처음으로 종교국의 무오류성(無誤謬性)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였고(Stefan Zweig. op.cit. p.88) 칼빈에 대한 저항은 점점 더 격렬해져 갔다(Stefan Zweig. op.cit. p.90). 그리고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끝내 1545년 대규모 마녀사냥으로 이어져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야만 했다.
(6) 자신에게 반대한 반대당을 모두 처형한 칼빈
칼빈은 종교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자신을 독선적인 지배에 대한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반대당의 모든 사람들까지도 거침없이 제거하였다.
카스텔리오의 증언에 의하면 제네바에서 일어난 조그만 사건이 끔찍한 반역행위로 부풀려져 '칼빈에게 조금이라도 반대했던 사람들은 모두 처형했다.
단 하룻밤만에 제네바에는 칼빈당 외에는 어떤 당파도 남지 않았다.'(Stefan Zweig. op.cit. p.225)라고 하였다.
물론 이렇게 제거되었거나 처형된 사람들 가운데는 앞서 밝힌 공식으로 처형한 사람들 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 칼빈의 폭정에 스스로 자살한 사람이나 불구적인 삶을 산 사람들, 그리고 국외로 탈출하거나 기타 지역에서 마녀사냥으로 죽은 사람들의 인원은 상기 숫자에 포함되지 아니한 것이다.
전체 인구가 불과 1만 3천명의 도시에서 4년 동안에 공식적으로 58명을 죽였다면 그 비율만으로 보아도 엄청난 숫자이다. 이것도 공식적으로 죽인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추방된 사람이나 불구가 된 사람들을 합친다면 제네바 시민들이 당한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2) 칼빈은 무슨 이유로 사람들을 사형시켰나
(1) 칼빈의 예정설을 비난했다고 사형시킨 칼빈
칼빈은 자신의 예정설을 비난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진 고문 끝에 불로 태워 화형시켜 죽였다. '칼빈의 예정설에 공공연히 반대 발언을 한 어떤 남자' - 도시의 교차로에서 피가 날 때까지 채찍질을 당하고 난 뒤에 화형했다(Stefan Zweig. op.cit. p.82)고 고발하고 있다.
칼빈과 그의 종교국은 칼빈이 주장하는 '예정설'을 반대하는 말을 했다고 해서 그를 잡아다가 교차로에서 피가 날 때까지 고문을 가하고 끝내 그 광장에서 그를 불로 태워 화형시켜 버린 것이다.
칼빈이 주장하는 예정설이란 실체가 무엇인가? 그것은 철저하게 성경처럼 위장한 가면의 교리가 아닌가? 왜 그 교리는 사람을 거침없이 죽이는 자의 교리가 되었는가?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 교리로 인하여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가?
예수께서 비유한 못된 나무이기 때문이다. 칼빈의 교리는 위장된 교리, 거짓된 교리이다. 그러기에 사람 죽이는 것을 얼마든지 정당화시킬 수 있다. 그 위장된 기만에 사람들은 농락을 당해 사람 죽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칼빈의 예정설이란 성경적 측면에서 보면 이교도 그리스 희랍의 섭리사상체계를 모방해서 만든 허구적인 조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칼빈의 예정설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 본질의 근간을 사실 그대로 밝혀보면 위장된 허구라는 것이다.
칼빈 자신의 예정설을 비난했다고 해서 사람을 고문하고 화형에 처했다는 것은 칼빈과 그의 종교국이 얼마나 자기 독선에 사로잡혀 있었는가를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다.
자신이 행하는 바를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라고 합리화시키는 마각의 실상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칼빈이 자신의 특징적 사상에 근거하여 그가 이러한 일을 행하는 것도 곧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였으며 이렇게 합리화되고 둔갑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상상할 수 없는 악행을 자행하였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칼빈의 이러한 행태들을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된다. 교회가 분열하면서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며 수많은 악행들을 그대로 보고서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정당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칼빈의 사상적 교리가 갖는 특성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저항하거나 반대되는 자들을 제거하는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었는데 이것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다.
그러면서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뜻으로 몰아 세우고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기적 목적을 절대적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취시켜 나가는 것이다.
남을 정죄하기에 바빴고 그리스도의 정신과 삶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행태들을 자행하였던 것이다.
(2) 칼빈을 위선자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사형시킨 칼빈
칼빈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사형을 집행했는데, 그 이유는 살상하는 칼빈을 '위선자'라고 불렀다는 이유가 전부이다. 조그만 소도시에서 종교개혁을 한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데 그것을 보고 위선자라고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실 제네바 사람들은 칼빈의 폭정에 대하여 적지 않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뒤에 구체적으로 소개되겠지만 칼빈은 제네바 사람들을 독재적이고 가혹한 경찰정치로 다스리고 고문하고 추방하였고 더 나가서는 사람들을 참혹하게 죽였기 때문이다.
'자크 그뤼에(Jacques Gruet)라는 사람은 칼빈을 위선자라고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고문을 받고 화형을 당했다(Stefan Zweig. op.cit. p.82). 그러나, 자크 그뤼에가 칼빈을 위선자라고 부른 것은 너무도 당연한 비판이었다.
왜냐하면 소위 종교개혁을 한다고 하면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는 행위야말로 그 자체가 사악한 위선이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은 자신의 살인 행각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자크 그뤼에(Jacques Gruet)를 잡아다가 극한 고문 끝에 사형시켰던 것이다.
칼빈의 이러한 행위는 아무리 과거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프란시스코는 그 오래 전 과거에 그리스도의 자비를 알고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는가?
칼빈은 도리어 자기의 악행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참혹하게 죽인 것은 그가 살인자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3) 80세 노파와 그의 딸의 처형이유
칼빈과 그의 종교국은 80세된 노인과 그녀의 딸을 데려다가 사형을 시켰다. 그 이유는 아이들에게 세례 주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80세의 노파와 그녀의 딸이 처형장으로 함께 끌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딸은 여섯 아이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세례 주는 것을 거부한 것 외에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Stefan Zweig. op.cit. p.177). 세례를 거부했다는 것이 사형을 시킨 이유의 전부였다.
역사를 살펴보면 세례라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태양신을 섬기던 이교(異敎) 체계를 카톨릭이 차용해 온 제도이다. 따라서 세례를 받지 않겠다면 그것은 성경으로 당연히 고려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칼빈은 여섯 아이의 어머니와 그 할머니를 가차없이 사형에 처했다.
이와같은 이유를 빌미로 처형을 시킨다는 것은 살인행위 그 자체이다. 아무리 종교가 통치의 근거가 되는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세례의 문제로 사람을 처형한다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 더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형한다는 것은 종교를 빙자한 악마의 소행으로 밖에 달리 해석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 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세상에서 세례 받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사형을 집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과연 이런 권리가 누구에게 주어져 있으며, 또한 누가 그런 권리를 주었다는 말인가? 결코 그리스도 예수는 그런 명령을 가르친 바가 없다.
(4) 부모를 구타했다고 소녀를 목잘라 처형시킨 칼빈과 종교국
칼빈과 그의 종교국은 '어떤 소녀가 부모를 구타했다고 목잘라 처형하였다'(조찬선 op.cit. p.91)고 하였다. 그야말로 무고한 살인이었다. 부모를 죽인 것도 아니고 구타하였다면 그 죄벌은 감옥에 가두고 자성케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고 하였다. 이것은 시대의 조류나 상황에 따라 해석과 적용이 달라지는 그러한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칼빈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식이 부모를 구타했다는 것을 목잘라 사형을 시켰다는 것은 엄연한 살인행위이다.
구약적인 관례나 유대인의 율법적 관례로 보면 간통한 사람은 분명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인이었다. 이러한 죄인을 사람들이 죽이겠다고 손에 돌을 들고 그 간통한 여인을 끌고와 예수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도전적인 시비성 질문을 하였다. 그 때 죽어 마땅한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나[요8:1-11]. 예수께서는 도리어 그녀를 죽이러 온 사람들을 향해서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요7:7] 하자 그들은 모두 돌아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범죄한 사람을 올바르게 살도록 바로 잡아 주었으며, 죽어야 할 사람을 구해 주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이 부모를 구타했다는 소녀를 죽인 것은 무고한 살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같은 죄라도 부풀려 죽일 수 있고, 반대로 같은 죄라도 자비와 용서를 통해 잘못된 인생을 바르게 잡아 주어 바른 삶을 살도록 해줄 수 있다. 예수께서는 후자의 경우였다. 그는 죄인을 구원하려고 오셨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설사 부모를 구타했다 손치더라도 칼빈은 당연히 그 소녀가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바로 잡아 주어야만 했다.
누가 보아도 칼빈은 살인자이며 이는 유치원생들에게 물어 보아도 그 대답은 뻔한 문제이다. 그런 측면에서 칼빈은 엄연한 살인죄를 범하였으며 그리스도 방식이 아닌 자기 방식으로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엄연한 살인행위이다.
(5) 귀신쫓는 사람들을 사형시킨 칼빈
칼빈과 그의 종교국은 귀신 쫓는 사람들을 죽였다.
'귀신을 쫓는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였다.'(조찬선 op.cit. p.91)는 고발이 그것이다. 카톨릭에서 자행했던 관계가 개신교에도 남게 된 것이다. '고문과 화형은 종교재판의 대명사였다('西洋文化史', 李英範 외2인 良書院 p.182).
예수께서 귀신들린 사람, 귀신 쫓는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라고 해서 사형에 처한 기록이 있는가? 예수께서는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주셨고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그들의 삶을 도와주었지 죽였다는 것은 있지도 않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예수께서 귀신 쫓는 사람들마다 사형에 처하라고 하였나? 심지어 분명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귀신쫓는 불법의 자들이 예수님 앞에 와서 주여 주여 하며 자신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 쫓는 것을 외쳤지만 예수께서는 저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2-23]고 하셨다.
저들은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없이, 아니 본질적으로 본다면 더욱 사악하게 주님의 이름으로 사기치며 귀신을 쫓아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물러가라고 외쳤지 그들에게 죽음을 선언하지 않았다. 하지만 칼빈은 귀신쫓는 사람들을 사형시켰다. 이것은 명백한 살인이다.
심상용 목사(월드 크리스챤 성경학 연구소 소장)
http://myhome.naver.com/bee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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