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장1절]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בְּרֵאשִׁית הָיָה הַדָּבָר וְהַדָּבָר הָיָה אֶת־הָאֱלֹהִים וְהוּא הַדָּבָר הָיָה אֱלֹהִים
하나님은 (남성신이) 아닌 (절대 유일신)' 이다
1 | εν αρχη ην ο λογος και ο λογος ην προς τον θεον και θεος ην ο λογος |
엔 아카페 엔 호 로고스 카이 호 로고스 엔
프로스 톤 데온 카이 데오스 엔 호 로고스
in[the]begii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 God Word and God was the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중요한 표현이다.
헬라어 원문의 '엔'en동사는 be 동사인 '에이미eimi' 동사의 미완료 형으로 어떤 과거로 부터 완료되지 않고 계속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성을 '엔' 동사로 표현한다. 그러나 헬라어 미완료가 항상 영원한 개념을 표현하는데 국한되지 않고 과거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혹은 현재의 개념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1,과거에 반복되어졌던 동작이나 습관(막 15:16),
16 | οι δε στρατιωται απηγαγον αυτον εσω της αυλης ο εστιν πραιτωριον και συγκαλουσιν ολην την σπειραν |
טז וַיּוֹלִיכֻהוּ אַנְשֵׁי הַצָּבָא אֶל־הֶחָצֵר הַפְּנִימִית הוּא פְּרַטוֹרִין וַיַּזְעִיקוּ עָלָיו אֶת־כָּל־הַגְּדוּד׃
פרק טו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2, 과거에 시도했던 것(마 3:14),
14 | ο δε ιωαννης διεκωλυεν αυτον λεγων εγω χρειαν εχω υπο σου βαπτισθηναι και συ ερχη προς με |
יד וַיַּעֲצָר־בּוֹ יוֹחָנָן לֵאמֹר הֲא נָכוֹן לִי לְהִטָּבֵל עַל־יָדְ וְאַתָּה בָּאתָ אֵלָי׃
פרק ג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3,과거진행성(마 8:24),
24 | και ιδου σεισμος μεγας εγενετο εν τη θαλασση ωστε το πλοιον καλυπτεσθαι υπο των κυματων αυτος δε εκαθευδεν |
כד וְהִנֵּה סַעַר גָּדוֹל נֵעוֹר בַּיָּם עַד־כַּסּוֹת הַגַּלִּים אֶת־הָאֳנִיָּה וְהוּא נִרְדָּם׃
פרק ח"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4,현재에 이루지 못할 욕구나 소원(갈 3:20),
20 | ο δε μεσιτης ενος ουκ εστιν ο δε θεος εις εστιν |
כ אֲבָל אִישׁ בֵּנַיִם א לְאֶחָד הוּא וֵאהִים הוּא אֶחָד׃
פרק ג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5,그리고 요 1:1처럼
1 | εν αρχη ην ο λογος και ο λογος ην προς τον θεον και θεος ην ο λογος |
א בְּרֵאשִׁית הָיָה הַדָּבָר וְהַדָּבָר הָיָה אֶת־הָאֱהִים וְהוּא הַדָּבָר הָיָה אֱהִים׃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완료될 수 없는 사실을 표현할 때(즉,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때, 등이다.(히7:3)
이는 독립적으로 해석할 수 없고, 앞의 문장전체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
‘엔 아르케 엔 호 로고스‘(εν αρχη ην ο λογος)인데
우주만물을 창조한 말씀은 어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실체하는 인격체인 하나님이시라는 것.
‘카이 호 로고스 엔 프로스 톤 데온’(και ο λογος ην προς τον θεον)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이다. 여기서 로고스가 데오스(하나님)(θεος )와 함께 하신다고 할 때, 데오스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God)이시다.
여기서 ‘데오스’(θεος ) 명사는 남성 명사로서 막연한 뜻을 가지는 명사(indefinite noun)가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의미를 지니는 명사(definite noun)이다.
그러니까 ‘로고스’(λογος)는 막연한 신적 존재가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이라고 요한 사도가 선포한 것이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그 외에 모든 신적 존재라고 하는 것들은 사단의 영이거나, 인간이 신적 존재로 오해하는 것들이다.
헬라어는 어미가 변하는 성, 수, 격에 따라 변하는데,명사류에 있어서 성은 남성과 중성과 여성으로 구분한다.남성은 단순히 male 만을 의미하지 않다.
헬라어에서 남성은 대표성과 존재성 그리고 실체성을 주로 표현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라는 ‘데오스’가 비록 남성이라도 남여의 구분으로서 남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하시는 분으로서의 절대적인 존재를 표현한 것이다.
어떤이는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때 남성신(男性神)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아들과 함께 하시는 유일하신 신이시며, 남성신도 여성신도 아닌, 절대적 존재자이시라는 것이다. 반면에 여성은 female 만 의미하지 않고,어떤 성질, 상태를 표현 특히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할 때 많이 쓰인다.
태초에 -
온 우주 창조의 시작을 선포하는 창 1:1을 연상시키는 본 구절을 매개로하여, 저자 요한은 구약과 일관된 흐름으로 신약의 복음서를 쓰고 있다. 즉 계시의 시작인 천지 창조의 기사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에 이르러 계시가 완성된다고 볼때,본 구절은 이 복음서의 서두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태초'(*, 아르케)라는 용어는 원래 '시간과 공간의 시초'를 의미한다. 따라서 고대 그리이스의 자연철학자들은 '만물의 시초(始初)'라는 뜻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처음 시간의 특별한 한 시점 뿐만 아니라 초(超) 시간적인 영원을 나타내는말로 사용되었다(1:1-18 주제 강해 '베레쉬트와 엔아르케의 의미' 참조).
말씀이 - 원어상 '말씀(* λογος 로고스)은 '수집', '계산', '목록', '말'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용어는 철학적인 의미로서
(1) 어떤 법칙, 의미, 구조의 내용,
(2) 형이상학적 실재나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법척,
(3) 우주론적인 실재들을 표상하는 개념 등으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를 신학적 의미로 전환시킨 사람은 플라톤 철학에 심취했던 1세기의 유대인 철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 of Alexandriaa)였다.
그는 '하나님의 로고스'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며,인간을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중재자(즉 대변자거나 제사장)로 부각시키는 것이라고하였다. 즉 로고스란 하나님의 창조 능력의 총화(總和)이자 이 세상을 질서있게 다스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성경 전반에 걸쳐서 '로고스'는 주로 하나님의 권능(시 147:15;148:8;히 4:12)과 계시(사 2:1;렘 26:1;딤전 5:17)를 의미한다.
특히 요한은 본절에서 '로고스'의 영원성, 인격성, 신성(Deity)을 부각시킴으로써, '로고스'가 바로 계시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임을 보여준다. 본절에서와 마찬가지로 14절에서의 '말씀'에서도 '로고스'의 인격성이 뚜렷이 표현되고 있다.
본서에서 '믿다'(*, 피스튜오), '사랑'(아가페)과 더불어 주요 개념으로 쓰인 이 용어(로고스)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강화(講和)로 구성되어 있는 본서의 특성까지도잘 드러내고 있다.
계시니라 -
존재를 나타내는 동사 '에이미'의 3인칭 단수 미완료형 '엔'을 사용함으로써 요한은
(1) '로고스'가 태초의 어느 시점에서 창조된 것이아니라 계속하여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줌과 아울러
(2)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과 영원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당시의 이방 철학의 인본주의적 경향과 유대교적 신관(神觀)의 오류를 분쇄하고, 세상의 시초 이전에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존재하였다는,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고 계시다는 엄연한 사실을 선포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동등하게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초시간적 영원성을 무시하고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라고 주장한 아리우스는 니케아 종교 회의(A.D. 325)에서 이단으로규정되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
'하나님과 함께'(프로스 톤 데온)에서 전치사 '프로스' '...와 함께'란 뜻의 전치사들(*, 엔;* , 메타;* , 파라;*, 쉰)과 의미상 유사하다.
그러나 후자인 여러 전치사들이 주로 정적(靜的)인 공존(共存)을 나타낸다면, 전자인 '프로스'는동적(動的) 공존을 나타낸다. 따라서 후자는 같은 시간에 동일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며, 전자는 서로간의 친밀하고도 부단한 인격적 관계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 전치사는 '서로 마주 대하는'이라고도 해석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전치사를통하여 우리는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셨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이의 영화로우신 '친교'(Robertson)를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삼위 일체 교리의 근간'이 되고 있다(Calvin).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혹자는 본문에서 '하나님'(* , 데오스) 앞에 관사 '호'(* )가 없기 때문에 말씀이 절대적인 신성을 지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그렇게 볼 경우 '말씀'은 단지 종교적 신성(神性)을 지니고 있는 막연한 존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풍미하던 영지주의(마태복음 신약서론,'이방 종교' 참조)의 학설대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유출된 존재로서 하나님보다는 하등의 신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내포할 수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표현된 것은 헬라어 문법상의 특성을 관찰하면 잘 알 수 있다. 헬라어 문장은 주어와 술어의 어순(語順)을 바꾸어 쓸 수 있다.
따라서 헬라어에서는 주어와 술어의 구분을 어순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헬라어에서 주어와 술어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관사이다. 따라서 주어는 관사를 가지고있고, 술어는 주어와의 구분을 밝히기 위해 관사를 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문 '카이 데오스 엔 호 로고스'에서 '말씀(로고스)이주어, '하나님'(데오스)이 술어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본문은 성자 하나님의 신성에대한 간결하고도 명확한 선포이다. 이러한 성자 하나님의 참 모습은 20:28의 도마의고백에서 확실하게 밝혀진다.
한편 3개의 문장으로 기술된 본절은 원문 구조상 '말씀이 계시니라'( ...호 로고스 엔...)는 주어와 동사를 중심으로
(1)말씀의 선재성과 영원성,
(2) 인격성 그리고
(3) 하나님과 동등한 신성을 드러낸다.이러한 선언은 요한복음 전체의 기독론(Christology)을 대변한다.
따라서 본절은 그리스도에 관한 심오한 내용을 단 세 문장으로 간결하게 함축한 것으로서 복음서 문장 양식 중 백미(白眉)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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