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해 실망하지 않고 계속 사랑하기 롬3:10~12
롬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오늘 인용하는 이 두 구절은 '그리스도 이외에 구원이 없다'라고 주장할 때
가장 즐겨 인용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사람이 이처럼 다 타락했고, 다 죄인이기 때문에
자력으로 구원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오직 예수님을 믿는 길 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라는 거죠.
칼빈의 소위 TULIP 이라는 5가지 신학교리중에 첫번 째를 이루는
'전적 타락 Total depravity' 의 근간이 되는 성경 구절이 바로 위 본문말씀입니다.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건 바울이 시편14:3절을 인용한 성경 구절입니다.
시편 저자(다윗)가 이 말을 할 때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고,
인간에 대해 깊이 실망해서 한 말이에요.
얼마나 실망했으면,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14:3
이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걸 인용해서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라고 했죠. 롬3:10
누구에 대해서 한 말입니까? 이방인에 대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선민, 하나님의 소유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한 말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에 대해 적용해서
'쓸 만한 사람 하나도 없다. 제대로 믿는 사람 하나도 없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얼마나 인간에 대해서 실망을 하면, 이런 한탄을 하는 것인가요!
한 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런 '피해의식'은 좀 스스로 곰곰히 생각을 해 봐야 됩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건지고, 율법을 주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고,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그렇게 많은 일을 하셨는데,
그 수고의 결과에 대하여, 그럼에도 만약 하나님이
'세상에 의인은 없고 한 사람도 없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이면,
이것은 '마치 내가 (하나님이) 한 일은 아무 소용 없었다' 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이 반색을 하면서 '맞아요, 의인은 아무도 없어요.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어요.' 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이 구절을 환영한다면,
그건 원래 이 구절을 쓴 사람의 한탄하는 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이 됩니다.
만일 '의인은 없다'는 이 말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그러므로 사람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마! 사람을 아무도 믿지 마!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어!' 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그럼 여러분의 자녀에 대해서도, 부모님에 대해서도.. 그런 말을 하실 것입니까?
'쓸만한 자식(또는 부모)은 하나도 없어, 다 몹쓸 자식(부모)이야!'
만약 이런 말을 한다면,
또는 만약에 '남자 중에 쓸 만한 남자, 믿을만한 남자 하나도 없어, 다 똑같아!'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해서, 이런 (불신의)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간혹 '친구 중에 내가 믿을 만한 친구는 하나도 없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스스로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제 말 뜻은, 만약에 '전적 타락'을 주장하는 것은 맞지만,
흑백논리가 아니라, 많은 고려를 필요로 합니다.
다윗이 (시14편의 저자, 1권은 대부분 다윗의 시)
당시 시대상이 마치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대부분 타락했다는 말을 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정말 다윗 주위의 '부모, 형제, 측근, 친구 모두가 다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
그런 의미로 '의인은 없나니 세상에 하나도 없다'라고 말한 뜻은 아니죠.
칼빈이 주장한 '전적 타락'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어! 가족이든 친구든 성도든
거기에 의로운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 다 나빠!'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라면,
그런 사람처럼 고독한 사람은 없고, 불쌍한 사람은 없고,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죠. '이 세상에 내가 믿을 만한 친구는 하나도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 가장 고독한 사람이에요.
성도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인데,
이 세상 죄인들을 구원하기에 앞서서
'이 세상에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 이 세상에 선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
라고 한탄한다면.. 사실은 그 성도가 더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먼저 위로나 구원을 받아야 돼요. 그 사람이 먼저 도움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하나님이 이런 한탄을 하신다면,
'내 God 가 그렇게 그들을 돕고, 사랑하고, 선을 베풀었는데
이 세상에 내가 쓸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의인은 하나도 없네...'
만약에 하나님이 이렇게 한탄하신다면, 우주에서 가장 불쌍한 분이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이때는 오히려 사람이 하나님은 위로해 드려야 할 거에요.
'아니에요. 하나님,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저라도 열심히 믿을게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람이 위로해야 되는 사정이 발생할 것입니다.
▲만약에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이 말을 한 것이
'그래 맞아, 이 세상에 쓸만한 사람 하나도 없지!' 라는 주제의 말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로마서는 3장에서 끝났을 것입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죠.
여기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말을 인용한 거죠.
이게 시작 포인트입니다. 끝이 아니라는 거죠. 이게 결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포인트에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아래 포인트가 결론을 내리는 지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헛되지 않았다. 이게 허탕이 아니었다..' 라는
하나님의 믿음, 이것이 우리 믿음이 돼어야죠.
하나님은 '인류에게 베푼 나의 사랑이 헛되지 않았다. 반드시 선을 이룰 것이다' 라는 당신의 믿음을
무엇으로 나타내셨습니까?
인류를, 죄인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그래서 바울은 고전13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느니라'
하나님은 죄인들을 그렇게까지..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거죠!
그런데 제자인 우리들이 '전적 타락' 신학에 극단적으로 몰입해서
'믿을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고 지레 포기하면 안 된다는 거죠.
인간이.. 의인은 없고 다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실망하지 않고, 한탄하지 않고
인류를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는 당신의 힘!
그걸 '사랑은 오래 참는다. 언제까지도 떨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찾는다. 견딘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힘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기 어디에 하나님의 체념이 있습니까?
'그래, 그들은 기대하면 안 돼! 무엇을 기대할 수 없어, 다 버린 자들이야'
이렇게 체념하는 성경 구절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간이 다 죄인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깊은 후회와 실망을 갖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종종 흑백논리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거 아니면 저거, 흑 아니면 백, 백아니면 흑...
인간에 대해서 '롬3장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니까, 다 죄인이야! 그걸로 끝!'
이렇게 흑백논리로 생각하면, 체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죄인일지라도, 그것 때문에 체념하지 않고
그들을 구원하기까지 사랑하는 힘을 갖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그게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롬3장)은, 체념하는 뜻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아~ 그들은 다 죄인이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어! 쯧쯧' 이렇게 체념하는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체념하는 것이라면, 로마서는 3장에서 끝났을 것입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죠.
여기에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실망하는 것은, 자연 환경 때문에 실망하지 않아요. 자연 재해에 실망하지 않아요.
우리가 실망하는 것은, 사람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은 사실 몇 명 안 돼요.
몇 안 되는 사람 때문에 실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부모님, 배우자, 형제, 자녀, 친구 몇 명 등
우리 주변의 몇 안 되는 사람 때문에 실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렇잖아요.
수고의 결과에 대해서 실망할 수 있고,
목사가 오랜 세월 동안 정성스럽게 목양을 했는데
성도들이 자라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실망할 수 있습니다.
주위 기독교인에 대해서 실망할 수 있고, 주변 인간에 대해서 실망할 수 있습니다.
네, 실망할 수 있어요.
그러나 실망으로 끝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보다도 더 엄해지려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보다도 더 엄하게,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죄인에 대해 실망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하나님이 모르고,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에요.
창세기에 이미 '인간을 아셨다'고 했습니다.
사람 속에 선한 것이 없는 것을, 노아의 홍수 때 이미 아셨어요. 창6:5
모세 때에도 이미 아셨어요. *금송아지 사건 등
선지자의 시대 때도 이미 아셨어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다 아셨어요.
그럼에도 예수님을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우리가 믿기를 원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우리의 소망의 근거를 발견하지 않는다면, 다른 데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체념하셨다면, 벌써 옛날에 체념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체념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진행하셨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위하여!
▲그러므로 '예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야?
'예수님처럼 성자가 된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얘기야?
오른뺨을 돌리는 게 어떻게 가능해?
십리를 가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한두 번은 가능하겠지...
그러나 계속 죽을 때까지 그건 아니잖아?'
한두 번은 오른 뺨을 돌려 댈 수 있을 거에요. 한두 번은.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의 마음을 품는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 그것은, 사람에 대해서 끝까지 실망하지 않고, 구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이, 마치 뿌연 안개처럼, 손으로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죠.
그러나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의지'
'체념하지 않는 하나님의 힘'
'당신 God 으로 말미암는 강한 의지, 당신의 믿음'
'당신이 시작하신 일이 이루어지리라는 하나님의 믿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의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하나님의 의지를 알아야 해요.
하나님은 어떤 의지를 갖고 계시느냐?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지,
나와 내 집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 또는 하나님의 뜻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
'착한 일(구원의 완성)을 시작하신 일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의지'
즉 사람에 대해 결코 실망하지 않으시는 의지입니다.
'우리는 지옥에 보내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의지'
'우리가 생명으로 얻되 풍성히 없기를 원할시는 하나님의 의지'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의지' 그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 기대를,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거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어!' 하고, 지레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를, 우리의 손으로 붙잡을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요. 마음으로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저렇게 모자란 사람들을 사랑하신데?'
이런 식으로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보지 말고,
내 입장으로 바꿔서 생각하고 바라봐야 됩니다.
'나 같은 미련한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사랑하실까?'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의 입장이 돼봐야
'아~ 하나님이 위대하시구나, 하나님이 거룩하시구나, 놀라우시구나!'
'오 신실하신 하나님!'
(사람들을 불신하는게 아니라) 그제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오~ 저희에게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알게 하옵소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그 의지를 내가 믿게 하옵소서!'
우리가 손을 들고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주제별 설교 > 사랑설교 108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너뜨림이 아니라 세움의 기도 계5:1~8, 눅18:1~8, 벧후3:13 (0) | 2025.01.01 |
---|---|
부분적인 것, 완전한 것 고전13:9~10 (0) | 2025.01.01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요일4:7~12 (0) | 2025.01.01 |
사랑 안에 없는 것 하나가 있다 요일4:16~21 (0) | 2025.01.01 |
사랑에 잠겨 살다 요17:20~26 (0) | 2025.01.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