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에 관한 소고 갈3 :13, 렘31 :29, 겔16 :44.
시중에 ‘저주의 유전’에 관해 두 가지 의견이 나뉘어 있습니다.
1) 저주는 유전되는 것이니 조심해야 하며,
저주를 끊으며 살아야 된다는 주장이 있고요,
주로 은사주의 교회에서 저주의 폐해와 위험을 강조하죠.
2) 또 다른 주장은, 예수 믿으면 당연히 저주에서 해방되는 것인데
무슨 자꾸 저주 타령이냐? .. 이렇게 저주에 대해 무시하는 측 주장이 있는데
주로 일부 장로교회에서 이런 측면을 강조합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렘31 :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다.. 저주의 유전을 가리키죠.
그런데 위 구절은 ‘다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즉 저주의 유전이 끊어진다! 는 내용의 예레미야의 예언입니다.
위 구절의 정황, 문맥은
렘31장 전체가 <새 언약과 그 혜택>에 관한 내용입니다.
즉 이전에는 너희가 ‘저주의 유전’ 가운데 살았지만
너희가 새 언약에 들어가면 ‘저주의 유전’에서 해방되리라!
그게 바로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어도
아들의 이가 시리지 아니하리라’입니다. 렘31:29
이스라엘에 재미있는 속담이 있었습니다.
겔16:44 ‘속담을 말하는 자마다 네게 대하여 속담을 말하기를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 하리라’
저주의 유전을 가리키는 말이죠.
그런데 새 언약 관계에 들어가면,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렇지 않다’가 되는 거죠.
▲그런데 혹자는, 예수를 믿으면 모든 저주에서 해방되므로
은사주의자들이 ‘저주의 유전’으로
성도들을 겁박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인 구절이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저주를 다 받으셨는데, 그 값을 십자가로 다 치르셨는데
무슨 저주 타령이냐? .. 라고 주장하는데요.
말은 맞습니다만, 한 가지 고려해야 될 사항은
신자들 가운데 ‘지적 동의’로 예수 믿은 사람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진정 회개하고, 진정 회심하고, 진정 창세기 1장의 창조역사처럼
자기 삶이 새창조 되지 못하고,
그저 지적 동의로, 지식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저주 아래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모든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라고 착각하며 살게 되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기 몫이 되는 것이고,
그들을 잘못 인도한 목자들도, 나중에 심판대에서 혼이 나게 되겠죠.
결론은, 예수를 진정으로 믿고 회심한 사람은
모든 율법의 저주, 조상의 저주, 자기 죄에서 오는 저주에서 해방되므로
정말 감사하며, 걱정할 게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되 명목상 신자로 믿는 사람들은
‘내가 모든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라고 믿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쪽에서 ‘모든 교인은 모든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라고 주장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더 자세히 말하면
‘정말 회개하고, 삶이 변화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만 모든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라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뭘 이걸 공식적으로, 수학공식처럼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미 회개하고 회심하고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도,
그럼 영원히 저주에서 해방되었느냐?
수학공식이나 과학법칙처럼 생각하면 안 되고요,
이미 회개하고 회심한 사람도, 그 후에 자범죄를 짓습니다.
그럼 본의아니게 또 저주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목욕한 사람도, 발은 계속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저주를 끊고, 예수 피로 저주를 물리치는 기도를
계속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저주에서 해방되었으니, 영원히 이제 저주가 없다! .. 맞는 말이지만,
유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목욕했다는 뜻이죠. 그러나 그 후에 발을 안 씻으면 자기만 손해인 거죠.
*저주를 끊는 선포기도의 예 : 자녀의 권세로 선포기도, 외과수술적 선포
▲저주는 오늘날에서 실재합니다. 현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남에게 해코지를 해도,
법적 처벌만 피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자기 생각입니다.
내가 남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그 사람이 내게 저주의 말을 했을 때, 저주의 선포를 했을 때
그게 어디를 가든지 나를 따라다니는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정확한 과학은 아니지만, 삶의 경험과 체험에서
사람들은 ‘노인을 학대하지 말라’고들 말합니다.
노인이 힘이 없어서 아무런 보복을 할 수는 없지만
그가 내뱉은 저주는.. 무서울 수 있습니다.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도
여자가 내뱉는 저주가 그만큼 무섭다는 뜻인 듯 합니다.
그런 저주를 받는 당사자는
사업을 하건, 직장생활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 계속 실패의 연속인 거죠.
이사를 가고, 이민을 가도.. 그 저주가 자기를 계속 따라다니는 겁니다.
자기 위로 영적인 먹구름이 계속 따라다닌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저주는, 주로 약한 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내뱉은 말입니다.
물론 본의 아니게 약자에게 어떤 부당한 처우를 했다면,
어서 빨리 사과하고, 그걸 풀고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저주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무서워할 필요 없습니다.
잠언 26: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마치 욕쟁이 할머니가 곧잘 욕을 하듯이
내가 그렇게 피해를 입히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이 악해서, 내게 저주를 퍼부을 수도 있습니다.
위 말씀은, 그런 저주는 내게 임하지 않으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합니다.
아래 구절은, 그런 저주는 오히려 자기자신에게 되돌아간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109:17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그런데 위 잠언 ‘까닭 없는 저주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은
뒤집어보면 두려운 말씀이 됩니다.
‘까닭 있는 저주는 이루어진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저주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일례로 신명기 28장만 보더라도,
축복에 관한 말씀보다, 저주와 형벌에 관한 말씀이 3배나 더 나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저주는 실제로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런 현실을 애써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거나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레위기 20:9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혹자는 ‘누구는 자기 부모를 욕하고 저주했는데도 안 죽던데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지금 당장 죽지 않더라도 ‘죽음의 저주’가 그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주님께 그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지 못했을 경우에요!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저주 받을 일(짓)을 하고도, 그런 죄를 짓고도
자기는 법적 처벌만 받지 않으면 괜찮다면서.. 안심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국법 위에 하나님의 법이 있으며, 성경의 법이 있습니다.
남에게 위해를 가하면, 사람에게 억울한 상처를 주면
그래서 저주를 받게 되면,
그 사람의 앞날은 보나마나 입니다.
뭘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저주의 검은 먹구름 아래 살고 있으니까요!
세상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교인인데도, 자기는 회개도 하지 않고
지식적으로 믿는 소위 명목상 신자이면서도
그저 지식적으로 ‘나는 모든 저주에서 해방되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 지옥같은 매일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실이 그렇다면 모든 저주에서 해방된 게 아닙니다!
명목상 신자에게는, 그런 복음의 축복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최근 국제정세를 보면, 한 동안 이라크 등지에서 IS가 활동해서
그 지역을 일대의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수 십 만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수 백 만의 사람들이 고향과 집을 버리고 떠도는 난민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리아에서 엄청난 살상과 내전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혹시 과거 앗수르, 바벨론 시대 때부터 내려온 저주 때문은 아닐까요?
이 이유 하나로 단순화해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다른 요인들이 있겠지만
‘조상의 저주’도 무시하지 못할 한 요인이라고 봅니다.
그 지역은 주전 약 1천 년 전부터, 앗수르 바벨론이 장악하면서
그 중동 일대를 피바다로 만들고, 공포의 도가니가 되었던 지역들입니다.
그 후손들이 지금, 똑같은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그 저주에서 해방되는 길은,
물론 그 민족이 주님께 나아와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는 길뿐입니다.
그때 ‘아비가 신포도를 먹어도 아들이 이가 시리지 않을 것’입니다. 렘31:29
▲이렇게 저주는 유전됩니다.
여러분, 세계 대부분 나라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채를 쓰고 만약 부모가 못 갚으면 어떻게 되죠?
국법은 어떤 안전장치가 있지만, 실제 현실은 많이 다릅니다.
그거 다 갚기 전에는, 그 자녀는 절대 안전하지 못합니다.
‘저주’의 특징 중 하나가 ‘유전’입니다.
부모가 완전히 회개하고, 완전히 변화되고, 완전히 새 창조되는
진정 회심해야 되는 이유는,
그래야 저주를, 자녀 세대로 물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세대에서 예수 피로 빚청산 확실히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부모 세대가 교회를 다녀도, 명목상 신자로 다니면
부모가 알코올 중독이면, 자녀도 둘 중 하나는 그걸 물려받습니다.
부모가 ‘밝히면’, 자녀도 밝힙니다.
그래서 ‘피는 못 속인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결혼 할 때 ‘장모를 보고 해야 된다. 그 부모를 봐야 된다!’
조상들의 삶의 경험과 지혜에서 나온 말인데, 현실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그 자녀가 확실히 회개하고 회심하고 예수 믿으면
그 부모 안 봐도 됩니다.
그 부모가 알코올 중독이라도 무방합니다.
그 자녀는 부모의 모든 저주에서, 예수 피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1. 우리는 저주를 자체 생산하면 안 되겠습니다.
부모로부터 유전 받는 저주도 있지만,
(심지어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저주도 있습니다.)
내가 자체 생산하는 저주도 있습니다.
살다보면 이래 저래 남을 억울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늘 회개하고, 사과하고, 피해는 보상하고,
그래서 법적 처벌은 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성경이 말하는 저주는 반드시 임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2. 우리가 명목상 신자로 믿으면 안 되고
진정 회개하고, 내 마음에 새 창조가 일어나는,
진정한 회심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저주에서 해방>되니까요!
자기가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자기가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로,
‘나는 모든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지금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신학)
라고 착각,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만 피해를 봅니다.
3. 오늘날 일각에서 ‘저주를 강조’하거나,
반대로 ‘저주를 강조 말라’쪽으로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양쪽 주장을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의점을 도출할까요?
진정 회개하고, 변화되어 예수를 믿는 신자는 ‘저주에서 해방’된게 맞습니다.
이런 부류에는 ‘아비가 신포도를 먹어도
아들의 이가 시리지 않다’가 적용됩니다. 렘31:29
그러나 지적 동의로 예수를 믿으면서도 ‘저주에서 해방되었다’고
안심하시면 안 됩니다!
이런 부류에는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 하리라’ 겔16:44
라는 구절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덧붙여, 부모가 사랑스런 자녀에게 물려줄 최대의 유산은
자기 세대에서 참으로 회개하고 진정 회심하고 예수를 믿어서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저주를, 자기 세대에서 끊고
자녀 세대에 오직 새언약의 축복, 복음의 축복만 물려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떤 한 순간의 극적인 변환점(회심)만 있는 게 아닙니다.
회심하고 나서도, 계속 연약해서 범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늘 회개하면서, 목욕한 자가 매일 발을 씻으면서
자기에게 아무런 저주가 임하지 않게 하고,
그래서 자기 자녀에게 아무런 ‘빚’을 물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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