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성공설교 79편

실패했을 때나 성공했을 때나 주님을 찬양해야 시8:2, 마21:16

by 【고동엽】 2024. 12. 31.

실패했을 때나 성공했을 때나 주님을 찬양해야            시8:2, 마21:16     출처

Worship In All Seasons, 2019

빌 존슨 목사

 

시편8장과 마태복음21장을 보겠습니다. 이 두 구절을 같이 보기 원합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1장에서 시편8편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8:2절,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이 구절을 예수님께서는 본문 마태복음 21장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어떻게 인용하셨는지 잘 보시기 바랍니다.

살짝 다르게 인용하십니다.

 

마21:16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으로’는 똑같은데, 연이어지는 구절이 살짝 다릅니다.

 

시편8장에서는 ‘권능을 세우심이여’ ordained strength 인데,

마21장에서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다’ perfected praise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둘이 다른 이유는 예수님께서 잘못 인용하셨던 것입니까?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바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잘못 인용하시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시편 8편의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권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을 주시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재해석해 주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 말씀하심에 의하면

‘어린아이의 입으로 권능이 세워진다’는 시편의 말씀은,

‘어린아이의 입에서 찬양이 온전해진다’.. 는 뜻입니다. 이렇게 재해석하신 것입니다.

 

또한 마21:16절에 나오는 “찬양”이란 단어는

‘칭송하는 긴 말이나 이야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헬, 아이노스 : a saying, proverb, praise, laudatory discourse 즉 칭송하는 긴 말

 

시편 8편과 마태복음 21장을 같이보게 되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찬양은 개인적인 힘을 얻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21장에서 말하는 찬양은

‘칭송하는 긴 말, 또는 이야기’라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약에서 말하는 경배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온전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아이의 입술로 권능을 세우심이고,

어린아이의 입술로 하는 찬양입니다. 즉 하나님의 선하심을 선포함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분의 선하심을 이야기할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분의 선하심에 대한 이야기들은 선포되고 전해져야 합니다.

찬양으로 그분의 임재, 그분의 성품, 그분의 선하심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시편기자가 말한 권능은, 힘은 찬양 중에 찾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선하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선하심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선하심이 모든 신학의 모퉁이돌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러 오셨습니다.

악의 일들을 폐하러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을 시작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여러가지 일을 하시기 위해 오셨지만,

신약 전체를 읽으면서 나오는 이 모든 리스트를 다 모으면

한 가지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기 위해 오셨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이 땅에서 고아처럼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여러분과 제 일은

그분의 선하심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경배는 영적 전쟁에서 매우 특별한 무기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배를 하는 이유가 영적전쟁이 된다면,

그때는 더 이상 경배가 경배가 아니게 됩니다. 경배가 아첨이 되어버립니다.

 

아첨은 우리가 뭔가를 얻기 위해서 좋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경배를 할 때 경배는 아첨이 되어버립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는 경배는 경배가 아닙니다.

 

경배는 무엇입니까? 경배는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경배의 본질은 가치에 대한 인정입니다.

 

내가 삶에서 어떤 실패를 했던지, 어떤 성공을 했던지,

우리는 그분의 가치에 따라 반응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분의 가치는 항상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경배 중에 무릎꿇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정직한 경배의 표현입니다.

 

내가 기분 좋을 때에만 경배하는 것은 정직한 경배가 아닙니다.

우리가 경배하는 근본은 그분이 어떤 분인가에 달려 있지

내 상황이 어떠한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제 첫째아이인 에리카가 몇 개월 안되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에리카가 매우 아프고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고열이 떨어지지 않고 있어서 우리는 매우 겁이 났었습니다.

첫째아이여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 작은 아이가 어떻게 살아있는지조차 신기할 때였습니다.

 

에리카가 극도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고,

저는 찬양이 매우 능력있는 무기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우리 옆에서 찬양하자고 했고, 우리는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에리카가 치유받기 원했습니다.

 

그렇게 찬양하고 있던 중에 저는 제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제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치유를 바라는 마음으로 찬양하는 것이 물론 나쁜 것은 아닙니다.

치유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뜻대로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저를 용서해 달라고 회개하였습니다.

 

저는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에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그 순간 제 아이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그분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얻으려고 찬양했던 것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의 치유에 대한 믿음이 저에게 왔습니다.

 

제가 무너지고 회개하는 그 순간을 주님께서 인정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약할 때 강함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백하는 그 순간 믿음이 저에게 왔고 제 아이의 열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한시간도 되지 않아 아이가 완전히 나았습니다.

 

turn your eyes upon Jesus look full in his wonderful face

눈을 주님께 돌려 그 놀라운 얼굴 보라

and the things of Earth will grow strangely

dim in the light of his glory and grace

주님 은혜 영광의 빛 앞에 세상 근심은 사라지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