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자리에서 싹튼 은혜
왕하 7:3-10
나병환자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
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
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떠
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이스라엘은 12지파였습니다. 솔로몬 왕까지 한 민족 한나라로 살았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하나는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북 왕국을 이루어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11지파가 남 왕국을 이루어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남 왕국 수도인 사마리아에 심한 기근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근도 감당하기 힘든데 오늘 본문에 보면 아람군대가 또 쳐 들어왔습니다. 아람군대는 당시 다메섹 지방을 근거지로 살아가던 전쟁과 약탈에 능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온 백성들이 두려워 떨었고 모두 공포에 싸여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여기서 헤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때가 기적이 일어나는 시간이고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시간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 때가 찾아옵니다. 앞과 뒤 그리고 어디를 보아도 헤어날 구멍조차 없을 만큼 완벽하게 길이 차단된 때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그때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주저앉게 되는데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그런 시간이 어쩌면 축복의 시간일지 모릅니다. 그 시간이 기회의 시간이고 새로운 문이 열리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그런 때 찾아옵니다. 이것은 신앙인뿐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도 이런 극한 상황이 기적을 일으키는 시간입니다. 그때 숨겨진 문이 열리고 눈이 뜨이고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이 주어지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시간을 활용하십니다. 여기 아람군대에게 성이 에워싸임을 받은 사마리아 성에 마침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려면 반드시 진통을 거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런 진통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불 신
지금 이스라엘이 이런 위기에 빠져있을 때 선지가 엘리사가 나타나서 예언을 했습니다. 1절을 보면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내일 이맘때가 되면 곡식 값이 1/10, 1/20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내일이면 이 땅에 하나님이 개입하여 승리하게 하셔서 평화가 찾아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양식이 제대로 공급되고 안정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그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그 상황에서는 내일 당장 그렇게 이루어지기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오늘 처해진 상황은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그런 예언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것이 하나의 진통과정입니다. 그래서 기적입니다. 기적은 넉넉하고 가능성이 있을 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2절을 보면 그때 한 장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장관은 왕의 전속 무관인 국방장관으로 생각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아무리 보아도 그 예언은 현실성이 없는 아주 불가능한 예언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관의 말과 생각은 아주 타당성이 있고 당연한 말입니다. 그 장관의 생각이 오늘 우리의 생각입니다. 이 반응은 오늘 신앙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똑같이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그때 그 상황에 하나님의 예언자가 나타나 아주 소망스런 예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망스런 예언이 주어졌는데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입니다. 그 국방장관이 그랬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그때 엘리사 말하기를 “그것을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너는 그것을 먹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 장관이 몇 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는 선지자의 예언을 불신하는 죄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죄도 지었습니다. 또 선지자를 조롱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국방장관이 마침내 정죄를 받아서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없는 중에도 있게 하시고 불가능 중에도 가능케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국방장관은 별다른 방법도 없으면서 엘리사의 예언을 한마디로 부정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가 또 예언하여 말합니다. “이제 곧 그 기적이 일어날 것인데 너는 먹지 못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이 시대를 봅니다. 이 시대에도 주어진 소망스런 예언들을 공공연히 부정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정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용기를 잃게 하고 힘을 잃게 하고 소망을 잃게 하고 모두를 시험에 빠지게 만듭니다. 지금 나라는 극심한 기근으로 망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아람군대가 쳐 들어와 있습니다. 지금 길도 방법도 없습니다. 그때 예언자가 와서 “곧 하나님이 구원하시리라 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예언을 믿고 그 예언이 더 빨리 이루어지도록 해 달라고 애원을 해야 하는데 그리고 나가서 백성들에게 조금만 기다려라, 이제 곧 하나님의 은혜가 이 땅에 임하실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앉아서 하나님이 하시는 기적 같은 은혜를 보기만 하라“고 돌아다니며 신나게 방송을 해야 합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그런데 자기에게는 방법이 없으면서 엘리사의 예언을 부정부터 하고 나섰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타락하고 부패한 심성입니다. 그래서 우리 입에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신이 나오고 부정이 나오고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 국방장관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나병환자들의 출현
성경에 보면 그 일이 있고 나서 곧 바로 나병환자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상상을 초월하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사의 예언을 이루시는데 이 나병환자들을 활용하십니다. 본문 3,4절을 보면 나병환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두면 살 것이요 죽이면 죽을 것이라“.
여기 나병환자들의 결단을 보십시오. 그 지역에 기근이 심했습니다. 그렇다고 성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들어가 보았자 그곳도 먹을 것이 없어 죽기는 마찬가지고 나병환자가 성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그때 기근이 얼마나 심했습니까. 6:25절을 보면 “아람군대가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값에 은 다섯 세겔이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극심한 기근이라 먹을 것도 없었지만 또 아람군대가 성을 에워싸는 바람에 성문밖에 나가고 들어올 수도 없어서 물자 반입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성안에 먹을 양식이 없어서 나귀머리 하나에 은 80세겔이나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나귀는 부정한 동물이라 사람들이 먹을 수도 없었는데 그럼에도 배가 고프니까 그것조차도 은 80세겔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 세겔은 노동자의 4일간 품삯이니까 일반 노동자의 일년 치 품삯을 주어야 나귀머리 하나를 살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6:28절을 보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 놓으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 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그 정도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왕이 옷을 찢었다고 했습니다. 그 시대가 그렇게 기근이 심했습니다. 그 기근은 그 성이 죄를 지어서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엘리사가 와서 이제 심판이 끝나가고 곧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고 하는데도 아직도 그 밑바닥에는 불신이 갈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시대에 나병환자들을 동원해서 메시지를 주시려고 하십니다.
성 밖에 내벼려진 채로 굶주리고 있던 나병환자들도 이제는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네 명의 나병환자들이 말하기를 “여기 앉아 굶어죽느냐 아니면 성안으로 들어가 얻어먹느냐, 성안에 들어가 보았자 거기도 먹을 것이 없을 것인데 그렇다면 차라리 아람군대가 있는 진영으로 들어가 얻어먹자, 그들이 우리를 죽이면 죽고 살리면 살리라“. 이 나병환자들은 어느 시대나 소외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부터 이 나병이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흉하게 인식되었습니다. 이들은 2중고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하나는 질병의 고통입니다. 오늘은 이 나병이 큰 문제가 안 되고 발병해도 별 문제가 없지만 옛날에는 가장 처절한 병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소외감입니다. 나병은 하늘이 준 병이라고 해서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성안의 공동체로부터 추방되어 성 밖으로 쫓겨나 살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희망의 싹이 어떻게 자라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의 결단
여기 이 네 명의 나병환나들이 마침내 결단을 내립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그럴 바에는 아람진영에 들어가서 항복하자, 그들이 살려주면 살고 죽이면 죽자“하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살아가는데 이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 결단을 내려야할 때 용기 있게 결단을 내리면 길이 열립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결단을 내렸을 때 무서운 힘과 용기가 주어졌을 뿐 아니라 길도 열렸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어느 목사님이 신사참배 강요를 당했는데 무릎에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늘 망설였습니다. 만일 감옥에 들어가면 추위 때문에 분명 병신이 될 것 같아 주저하고 망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합니다. “이것은 목사가 할 일이 아닌데, 내가 병신이 되면 되리라“ 그리고 담대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겨울을 지나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관절염이 겨울을 지나는 동안 다 나아버렸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때로 이런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결단하면 무서울 만큼 힘이 나오고 좋은 결과가 주어집니다. 이 나병환자들이 그 상황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뜻밖의 은혜
그리고 이 나병환자들이 용기를 가지고 아람진영으로 들어갔습니다. 가서 먹을 것을 얻으면 좋고 아니면 죽겠다는 각오로 갔습니다. 막상 아람진영으로 가 보니까 군인들은 한사람도 없고 먹을 것은 지천으로 널려있었습니다. 그때 군인들이 다 어디로 갔는가 하면 6절을 보면 “이는 주께서 아람군대로 병거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를 오게 하였다 하고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가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밤에 하나님이 아람진영에 병거소리와 큰 군대의 말발굽 소리를 들려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람군인들이 잠결에 그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이 연합군을 형성해서 쳐들어오는 줄로 알고 모두 도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신 공포의 소리를 듣고 모두 달아나버린 것입니다. 이 나병환자들이 뜻밖에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와 보니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실컷 먹고 마시고 보화들을 가져다가 숨겼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최초의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은 대부분 뜻밖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메시아의 탄생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들은 목자들이었습니다. 이 목자들은 누구도 상종하지 않는 그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최초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도 초라한 여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여인도 산골의 숫처녀 마리아였습니다. 오늘도 이 기적 같은 사건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들도 그 시대에 버려진 인생이었던 나병환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기적을 최초로 목격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들의 생각과 너무나 다릅니다.
그래서 이 나병환자 네 명이 그날 실컷 먹고 마시고 배가 불렀습니다. 그날 얼마나 신나게 먹고 마셨겠습니까. 그런데 이 이야기는 싫도록 먹었다는 것이 본문이 주는 메시지는 아닙니다. 그것은 그날 이 네 명의 나병환자들이 실컷 먹고 나서 뭘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네 명의 나병환자들이 배가 부른 후에 먼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 네 사람에게 이렇게 실컷 먹고 마시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배부른 후에 할일을 안 하는 사회는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 나병환자 네 사람이 먹고 배가 부른 후 생각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중 한 나병환자가 말했습니다. 본문 9절을 보면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하고 성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나병환자들이 황급하게 사마리아 성으로 달려가서 왕에게 아람 군대 가다 도망하였다는 사실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성취된 예언
이 사건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마리아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섭리를 소개한 내용입니다. 사마리아를 구원하시는데 하나님은 나병환자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언약하신 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이고 신약성경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다양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구원하시는 방법은 참으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마리아 백성들 누구하나 아람군대가 그렇게 버리고 간 군량미로 자신들의 굶주림을 채우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세 번째는 “나병환자들을 사용하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참 신비합니다. 그때 나병한자들도 자신들의 역할을 몰랐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그 중요한 때에 그렇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 세상을 움직이시고 섭리하시고 사람들을 불러내서 활용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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