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4주일설교 (사도행전 강해 36)
간절히 기도하고 온전히 순종하라
행 16:6~34
“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
추석 명절에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우리 가운데 오늘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마음껏 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명절에 부모의 마음은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듯이, 오늘도 하나님은 특별한 복을 주시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대하셔도 됩니다. 하나님의 좋으신 것, 풍성하신 것,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 여러분을 향한 말할 수 없는 복을 마음껏 누리고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어도 별 감동이 없는 분도 계십니다. “아, 예!” 하는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는 친절하지 않으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하나님께서는 왜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보여주시지 않으시는 것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시거나 애매하게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명확하게 인도하지 않으신다고 생각되는 것은 매사에 기도하면서 판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친절하시고 정확하시고 든든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교회사 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트로이)에서 한 환상을 보고 동쪽 소아시아로 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서쪽 유럽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리고 빌립보에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역사의 연구’를 쓴 역사학자 아놀드토인비는 그때 드로아에서 바울을 태우고 마게도냐로 가고 있었던 그 배가 바로 유럽의 역사를 바꾸는 배이었으며, 유럽의 문명사의 미래를 안고 가던 배였다고 증언했습니다. 유럽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유럽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유럽과 서구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중요한 사건이지만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명심하고 또 명심할 말씀입니다.
사 55: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여러분, 왜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으로 경험하지 못하는가? 이 말씀을 정확하게 붙잡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나름대로 좋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여행을 떠나면서 목적이 1차 전도여행에서 세워진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고 여유가 있으면 소아시아 지역으로 더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계획이 아닙니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계획입니까? 하나님께서 팍 팍 도와주실 계획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람이 세운 좋은 계획이라고 다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계획이면 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뜻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세운 계획이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너무너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진행되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 때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굶고 매맞고 어려운 일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희안하게도 전도의 문은 계속 열어주셔서 전도를 나가면 문이 열리고 전도를 나가면 문이 열렸습니다. 1차 전도여행 때 ‘하나님이 하셨구나!’ 그렇게 고백을 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2차 전도여행을 떠났는데 어째서 전도하려고 하는 길마다 다 막히느냐 말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눈이 왔는지 산사태가 났는지 모르지만 아시아 지역으로 전도하러 가는 깃이 점점 막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 그리고 함께 한 디모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전도하면서 굶기도 하고, 추위에 떨기도 하고, 돌에 맞기도 하였지만, 기도하면 막힌 길도 열리며 전도 문이 열렸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수고한다. 더 열심히 전도하거라.’ 하시는 것과 같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 전도여행에서는 시원하게 뚫려 있던 길도 막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막으신다고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갈 수 없는 비두니아 길을 포기하고, 갈 수 있는 길로 가다 보니 드로아란 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너무나 답답해 했습니다. ‘우리의 길이 왜 막혔을까? 하나님의 뜻은 어디 있을까?’
이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사도 바울의 기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순간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얻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의 핵심 키는 기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유럽에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성령님이 계획하신대로 사도 바울은 유럽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것은 기도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령님의 인도를 정확하게 받을 수 있었고 결국은 드로아에서 마게도니아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여 유럽에 교회를 세우고 유럽 복음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하셨고 바울은 기도하면서 바울 일행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고 유럽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16장에 뚜렷히 나타나 있습니다.
9절 말씀에 보니까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드로아에서 “밤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잠을 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한 것입니다. 잠을 잤다면 꿈에 보았다고 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저하는 사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전도 문이 다 막히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막으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답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잠이 오겠습니까?
저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밤에 주무시는지 기도하는지 모르게 기도하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주무셔도 앉아서 주무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하였던 것입니다. 답이 오지 않았는데 편안하게 잠을 잘 바울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이렇게 하십니까? 하나님,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입니까? 여기 드로아까지 왔는데 하나님의 계획은 이제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사도 바울이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기도 중에 환상을 본 것 처럼 바울도 기도 중에 환상을 본 것입니다. 바다 건너편의 유럽 지역인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나타나더니 애절한 눈빛으로 “마케도니아로 건너 와서 우리들을 도와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이 환상을 보고 사도 바울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때까지 답답하고 생각이 복잡하였는데 가슴이 시원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유럽으로 건너가라는 것이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계획에 없었지만 유럽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일이 분명해집니다. 기도의 역사입니다. 기도하면 일이 분명해집니다. 간단해집니다. 많은 성도들이 열심히 살지만 지나고 보면 막상 거둘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탄합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살았는데 거둘 것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그런 일이 많습니다. 1년 동안 속회 열심히 하고 1년 동안 선교회 열심히 했는데도, 1년 동안 부서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하고 애썼는데 연말이 되니까 거둘 것이 없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것 해보고 저것 해보고 그러니까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하신 길은 한 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한 것은 하나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생 사는데 이것 조금해 보고 저것 조금 해보고. 우리가 한 주일을 살아도 한달을 살아도 이것 조금 해보고 저것 조금해 보고 이 사람 만나보고 저 사람 만나보고 이렇게 살다가 세월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난 다음에 나타나는 현상이 사역에 집중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거 하나 붙들어야 되겠다.’ 밤낮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니까 아무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 보십시오. 두 마음 품어서 정함이 없는 자로다. 그 얘기 아니예요? 정함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신 분은 다 알죠? 기도하고 난 다음에 나타나는 현상이 뭡니까? 설교 준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책을 읽다 보면 설교할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도대체 이 말씀을 이번 주에 어떻게 다 전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설교 준비한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두 시간, 세 시간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하면 그 모든 말씀들이 정리가 되어 하나님께서 이 주일에 전하라고 하는 말씀이 하나인 것을 알게 됩니다. 나머지는 다 곁가지인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그냥 좋아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전하라고 하는 것이 여겨질 뿐입니다. 기도를 해보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기도 중에 전할 말씀을 붙잡고 주일에 증거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언제까지 해야 됩니까?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하나 붙들면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송곳같은 사역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일이 있어서 사람을 택해야 될 때 사람의 생각에는 다 장단점이 있어 누구를 택해야 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고민하고 방황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누구를 왜 택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우리 마음을 인도하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정확하게 길을 인도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다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한길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생 사는 동안 여러분, 몇 가지나 하고 살 것 같습니까? 진짜 중요한 것은 몇 가지나 될 것 같습니까?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내 인생은 이것을 위해서 살다가 왔습니다. 전할 것 하나 밖에 없습니다. 어느 개그맨 유모어 중에 자기 비석에 이렇게 쓸 거다. ‘웃기다 자빠졌다’ 그 사람은 평생 웃기는 사명을 위해서 산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비석에 한 줄 밖에 안 남습니다. 그것을 언제 발견하지요? 어떻게 찾습니까? 기도 중에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기도하면 명확해집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마게도냐에 도착해서 또 막막해졌습니다. 기다려 주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제가 손짓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을 전해 주세요. 이래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길도 막고 저 길도 막고 요 길이다! 하면서 이끌어가셨으니까 빌립보에 들어가면 ‘축 환영! 바울선생 일행 환영!’ 이렇게 나올 법 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안 벌어집니다. ‘정말 환상을 본 것이 맞는가? 분별을 잘한 것일까?’ 혼란스러울 일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때도 오직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13절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 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그런데 기도하러 가는 중에 루디아를 만납니다. 루디아는 옷감 장사였는데, 그녀가 마음을 열어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며, 루디아의 집은 나중에 빌립보 교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입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시간을 단축시켜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지체되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일이 빨리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평탄하냐 아니냐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서 오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 복을 주시는 하나님, 풍성하신 하나님, 너무 가까이 계시고 자상하시고 친절하신 하나님으로 경험을 하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길을 판단하는 기준을 잘 못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16절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사도 바울이 기도하러 가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고쳐주어 귀신을 쫓아내 버렸더니, 그 일로 수입이 그친 주인의 고소로 온 몸에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험난한 길이고 썰렁한 길이고 어떤 때는 매 맞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는 길이 평탄하고 기분 좋고 형통해 보일 수 있습니다.
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길이 좁으냐 넓으냐로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는 사람은 다 실패하고 맙니다. 기도하고 하나님 뜻대로 나가는 길에도 어려움은 반드시 옵니다.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또 혼란스러워졌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뭔가? 열심히 기도하고 복음 전하고 주님이 가라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다니!’ 도무지 이해도 안되고 하나님의 계획이 깨달아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바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도입니다.
이 때 사도 바울은 또 기도할 뿐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데, 확신이 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니 주님이 함께 하심이 분명했습니다. 비록 몸은 매를 맞아 아프고 지금 감옥에 있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니 감사가 되고 찬양이 터졌습니다.
25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여러분 이런 기도를 경험해 보지 못하셨습니까? 형편은 너무 어려운데 마음은 확신이 넘치고 방언이 터지고 찬송이 나오는 경험을 해 보신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과 실라가 성령 충만하여 옥 중에서 찬송하는데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옥문이 다 열렸습니다. 착고에 매였던 것이 다 풀어졌습니다. 간수가 와서 이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자결하려고 합니다. 그 때 바울이 그 간수를 살려주며, 유명한 선언을 합니다.
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간수와 온 가족이 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럽에 최초의 교회가 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이렇게 친절하시고 이렇게 구체적으로 역사하시고 이렇게 가까이 계시고 이렇게 능력으로 함께 하셨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용광로와 같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감옥도 녹여버렸습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였으면서도 찬양이 나올 정도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도 바울에게 그렇게 가까이 계신 하나님, 놀라우신 하나님으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용광로와 같은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매사에 사도 바울처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면 하나님은 사도 바울 뿐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구체적이고 정확하고 가까이 계십니다.
기도의 용광로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더 뜨거워지고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는 식어집니다. 기도는 용광로와 같은 것입니다.
기도할 제목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들, 교회의 지체들, 구원받지 못한 가족들... 기도할수록 기도의 지경은 넓어지고 더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떠오르지만, 기도하지 않을수록 이 모든 것들은 수채 구멍으로 빠져나간 것처럼 바짝 말라 종국에는 기도해야 될 아무 이유가 없는 것 같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가 완전히 식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불이 붙은 사람은 기도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기도할 제목이 한도 끝도 없이 많습니다.
뜨겁게 타오르는 아궁이에서 장작 하나를 꺼내 차가운 아궁이에 던져 넣으면 그렇게 잘 타던 장작이라도 불꽃이 힘을 잃고 사그러들고 맙니다. 똑같은 장작이라고 뜨거운 아궁이 속에서는 잘 타던 장작이 아주 냉냉한 아궁이 속에 넣으면 다 꺼져버립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말씀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어떤 기도의 아궁이 속에 들어있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집니다. 기도의 용광로가 뜨거운 성도 속에 말씀이 들어가면 정말 말씀은 기적을 일으켜냅니다. 그러나 기도가 식어진 가운데 있으면 능력있는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은혜를 받아도 한 순간 지성 속에 맺힌 인상으로 끝나고 그 깨달음이 마음까지 다르지도 못하고 말씀대로 살게 되지도 못하고 역사가 나타나지도 않는 것입니다.
말씀의 깨달음이 있는데도 삶이 변화되지 못하는 것도 기도의 용광로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소문난 교회! 우리 모두가 다 좋아하는 말씀이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 말씀대로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 말씀대로 사랑으로 살아지느냐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기도의 용광로가 다른 것입니다. 기도가 뜨거운 사람은 그 말씀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 기도의 용광로가 뜨거우면 반드시 사랑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말씀은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니 기도가 없으면 그냥 말씀이 좋았던 것으로 끝납니다. 말씀은 좋은데, 그 말씀대로 살아지지가 않으니 어떻게 합니까?
외국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아가지고 온 엘리트 목사님이 어느 교회 후임자로 갔습니다. 한 500여 명이 모이는 교회에 가서 자기는 그래도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은 사람이고 정말로 학문적으로 모자랄 게 없어서 모든 걸 다 해가지고서 강단에 서서 주일마다 아주 짜임있게, 조리적으로, 조직적으로, 신학적으로, 학문적으로, 철학적으로 잘 증거했어요. 이만하면 됐지. 그런데 교인들이 자꾸 줄어 500명이 450명으로 줄고, 450명에서 400명으로 자꾸 줄어. 이 목사님이 겁이 났어요. 왜 이렇게 교인들이 줄어드나. 그래서 그 교회에서 한 20여 년 이상 오랫동안 사찰로 일하는 권사님에게 "권사님, 전에 있던 목사님하고 나하고 다른 점이 뭐요? 좀 솔직하게 좀 얘기해주세요. 그냥 본대로 들은대로 그대로 지난 목사님하고 나하고 뭐가 달라요 도대체. 그것만 얘기해 주세요." 그랬더니 그 사찰 권사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다 비슷해요. 다 비슷한데요. 한 가지만 조금 다른 게 있어요." "뭡니까? 그걸 얘기해요 그걸. 지난 목사님과 나하고 다른 걸 그걸 얘기하라구요." "예! 다 비슷한데요 지난 목사님은 새벽기도에 강단에 엎드리면 일어날 줄을 모르고, 목사님은 강단에 앉자마자 그냥 무슨 팔랑개비 마냥 팔딱팔딱 일어나는 것, 요것만 조금 달라요."
여러분, 말씀이 똑같아도 역사가 달리 나타납니다. 목사만 그렇습니까? 말씀을 받는 여러분도 똑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똑같아도 성도들마다 역사가 달리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가 다른 것입니다. 기도의 용광로가 뜨거우냐, 기도의 용광로가 식었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용광로가 필요합니다. 마가 다락방이 지금까지 우리 교회역사를 이루어내는 용광로라고 믿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어제 말씀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분별을 받으려고 마가 다락방에 갔더니 추석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는 허전함이 컸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용광로와 같이 불이 붙는 교회가 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중요한 일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역사를 우리 가운데 이루시고 우리 방향을 정하십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계획대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많은 교인들이 기도에 대한 설교를 듣지만 실제로 기도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찬송가 가사 중에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고 하지만, 실제로 기도하는 한 시간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째서 기도가 즐겁다고 합니까? 차이는 하나입니다.
기도가 이렇게 힘든 것은 마음에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한 방법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내가 원하는 것이 있고, 내가 소원하는 것이 있고, 내가 하려는 방법이 있으니 기도가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방법이 많습니다. 그 중에 기도가 한 방법일 뿐입니다. 이러면 기도가 안됩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나가서 할 일이 많은데.’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집중하는 기도를 하기 어렵습니다. 5분, 10분 기도에 매달려지지가 않습니다.
기도가 기쁨이 되는 사람은 다른 방법을 포기한 것입니다. 실제로 살아보면 알지만 기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 통한 일이 없지 않습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아무리 그럴듯한 길도 하나님의 뜻과 다르면 열심히 살면 살수록 손해가 되는 길이지 않습니까? 결국은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리고 기도의 능력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서는 다 헛수고입니다. 이제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는 다른 방법 다 버립니다! 이제 내게는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런 결단을 한 사람은 기도가 쉽이 되고 기도가 기쁨이 되고 기도가 방법이 되고 기도가 능력이 됩니다.
살고 죽는 것을 주님께 맡기고 오직 순종만 할 것이며 깨닫게 하시기 전에는 안 움직겠다고 결단하면 기도는 갑자기 가장 큰 방법이요 위로요 힘이요 답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맡기면 기도가 휴식이 됩니다.
여러분, 기도 외에 다른 방법 다 버리셨습니까? 누구에게 말을 한 마디하려고 해도 ‘내가 이것 기도하지 않은 말이지.’ 그러면 말하지 않고 잠깐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내가 무슨 도장 하나 찍어야 할 때도 ‘내가 기도한 것이 아닌데.’ 그러면 손해볼 것 같아도 잠시 보류하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기도는 여러분의 모든 삶의 능력이 되고 위로가 되고 쉼이 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처음에 목회하면서 교인들이 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르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세미나를 열고 강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님을 늦게 깨달았습니다. 하도 많이 들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빌리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의 문제가 지식의 문제였습니까? 그들이 무엇을 몰라서 위기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에게 문제는 몸은 감옥에 갇혔지만 주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 중에 그것이 믿어지니 찬송이 터져나온 것입니다.
찬송할 수 있으면 해결된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해가 안되고 설명이 안되지만 하나님께서 마음에 답을 주시니까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열려도 가만히 있었고 간수장을 구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교인들의 문제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의 문제이지 지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34장 10절을 보니까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했습니다. 모세는 어떤 사람입니까?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서 알았답니다. 그것이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늘 친밀하게 대화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되어지는 길이 하나님의 길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가는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 확신이 되면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으면 어떤 처지, 어떤 환경에서도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리즈하워즈, 1936년 3월 29일 웨일즈 성경학교에 오순절이 임하였다. 하나님의 임재 의식이 학교의 스탭과 학생들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임재할 때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은얼굴을 대면하는것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오늘 성찬을 받는 날입니다. 성찬식은 주님과 대면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성찬식입니다.
성찬을 통하여 주님을 바라보는 은혜가 있으면 두려울 일이 없습니다. 잘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찬식이 형식적이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빨리 돌이켜야 됩니다. 뭔가 어딘가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성찬식 때만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 은혜를 항상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성찬을 받을 때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으면 된 것입니다. 이 은혜에서 찬양이 나오면 여러분은 지금 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에 이 은혜를 유지하면 됩니다. 성찬을 받을 때 뿐만 아니라 주님 나와 함께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는 이 은혜를 기도 중에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길가다가 교회를 보면 들어가 기도하고, 공원이 보이면 벤취라도 앉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 하고 부르시고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는 것만 확인되면,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이 확신이 안 들면 아무리 이익이 되는 일이라도 그 일에서 손 떼십시오. 예수님과 내가 같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느껴지지 않으면 빨리 그 일에서 벗어나십시오. 지금 큰 일 나는 길에 서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 받을 때 주님과 내가 늘 같이 있다는 이 은혜를 항상 놓지지 않고 사시면 여러분 인생은 역사에 남는 인생이 됩니다. 사도행전 16장의 놀라운 인생이 여러분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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