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 왕상17:1~7 출처보기
1645년, 단 한 표 차이로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의 통치권을 장악했습니다.
1649년, 단 한 표 차이로 영국 왕 찰스 1세가 처형되었습니다.
1776년, 단 한 표 차이로 미국은 독일어 대신 영어를 국어로 채택했습니다.
1923년, 단 한 표 차이로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당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우리는 한 사람이 정말 중요함을 느낍니다.
특히 역사의 혼란기에는 한 사람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헌신된 사람이라면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 ‘헌신된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지금 말세라고 느끼십니까?
그럴수록 나 한 사람이 중요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나라를 살릴 수 있습니다.
과거에 영국을 세계적인 나라로 만든 두 명이 다 여자였습니다.
한 명은 엘리자베스 여왕 1세이고, 또 한 명은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여자 한 명이 변화되면 가족도 살리고 나라도 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에게 잘 믿으라고 하기 전에, 아내들이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대표성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축구팀 11명이 경기에서 이기면 “우리나라가 이겼다”고 하고,
그 11명이 지면 “우리나라가 졌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영적인 원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고,
반면에 예수님 한분의 헌신 때문에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우리 한 사람의 죄와 헌신도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습니다.
여호수아 7장은 보면 아간의 범죄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우리는 아간과 같은 사람, 아간과 같은 교회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 한 사람이 우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표주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헌신된 삶을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이 사용하실만한 헌신된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사용하실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는지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연약한 사람
본문 1절을 보십시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길르앗은 요단강 건너편 지역으로, 우리나라로 말하면 두만강 건너의 변방지역입니다.
그 중에서도 디셉이란 지명은 성경에 딱 한 번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주 시골지역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시골 출신의 엘리야를 불러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여 사람을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누구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불러 멋지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인 조건을 보지 않고, 가끔 예상외의 인물을 불러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나 자녀가 부족해 보인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면 우리와 우리 자녀도 얼마든지 사용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내일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약속된 내일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때는 그 약속이 더욱 찬란하게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움과 문제와 장벽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고,
지금보다 더욱 헌신된 삶을 살고 땀을 흘려서, 약속된 내일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자아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불평과 원망을 잘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물론 불평할만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대개 보면 자아상이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 열등감을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열등감을 극복하지 않고 자신을 긍정하지 않으면 행복도 없습니다.
어떻게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비교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비교의식을 가지면 TV를 볼 때마다 자신이 미워집니다.
탤런트들의 얼굴과 키, 재능과 화려함, 그리고 인기 등을 생각하면 속이 뒤집힐 일이 너무 많습니다.
남편의 입에서 OOO가 예쁘다는 소리가 나오면 아내의 속이 뒤집히고,
아내의 입에서 OOO가 멋있다는 소리가 나오면 남편의 속이 뒤집힙니다.
그런 비교의식으로 살면 남의 행복은 곧 나의 불행이 되고, 남의 기쁨은 곧 나의 고통이 됩니다.
남이 조금 잘 먹고, 잘 누리고, 잘 지내면 금방 속이 불편하고 마음에 시험이 듭니다.
그러다가 점차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남편에게 화살을 돌리고, 아내에게 돌리고, 부모에게 돌립니다.
사실 열등감은 교만한 마음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은 우월감도 부채질하지만, 열등감도 부채질합니다.
▲사람은 현재 자신이 가진 것만 가지고도 무한한 행복의 가능성이 있고,
그 정도만 가지고도 하나님께 충분히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열등감을 창조적인 기회로 활용하고, 자기를 향상시키는 추진력으로 삼으면 됩니다.
병적인 열등감은 문제이지만, 적절한 열등감은 창조와 성취의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한 사람도 버릴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비하하지 말고, 나 자신도 비하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날, 미국 시카고에서 킴볼이라는 주일학교 교사가 길거리에서 싸움하고
피를 흘리고 있는 흑인 부랑아 한 명을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우습게 알았지만 그가 나중에 일생 백만 명을 전도했던 D. L. 무디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어느 누구도 얕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도 얼마든지 멋지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 헌신된 사람
본문 1절에서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가서 말씀을 선포할 때 먼저 뭐라고 말합니까?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나의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고,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자신을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만 형통하면 제일 잘 믿는 것처럼 하다가, 조금만 어려우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런 감정의 파도타기는 신앙생활의 행복을 빼앗아가고, 그런 태도가 끊임없이 훈련을 초래합니다.
알고 보면 하나님이 그를 훈련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훈련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끔 훈련도 필요하지만, 끊임없는 훈련과 시험은
끊임없는 기웃거림과 머뭇거림의 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본문 1절을 계속해서 보십시오. 아합 왕에게 가서 엘리야가 어떤 선포를 합니까?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그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무명의 엘리야였지만 얼마나 당당합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하나님의 뜻에 드리면 이처럼 당당하게 됩니다.
그처럼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멋지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한분이 뉴욕 시내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하자 그는 기사에게 팁을 주며 말했습니다.
“기사님!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전을 아주 점잖게 잘 하시네요.”
기사가 순간적으로 멍하니 있다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혹시 도를 닦는 분이세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교통체증에도 차분하게 운전하시는 것이 감탄스러워 드린 말이에요.”
그 말을 듣고 기사가 기분 좋게 떠났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했느냐?”고 묻자 그분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뉴욕을 변화시키려는 나의 작은 노력이네.
내가 기사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그 기사도 수십 명의 승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것이고,
그러면 그 승객들도 기분이 좋아져서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게 되고
그러면 뉴욕이 조금씩 달라지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날마다 10명에게
좋은 말 한 마디씩을 해 주자고 다짐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네.”
우리도 내 주변에서 좋은 일에 우리 자신을 드리고 좋은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그 말로 인해서 한 사람이라도 변화되면 점차 변화의 물결은 커지게 될 것입니다.
▲요새 경기가 어렵습니다. 경기가 어려우면 없는 사람들이 더 고생합니다.
이런 때에 부자는 위화감이 들지 않게 돈을 잘 써야 합니다.
반대로 경기가 지나치게 활성화 되면 돈을 덜 써야 합니다.
부자에게는 그런 높은 책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위해 부자는, 구제하는 마음으로 돈을 많이 풀어야 합니다.
경기가 어려울 때 부자는 평소에 2달에 한번 구두를 닦는 것을 1달에 한번 닦고,
6주에 한번 이발하면 4주에 한번 이발해야 합니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 분이 친절하게 섬겨주면 슬쩍 적절한 팁도 주십시오.
그런 행동들은 자원을 남용하지 않으면서도 돈을 돌게 하고,
힘들게 사는 분들을 지혜롭게 돕는 길입니다.
부자는 돈을 지혜롭게 잘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마음들도 헌신적인 마음입니다. 그런 작은 헌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런 헌신을 통해서 변화는 일어나고,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과 행동을 받으시고 기억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소자에게 물 한 그릇 대접하는 것도 기억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자기를 드려 헌신할 줄 알아야 합니다.
◑3. 기도하는 사람
본문 1절에서 엘리야는 아합 왕 앞에서 당당하게 말씀을 선포했지만
바로 이어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주십니까? 본문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하나님 명령대로 왕 앞에 갔으면 끝장을 내야지, 왜 곧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고 하셨을까요?
더 나아가 차라리 순교하거나 굶으라고 하시지 까마귀에게 얻어먹으라고 하니까
얼마나 자존심상하는 훈련입니까?
그러나 훈련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자존심을 꺾기 위한 것입니다.
순종이란 내 뜻과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가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나 말씀이 주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도 그 상황과 말씀을 그대로 받는 것이 진짜 순종입니다.
우리가 진정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이런 훈련과정에서 낙심하지 말고
회개와 순종과 땀을 앞에서 그 과정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엘리야는 까마귀가 아침저녁으로 물어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고
그릿 시냇가에서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고독한 장면입니까?
그 상황을 어떻게 엘리야가 이겨냈을까요?
무엇보다 기도하며 이겨냈을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는 기도 굴과 똑같았을 것입니다.
그때 기도하며 훈련을 받았기에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불을 끌어내는 능력 있는 선지자로 거듭났을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자존심 상하는 고독한 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지 말고, 더 감사하고 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축복하기를 원하시지만
때로는 그 축복을 위해 먼저 고난도 주십니다.
그래야 진짜 능력 있는 성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자기 믿음을 지키고,
고독한 시간을 기도하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부정한 새인 까마귀까지 동원해서 엘리야를 먹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엘리야만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 기적적인 응답의 역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내 힘과 능력과 지혜를 믿지 말고
정말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낮아진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해보십시오.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기도는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날, 우간다의 한 원주민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매일 조용한 장소를 택해 기도했습니다. 그때부터 수풀 사이로 길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열대지방이라 수풀이 너무나 빨리 자라서 그가 하루라도 가지 않으면
길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틀을 가지 않으면 수풀은 더 높이 자랐습니다.
그가 계속 기도하지 않으면 그 길은 완전히 없어질 것입니다.
그 원주민의 영적 상황은 그 기도 장소로 가는 길로 측정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생활의 길에 잡초가 우거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시간이 따로 내어서 지속적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십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고 사태를 역전시킵니다!
기도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가장 적절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도 듣게 될 것이고,
놀라운 위로와 평강도 얻게 될 것입니다.
◑4. 인내하는 사람
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이끄셨을까요?
당시 그릿 시냇가는 너무 조그만 냇가여서 지금은 어딘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큰 강물이나 폭포로 인도하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강물과 폭포수의 축복은 잠깐의 찬양은 줄지라도
자칫 우리의 입술에서 꾸준한 찬양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짜 축복은 큰 것에 있지 않고 꾸준한 것에 있습니다.
또한 왜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보내어 매일 아침저녁을 먹이셨을까요?
10년 먹을 풍족한 양식을 한꺼번에 공급해 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10년 먹을 풍족한 양식은
자칫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아침저녁으로 까마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때
축복을 홍수와 같이 주지 않고 이슬비와 같이 주시는 이유입니다.
▲가끔 보면 기도만 하면 만사 해결되고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때로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을 하게 만드시고,
축복도 이슬비처럼 꾸준히 주시고, 단계별로 주실 때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엘리야는 말라가는 시냇가의 고난 중에서도, 자기 자리를 끈질기게 지켰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말라가는 그릿 시냇가와 같은 곳에 있어도
꼼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고난 중에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결국 축복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길에서 자동차를 운전할 때 파란 불에서는 가고 빨간 불에서는 서야 합니다.
빨간 불에서 조급한 마음으로 가려고 하면, 오히려 더 큰 사고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인생의 길에서 고난의 빨간 불을 만났을 때도,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고난 중에 인내했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우왕좌왕 하고, 여러 가지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사람을 찾아다니고, 때로는 배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엘리야처럼 당황하지 말고
하나님의 분명한 사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엘리야는 말라가는 그릿 시냇가에서
인내함으로써 믿음의 거성으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지금 혹시 생수가 조금씩 말라가는 것 같고, 매일 일용할 양식을 간신히 얻듯이 살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라는 뜻이고, 결국 그것도 축복인 줄 믿습니다.
풍성함이 꼭 축복은 아닙니다. 풍성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못하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반면에 부족함이 꼭 저주는 아닙니다. 부족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이제까지 저의 목회를 살펴보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난 세월은 매주, 매달, 매년이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양식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지나온 세월이었습니다.
돌이켜 볼 때 폭포수와 같은 축복은 없었지만,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필요한 것이 끊어질 듯하다가 까마귀와 같은 존재를 통해서 주어지는
영혼과 육신의 양식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을 하며 이때까지 지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매일 새벽은 은혜의 통로였습니다.
가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벽에 무릎 꿇으면 신기하게도
까마귀가 필요한 것을 가지고 날라 왔습니다. 그것을 통해 믿음이 자라니,
시냇물의 축복과 까마귀의 축복은 결코 부족한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곧 마르고 끊어질 듯한 축복을 통해 믿음을 훈련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더욱 헌신된 믿음의 용사를 만들기 위해서인 줄 믿습니다.
▲조금 더 인내하십시오.
물론 너무 살기 어려우면 믿음과 성품이 좋은 사람도 가끔 회의가 생깁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간신히 살게 하실까?” 이제 그런 회의를 가지지 말고
어려움 속에서 나를 들어 쓰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어려움을 통해 믿음을 배양하고 더욱 하나님 앞에 헌신된 한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처럼 믿음 안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내 맡은 일을 할 때
언젠가 꿈같은 축복의 때가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한 건축회사에 세 명의 일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삽에 기대서 말했습니다.
“언젠가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 되겠다” 또 한 사람은 불평했습니다.
“하루 일당이 이게 뭐야?” 또 한 사람은 묵묵히 땀을 흘려 도랑을 팠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여전히 “사장이 되겠다!”는 타령을 하고 있었고,
두 번째 사람은 여전히 일당을 가지고 불평했습니다.
반면에 세 번째 사람은 그때도 열심히 지게차로 무엇인가를 날랐습니다.
또 다시 몇 년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되겠다!”고 했던 첫 번째 사람은
회사에서 여전히 자신의 능력을 몰라준다고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일당이 적다고 불평하던 사람은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던 사람은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그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꿈이 크고 위대할수록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고, 때로는 시련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련 중에도 자기의 맡은 사명을 잃지 않으면 결국 축복받게 됩니다.
이제 조금 더 인내해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 오전에 ‘이한규의 사랑칼럼’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77편을 정리해 탈고했습니다.
매주 두 편의 사랑칼럼을 쓸 때 도중에 얼마나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글 내용의 풍성함과 정확한 고증을 위해 관련 책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최소 100편의 관련 자료를 참고해 글을 쓴다는 원칙을 가지고 글을 쓰기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게다가 초고를 쓰면 원고지 30-40매의 글을 씁니다.
그것을 줄여나가는 작업을 해서 최종적으로 원고지 6-7매의 글로 탈고합니다.
그러니까 뼈를 깎는 작업이고, 월요일과 목요일은 하루 종일 초비상이 됩니다.
그래서 수시로 포기하고 싶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메일로 좋은 반응과 격려와 추천을 해주셔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어려운 과정을 겪었기에, 책으로 탈고할 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먼저 책을 7개의 주제로 나누었습니다.
즉 치유를 위한 사랑칼럼, 행복을 위한 사랑칼럼, 희망을 위한 사랑칼럼,
가족을 위한 사랑칼럼, 부부를 위한 사랑칼럼, 이웃을 위한 사랑칼럼,
지혜를 위한 사랑칼럼의 7개 주제로 나누어
각 주제마다 11개의 칼럼을 포함시켜서 책으로 탈고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열매는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어려움이 있어도
그 일을 밀고 나가야 합니다. 어려움 뒤에는 반드시 승리가 숨어 있습니다.
좋은 일을 시작했다가 어려움이 있다고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힘들다고 포기하면 축복의 열매는 얻을 수 없고, 오직 훈련기간만 길어질 뿐입니다.
▲한때 이런 노래가 유행했습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쭉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살다보면 기쁜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습니다. 살다보면 축제도 있지만 문제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고, 상처가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처럼 문제와 상처 중에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잘되는 날에는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축복을 나누고,
안 되는 날에는 더욱 하나님만 바라고 회개하고 인내하고, 결국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믿음과 노력과 인내가 있으면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이제 조금 더 인내해야 합니다. 조급하면 큰일을 할 수 없습니다.
“빨리 돈을 벌어야지! 빨리 성공해야지!”라고 너무 조급하게 굴면
교회와 가정이라는 포도원은 무너지고, 결국 내 영혼도 무너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주님 만나는 날까지 달려가는 장거리 경주입니다.
항상 굳건한 믿음과 인내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 앞에 멋지게 쓰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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