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생활로 옮기는 위대한 번역자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셨으면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감사하라고 하셨으면 감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살아있는 성경'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자기가 잘했기 때문에 잘 풀리는 줄로 알아서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자기의 잘못한 점은 하나도 생각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런 믿음의 형태를 하나님은 결코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기 때문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의 대상, 헌신의 대상'이지 '나의 필요를 위해 사용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하나님은 때때로 시험을 허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탓하며 교회를 떠나지만 진실한 사람들은 오히려 더 하나님을 붙잡을 것입니다. 저희 가족들이 모이면 가끔 옛날 얘기를 합니다. 그 중의 한 가지 얘기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1960년대 아버님이 폐병으로 쓰러지셨을 때 우리 가정은 참 어려웠었습니다. 그 중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점은 친척들로부터 당하는 무시였습니다. 친척들은 우리 부모님에게 "생활도 어려운데 딸을 5명이나 어떻게 정상적으로 교육시키려고 하느냐? 공장으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 어려움 중에서도 8남매 전부를 대학에 보내는 저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때 저희 자녀들은 부모님을 보면서 "아무리 어려워도 길은 반드시 있다!"는 진리를 체득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1978년 저희 어머님께서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셨습니다. 52세가 될 때까지 한번도 교회에 나가지 않다가 우리가 서울의 명일동이란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 옆집에 사는 한 집사님의 전도로 처음으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교회를 나가면서 우리 가정은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인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들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그런 어려움을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믿는 대상을 바꾸었기 때문이다"라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어려움이 있기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결국 우리 가정은 부모님을 비롯해 8남매 전부가 신앙을 받아들인 믿음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가정을 반드시 축복으로 채워주십니다. 만약 어머님이 신앙에 발을 들여놓았던 초창기에 신앙을 포기했다면 아마 우리 식구들은 아직도 복음을 알지 못하고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우리 전 가족에게 서서히 스며들면서, 비록 우리가 남들보다 빼어나게 잘 살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 가정에 풍부한 정신적인 자산이 비축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값싼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값싼 사람에게는 전혀 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사람에게만,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잊지 않는 신앙인에게만 하나님의 값비싼 축복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신앙의 절개도 없이 축복만 바라고 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다면 그 축복은 얼마나 값싼 축복입니까? 그러나 축복 이전에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고 어떤 고난에도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유지할 때 하나님은 진정 값비싼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의 대가를 지불하시는 데에 관심이 있기보다 우리의 섬김의 진정성을 확인하는데 더욱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사랑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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