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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목사/저를 사랑하라! (호 3:1-5)
미국에 작가 아서 고든 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사는 이 웃집에 젊은 내외가 살고
있는데 이 웃하고 서로 오고가면서 그렇게 가 까이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서
고든의 집에 적이 큰 걱정 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웃 에 사는 이 젊은 내외가 결혼
파국 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늘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때때로 가구를 때려 부수는 그런
요란한 소리도 들 립니다. 그리고 이 부부들이 찾아 와서 그저 남편은 아내를 흉보고 아 내
는 남편 흉을 봅니다. 이렇게 계 속 불화한 가정의 이야기를 들으면 서 이웃하고 사는 것이
참으로 고통 스러웠습니다. 남의 일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또 뭐라고 가르치고 인도할 만
한 그런, 그런 것도 되지 못합니다. 늘 걱정이었습니다. 그 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이 젊은 부
부 의 가정에 서광이 비칩니다. 하루 아침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웃음 소리가 들려오고 그
리고 다시는 싸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만 날 때마다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게 됩니
다. 너무 신기하게 여겨서 물 어본 겁니다. 이렇게 가정이 변화 되게 된 특별한 비결이 있었
느냐고 그렇게 물었더니 이 두 내외가 이렇 게 말하는 겁니다. 사실은 너무 답 답하고 괴로
워서 저희들이 존경하는 나이 많은 어느 내과의사를 찾아가 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
더니 처방은 있는데 이것을 행할 수 있을 는지 모르겠다고, 행하기만 하면 도 움이 될 텐
데…… 하면서 가르쳐 준 것이 여덟 단어의 말입니다. 그 여 덟 단어라는 게 뭐냐면
"소 아이 러 브 힘,도우 아이 러브 힘(So I love him, though I love him.)", '그래서 사랑하
고 그래도 사랑하고' 그겁니 다. 이 한 마디를 듣고 와서 그대 로 입으로 외우면서 '그래서
사랑하 고, 그래도 사랑하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가정이 새로운 가정이 됐 다는 얘기입
니다. 여러분 가장 중 요한 것은 사랑에 대한 정의입니다. 사랑의 개념입니다.
당신은 사랑을 뭐라고 생각하십 니까? 우리 생명보다도 소중한 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에 대
한 이해, 그 개념, 그 정의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가장 비참한 것은 사랑 아
닌 것을 사랑으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 니다. 그것은 집착일 뿐입니다. 집
착과 사랑은 다릅니다. 욕정과 사 랑도 다릅니다. 독선과 사랑도 다 릅니다. 사랑의 이름으
로 많은 사 람을 괴롭힙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내가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건 사 랑이 아닙
니다. 사랑은 절대로 눈 물의 씨앗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의 마음은 기쁩니다. 사랑을 받
으면서 행복합니다. 그래야 사랑이 지 어떤 경우든지 사랑에 슬픔이 따 르고 사랑에 고통이
따르고 사랑이 그 누구를 괴롭히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사 랑이
변질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늘 생각합니다 사 랑이 중생해야 한다고. 사랑
그 뜻, 사랑의 의미 자체가 완전히 중생하 기 전에는 내 생애에 아무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
습니다. 이것이 사랑 입니다.
지난번 여행 때, 제가 여행할 때 는 좀 가벼운 책을 몇 권 사 가지고 다니면서 읽곤 합니다.
지난번 여 행 때 전경린 씨가 쓴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요새는 이렇게 제목이
길어야 좋은 책이래요. 그 래서 이런 책을 하나 사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내용 중에 보
면 이 래요. 아주 처녀가 순결파예요. 아 주 깨끗하게 살고 깨끗하게 결혼을 해서 깨끗하게
일생을 살아 보겠다 하는 그런 순결적 이상을 지니고 있 었는데 뜻대로 대학 졸업하자마자
연애가 잘 돼서 결혼을 했어요. 아 주 아름다운 가정을 이뤄요 자기 딴 에는.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실수 를 합니다. 그는 용납할 수가 없어 요.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
고 하며 어떻게 이런 실수 가 있느냐? 어떻게 딴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거냐? 어떻게 분
해 하는 지요. 내 인생은 끝났다 그래가지 고 2년 동안은 같이 살기는 사는데 완전히 짐승
취급을 합니다. 사람 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자기 자신 도 말이 없습니다. 우울증에 빠졌 습
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바깥에 너무 답답해서 외출 좀 하다가 외간 남자 하나를 만납니다.
거기에 사 랑에 화끈하게 빠집니다. 그러면서 그가 깜짝 놀랍니다. 내 속에도 이 러한 마음
이 있었더냐? 어찌 내 마 음속에도 저 남편에게 있었던 것 못 지 않은 타락성이 내게 있었
더냐 말 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놀라 는 그런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
은 누구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왜 사랑한다고 생각하십 니까? 저와 나와 꼭 같은 처지라고
하고 어쩌면 저 사람의 타락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오히려 저 보 다 내가 더 깊은 곳
에 부족함과 죄 악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일 수 없습 니
다. 고자세, 높은, 고고한 마음으 로 그 누구를 불쌍히 여기는 거 같 은 그 따위 사치스러운
사랑이 결코 사랑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 다. 참 사랑을 아는 것이 인생의 출발입니
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요한일 서 4장 8절에서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 님을 알지
못하느니라"
사랑을 알 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요.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에야 사 랑의 사람
이 되요. 사랑의 사람이 될 때에야 인생이 시작이 되는 거예 요. 깊고 오묘한 말씀이올시다.
오 늘 본문 성경에 엄청난 메시지가 있 습니다.
"그 여인을 사랑하라"
호 세아 선지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십 니다.
"그 여인을 사랑하라"
그 여 인이 누구입니까? 고멜이라고 하는 여자인데 애당초 하나님께서 이 고 멜을 하나님이
중매하셨습니다. 하 나님이 소개해서 저 여자와 결혼하 라고 그럽니다. 그 결혼할 당시에 도
이 여자는 창녀였습니다. 길거 리에 나도는 창녀인데 어쩌면 하나 님께서 이런 사람하고 결
혼을 하랍 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그는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 여자를 데려다가 씻
겨서 거룩하게 만들어서 자기 사랑의 대상을 삼고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여자의
품 행이 좋지를 않았어요 여전히. 그 래서 그 둘째아들을 낳은 다음에 이 름을 '로암미', '
내 백성이 아니다' 라고 이름을 지어요. 거기에 여러 가지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만은 인
간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래도 좀 수상했던 가봐요. 친자 확인을 좀 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
게 아무래 도 시원치 않지 그랬던 거 같아요. 이제 아들 딸 셋을 낳았어요. 이만 하면 안정
될만한데 기어이 오늘 성 경 말씀대로 딴 남자의 연애를 받아 가출하고 맙니다. 이렇게 된
겁니 다 그리고 이 남자 저 남자로 흘러 들어가서 맨 마지막에 이제 그는 더 갈 길이 없어
요. 그만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이 더러운 여자, 사람이 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 여자를 하
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여인을 사랑하라"고. 여러분 원수를 사랑 하는 것 보다 더러운 사람 사랑하기 가 더 어
려운 것이올시다. 어떤 전 도인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가장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습
니다 맹세하고 빈민굴에서 전도를 합니 다. 문둥병 환자들이 모인 마을에 가서 전도를 합니
다. 그들과 함께 살며 전도를 합니다. 살다보니 문 둥병 환자 마을에 웬 창녀가 하나 있어
요. 이 사람은 창녀 생활을 하 다가 병들었어요. 이제 더 살 길이 없어서 죽어 가는 것을 보
고 이 전 도인이 정성을 다해서 매일같이 방 문하고 기도하고 음식도 가져다주고 몸을 씻겨
주기도하고 자리를 옮겨 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고 봉사했는 데 이 창녀는 그 사랑을 받아주
질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기쁘기 때문이요 나 같 은 사람에게 봉사
하는 것은 당신에 게 즐거움이기 때문에 하는 일이 아 니냐고. 나는 어차피 더러운 사람 이
니까 도와주지 말라고 떠나라고 떠나라고 그럽니다. 그래도 계속 사랑하니까 마지막에는 한
다는 소리 가 나 같은 사람 열심히 사랑하면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알량한 천당 에 갈 모
양인데 그렇지 않아도 천당 갈 테니까 그냥 가시고 나는 내버려 두라고. 이렇게 비웃습니다.
그러 나 사랑했습니다. 마지막엔 죽기 직전에까지 갔습니다. 이제 그 여 자는 말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헤 어져야 될 때가 됐소. 그러니 마지 막으로 작별의 키스를 해주세요."
이 전도인은 이 창녀에게 입을 맞추 었습니다. 전도하는, 하나님을 찬양 하는 거룩한 입술로
이 더러운 창녀 의 입에 입을 맞춘 것입니다. 그 때에 이 여자의 마음이 환하게 열리 고 비
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 이게 됩니다. 여기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사랑이 뭡니까? 오늘 성 경에선 말합니다. 이미 팔려가신 고로 값을 지불해야 데려
올 수가 있 어요. 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값을 지불하고야 데려올 수가 있어 요. 그냥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 예요. 그래서 여기에 보니까 은 열 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가
지고 가서 이건 노예의 값입니다, 여자 노예의 값입니다. 여자를 돈주고 사서 옵니다. 그리
고 이제 다시 사 랑합니다. 여러분 사랑에는 자격이 있다 없다를 논해서는 안됩니다. 애당초
무자격한 가운데 이루어집니 다. 조금이라도 난 사랑 받을 자격 이 있어서 받는다고 한다면
대가성 에 속합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 다. 애당초 전혀 사랑 받을 자격이 없이 사랑 받는
그것이 진짜 사랑이 요 내가 누구를 사랑할 때도 사랑할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효과가 있는
가 없는가 보답이 있는가 없는가 사 랑할 만한 존재가 되나 못 되나 이 런 것 생각하면 벌
써 사랑이 아닙니 다. 사랑은 완전히 무자격한 가운 데서 사랑을 받고 그리고 아무 미래 나
가치나 자격을 보지 말고 사랑하 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어떤 교인 가
정에 신방을 갔는데 그 여자아이가 많은 인형을 가지고 놉니다. 유달리 인형이 많 은 것을
보고
"야 너 인형 좋아하 냐?"
그러니까 얘가 되돌려 묻습니 다.
"목사님, 목사님은 인형을 좋아 하세요?"
"그럼 나도 좋아한다"
"그 럼 어느 인형을 제일 좋아하세요?"
아 이거 골라낼 수가 없어요. 주저 주저 하니까 이 어린애가 하는 말이
"나는요, 저 인형을 제일 좋아해요"
그 인형은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다 찢기고 상한 인형이에요. 목사 님은 물었습니다.
"너 왜 저 인형 을 하필이면 제일 좋아하냐?"
"저 인형은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으니 까요"
목사님이 그 어린애를 끌어 안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같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
가게 해 주십시오.' 사랑의 이유는 이것 뿐입니다 아무도 저를 사랑하지 않 기 때문에 나는
저를 사랑합니다. 이 사랑에는 의롭다함이 있고 거룩 케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스티 피케
이션(Justification)이 있고 생티 피케이션(Sanctification)이 함께 하 는 것이올시다. 거룩케
하는 그것 이 사랑이요. 뿐만 아니라 오늘 성 경 말씀에 더 기가 막힌, 가슴을 뜨 겁게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호 세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 창녀 를 다시 불러다 놓고 그 다음에
하 는 말 좀 들어보세요.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사랑은 행동입니다. 사랑은 감상이 아닙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행동 이었습니다. 값을 지불
하고 이 더 러운 여자를 다시 사다가 앉혀놓고
"다시는 행음하지 말라 다른 남자를 좇지마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여러분 이 여자, 이 여자를 위해서 순결을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 까? 그러나 호세아는
말합니다
"나 도 네게 그리하리라 깨끗하게 너를 사랑하리라 그런고로 너도 남을 좇 지마라"
하고 말합니다. 사랑은 전 체를 주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주 는 겁니다. 돈 몇 푼 주고 돌
아선 다고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함 께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 하 는 것입니다. 그
리고 상호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 랑입니다. 엄청난 사랑입니다. 호 세아
서는 자세히 읽어 나가노라면 호세아의 가정에 있었던 이 개인적 인 사건과 이스라엘과 하
나님과의 관계를 계속 오버랩하면서 기록해 나가는 걸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 런고로 호세
아서는 하나님의 계시요 계시적 의미가 있는 사건들입니다. 예컨대 이렇게 한번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호세아가 하나님 앞에 불만이 좀 있었던 지도 몰라요. '애 당초 하나님 중매하
시려면 좀 깨끗 한 여자를 만나게 하시지.' 그리고 이 어려운 여자 더러운 여자 그저 집을
나가 버릴 때 '에이고 잘 됐다 다시 장가가야지. 이제 좀 새롭게 시작해야겠다' 라고 후련하
게 생각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호세아 3장은 그렇질 않아요.
"호세아야 저 여자를 사랑하라"
명령하십니다. 명령대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뭐라고 했겠습니까?
"하나님 정말 사랑하기 힘듭니다. 이거야 장가 안 가는 게 났지. 이런 여자 이거 사랑하
기……. 혼자 사는 게 났지 이거 정말 힘듭니다."
그때 하 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호세아야, 이 더러운 여자 사랑하기가 힘드냐? 내가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것이 이 렇게 힘
들다"
오늘 성경에도 말씀 합니다.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 지라도, 다른 신을 섬기 고
음행하고 더러워진 이스라엘 그 래도 여호와가 저를 사랑한다고. 내가 이스라엘 사랑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좀 더 실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호세아야, 네가 저 여자 사 랑하기가 힘드냐? 이 사람아, 내가 너 사랑하기가 그렇게 힘들
다. 너 같은 더러운 거 사랑하기가 힘들다"
여러분, 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받는 사랑이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겁니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까? 사랑 받을만한 존재 가 되는 겁니까? 사랑은 여기에 있 습니다.
나는 마치 창녀와 같이 더 러워지고 더러워지고 또 더러워지고 사랑 받고 다시 깊은 수렁에
빠져드 는 이런 형편없는 존재예요. 구제 불능한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요. 여 기서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받는 사랑 자체가 이러한 것이기 때 문
입니다.
1968년 조용한 사건이지만은 위 대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계 제 2 차대전 당시에 나치 독일
이 유대사 람 600만을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 까? 이 학살에 원흉이었던 아이히만 이라는 사
람이 체포되어 가지고 재 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제 사형집행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서 유대사람 중에 꼴 란즈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히만을 석방해 달라고
대대적으로 데모를 했어요. 대대적으로 석방 운동을 했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는
상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 다. 첫째 아이히만을 죽인다고 해 서 죽은 유대사람이 살아나
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사형하지 않고 내 버려두어도 인생은 다 죽듯이 저 사 람도 곧 죽
을 텐데 뭐 미리 죽일 거 없지 않느냐? 셋째는 하나님은 그 의 영혼을 이미 심판 하셨으니
우리 가 심판할 것 없지 않느냐? 넷째는 동생을 죽인 가인도 하나님은 용서 하셨는데 우리
가 누구를 정죄해서 그것이 옳단 말이냐고? 마지막 다 섯째가 너무나 가슴을 뜨겁게 합니
다. 사랑이 식어지는 세상에 이제 부터라고 참 사랑을 심어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여러분 언
제까지 보복 을 할 겁니까? 언제까지 보복에서 보복으로 원수갚는 것으로 점철되어 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부터라도 그 누군가라도 원수를 사랑하고 다 시 참 사랑을 심어가야 미래가
보일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아이히만을 석방하라고 그는 석방운동을 했습니 다.
여러분 참 사랑을 알 때에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참 사랑을 믿을 때에 그는 어떤 형편에
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참 사랑을 행하게 될 때에 기쁨과 행복과 담력이 넘치게 되는 것입
니다. 참 사랑 바로 그 곳에 밝은 미래가 보이는 것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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