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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복음에 합당한 생활

by 【고동엽】 2022. 11. 20.
(묵상/빌 1:27-30)
 
◆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무엇일까? 
나는 수십 년간 율법과 복음을 가르쳐왔지만, 막상 내 삶은 율법적이었다. 그리고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세속적이거나 율법적이었고, 인터넷에 떠도는 메시지도 거의 대부분이 율법적인 것이었다. 최근에 어떤 자매가 너무 좋다고 해서 보내준 강의도 결국은 14만 4천명에 들기 위해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율법적인 강의였다. 언뜻 들으면 너무나 성경적으로 보이지만, 복음을 제대로 알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안다. 내가 이 자매에게 답장을 보냈다. "오늘날 메신저들이 자신도 못사는 삶을 다른 사람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질문할지 모른다. 모름지기 닭은 독수리처럼 날 수 없다. 그런데 닭들에게 우리도 날개가 있으니 열심히 노력해서 독수리처럼 날아봅시다라는 설교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그는 자기도 날아보지 않고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물론 자신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날갯짓하고 노력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노력이 무슨 대수인가? 그는 영원히 독수리처럼 날아볼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어떤 교회 목사가 마지막 때를 준비시킨답시고, 제자들에게 '똥'까지 먹였다는 뉴스를 들었다. 나는 그들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자들임을 확신한다.
 
바울은 복음의 합당한 삶에서 벗어난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적인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다. 
주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셨다. 믿음으로 산을 옮겨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열심히 삽질하여 조그마한 동산이라도 만들어봅시다"라고 목청 높여 외친다. 그들이 생각할 때,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그래도 성과가 있어보인다.
 
그러나 정결과 거룩이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율법적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는 믿음으로 지옥에서 천당으로 옮겨진 사람이다. 이것은 지구에서 달에 간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이다. 이것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율법타령하는가? 믿음으로 구원은 받을 수 있지만, 성화는 율법으로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너무 많이 듣는다. 그들은 믿음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내 율법적 노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만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곳이 있다면, 더욱 예수님을 알려고 하고, 그를 묵상하고 신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이 우리를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믿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경험하도록 하라. 이웃도 사랑할 수 없었던 자를 원수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믿음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원수도 사랑하라는 명령때문인가? 아니다. 원수도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그를 닮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이다. 
 
우리는 '복음의 신앙'(27)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고, 서로 격려해야한다. 복음의 신앙은 관계에 있어서 응용범위가 무궁무진하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대하신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하라. 
아이들을 키울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게 하라.  
 
율법타령이나 하고 불교의 중들에게도 들을 수 있는 윤리, 철학 설교나 하는 사람들에게서 떠나야 한다. 그런 율법적 설교들은 결국 복음의 신앙에서 떠나게 하고 나를 위선적이고 메마른 사람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 고난의 이유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28)
 
어느 시대에나 복음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어왔다. 이들로 인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늘 고난과 고통을 당해왔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것을 근절시키지 않으시는가? 
 
그들에 의한 핍박은 그들과 우리를 선명하게 구분짓는 증거라고 한다. 그런 핍박과 고난을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대적 편에 있는 자들이며, 우리는 하나님 편에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핑계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원리에서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는 세계적으로 대규모 핍박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 24:9)
그리고 그러한 핍박은 주님께 속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명백히 구분해 놓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불평하지 말고 기쁨으로 받아들이자. 온갖 조롱과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자. 
 
 
◆ 은혜를 주신 목적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29)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말씀에 집중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신 목적은 '그리스도를 위하여'라고 하신다. 
 
'그리스도를 위하여'가 무슨 의미인가? 
한마디로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 은혜를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요 3:35, 17:2). 모든 무릎이 그리스도에게 꿇기를 원하신다(빌 2:1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만을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이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마 17:5)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의 것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철저하게 우리를 위하신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권세를 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 그리스도는 우리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은혜의 경지다. 이 위대한 연합이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신비임을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럴싸한 세상철학이나 속삭이고, 윤리 도덕 타령이나 하며, 율법이나 외쳐대는 사람에게서 돌아서서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자. 
 
그리고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것이 되자.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를 묵상하며 그에게 매몰되자. 그럴 때 우리는 산이 옮겨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죄가 나를 지배하지 않고, 죄가 혐오스러운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세상의 욕심이 덧없음을 알게 되고,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쓰레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임을 알게 되며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일에 파워(power)가 생기며, 고난과 수고도 즐겁게 될 것이다.  
 
오, 주 예수님, 제가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것이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을 더욱 알게 해주십시오. 더욱 믿음 안에서 주님께 몰입되게 해주십시오.  저로 믿음의 비밀을 알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주님안에서의 저의 수고가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되며,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2pw/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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