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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창세기 50장15-26 / 요셉의 죽음과 유언 (창세기 끝)

by 【고동엽】 2022. 11. 17.
■2022년 6월30일(목)■
 
(창세기 50장)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22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묵상/창 50:15-26)


◆ 요셉 형들의 두려움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의 형들은 40여 년 전에 요셉을 죽이려고 했고, 결국 노예상에 팔았다.
모두가 십 대 후반, 이십 대 초반이었다. 치기 어린 행동이었고, 즉흥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평생 후회할만한 일이었다. 형제를, 그리고 당시 막내였던 동생을, 그리고 아버지의 가장 사랑받는 아들을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않고 팔아버린 것은 아무리 봐도 용서받기 힘든 행위였다.


나이가 육십이 되어서 되돌아보니,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고,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제일 먼저 바로잡고 싶은 행위였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없던 일로 할 수 없다. 그냥 원죄처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부끄러운 죄와 행위들이 있다. 이것을 없던 일로 할 순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 요셉의 용서


(17)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비록 요셉이 과거에 용서했을지라도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에게 한 행위가 걸렸다. 야곱이 죽은 마당에 요셉이 자기들을 구박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터다. 요셉의 입장에서 형들을 좋게 보아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형들은 아버지 야곱의 유언을 인용하여 자신들을 용서해줄 것을 재차 간구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나는 이런 말들이 감동이다. 과거 십 대 시절에 제멋대로였던 소년들이 이제는 육십 대가 되어서 야곱의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으면서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의 유언을 빌어서 요셉에게 용서를 재차 구한다.
이때 요셉은 울었다. 요셉의 눈물은 형들을 진작에 용서했음을 의미한다. 요셉의 눈물은 형들이 과거의 그런 제멋대로 행동했던 소년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요셉의 눈물은 이들이 평생 죄책감으로 충분한 대가를 받았음을 잘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요셉은 형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을까?
요셉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노예로 팔린 것이 알고 보기 이렇게 애굽의 총리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자기 온 집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형들은 악한 마음으로 팔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마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이다.


섭리적으로 볼 때 형들의 행위는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한몫을 했다. 그렇다고 형들에게 고마울 것은 없지만, 그들의 악함까지도 활용하여 뜻을 이루신 하나님의 위대하심 안에서 용서할 순 있었다.


우리도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깨닫게 될 때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사건이 나를 더욱 신앙이 깊어지게 만드는 도구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과정들이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모든 것을 깨달은 요셉은 진정으로 용서했다. 아니, 용서를 넘어서서 형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했다(21).


진정한 용서는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를 새로운 피조물로 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경지까지 갈 수 없다. 이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사람만이 흉내 낼 수 있는 경지다. 요셉은 신앙 안에서 그런 경지까지 나아갔다.


하나님의 용서는 죄를 완전히 잊으신다.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 10:17,18)


인간은 용서했어도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한다. 그의 죄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시고, 진짜로 잊으신다. 나를 볼 때마다 과거에 무슨 죄를 지은 놈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피조물로 대하신다. 인간은 편견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만, 하나님은 완전히 벗어나셔서 우리를 대하신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용서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다.


◆ 요셉의 유언과 죽음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애굽에서 93년을 살았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크게 번성했고, 강해졌다. 요셉은 110세를 살았는데, 당시로서는 일찍 죽은 셈이다. 요셉은 죽기 전에 매우 중요한 유언을 남겼다. 그것은 후에 출애굽 할 때 자기 유골을 메고 올라가도록 한 것이다.


요셉의 이 유언은, 이스라엘이 이곳을 결코 본향으로 생각하지 말 것을 일깨우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서 가나안으로 가게 하실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있기에 후손들은 그것이 등불처럼 되어서 목표를 잃지 않게 되는 것이다.


후에 모세는 애굽을 탈출할 때,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간다(출 13:19). 요셉의 유언이 대대로 기억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요셉의 뼈를 가나안 땅 세겜에 묻었다(수 24:32).




한 사람의 믿음의 삶이 이토록 많은 사람을 살리고, 인생의 참된 목표를 잃지 않게 한다.
우리도 후손들에게 확실한 믿음의 모습을 남겨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여서 후손들도 그러한 믿음을 본받아 잘 살도록 해야 한다.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끝난다. 창세기 다음은 출애굽기다. 애굽을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이것도 매우 흥미진진하다.


주님, 주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면 기쁩니다. 손수 이루신 업적을 기억하면서, 환성을 올립니다.
주님,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이렇게도 큽니까? 주의 생각이 어찌 이다지도 깊습니까?
우둔한 자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미련한 자가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시 92:4-6, 표준새번역)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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