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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로마서 14장14-21 / 각 사람의 믿음은 존중되어야 한다

by 【고동엽】 2022. 11. 14.
■2022년2월21일(월)■


(로마서 14장)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묵상/롬 14:14-23)


◆ 다른 형제의 믿음을 존중하라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피에르 만조니라는 이탈리아의 화가는 Merda d'artista(예술가의 똥)라는  통조림을 90개 만들어서 전시장에 내놓았는데, 실제로 통조림 안에 자신의 똥 30g 씩 넣어서 팔았다. 
그런데 가격이 금 30g의 값이었다. 이 작품이 나오자 순식간에 동이 났다고 한다. 최근에 영국의 한 유명 미술관에서는 이 작품을 영구히 소장하기 위해 이 작품을 2만 5천 달러에 사들였다고 한다. 어째서 사람들은 이것을 샀을까? 거기에는 예술가의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만조니는 모든 만물이 자기 스스로의 존재 가치가 있는데, 그런 것이 인간의 기준에 의해서 구분되고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예술가의 객기라고 매도할 수 없는 상당히 일리있는 주장이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선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각 존재가 각각의 쓰임새에 알맞게 창조되었고,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딤전 4:4).
악한 것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러한 확고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음식에 대해 오래된 습관이 있어서 어떤 짐승은 부정하다고 여기고 먹기를 꺼린다. 유대인들은 율법에서 금지된 돼지고기를 무척 혐오한다. 이것은 우리 상상을 초월한다. 기원전 2세기경에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유대인 일가족 모두가 몰살당한 일도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깨닫고는 음식법에서 자유해졌다고 해서 거리낌 없이 돼지고기를 먹는다면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보다 실감 나는 예를 들어보자.
담배가 죄인가? 몸을 망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 자체가 죄가 될 수는 없다. 19세기에 살았던 세기적인 설교가인 스펄젼 목사는 담배가 통풍치료에 좋은 약이라는 의사의 추천에 열심히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한국에서 담임목사가 집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성도들에게 들키면 어떻게 될까? 그는 즉시 믿음이 없는 가짜 목사로 낙인찍히기에 십상이다. 물론 목사 입장에서는 담배는 기호식품일 뿐이며, 영국의 스펄전도 피웠다는 예를 들어가며 변명할 것이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성도가 담배 피우는 것은 옳은가, 그른가?


바울은 여기에서 판정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원리를 제시할 뿐이다.
그것은 '형제 사랑'의 원리다.


음식 문제로 형제를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정당해도 그것이 형제를 근심하게 하거나 시험에 빠뜨리는 것이라면 삼가라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꺼리는 유대인 앞에서는 아무리 돼지고기를 좋아해도 참아야 하며 형제들이 담배를 속되게 생각한다면 담배를 삼가야 하고, 술을 속되게 생각한다면 술을 입에 대지 말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반발할지 모른다.
왜 내 자유가 다른 사람 신경 쓰느라 제한받아야 하는가? (고전 10:29)
왜 내가 감사함으로 먹는 것이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아야 하는가? (고전 10:30)


여기에서 바울은 놀라운 성도의 경지를 말한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7).


즉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그들의 우선순위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닌,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후자를 위해서는 전자를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자들이다.


여기에서 '평강(peace)'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평안을 의미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화목을 의미한다. 19절에 '화평의 일'에 힘쓴다는 말이 이것을 증거한다. 모름지기 성도란 형제들과의 화평을 위해서 스스로 자기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사랑의 사람들이다.


우리에게는 내 권리보다 '하나님의 사업'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업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사람을 구원하고, 형제들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버리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 오직 형제들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본받는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형제들에게 신경 쓸 필요 없이 내 권리만을 주장하며 살 것인가?


바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
그것이 옳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것이 아름답다는 말씀이다.


후에 이 말씀이 율법화 되어서 고기나 포도주를 먹는 사람을 세속적인 사람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비위가 약한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조금씩 먹을 것'을 권한다(딤전 5:23). 원리를 아는 자에만 가능한 자유다.


주님,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권리를 내려놓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형제들을 위해 기꺼이 포기할 줄 알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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