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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여로보암을 치신 하나님

by 【고동엽】 2022. 10. 14.

왕상14:17-18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어서 사람들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도록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기 위하여 여러 가지 우상들을 숭배하고 있지만 성경에서는 그러한 우상 숭배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선포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의 죄에 대하여 얼마나 진노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우상 숭배를 함으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자의 대명사로 사용되었습니다.
(왕상 16: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왕상 16: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왕상 16:33)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그러므로 여로보암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모든 우상 숭배자들에게 적용됩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해 매우 이상한 견해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가 아이가 어떻게 될 것을 확실히 말해 줄 수 있고, 또 쾌히 말해 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히야 선지자가 그 아이의 어머니는 누구인지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선지자가 미래의 두터운 암흑은 꿰뚫어보면서 이 변장의 얇은 천은 꿰뚫어볼 수 없다는 말인가?

   여로보암은 아들 아비야가 병에 들자 자기 아내를 변장시켜(incognito) 아히야 선지자에게 보냈습니다.
복장을 바꾸고 얼굴을 가리며 변성명해 가지고 가야 했습니다. 그 여인은 궁중과 자기가 통과하는 지역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그런 심부름을 가는 것이 자기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라도 한 듯).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처럼 이 여인이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가 없었으나 변장하고 찾아 가야만 했습니다.
이 여인이 변장을 해야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선지자에게서 자신을 숨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선지자로 하여금 자기 아들에 관한 질문에만 대답하고 자기 남편의 변절이란 재미없는 화제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자기 신분을 감추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도록 하기 위해 자기 신분을 감추고자 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에게 지시하기를 좋아합니다. 목사를 순조로운 일에만 제한시키려 들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들에게 다 전해 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행 20: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 이는 그것이 자기들에게 대한 선한 예언이 아닌 악한 예언으로 나타날까 봐 두려워해서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느 것도 제할 수가 없습니다.
(계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리고 성경은 복된 가르침 보다 경고의 말씀이 더 많습니다.
신 28장은 복의 장이라 하나 1-14절은 복이고 15-68절은 저주입니다.
그리고 잘 못하면서 징계를 받지 않는 다면 복이 아닙니다.
(히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히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 12: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히 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아히야 선지자는 일찍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선지자였으므로 여로보암은 자신의 아들의 생명에 관해 묻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히야 선지자는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여로보암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내가 도착하자 그들의 교활한 행위를 책망한 후 여로보암 집에 내릴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왕상 14:9)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의 노를 격발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우상 숭배에 대하여 하나님을 등 뒤에 버렸다고 합니다.
(왕상 14:10)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을 쓸어 버림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왕상 14: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하셨나니
(왕상 14:12)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아히야 선지자는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죽게 될 것이나 오히려 그는 복을 받은 자임을 밝힘으로써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집에 내릴 심판이 죽음보다 더한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여로보암의 집에서 오직 아비야만이 묘실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이는 그가 하나님 여호와를 잘 섬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곧 당장 죽음을 당하는 아비야가 여로보암의 집에서 가장 복 받은 자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는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사 57:1) 하여 빨리 죽는 것이 반드시 불행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당도하자, 아히야의 말대로 아 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는 아히야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보여 주는 증표이기도 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는 곧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였습니다.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단을 세우고 백성으로 숭배케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사 그 땅에서 뽑아 하수 밖으로 흩으실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한 가나안 족속들을 뽑아버리시고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우상 숭배로 그 땅을 더럽히므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심판하심과 같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어 이방의 포로가 되어 흩어지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은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여로보암 한 사람의 그릇된 우상 숭배가 그 나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여로보암 집안 사람의 비참한 죽음은 바로 영혼이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를 행한 자들은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함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은혜로 받아 누린 평강의 상태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전쟁의 소문과 미움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참된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형벌을 받으심으로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우리에게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풍족한 삶을 산다 하더라도 영적으로 죄인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자는 참 평안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성도가 타락하여 범죄할 때에 사단은 이를 틈타서 우리가 소유한 평강을 빼앗아감으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다툼을 일으키려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된 평강의 상태를 귀히 여겨서 하나님 앞에서 항상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출처/강성찬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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