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할일
마 22:34-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
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
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저는 지난 두 주간 미국 아주사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학기 강의내용을 두 주간에 종합해서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두 주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정식 교수임용절차를 다 밟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 책임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신앙고백을 받았습니다. 신앙배경을 묻고 신앙성장 과정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신학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마지막에 그분은 저에게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은 상식을 넘는 충격을 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순간 머리를 멍하게 만들고 나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질문에 당황했습니다.
다음으로 대학원장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한 주간 후에는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단기선교를 떠난다고 했습니다. 짐바브웨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 동기는 그들은 환경이 열악하고 문화가 뒤떨어져 평균 수명이 43세라는 것을 알고 부터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짐바브웨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면 마음이 떨려오고 영혼이 떨려온다고 했습니다. 한 주간 뒤에 그 나라를 가기로 했는데 그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과 영혼이 떨려옴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저에게 북한 동포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이 또 나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질문 또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북한 동포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나로 하여금 당황하게 한 질문인지 모릅니다.
숙소로 돌아와 그 두 가지 질문 때문에 상당시간 혼자 앉아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시점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그 질문을 통해서 나를 점검하시는 가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시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을 향해서 여러번 여러번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저 사람은 짐바브웨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 가슴이 떨려오고 영혼이 떨려 온다는데 나는 내 동포 북한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 과연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 한마디라도 해 보았는가”. 참으로 그 두 분의 질문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 성경을 읽다가 발견한 말씀이 오늘 읽은 본분말씀입니다. 오늘의 이 본문은 그렇게 해서 발견한 말씀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크게 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입니다.
37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일,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사랑이 아니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말하자면 가슴이 떨리고 영이 떨리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첫째가는 일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떤 대상을 정말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영이 떨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마음도 떨리고 정신도 떨리고 영혼도 떨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 사람들은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떨리고 영혼이 떨리는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그런 사랑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아주 당연한 질문인데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씀은 내가 지금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내 생각과 관심 그리고 현재 내 마음속을 하나님이 지배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은 내가 지금 하나님의 뜻을 우선해서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하는 판단하고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과감히 그 뜻을 취하고 나머지는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 삶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수고도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희생도 감수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는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용기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거나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길을 좁은 길이라고 했습니다. 좁은 문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만큼 어렵고 힘들고 수고로운 길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마리아와 정혼한 사람입니다. 그는 며칠 있으면 마리아와 결혼을 합니다. 그때 요셉은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느 날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청천 벽력같은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겠습니까. 고민 끝에 요셉은 조용히 끊으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요셉을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의인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난리를 피웠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입장은 생각도 하지 않고 날뛰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요셉은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음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성령이 요셉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니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그 계시를 받은 요셉은 순순히 그 계시에 순종합니다. 복종합니다.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환희나 즐거움 등은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거룩한 마리아에게는 가까이 접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혼의 기쁨 따위는 아예 포기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희생입니까. 그 뒤로 요셉은 철두철미하게 수고와 희생의 삶을 살아갑니다.
마리아가 아이를 출산하면서부터 요셉은 본격적으로 희생의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가 태어나면서부터 피난생활을 시작했고 애굽으로 나사렛으로 도망 다니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예수를 양육하는 삶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예수께서 성장하여 할 일을 하게 될 즈음에 요셉은 조용히 그의 인생을 끝냅니다. 이것이 요셉의 인생입니다. 그는 소리 없이 희생했고 수고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성경은 요셉을 가리켜서 의인이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그 삶을 좁은 길이라 했고 좁은 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했을 때는 나머지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뜻으로 총장께서 저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것입니다. 그 사랑은 말로서의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용기와 결단과 희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물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물음에 우리는 시원하게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다.
두 번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일” 일입니다.
39절 말씀을 보면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계명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한가지 큰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해서 헌신하고 섬기고 돕고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사명의 삶을 살아갈 때 사람의 값이 발휘되고 행복한 삶을 느끼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가장 건강한 정신을 지닌 삶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소중한 삶입니다. 그래서 이 삶은 정신이 성숙한 사람만이 흉내낼 수 있는 삶입니다.
대학원장께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저는 한달 동안 짐바브웨로 단기선교를 떠납니다. 가서 그들을 조금이라도 도우려고 합니다. 그들을 생각만 해도 저의 마음이 떨리고 영혼이 떨려옴을 느낍니다. 목사님은 북한 동포들의 영혼을 위해서 진정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희한한 일들이 있습니다. 자기들과 상관도 없는 민족, 피를 나눈 동족도 아닌 순전히 남남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영혼이 떨려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영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삶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자신들과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영혼이 떨려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데 우리는 피를 나눈 동포요 형제인데도 기도하지도 못하고 더구나 영혼이 떨릴 만큼 그들에 대한 애착도 없습니다. 이것도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오히려 그동안 조금 도와준 것 때문에 고맙다는 인사는 못할 망정 총질을 해대는 그들이 밉기만 합니다. 그래서 북한 어린이를 위한 주일 헌금하는 일에 스스로 시험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수준입니다. 남들은 상관도 없는 민족을 위해서 영혼이 떨릴 만큼 기도하는데, 회교국가 오지에 들어가 선교하다가 잡혀 고초를 당해도 또 선교사를 보내고 물질로 후원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북한 민족에게는 그렇게 인색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떨리는 기도를 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실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도와줄 때는 곧 잊어버려야 합니다. 도와준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도와 주고는 곧바로 잊으라는 교훈입니다. 그러면 서운한 것도 없고 배은망덕 하다는 마음도 들지 않습니다. 조금 도와 주고는 그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서운한 것이고 왜 인사도 안 하느냐고 따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돕는 일은 조건이 없어야 합니다. 진정 돕는 일에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있고 성숙함의 삶의 내용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서로 돕고 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서툰 삶이 움켜쥐는 삶입니다. 움켜쥐는 삶은 공동체 삶을 훼손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게 될 뿐 아니라 가장 불건전한 사회를 이루어 내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장래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인류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합니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가서 예쁜 여자와 결혼하고 좋은 집을 짓고 잘사는 것이 장래 꿈이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꿈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알고 보면 꿈도 아니고 비전도 아닙니다. 이것은 병든 인생관입니다. 젊은이의 장래 꿈과 기대가 겨우 이것이라면 정말 큰일입니다. 이 나라 교육이 이렇게 젊은이들을 병들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사회에서는 너는 유능한 사람이 되라 엘리트가 되라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부모들 그리고 사회가 모두 너는 엘리트가 되라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말대로 죽도록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대학가고 좋은 직장에 가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목표대로 성공을 이룹니다. 그런데 그 성공을 누군가를 위해서 쓸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성공과 출세의 역량을 혼자만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얼마나 불건전한 인생관입니까. 세상에 이렇게 이기적인 서툰 인간들만 남는다면 이 세상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서로 함께 살아가고 더불어 살고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하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가장 건강하게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서 이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면 마음도 정신도 생각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 삶이 바로 헌신의 삶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내가 이룬 성공 재물 출세를 누군가를 위해서 쓰고 사용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삶입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나라가 건강한 나라이고 건강한 사회입니다.
사람이 젊었을 때는 철이 없어서 그런 눈을 뜨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게 되면 그 눈이 뜨입니다. 그리고 넓게 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보면 한가지 새로운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교훈입니다. 이 교훈은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볼 때만 보여지고 느껴지는 교훈입니다. 사람이 이 교훈을 보고 느껴지는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마지막 죽어갈 때까지 이 눈을 뜨지 못하고 그냥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년에 가서 까지 탐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움켜 쥔 채 살아가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삶에 무슨 자유함이나 즐거움이 있었겠습니까.
사람의 값은 자유함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에 있습니다. 그 자유함은 이 질서에 눈을 뜰 때 주어집니다. 이 질서를 깨닫고 느껴질 때 움켜쥐었던 것을 놓을 수 있습니다. 탐욕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때 자유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옆 사람도 보게 되고 남도 볼 수 있는 눈이 뜨이게 됩니다. 그 결과 함께 살아가고 나누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 자유함과 삶의 의미와 만족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런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삶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읽은 본문에서 세사에서 가장 큰 계명 두 가지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계명이고 가장 먼저 할 일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의 연장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계명은 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사람이 이 일에 뜻을 두고 살아갈 때 스스로 기쁨이 주어지고 그 삶에 행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성공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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