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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5-17)

by 【고동엽】 2022. 9. 26.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5-17)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생명은 사랑으로 잉태되고 또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의 품안에서 안기우면서 이 세상을 행복하게 즐겁게 살게 되어져 있습니다. 물고기의 생명이든지 곤충의 생명이든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사랑을 듬뿍 안고 이 땅에 태어나서 살게 되어져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 사랑을 모르는 곳은 한곳도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특별히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아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거룩하고 흠이 없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되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행복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주신 이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 가장 크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 인간이 범죄해서 이 사랑과 끊어지게 되었고 이 사랑을 멀리 떠나서 탕자와 같이 이 세상에서 방황하며 길을 잃어버리고 헤메던 우리 인간을 다시 하나님께서 건지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으로 안기 위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위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는 그 사랑의 크기를 보여주고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귀히 여기시는가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변함없으심과 참되심과 거룩하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독일의 격언에도 어머니의 사랑은 최선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은 최고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사랑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유한한 그릇, 이 그릇으로 사랑할 뿐입니다. 최선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조금 넘으면 우리의 사랑은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상대를 향해서도 최대한의 에티켓과 예의와 관용과 겸손함을 보여주지 아니하면 이 사랑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양적으로 너무 적은 보자기에 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도 여러분이 뉴스를 보셨죠?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어머니가 컴퓨터 게임 하는 걸 꾸짖어 가지고 얘야 넌 공부 안하고 자꾸 컴퓨터를 가지고 게임 하느냐 그래서 이 애가 속상해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해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유서를 아주 잘 썼어요. '어머니, 아버지 이 골칫덩어리가 잘 죽었으니 잘 사소' 그러고 죽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어머니의 사랑도 그걸 넘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걸 봐 주는 사랑을 못하는 거예요. 모든 부모들이 잔소리를 하는 것은 그걸 넘지를 못해서 하는 거예요. 자녀들도 그걸 넘지를 못하는 거예요. 우리 인간의 사랑은 그래서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요. 그래서 이 사랑이 조금만 넘어도 양적으로 우리가 그걸 수용하지 못하고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영국에 있는 학자가 발표했습니다. 인간의 사랑, 연인의 사랑은 3년을 넘을 수가 없다는 이런 발표가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를 못합니다. 늘 변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변할 때 화를 내고 섭섭해하고 속상해 하고 괴로워 하는데 우리 인간의 사랑이 오래갈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사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사랑이 오래가려면, 모든 것을 사랑하고도 남음이 있으려면, 내 사랑이 풍성한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사랑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 큰사랑,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


♬그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하나님의 사랑!
♬ 주의 사랑 비췰 때에 기쁨 오네 어둠 슬픔 물러가고 기쁨 오네 기도하게 하시며 영광스런 새생명 다시 찾게 되었네 그 큰사랑. 그 큰사랑 내 맘속에 명랑하게 비췰 때에 찬송하네 그 큰 사랑 내 맘속에 화평함과 기쁨 주네.
그 큰사랑. 주의 사랑 비췰 때에 이 세상은 어둠 슬픔 중한 짐이 다 없겠네♬

이 세상, 내 영혼, 하나님의 사랑이 비취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에 내 삶에도 내 심령에도 어두움이 물러가고 기쁨이 오고 세상이 늘 변해야 될 줄 알았는데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니 변하든 변치 않든 세상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던 모든 어두움을 극복하려고 얼마나 노력했지마는 이 뿌리 박힌 어둠의 세력 하나도 쫓아내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비추니 어둠이 세력이 물러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우리의 삶을 우리 가정을 무엇으로 밝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다 사랑하고 어떤 장애물도 넘어서서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큰사랑의 삶이 어떻게 되어져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늘을 향하여 비추는 사랑을 등지지 말고, 나의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주의 사랑을 내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사랑 영원한 사랑 참 사랑 거룩한 사랑 우리 인간은 이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게 되어져 있습니다. 마치 댐과 같습니다. 저수지와 같습니다. 큰 물 저장해 가지고 흘러가는 물을 전부 담수해서 공업용수로도 보내고 산업용수로도 보내고 가정으로도 보내고 모든 도시와 이 온 들을 풍성하게 공급할 수 있는 이 엄청난 은혜가 누구의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때에 내 마음이 밝아지고 여유가 생길 때에 나누어주게 되고 내가 풍성할 때에 내가 만족하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지 않았습니까. 어떤 연못에서 낚시하던 어부가 잉어 한 마리를 낚았습니다. 너무 반가워 가지고 큰 잉어를 잡아 먹으려고 했는데 잉어가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이 잉어를 잡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연못에다 놓아주었어요. 그 다음날 가서 연못에서 고기를 잡는데 이 잉어가 참 좋은 옷을 입고 나타났어요. 나를 살려주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대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내가 그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가난한 노파 이 부부는 밥 먹을 그릇과 밥솥이 없었어요. 그래서 밥그릇만 있었으면, 솥하고 밥그릇만 있었으면 좋겠다 해서 그 잉어는 그 집에다 밥그릇과 솥을 선물했어요. 너무너무 반가워 가지고 세상에 이런 그릇이, 세상에 이런 솥이. 그러나 일주일도 안 가서 밥할 쌀도 없는데 이게 무슨 소용이냐 그래가지고 낙심하고 괴로워하고 속상하고 답답해하고 그래서 왜그러시냐고 뭐가 부족하냐고? 쌀이 있어야 밥을 하지 밥그릇만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래서 이 잉어는 드디어 방방, 창고, 골방마다 쌀을 쌓을 곳이 없도록 가득 채워주었어요. 너무너무 반가워 가지고 우리는 행복하다, 그것도 한달도 안갔어요. 먹기만 잘먹어 가지고 무슨 소용이냐 옷은 거지 꼴을 해가지고 잘 먹으면 무슨 소용이냐, 그 다음엔 옷을 해주었어요. 옷 해주니까 그 다음엔 옷만 좋으면 뭐하나 신발이 없는데, 그래서 신발도 해주고, 아무리 잘입고 잘살지마는 비가 줄줄 새는 집에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래서 고래등같은 집을 해주었어요. 그러나 자식도 없는데 이 까짓 거 무슨, 우리 늙어 죽는 주제에 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래서 자식도 주었어요. 그러나 그것도 한 달도 안되어서 불평 불만이예요. 이 공부도 못하고 출세도 못하는 자식들, 일만하고 농사만 짓는 거 이게 무슨 소용이냐, 그래서 12명의 자녀들 다 출세시켜 주었어요. 성공했어요. 그러나 이분들은 나는 아직까지도 높은 분이 있어서 불안한데 나라의 임금이 되고 싶다, 그래서 임금까지 되게 해주었어요. 그러나 임금이 되어도 임금이 얼마나 걱정이 많고 괴로움이 많고 이 세상이 얼마나 힘들어요. 만석꾼은 만가지 걱정이 있고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도 많이 불고 누가 국민이 알아주나 이해해주나,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어요. 그 때에 말하기를 나는 임금보다도 네가 되고 싶다. 너 죽고 내가 네 자리에 올라가고 싶다,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단지 이 이야기 만이 아닙니다. 성경의 아담 이브도 그랬어요. 이 세상에 하나님 되는 것 외에는 다 주었는데 아담이 결국 하나님 되려고 하잖아요. 내게 뭐 주시옵소서 하는 거는 여러분 안에 있는 욕심입니다. 결국 다 가져도 여러분은 절대로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사랑이 없고 욕심이 있기 때문이에요.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너무 육적이고 죄악적인 요소들이 원망 불평이 가득차 있는 이 마음, 세상이 천번 만번 바뀌고 천번 만번 좋아져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 인간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임할 때, 주의 사랑이 내 안에 비취어질 때에만이 찬송할 수 있습니다. 기뻐할 수 있습니다. 행복이 어디에서 옵니까? 사랑에서 오는 것입니다.

월남전에 두 다리를 잃은 보브 위렌트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두 다리가 위에까지 다 잘려졌는데도 미국을 손으로 걸어서 횡단하였습니다. 미국의 동-서의 길이가 4454km입니다. 부산까지 420km인데 그 길이의 10배입니다. 그건 동-서만 그렇죠. 텍사스에서 알래스카까지 가려고 하면 비행기로 8시간을 가야 합니다. 하와이까지 오려면 8시간, 괌까지 오려면 12시간 와야 합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큽니까? 그냥 이쪽에서 저쪽만 해도 4454km입니다. 그런데 이 보브라고 하는 이 청년은 다리도 없는데 두 팔로만 걸어가지고 거꾸로 걸어가지고 3년 8개월 6일만에 LA에 도착했어요. 얼마나 놀라운 일이예요? 걸어서 가는 것만해도 대단해요, 자동차를 타고 가도 한 주일 걸리는데, 걸어서 가도 대단한데 3년 8개월을 쉬지 않고 갔어요. 그래서 모두 환영하며 기자들이 가서 물었어요.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얼마나 어려웠느냐고. 그럴 때에 이 분이 대답한 게 뭔지 아세요. '내게는 권태로운 날이 하루도 없었다' 왜 그래요? 하나님의 사랑이 비취니까. 많은 사람들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차 타는 사람 보고 욕하고, 차 타는 사람은 더 좋은 차 타고 간다고 빵빵거리고 욕하고요. 제 눈으로도 많이 봤어요. 자기보다 조금만 더 좋은 사람 보면 속상해 하고요, 이 사람은 아무 것도 없이 팔로 거꾸로 걸어가는데도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거할 때에 감사하며 행복했던 것입니다.

사랑은 집중력이 있습니다. 사랑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단순합니다. 사랑은 내 안에 자리잡습니다. 사랑 안 해보셨습니까? 사랑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여유롭게 하고 한없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도 누구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처음부터 정해놓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처음부터 정해놓으셨어요. 일찍이 우리를 정하셔서 야곱아 아브라함아, 몇 천년 몇만 년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정해놓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거예요. 사도 바울은 내 모태의 조성함을 받기 전에, 만물이 조성되기 전에 하나님은 다 나를 아시고 사랑해 주시고 끝까지 나를 사랑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저도 군에 있을 때에 저의 집사람이 편지를 3일에 한번씩 꼭 보냈습니다. 저는 군에서 사병 생활을 하지마는 모든 것이 집사람에 다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병 월급이 기껏해야 한 만원 정도지만요 그 돈을 다 하나도 안 쓰고 집사람이 쓰는 비누 사서 보내주고요 치약도 남의 것 쓰고 내 치약은 집에 보내주고요. 미원도 늘 하나 둘 사다주고. 내가 사랑해서 모든 걸 실어다주고 편지와 함께 주면 집사람은 그걸 받아 가지고 3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3일에 한번 그 편지를 내게 보내줍니다. 그러면 나는 3일 동안 무슨 기쁨으로 사느냐? 무슨 낙으로 사느냐? 얼마나 힘들고 어렵지마는 내게 뭐가 있느냐? 3일이 지나면 집사람이 편지를 보내주는 거예요. 그래서 날씨를 적고요 집안 이야기를 하고요. '여보 오늘도 아침에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일어났습니다. 교회 가서 당신을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언제나 오시려나요' 보고싶은 이야기를 쭉 적습니다. 아주 집사람이 편지를 잘 적습니다. 내가 그걸 받으려고 아침부터 나가서 편지 배달부가 오는 것을 기다립니다. 편지를 받으면 계속 그것만 읽습니다. 뭐 날마다 그것만 읽고 화장실에 가도 얼마나 즐거운지...

우리 인간의 삶을, 이 세상 살아가면서 정말 우리를 신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얼마나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부요 하여 졌지마는 이렇게도 사람들은 자살해 죽고 가정이 무너지고 병들고 범죄는 늘어나고 퇴폐하고 얼마나 곪고 헐고 터져서 성한 곳이 없이 우리 몸과 마음이 다 찢어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떠난 우리의 사랑은 잘못된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폴란드 격언에도 인간의 사랑과 썰매타기와 매 사냥은 오래 갈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지속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오해하고 이기적이고 그러니까 서로 부딪히는 것입니다. 온갖 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무서운 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 사랑입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보내어 주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주님의 사랑에 눈을 뜰 때만이 인생은 눈을 뜨게 되고 담대하게 되고 힘있게 되고 능력이 있게 되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짐이라도 짊어질 수 있게 되고 어떤 곳에서라도 우리는 찬송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쫒는다라고 고린도전서 13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려가 없습니다.
오늘도 어떤 집사님이 저에게 기도 받으러 왔습니다. 남편이 돌아가셨는데 집안이 무서워서 못 있겠다고 해요. 그래서 대체로 집안에 누가 돌아가시면 이사를 가버립니다. 왜요? 무서워서요. 사랑하는 분이 없으니까 집안이 허전하고 무서운 거예요. 공허한 거예요. 여러분, 인간이 사랑했던 이 사랑, 당연히 떠나가는 사랑인데도 이렇게 무서워지고 허무해지고 불안해 지는데, 밤이 되면 불안해져요, 꿈을 꾸면 불안해져요, 밥상에서 밥을 먹다가도 놀랜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질 때 불안해 집니다. 어떻게 사나, 무슨 사고 안오나, 전쟁이 안오나, 애들은 안다칠까, 병은 안들까. 사랑이 우리에게 사랑이 없는 곳에 불안이 찾아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떤 두려움도 내어 쫒는 거예요. 잘못된 것을 내어 쫒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 것도 사랑이에요. 오늘 현대인들이 육의 병, 정신적인 병, 가정, 사회의 병을 치료하는 길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는 거예요. 우리 하나하나가 담대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이예요. 교회에 왜 나옵니까? 주일날이 무슨 날 이예요? 이 날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날 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주님을 주의 날에 주의 전에서 주님을 만나서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감사예배 드리려고 나도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 받은 성도들이 그 사랑에 감사해서 몸과 마음과 정성을 바치는 시간이 바로 이 예배시간이예요. 그래서 어떤 분은 주일날을 공휴일이라 그러는데 공휴일이 뭔 공휴일이예요? 이날은 주의 날이예요. 주의 날. Lord's day, 예수님의 날이예요. 그래서 이 날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세워주신 주의 교회에 나와서 사랑의 주님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주의 말씀을 듣는 거예요. 달고 오묘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거예요. 주님의 은혜를 받는 시간이예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생명을 버려주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사랑은 보호해 주시죠 지켜 주시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주시고 내 필요한 걸 늘 채워주시고 한없는 주님의 사랑이, 사랑은 눈을 감는다고 하잖아요 사랑은 봉사가 되는 거예요. 그냥 다 안보고 주는 거예요. 아낌없이 주는 거예요. 사랑은 허물을 보지 않는 거예요. 사랑은 누구와 비교하지 아니하는 거예요. 며칠 전에 TV에 그런 게 나왔어요. 아내하고 남편들이 나와서 남편이 부인과 살아갈 때 제일 좋은 말이 뭐냐? 아내가 남편에게 말들을 때 제일 힘 되고 좋은 말이 뭐냐? 부인은 사랑한다는 말을 제일 좋아해요. 늘 사랑한다고 해야 되요. 그것이 그 두 사람의 만남을 천국같이 만들어 주는 열쇠가, 그 보화가 바로 그거에요, 사랑. 또 아내가 남편에게 말할 때 제일 남편이 좋아하는 말이 뭐냐? 당신은 너무 훌륭합니다. 당신은 너무 잘합니다. 남편을 높여 주어야 돼요. 남편에게 그것도 모르냐고 그러면 안돼요. 그러면 부인이 들었을 때 제일 속상한 말이 뭐냐? 남편이 들었을 때 제일 속상하는 말이 뭐냐? 남편이 아내가 들어서 제일 속상하는 말은 너 친정 꼭 닮았다, 너 집구석이 꼭 그렇더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답니다. 정말 그런 말하면 안되겠어요. 또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뭐냐? 옆집 아저씨하고 비교하는 걸 제일 싫어한대요. 왜 저 아저씨는 저녁 7시에 퇴근하는데 당신은 왜 11시에 퇴근하냐고. 옆집 아저씨는 돈도 많이 가져오는데 왜 돈도 안 가져 오냐고. 오늘도 저 집은 식사하러 나가더라. 당신은 잠만 자고 뭐냐.

사랑은 대상을 정하면 그 대상에게만 집중해야지 적으면 적은대로 집중하고, 처음부터 말 잘하는 말 많이하는 거 처음부터 말이 없는 걸 좋아서 사랑한 거예요. 오히려 말 많은 사람 들으면 싫어해야지 왜 자꾸 말 많이 하는 사람과 비교하고 술먹으면 먹는 사람을 처음부터 알고 좋아했으면 끝까지 그대로 좋아해야 돼요. 처음부터 맞아가면서 좋아했으면 끝까지 좋아해야 돼요. 그걸 자꾸 고치고 비교하고 이러면 고쳐지는 게 아니예요. 좋아지는 게 아니예요.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의 사랑이 좋은 것이 있어요. 하나님은 어느 것도 바꿀 필요가 없어요. 내 모습 이대로 좋아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끝없이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시고 보완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잘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 흔들리지 아니하는 사랑이예요.

오늘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요한의 아들 시몬에게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만가지 말씀을 하셔야 되는데 그 많고 많은 말씀을 하시다가 이 땅을 떠날 때에 시몬에게는 딱 하나만 부탁하셨어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세상 어디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네가 나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귀히 여기면 너는 승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어떤 어려움을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만날 지라도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에 보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이 예레미야 31장에 보면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는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무궁한 사랑, 우리의 죄를 다 갚아주시고 용서하여 주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시고, 이 큰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이 세상을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를 주님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도 더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어요.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하는 자리까지 나아갔지마는 주님은 어느 것도 하나 책임 추궁하지 아니하시고 부끄럽게 하지 아니하시고 용서해 주시는 사랑, 이 크신 사랑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심히 어려운 시대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말세에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때가 오는데 왜 고통이 오느냐? 인간이 사랑이 식어진다 이렇게 말합니다. 말세에는 사랑이 식어진다. 참 사랑은 간 곳 없고 거래하는 사랑, 길거리의 사랑, 잘못된 사랑, 문제를 갖고 있는 이런 사랑만 날뛰게 되는 거예요. 이런 사랑은 안 하는 것보다 더 큰 상처가 되고 고통이 주어질 뿐 이예요.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인간은 말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헛된 것을 더 사랑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사랑 안에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랑에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랑의 품안에서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예배하며 기도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참 힘이 있습니다.

저는 어제 사랑의 설교를 하려고 그랬는지 점심을 먹고 TV를 트니까 성춘향전이 나와요. 그것도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이도령이 감옥에 가있는 춘향이를 만나는 그 장면으로 들어갔어요. 춘향이가 이미 얼마나 심한 고문을 받고 내일이면 사또 생일에 죽게 되어있었어요. 그래서 춘향이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춘향아 그러니까 꿈이냐 생시냐 서방님이옵니까? 내가 어제밤에 꿈을 꾸었는데 이렇게 내가 죽기 전에 서방님을 뵙다니. 죽다니, 그런 게 아니다 걱정하지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그러니까 옆에 춘향이 어머니가 이 거지같은 게 날뛴다고 그러니까 어머니를 보고 제 서방님에게 그런말씀 하지 마세요, 서방님 잘 대해준 걸 어머니한테 이야기 하고, 서방님에게는 서방님 내일 사또 생일에는 내가 나가서 죽을 것입니다. 내 목이 잘라지면 나를 속히 안아주소서 나를 양지바른 곳에 깊이 파고 나를 서방님 손으로 묻어주시오. 서방님 저고리를 벗어서 내 가슴에 덮어주시오. 여러분 사랑을 빼면 춘향전이든 뭔 전이든 아무 의미 없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데 여러분 집안에 뭘 꾸미든 아무리 별장같이 베르사이유 궁전같이 꾸며도요 사랑 없으면 그 집은 죽은 집입니다. 무섭습니다. 쓸쓸합니다. 사랑의 옷을 입어야 되고 사랑의 음식을 먹어야 됩니다. 사랑의 품안에 안겨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에요. 하나님은 최고의 사랑, 이런 물질적인 육적인 body의 사랑, 에로스의 사랑이 아닌 거룩한 사랑을 위하여 지어진 것이 우리 인간이예요.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어사또 출두해가지고 마지막에 잘있거라 손을 흔들면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이 세상에 우리 주님을 사랑하다가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들림받을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나도 그 사랑으로 채워져야 나에게도 행복이 있고 우리 주변에도 다 좋은 가정을 만들고 이웃과 좋은 국가를 만드는 길이 이 사랑이 전해질 때만이 가능합니다.

미국에 어떤 아이가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싶어 가지고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한테 성적표를 가져다주니까 어떻게 B가 하나도 없냐 전부 C냐? 그래가지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려고 1년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 가지고 그 다음 해에는 전부 B를 올렸어요. 그러니 아버지가 보더니만 어떻게 A는 하나도 없고 전부 B냐? 그 다음에 또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가지고 다 A를 맞추어 가지고 가져다 보여드렸어요. 그런데 그 아버지가 뭐라 그랬는지 알아요? '요새 선생님들은 성적을 막 준다니까' 그러더래요. 그러면서 기뻐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아이가 아이고 참 우리 아버지를 좋게 하는 길이 없구나 그래가지고 애가 탈선해서 곁길로 빠져나가는 거예요.
오늘 우리 주님의 사랑의 눈이 아니면 남이 잘하면 잘하는 대로 비하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비난하게 됩니다. 참된 주님의 사랑에 민감해야 합니다. 위의 문이 닫히면 아래 문이 다 닫히는 거예요. 자식이든 부모든 이웃이든, 그래서 지금은 시립병원에 가면 버린 자식들이 너무 많고 제주도에 가면 부모를 거기 버려 두고 올라오는 분이 많고 그냥 버리는 거예요. 이러한 잘못된 인간적인 이 타락한, 이 악한 사랑. 이것이 오늘 이 시대 우리 마음의 병이요 사회의 병입니다. 주님 앞에 회개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굉장한데서 정치 경제를 말하지 말고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 이 봄철에 움 돋듯이 싹이 트고 움이 터서 그 사랑에 눈물 흘리고 감사하고 고백하는 이러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김삼환목사 설교 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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