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하자 (데살로니가전서5:18)
<本文>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序言>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배경은 1980년도 5월에 일어났던 전남 광주 민주화 운동입니다. '화려한 휴가'는 시민군을 진압하는 특전사의 작전명입니다. 평화롭게 일상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격동의 상황에서 겪게 되는 아픔을 그렸습니다. 택시 기사로 일을 하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을 뒷바라지 하는 한 청년이 영문도 모른채 우연히 진압군에게 끌려가게 되고, 그 계기로 시민군에 합류하게 됩니다. 동생은 친구가 진압군에 맞아 죽게 되자 데모 대열에 끼어 듭니다. 청년은 사랑하는 간호사의 아버지자 특전사 출신 예비역 장교인 시민군 대장과 함께 시청을 사수하다가 죽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남녀, 형제, 부녀, 모자, 사제 간의 사랑이 잘 나타납니다.
이 영화에서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가 의도하지 않는 사건과 상황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힘든 상황들을 생각하면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범사(凡事)'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티(παντι)'의 기본형 '파스(παs)'는 '모든' '온갖' '전체'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감사할 만한 조건이 있을 때뿐 아니라 감사할 조건이 없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일이 잘될 때만이 아니라 일이 안될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형편이 잘 풀릴 때만이 아니라 안 풀릴 때에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本論>
1. 하나님의 선택을 생각해야 합니다.
에베소서1:4-5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나아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1:27-29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로 영혼이 죽은 자로 태어났습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불순종의 아들을 가운데 역사하는 영을 따랐습니다. 세상 풍속을 쫓았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산 것입니다 (엡2:1-3).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고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자들입니다 (롬5:6-10). 짐승과 벌레처럼 육의 욕망만 채우다가 죽은 후에 심판을 받아 지옥 형벌을 영원히 받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히9:27). 그런데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히 천국에 가서 살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를 믿을 때에 구원과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예 구원 얻고자 하는 열망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어 우리를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감동시켰습니다. 예수를 믿게 하여 구원받게 하고 천국 갈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것만 생각해도 충분히 감사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로마서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자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목적을 가지셨는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매일 삶 속에서 성령으로 섭리하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들이 우리의 경험과 지혜로 볼 때는 불행한 일들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불행한 일들 속에서도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시는 분입니다. 적극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그 불행한 일들을 유익이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그의 가족들을 인도할 목적을 가지셨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려는 목적을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이집트)에 종으로 팔려 갔습니다. 보디발이라고 하는 시위대 대장의 집에서 집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무고를 당해 시위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이 왕께 범죄하여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시위대장이 요셉으로 하여금 그들을 수종들게 했습니다. 하루는 그들이 꿈을 꾸어 번민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해석해 보니 술 맡은 관원은 복직이 되고 떡 맡은 관원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술 관원에게 복직되면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에 바로 왕의 생일 때에 술 관원은 복직되고 떡 관원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술 관원은 복직 된 후에 요셉의 청을 잊어버렸습니다. 얼마 후 바로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파리한 일곱 암소가 건장한 일곱 암소를 잡아 먹고, 마른 이삭 일곱이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꿈이었습니다. 온 술객과 박사를 불어 해석하라 해도 해석하는 자가 없어 번민하였습니다. 그 때 술 관원이 요셉을 기억하고 천거했습니다. 요셉이 꿈을 듣고 7년 풍년 후에 7년 흉년이 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셉은 바로 왕에게 관리를 세우고 풍년 들 때에 5분의 1을 거두어 성읍에 적치해 두어 흉년 때에 방출하라고 했습니다. 그 일로 바로 왕이 요셉을 총리로 세워 그 일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후에 흉년 때에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 곡식을 사러 왔다가 요셉을 알아보고 회개합니다. 요셉은 그들을 용서하며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창45:5). 그리고 온 가족을 청하여 애굽 고센 땅에서 살게 했습니다. 70여명의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곳에서 430년 후에는 200만명에 가까운 민족으로 성장하여 애굽도 두려워 하는 민족이 됩니다. 요셉에게 불행한 일들이 연속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의 오묘한 계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불행한 일들도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통로였습니다.
배 한 척이 파선하였는데 선원 중 한 명이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극적으로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인도에서 살아나기 위해 땀 흘려 나무를 모아 거의 한 달 만에 살수 있는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만들었습니다. 이 오두막 집이야 말로 무인도에서 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피난처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깊은 숲에 들어갔다가 해질 무렵 다시 자기 오두막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이 애써 지은 오두막집이 불길 속에 휩싸여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이 고독한 섬에서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 이자 안식처인 집이 불타는 광경을 보면서도 그는 어떠한 대책도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큰 좌절과 쓰라림으로 무너져 내려 그 자리에 그냥 멍하니 주저앉았습니다. 땅거미가 진 후 그는 나무 잎사귀들을 모아 해변가에 가서 임시 잠자리를 만들어 잠을 청했습니다. 오랜 날들을 땀 흘리고 애써서 만든 하나 밖에 없는 안식처를 한 순간에 잃어버린 절망적인 가슴을 안고 깊은 고통 속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새벽녘쯤 갑자기 인기척 소리가 들려서 잠을 깼는데, 눈을 떠보니까 놀랍게도 배 한 척이 도착해 사람들이 막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영원히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갈 줄 알았던 그는 배와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기쁨의 소리를 지르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그들은 이 섬 앞을 지나 가다가 불타는 집을 보고 '누군가 구조 요청을 하고 있구나'하고 이 섬에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소중한 집이 불타는 것은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이 불행한 사건 뒤에 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극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내재되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해야 합니다.
로마서8:30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화롭게 하려고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섭리하시는 목적은 온전케 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함이고 예수 그리스도 오시는 날에 영광과 칭찬과 존귀를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야고보서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1:6-7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시험을 참고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죽음이 임박했을 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습니다 (딤후4:7-8).
영국의 유명한 찬송 작가인 윌리엄 카우퍼는 서른 두살이 되었을 때 인생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느낀 나머지 이런 인생을 계속해서 살기 보다 차라리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에 뛰어내릴 작정으로 마부에게 테임즈 강을 향해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표정을 수상하게 여긴 마부는 청년을 내려놓고 청년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강에 투신하려는 순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청년을 향해 이렇게 격려하고 돌아갑니다. "앞길 창창한 젊은이가 이런 일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 용기를 가지고 굳세게 사십시오" 그 마부 때문에 그의 첫 번째 계획은 실패합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음독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웃이 우연히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가 아직 숨쉬고 있음을 확인 하고 해독제를 먹여 그를 살려 냈습니다. 두 번째 자살에도 실패한 그는 '내가 이래서는 죽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하여 이번에는 면도날을 가지고 손목의 동맥을 끊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놀랍게도 면도날이 부러지는 바람에 세 번째 시도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치 않고 네 번째는 꼭 성공하리라 결심하며 목을 매달았습니다. 그러나 목을 매단 순간 또 이웃집 사람이 와서 매달려 있는 그를 발견 하고는 곧 끈을 풀어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어렴풋하게 '아, 나는 죽을 수도 없는 운명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적 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해져 정신병 징후에 시달렸고 계속해서 정신적인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사랑했던 이웃들의 배려와 손길을 통하여 교회로 초청받았고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님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에게 가장 도움을 주었던 분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찬송가 405장)을 작사했던 존 뉴톤 목사님이었습니다. 존 뉴톤 목사님은 그의 친구가 되어 늘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며 상담해주고 격려해주면서 그의 믿음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목사님처럼 시적인 재능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양육해준 목사님을 따라 그도 자기를 구원해 주신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위해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쓰여진 찬송시 중에는 찬송가가 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는 곡이 무려 67곡이나 됩니다. 그가 쓴 찬송시 중 그가 죽지도 못하고 다시 살아난 자리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했을 때 쓴 찬송시가 있는데, "주 하나님 크신 능력(80장)"입니다.
<結言>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선택하시고 섭리하고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에게나 유다 나라에나 전혀 소망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유다 대해 가지신 계획과 목적을 깨닫고 기뻐했습니다. 하박국3:16-18에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병들어 재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빌4:4).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므로 죽은 자 같으나 살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후6:8-9).
출처/차용철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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