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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기도의 사람 히스기야 (왕하20:1-21, 사38:1-8)

by 【고동엽】 2022. 9. 15.

기도의 사람 히스기야  (왕하20:1-21, 사38:1-8)

오늘은 하나님을 움직인 기도의 삶을 살았던 유대의 왕(B.C 726-698), 히스기야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히스기야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힘' 또는 '여호와는 강하시다'라는 의미입니다. 히스기야는 유다 왕 아하스와 스가랴의 딸 아비야의 아들로서 태어났습니다.(대하29:1)
히스기야 왕은 25세에 즉위하여 53세에 죽은 유대의 왕으로, 전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고 통치를 잘하므로 열왕 중에 이만한 왕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정직한 왕이었습니다.(왕하18:3) 그러나 히스기야의 아버지인 아하스 왕은 성전에서 거룩한 기구들을 취하여다가 우상에게 희생 제물로 드렸던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아비야는 경건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올바르게 행함으로 다윗 왕 이후에 가장 훌륭한 성왕이 되었습니다. 또한 선지자 이사야와 미가의 감화로 즉위한 후 즉시 성전을 수리하고 청결하게 하며(대하 29:15), 전국에 유월절 참석을 권유하며 신앙을 부흥시켰고 나라를 흥왕 시킨 왕입니다. 부친 아하스 때에 행하여 졌던 우상숭배의 높은 단들을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모이도록 하고, 모든 백성이 7일제를 드리도록 전국에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한참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할 때 앗수르 군대가 유다를 침략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비굴한 항복을 요구하는 편지를 받고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펼쳤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나 고난을 당할 때 먼저 이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자신은 물론 신하들에게도 베옷을 입게 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구원할 것을 허락하시고 그 밤에 천사들을 보내어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쳐서 전멸시켰습니다.(왕하19:35) 그 후에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도 골방에 들어가서 오직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 기도가 응답되어 15년이란 세월을 더 연장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산 것과 다를 바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큰 은혜를 체험한 히스기야였지만 한가지 큰 약점이 곧 바로 드러나고 있는데, 그것은 히스기야의 허염심과 신중하지 못한 태도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으로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보배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을 비롯한 그 후손들에게 약속하신 번영이었고 영화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마땅히 제사장 나라로서 하나님을 높이고 섬기는데 그 축복들을 기뻐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왕 자신의 자랑거리처럼 간주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경계해 온 바벨론 왕의 사신들이 병문안을 왔을 때 히스기야는 모든 보배로운 금은과 향품 그리고 기름과 군기고와 내탕고(왕의 개인 창고)까지 모두 다 바벨론 사신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히스기야의 신중하지 못한 태도와 허영심에서 나온 행위였습니다. 우리도 믿음이 약해 질 때 순간적으로 사탄이 허영심을 불어넣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들을 자꾸 들추어 보이고 자랑하게 됩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의 귀중한 보배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왕하20:12-17, 사39:1-7) 그와 같은 허영심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의 치적 중에는 예루살렘 성안에 수로를 만들고, 물을 성안으로 끌어 들였습니다. 이렇게 못과 지하수를 파고, 수도를 만들고, 한 일은 예루살렘을 크게 번성케 하였습니다.(왕하20:20) 그러나 히스기야는 대외적으로는 뛰어난 통치자였으나 가정적으로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므낫세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므낫세는 우상숭배자로 히스기야 왕이 세상을 떠나자 뒤를 이었고 그가 다스리는 유다 왕국은 전례 없이 심한 우상숭배에 빠져들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자녀 교육에는 실패한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1. 그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촉구했습니다.(왕하18:3- 7)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수리하고 청결케 하는 일로서 그의 통치를 시작하였습니다.(대하29:3)
그리고 그는 부친 아하스 때에 행하여졋던 우상숭배의 높은 단들을 없애버렸습니다.(왕하18:4)
2.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위협합니다.
앗수르 군대가 유다의 견고한 성을 쳤을 때 이스라엘은 산헤립의 지휘아래 들어갔습니다. 앗수르 군대는 북쪽까지 모두 정복하였으나. 히스기야가 그들을 저지시키려고 시도하였다는 사실을 듣고 놀랐으며 당황해 했습니다. 산헤립은 그의 대변자 랍사게를 보내어 예루살렘을 조롱하며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으려고 애를 썼습니다.(왕하18:7. 37)
3.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았습니다.
히스기야는 랍사게와 산헤립으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때에 선지자 이사야를 찾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해 주십니다.(이사야 37:6-7)
4. 기도의 사람 히스기야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비굴한 항복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가지고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펼쳣습니다.(왕하19:14, 대하32:17-19)
5. 히스기야의 병과 회복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여 누구나 죽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도 죽을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죽을병에 걸려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을 선고받고서도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간청하여 자기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움직였습니다. 이는 그가 평소에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과 삶을 살아야 환난과 고통이 올 때 더욱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에 본문을 통해 히스기야의 삶을 살펴보고 우리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본문 왕하 20장 1절에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습니다. 이는 절망적인 사건입니다. 즉 히스기야는 호흡이 끊어져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죽음의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반드시 죽는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언제 죽음이 올지 모릅니다. 항상 깨어 믿음에 굳게 서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땅의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생명을 좌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생명도 그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2) 전력을 다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왕하 20장 2절에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자마자 곧 벽으로 얼굴을 향하고 통곡을 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하며 생명을 사랑합니다. 히스기야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생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전심으로 기도하는 자 앞에서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눈물을 흘리기까지 전심과 전력을 다하여 기도에 몰두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삶과 죽음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주 앞에 내려놓고 전심 전력으로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3) 결국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 왕하 20장 3절에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위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였더라"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진실한 신앙과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히스기야는 자기의 삶을 주 앞에서 행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솔직한 신앙 고백을 드린 것입니다. 지금 죽는다는 사형 선고를 받고 있는 처지에서 자기의 행위를 자랑하겠습니까? 히스기야는 그저 평소에 그렇게 살았음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온갖 죄를 범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 삶은 아니었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에는 몇몇 사람들로 인해 다른 성도들까지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마땅히 구별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성도들임에도 불구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으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런 성도와 함께 하실까요? 결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같지 않은 히스기야의 삶을 더 귀하게 보시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을 통해 우리가 배울 교훈을 정리하여 봅시다.
1. 히스기야 왕이 부친 아하스와는 반대로 여호와 앞에 정직하게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신실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여호와 앞에서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애쓰는 자를 주위의 여러 가지 악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붙들어 주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대하31:20-21)
2. 우상 숭배자들과 부정 부패자들의 온갖 반대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개혁의 기치를 든 히스기야의 신앙적 결단은 사회적 불의와 물질 만능이라는 우상과 야합하며 살아가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큰 경종을 울려 줄뿐만 아니라, 이 혼탁한 세대 가운데서 신앙인이 지향해 나가야 할 삶의 자세를 분명하게 제시해 줍니다.
3. 말년에 나타난 히스기야의 교만과 허영은 결국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신뢰하고 사랑한 데 그 원인이 있었습니다. 성도들도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안주할 때는 히스기야와 같은 실패를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푯대를 향해 줄달음 치는 신앙의 경주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빌3: 14)
또한 교만은 우리중 누구에게도 쉽게 엄습해 올 수 있습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4.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공과 자신의 병을 기도로 해결한 신실한 신앙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환난과 역경, 그리고 병중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합시다.
5. 선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하스 같이 악하고 배교적인 부친보다 더 큰 영향력을 줄 수 있었습니다.
6. 의심이 날 때는 하나님과 그의 종들에게 찾아가십시오, 히스기야는 기도하였고 이사야를 모시려고 사자를 보냈습니다.
7. 하나님께서 한 인간을 어떤 위치에 세우셨을 때 그는 그 지위와 소명감을 존중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먼저 신앙의 회복을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히스기야를 통하여 부정한 것을 정화시키고 혼란한 것을 바로 잡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8. 참고로 히스기야라는 동명이인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바벨론에 잡혀 간 자 중에 느아랴의 아들 히스기야가 있고(대상3:23), 또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바벨론에서 유대로 돌아온 자 중에 아델 자손의 히스기야가 있습니다.(스2:16 )

성도 여러분! 히스기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전력을 다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삶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의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신앙과 삶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움직인 히스기야의 신앙과 삶을 본받아서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출처/한태완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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