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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신 8:1-6)

by 【고동엽】 2022. 9. 10.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신 8:1-6)


심리학자들은 인간에게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몇 가지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기본적인 욕구 체계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ㅇ 생존과 안전감

ㅇ 만져줌과 피부접촉

ㅇ 돌봄

ㅇ 경청, 참여, 용납

ㅇ 성취

ㅇ 성적 만족감

ㅇ 조건없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욕구들이 어린시절 양육 과정에서 충족되지 못할 때 성장 후에 어른이 되어서도 내적 결핍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내적 결핍을 외적인데서 충족시키기 위해 쉽게 타락의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이러한 욕구체계가 있다는 것은 인간은 단순히 육으로만 되어있지 않고 몸, 마음, 영으로 되어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인간은 오직 육적인 충족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금으로부터 몇 천년 전에 인류 역사에는 이미 인간이 단지 먹는 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체험했던 민족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의 사십 년 동안의 광야 생활은 바로 그러한 생명의 교훈을 터득해 가는 훈련의 학교였습니다. 그들의 광야 생활은 매우 고독하고 힘들었습니다. 그곳에는 문화시설도 없었고, 의지할 만한 이웃 나라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 날에 필요한 음식, 옷, 잠자리를 공급 받을 수 있는 생산지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광야 생활은 매우 황량하고 외로운 나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러한 삶의 상황에서 하루나 일년이 아닌 사십여 년간이나 살아야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사십 년 생활에서 체험적으로 터득한 교훈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진리의 교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광야에 나왔을 때 거기에는 마실 물도 없었고,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거할 집도 없었습니다. 사십여년 동안 입을 충분한 옷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곳에서 반석에서 떠져 나오는 물을 마셨고,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육의 양식을 공급받으면서 그것들을 주신 주 하나님의 사라의 손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공급받은 양식은 하늘에서 내려온 영혼의 양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일 마실 물, 굶주리지 않고 먹을 양식이 공급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징표였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양식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 희망, 그의 사랑을 체험해 갔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광야 생활의 고독,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 평강, 자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그들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허락되는 미래의 희망의 약속이 없었다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없었다면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역사에서 바벨론 포로와 같은 강대국의 억압 가운데 있을 때 그들이 가장 고통스럽게 느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닌가?라는 깊은 회의적인 물음이었습니다. 그러한 역사의 암흑기에 그들이 견디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끊겨진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절망하고, 자포자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사십 년 생활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 역사에서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워갔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예수님의 광야 사십 일간의 시험을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사십 년으로 비유합니다. 인간 예수가 광야 사십 일간의 금식 기간에서 그가 사탄으로부터 받은 시험 가운데 하나는 "이 돌들로 빵이 되게 하라"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생의 광야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 즉 말씀을 믿지 않고, 사탄의 유혹의 소리를 거의 100%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영적으로 허기진 사람들에게 찾아와 집요하게 유혹의 미끼를 던집니다. 사탄이 속삭이는 유혹의 소리는 "사람이 빵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입니다.

사탄이 말하는 빵은 단지 먹는 빵만이 아닙니다. 존재의 결핍 가운데 방황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성적 쾌락, 거짓된 행복, 권력, 재물, 명예, 유행, 마약, 술, 담배등 모두 여기에 포함됩니다. 사탄이 던지는 빵들은 먹으면 먹을수록 배고픔이 더합니다. 자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유혹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마침내 거기서 나올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생은 파멸합니다.

사탄은 세속 문화라는 화려한 가면을 쓰고 내적인 문제로 생긴 삶의 고통스러운 문제들을 육적인 쾌락으로, 또는 마약, 알코홀과 같은 것으로 대치할 수 있다고 속입니다. 세속 문화가 우리에게 공급해주는 양식들은 아무리 먹어도 자족이 없습니다. 오늘의 세속 문화는 인간이 육적인 쾌락만으로 충분히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 세뇌해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미끼로 존재의 결핍 가운데서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들을 깊은 유혹의 수렁에 빠져들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하셨고,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하도록가르쳐 주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단순히 음식물만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존재의 의미, 희망, 목적, 일, 땅, 평화와 같은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해 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포함됩니다.

유다왕 웃시아 시대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가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외친 예언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제가 목회 현장에서 거듭거듭 확인해 가고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마음에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가 자기가 누구인가?를 보게해주고, 깨닫게 해주는 데에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적 도구가 매우 유용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일으켜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어린시절부터 하나님께서 부모나, 이웃을 통해 공급하시는 사랑, 격려, 위로, 칭찬, 인정, 지지와 같은 영적 차원의 양식을 먹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영적 양식을 먹는다는 것은 체험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용서의 말씀, 위로의 말씀, 희망의 말씀, 사랑의 말씀이라는 영양소가 필요합니다. 결국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구스타프. 칼 융은 자기에게 찾아오는 정신질환 환자들 가운데 80%이상이 정신질환 때문이 아니고, 종교적인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융은 자기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의 고통의 문제는 "삶의 의미와 관련된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궁극적인 존재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을 인간 고유의 체험의 장소에서 발견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방황하게 되고, 불안에 시달리게 되고, 목말라 하게 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느 순간에라도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그 순간 그에게는 빵의 차원이 아닌 영적 차원의 창이 열리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의 일용할 양식은 빵이 아닌 하나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이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사람이 빵만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혼의 창이 열린 사람은 세상에서 살지만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됩니다. 그에게 매일 공급되는 일용할 양식은 단지 육체만을 위한 양식이 아닌 영적 양식이 됩니다. 그는 먹는 음식, 입는 옷, 일, 친구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에게는 매우 사소한 일들로 인해 감사가 있습니다. 자족이 있습니다. 그의 자족은 영적 차원에서 옵니다. 그는 인생의 광야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기독교 영성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통해 그 이면에 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빵 한 조각이 단지 빵 한 조각으로만 보여질 때 더 허기가지고 먹으면서도 내일의 걱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조각을 통해 그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자비를 느낄 때 비록 빵 한 조각이지만 거기에는 감사, 자족이 있고, 내일의 염려에서 해방됩니다.

1968년 1월 23일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불로호가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무장한 4척의 북한 초계정과 출동한 미그기 2대의 위협 아래 나포되어 원산항으로 강제 납치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건 발생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 23일 82명의 생존 승무원과 시체 1구가 판문점을 통하여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11개월간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이 억류 생활 가운데 있을 때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읽을 것이 배부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억류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광야 생활 못지 않게 불안, 공포, 고독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들은 같이 있는 동료들과 함께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성서 구절을 벽에다 적어놓고, 그 성서 구절을 매일 매일 읽고 묵상하면서 그 힘든 억류 생활을 극복해 갔습니다.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그 암흑 생활에서 승무원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견디어 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영혼의 양식인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 자체가 사랑, 위로, 책망, 교훈, 격려, 능력, 희망입니다. 그 말씀이 인격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셨습니다  

출처/임영수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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