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설교자료 18,185편 ◑/설교및자료 16,731편

주님을 닮아갑니다 (에베소서4:13-16)

by 【고동엽】 2022. 9. 9.

 주님을 닮아갑니다  (에베소서4:13-16)

얼마 전에 심방을 가는 차 중에서 라디오 토론 방송을 들었습니다.
국가에서 매 10년마다 의사들을 재교육을 시켜 다시 자격을 부여해야하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토론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대개의사들의 견해인데 당치도 않는 일이라고 일축하였습니다. 그 오랜 시간 공부하고 훈련의 고정을 그치고,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의사가 되었고, 의사생활을 하면서 계속 공부를 하는데 또 무슨 국가교육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대의견을 피력하시는 분들의 의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의학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이 되고, 새로운 장비들이 계속 개발되어 나오는데, 현업에 종사하시는 의사들이 계속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신기술을 습득할 수가 없고, 새로운 장비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과거에는 한 직종에 종사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노-하우가 축적되어 경력을 인정받고 그만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분야의 새롭게 개척되는 신기술들, 신지식들을 계속 습득하지 아니하면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든 계속해서 성장하지 않으면 역사의 무대에서 도태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이제 의사들 세계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압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삶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납니다. 지금까지 죄인으로 살아왔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새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거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성장해야합니다. 성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목사의 간증이 있습니다.
“한 번은 집회를 인도하는데,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제가 예수를 영접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거반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가 죽었으면 예수님을 영접하였으니, 분명히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로 했는데, 왜 말에서 떨어져 죽을 뻔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믿음이 점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미 그의 마음속에는 예수그리스도가 떠나 있었기 때문에 구원에서 멀어지고 만 것입니다.”

오늘성경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4:13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성장과 성숙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자라서 성인이 되는 것은 몇 십 년이 걸리는 일입니다. 과일이 자라서 익기까지도 한 계절이 걸리는 법입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개발이 되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데 어찌 은혜 받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겠습니까?
우리는 속도에 집착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적인 강건함과  온전함에 관심을 두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력한 은혜를 주셔서 하루아침에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시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일생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당신을 닮아가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영적인 성장은 때로 지루한 일입니다. 한 번에 아주 조금씩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점진적인 향상을 기대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와 응답으로 하루아침에 새로워지기를 기대하다가 실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므로 당신의 삶 속에 어느 순간 그 놀라운 일이 이미 이루어져 있는 현실을 경험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는 일이 더디게 이루어짐으로 낙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의 뜻을 깊이 새기고 삽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회개를 촉구하며 세상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헤롯왕의 비리를 지적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 감옥 속에서 죽습니다. 그가 감옥 속에 있을 때에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정말 메시야가 맞습니까? 혹시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질문 속에는 이런 뜻이 포함되어져 있었습니다. ‘당신이 세상의 구세주로 오셨는데도 변화가 왜 이다지도 더딥니까? 당신 혹시 거짓 메시야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세례요한의 입자에서 보면 충분히 그럴만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대답하신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가서 요한에게 말하라.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보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노아시대에 홍수로 온 세상이 물로 심판을 받던 말, 세상의 각종 생물들, 짐승들이 각기 한 쌍씩 방주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 달팽이는 강한 인내와 끈기로 방주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일생을 두고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완전히 이해하고 익히기 위해서는 수십 번씩 반복해서 해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이 같은 연습을 수 백 번씩 계속하며 조금씩 자기 것으로 다듬어 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나쁜 습관이 형성되어지는데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이런 습관을 고치는데 한 순간 강력한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은혜는 우리를 새로운 삶의 물꼬를 열어주는 것입니다. 삶의 변화를 생각지도 못할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알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처음에 기도하는 습관이 들이기 위해 손바닥에 볼펜으로 기도라고 짙게 글씨를 써서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어디를 가든지 그 곳에 도착을 하면 먼저 기도를 하고 일을 하는데 그 기도를 자꾸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바닥의 글씨를 보는 순간 기도를 생각하고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주 잘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살기 위하여 항상 성경책을 손에 들고 다닙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성품에 이르렀습니까? 아닙니다. 아직도 너무너무 부족합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저보다 훨씬 영적인 세계가 깊으신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가끔 여러분들이 얼마나 어려울까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살고 그래도 새벽마다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데도 이 정도니, 가끔 여러분들의 신앙적인 고충을 이기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설교가 정말 여러분들에게 희망이 되고 격려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실망하지 마십시오. 낙담하지 마십시오.

세상에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셨습니까?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십시오.  
첫째는 쉬지 않고 호흡을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호흡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허락하신 모든 사람들에게는 호흡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둘째는 계속해서 먹습니다. 초기에는 젖을 먹고 성장하면 점차 딱딱한 음식도 먹을 수 있습니다. 젖을 먹든지, 빵을 먹든지 사람은 영양을 섭취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먹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본능적으로 먹을 수 있는 식욕과 먹을 수 있는 힘을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젖을 빠는 힘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들이 젖을 빨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셋째는 끊임없이 운동을 합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움직입니다. 온 몸의 세포가 끊임없이 운동함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넷째는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서 지식을 습득합니다. 한 가지 행동을 익히기까지 수 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합니다. 그러는 동안 실수나 실패하는 것을 결코 의식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아이가 걷기 위하여 얼마나 집요하게 연습을 하는지 보십시오. 일어나다가 수도 없이 주저앉고 또 걷다가 넘어지고 하면서 마침내 걷습니다.  

은혜를 받고난 다음 우리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바울사도는 디모데전서4:15에서 젊은 일꾼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2.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전심전력을 하는 일입니다.  
에베소서4:13입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충분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가 얼마 만큼인지 알고 있습니까?
한번은 불교방송을 우연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승려가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기독교외 불교에 대하여 비교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가만히 들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신학을 공부한 제가 들을 때는 참 못 들어줄 이야기였습니다. 소위 아전인수 격으로 자의적 해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다른 종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조심하여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보다 깊이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깊은 세계를 배워가야 합니다. 영적인 만남을 통하여 깊은 영적인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류 왈레스(Lew Wallace) 라는 사람이 쓴 벤허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는 비 기독교인으로서 기독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비웃었던 사람입니다. 하루는 그의 친구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성서에 보면 나사렛 목수인 예수가 33살까지 혼자 살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예수에 대한 인간적인 로멘스가 있음직하지 않겠소? 예수에 관한 인간적인 러브스토리를 쓰면 당장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당신은 큰 부자가 될 것이오.” 류 왈레스는 무릎을 치면서 동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로멘스를 쓰기 위하여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서도 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예수의 로멘스 보다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위해 죽으신 구세주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벤허의 마지막 장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예수의 피방울로 주인공의 누나와 어머니가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는 기적을 씀으로써 예수가 메시야임을 고백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발견했고, 또 예수님은 내 책의 중심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이 되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깊이알지 못하면 사단의 궤술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과 모든 교훈의 풍조··”
우리를 빠져들게 해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합니다.

바르게 알고 마르게 믿는 믿음에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처음부터 가르치는 일과 권하는 일과 읽는 것에 착념하도록 하였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예루살렘교회보다 안디옥교회는 더욱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중심이 되어 잘 가르침을 받은 안디옥교회는 전도 중심의 예루살렘교회보다 훨씬 더 크고 대단한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3.성장의 원리는 사랑입니다.
에베소서4:15,16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1)온 몸의 모든 지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고립되지 않습니다. 서로를 묶어줍니다. 엮어 줍니다. 붙들어 줍니다. 격려해줍니다. 속회에서 함께 기도하여 줍니다. 선교지회에서 서로 협력하여 힘을 냅니다. 교회학교교사, 찬양대 대원으로, 교회 구석구석에 참여하여 협력함으로 사랑의 교제를 넓혀가야 합니다.
2)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갑니다.  
사랑은 각자가 자기의 본분을 다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무관심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탄식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향해 절망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일도 완전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세상이 하루아침 좋은 프로그램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성탄절 헌금은5000만원이었습니다. 7교회가 연합하여, 쪽방 무료이동가게 운영을 위하여 1,000만원을 재공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주변에 어려운 가정들 175세대에게 1년 동안 사랑의 쌀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선행, 아주 작은 불빛으로 이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을 어떻게 밝힐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일을 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이 하루아침에 천국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그리스도인들이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계속하면 세상에 웃음꽃이 피는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기왕에 더러워진 한강 물에 오줌을 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강 물에 맑은 물 한 바가지를 부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임명되는 112명의교사들!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믿음과 신앙의 인격이 성장하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아름다운 인격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의 돌봄으로 잘 돌보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경의 토대를 다져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소망이 없는 죄인들을 위하여 친히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끊임없이 죄짓고 또 죄짓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계속해서 하나님보좌우편에서 기도하십니다. 성령으로 동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성장의 깃발은 아직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처럼 되는 것은 길고 느린 성장의 과정입니다. 땅에 사는 하늘 사람들은 그리스도처럼 닮기 위하여 성장하고 성숙하여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출처/최이우 목사 설교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