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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권세

by 【고동엽】 2022. 9. 8.
 
 

요 1:12-13.

제가 목사가 된지가 이제 27년이 되었습니다. 수도 없이 많은 설교를 하였는데 가장 많이 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설교는 오늘 요한복음 1장 12절 13절을 본문으로 한 ‘자녀의 권세’라는 설교입니다. 하나님이 ‘김 목사 설교 평생 하나만 하게’라고 말씀하신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택하고 평생 할 설교가 바로 오늘의 설교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권세’가 무엇일까요? 세상에 제일 큰 권세 중의 권세가 자녀의 권세입니다. 자녀의 권세는 아버지의 것이 자신의 것이 되는 권세입니다.

저희 선친은 술을 좀 하셨었습니다. 소주 반병만 드시면 주정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술이 취하시면 저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 아들이라고 하나 밖에 없는데 마음껏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희 아버님의 진심이셨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껏 해 주고 싶은데 마음껏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주정을 하셨던 아버님의 마음을 지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마음껏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하시면서 그래도 너는 형제가 없어서 나눠가질 것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숟가락도 다 네 것이고 밥그릇도 다 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아버님의 말씀대로 숟가락도 다 내 것이 되었고 밥그릇도 다 내 것이 되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아버님이 가지고 계셨던 집도 제 집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은 합법적으로 제게 상속되었습니다. 자녀의 권세는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할 수 있는 권세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친구들을 데리고 올 때 ‘우리 집 갈래?’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말로 우리 집이라는 말은 자기 집이라는 말입니다. 순 도둑놈(?)들입니다. 단돈 10원도 집에 보탠 일이 없으면서도 당당하게 아버지 집을 자기 집이라고 부르니 말입니다. 코메디언 중에 이휘재라는 코메디언이 있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이 전화를 하였는데 아버님이 받으셨답니다. 친구들이 ‘거기 휘재네 집이지요?’라고 물었더니 그 아버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아니다. 내 집이다’ 그 아버님이 참으로 위트가 있는 분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권세 중의 권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모두가 다 그 권세를 받으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하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땅에서 열면 하늘에서 열리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의 열쇠는 자녀의 권세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집 열쇠는 자녀에게만 주는 것입니다. 집 열쇠를 주시겠다는 것은 베드로를 당신의 자녀로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는 돈입니다. 백 원 천 원 하면 묻지 않고 주곤 했었지만 만원하면 물어보고 주고 준 다음에도 또 확인을 하곤 하였습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아까워서였습니다. 잘못하면 아이들이 잘못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였을 때 은행카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카드였습니다. 대학생이면 어른인데 어른이면 돈을 다루고 관리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가 카드를 쓰면 그 리포트가 제게로 왔습니다. 늘 꼼꼼히 확인해 보았습니다. 카드를 주었다고 마음대로 쓰면 회수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이가 카드를 잘 관리하였습니다. 아이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아이를 믿으니 카드를 줄 수 있었습니다. 자기 돈이 내 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돈은 다 자기 돈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저는 하나님이 저를 믿으실 수 있으면 하나님이 저에게도 카드를 주시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때에는 카드가 없어서 예수님이 열쇠를 주신다고 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요즘 말씀하신다면 천국 열쇠가 아니라 천국 카드를 주시겠다고 하시겠구나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녀의 권세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자녀의 권세가 바로 그런 권세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정말 권세입니다.

그 권세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사람에게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영접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내 삶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Lord)으로 영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모든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주권포기입니다. 권리포기입니다. 자기부인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원죄 때문입니다. 선악과 따먹은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사탄이 하와에게 한 말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다. ‘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네가 하나님이 되리라’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나를 앉게 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선악과를 따먹고 우리는 모두가 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모두 입으로는 ‘하나님이 주인이시다’라고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그렇게 생각처럼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제일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권리와 주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릴 것이기 때문이고 천국 열쇠와 천국 카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기 위하여 천국의 열쇠를 욕심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의 권세를 욕심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에 대한 욕심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정말 힘들고 어려워도 자기를 부인하고 권리를 포기하고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어느 날 제 돈 지갑에 눈 독 (하나님께 불경스러운 용어인 것 같습니다)을 들이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순간 마음이 부담스러워지고 기분이 찜찜해 졌습니다. 제가 그렇게 순발력이 있는지는 그때 알았습니다. 그런 마음이 들자마자 하나님께 ‘저 해와 달과 별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관심과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해와 달과 별에는 별로 관심도 욕심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 같은 것에게 속으실 분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도 해와 달과 별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계속 제 돈 지갑에만 집중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정말 답답하여 지갑을 열어 보여 드리며 ‘땅 한 평 값도 없습니다. 저 해와 달과 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은 제 돈 지갑에만 집중하고 계셨습니다.

그 장난 같은 생각을 그날 하루 종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정말 평생에 몇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지갑의 주인이 내 주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입으로 주여, 주여 하여도 지갑 즉 돈의 주인이 나라면 내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입니다. 하나님이 지갑과 돈의 주인이실 때만 하나님은 진정한 나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날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저는 정말 하나님을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시게 하기 위하여 제 지갑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에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돈에 대한 욕심을 제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를 키워주셨던 임택진 목사님께서 청량리중앙교회 목사로 계실 때 상도동에 있는 어떤 큰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을 눈치 채신 장로님들께서 목사님이 떠나지 못하시게 막으셨습니다. 그때 선임 장로님이 임 목사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큰 교회에 가시게 되면 아마 봉급이 우리보다 많으시겠지요? 우리도 다음 달부터 봉급을 올려드릴 터이니 가지 마세요.” 그때 제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임 목사님의 명언이 나왔습니다. “소시장의 소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값이 올라도 가고 내려도 가지만 나는 소시장의 소가 아니요” 얼마나 근사한 말인지 모릅니다. 제가 청량리중앙교회 45년사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된 이야기였는데 그 때 받은 감동은 이루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나도 소시장의 소로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과 각오가 저절로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청량리중앙교회 장로님 중에 큰 회사를 경영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직원이 약 600여명이 되는 그런 회사였는데 목요일마다 직장예배를 드리곤 하셨습니다. 신대원 졸업반 때였는데 설교부탁이 있어서 가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신학생도 강사라고 강사비를 주셨습니다. 그때 그 강사비가 7,000원이었는데 당시 7천원은 제게 거의 한달 용돈에 가까운 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거의 매달 한번 혹은 두 번 씩 가게 되어 갑자기 용돈 쓰는 일이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 날 그 장로님의 부인 되시는 권사님을 만났는데 그 권사님께서 직원들이 제 설교를 좋아한다면서 이번 달에는 4번을 계속해서 설교 해 줄 수 있는가를 물으셨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하였는데 그때 제 머리 속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었습니다. 그것은 ‘사 칠은 이십 팔’이었습니다. ‘소시장의 소’ 이야기만 없었다면 혹시 이해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감동을 하고 소시장의 소가 되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하였는데 그게 그렇게 맥도 없이 무너지는지 그때 참 마음으로 비참했었습니다. 저는 그때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여러분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미국의 예수 잘 믿는 청년들이 청년 때 하나님께 십일조 서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봉 10만 불까지는 1/10조를 드리겠습니다. 연봉 10만 불에서 15만 불 사이가 되면 1.5/10조를 드리겠습니다. 연봉 20만 불이 되면 2/10조를 드리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여 9/10조까지 하나님께 약속을 드리는 것이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와 문방구에서 커다란 금전출납부를 사다놓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기록하며 돈을 쓰고 있습니다. 금전출납부 맨 앞 한 장에는 ‘사랑하는 아들 부열, 지열, 정열이에게 돈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아비가 되기 위하여 남기는 기록’이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장에는 한 달 수입이 얼마면 수입의 몇 퍼센트를 떼고, 얼마면 몇 퍼센트를 떼겠다는 누진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2002년 11월부터 지금까지 기록하면서 돈을 쓰고 있습니다. 수입이 얼마가 되든 내 생활의 수준은 일정 수준을 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돈이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대로 돈이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고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게 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목표를 세워놓고 전투하듯 하루, 하루를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돈을 내 욕심과 내 뜻대로 쓰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써보려고 나름대로 부족하지만 발버둥질 치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그것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삶의 자유를 느낍니다. 그것을 통하여 돈보다 하나님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돈보다 하나님이 제 삶에 더 가까워지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돈보다 하나님이 제게 더 귀한 분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혹 아십니까? 사람보다 돈이 귀하면 그 사람은 남입니다. 남이라고 우리가 다 모르는 남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대부분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대개 그런 의미에서는 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보다 사람이 귀하면 그 사람은 가족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이 더 귀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가 아닐 것입니다. 돈보다 하나님이 더 귀하시다면 그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시라야 여러분은 그분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은 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을, 참으로 신기한 것을 경험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몫을 늘리면 늘릴수록 내 몫도 함께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입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의 열쇠요 천국의 카드요 자녀의 권세라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고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사망의 뿌리는 죄요,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그런데 욕심 중의 욕심이 바로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세상에서 아마 제일 큰 권세가 있다면 그것은 돈의 권세일 것입니다. 세상에 돈처럼 힘이 있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그런데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물론 돈이 없으면 힘들고 어렵고 불편합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면 재벌이 자살을 하겠습니까?

돈의 권세로는 절대로 잘 살 수 없습니다. 우리를 정말 부요케 하고 잘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여러분의 삶과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을 여러분의 주로 영접하기 위하여 힘쓰지 말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기 위하여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돈의 권세로 이 세상을 살지 아니하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세로 이 세상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김동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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