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1-6
미국의 유명한 목사님 가운데 ‘릭 워렌’이란 분이 계십니다. 새들백 교회를 개척하여 수만 명의 큰 교회로 성장시킨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쓴 책 가운데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것이 있습니다. 2003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래 지금까지 250쇄에 가까운 경이로운 기록을 가진 책입니다. 그는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만드시기 전부터 그의 목적을 위해 계획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를 알고 우리도 목적을 가지고 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목적을 가질 때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삶이 단순해지며, 삶의 초점을 맞추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삶의 동기가 유발되고, 영생을 준비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물리학의 정의를 빌어 설명한다면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서 어느 물체를 움직여서 생산적인 활동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을 움직여서 활동케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바로 '목적‘(Purpose, goal)이라는 것입니다. 목적이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목적이 방향을 세우고, 하나로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금년 우리 교회 표어를 ‘성령으로 하나되어 믿음으로 나아가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성전건축이 진행되는 뜻깊은 해를 맞이하여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 이 목적이 우리 교회를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합니다. 지난주에는 성령으로 하나되는 부분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오늘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부분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믿음이 무엇일까요?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그것을 ‘믿음장’이라고 부르는 히브리서 11장의 본문을 통해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믿음은 미래의 확신입니다. 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여기 ‘실상’이란 말은 ‘아래에서 받혀주다’라는 뜻으로서 확실한 것, 확신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바라는 것’은 곧 ‘미래’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의미합니다. 미래는 우리가 소망하는 일이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미래를 확신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또한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은 물론 과거의 일도 있겠지만,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미래에 관한 것은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증거 역시 확신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미래에 대하여 확신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미래의 확신에 대한 믿음을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미래의 확신을 갖고 나아간 사람입니다. 그는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나이는 좀처럼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때입니다. 무슨 결정이나 일을 행할 힘과 의지가 약한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실 때 그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따라가면 큰 기업으로 받을 땅이 기다림을 믿었고, 축복이 임할 것을 바라보고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미래에 대한 확신입니다.
또한, 그는 아내를 통해 아이가 태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 그의 나이 100세였고, 아내는 90세였습니다. 성경은 이들이 이 나이에 도저히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을 ‘죽은 자와 방불한 때’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힘이나 방법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그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보이는 것이 많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습니다. 세계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세계가 가깝지 않을 때는 세계의 모든 나라가 다 멀게만 느껴진 나라였습니다. 아무리 책에서 말하고, 사진을 보아도 믿을 수 없는 나라처럼 보였고, 그곳은 내가 가보아야 할 꿈의 나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미국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영국을 다 알고 있습니다. 호주도 거기에 있고, 남미의 나라들도 다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물어봅니다. 거기에 가보셨습니까? 보아서 아는 것입니까? 분명 보지 않았지만 아는 것입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운데 천국을 가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천국은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죽은 이후에 믿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천국이라고 성경은 강조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곳이고, 앞으로 내가 죽어야 가는 곳이며, 앞으로 미래에 나타날 일입니다. 그렇다고 없는 게 아닙니다. 마치 미국과 영국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천국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본 사람이 보고 확신하듯이, 천국도 분명 존재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얼마나 좋은 곳인지,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질 않습니다.
미래의 확신,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나아가고, 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를 향하신 이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성전건축이라는 큰 계획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일은 분명 미래에 관한 일입니다. 우리의 바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진과 그림대로 아름답게 세워질 성전을 꿈꾸고, 그것이 현실로 다가옴을 확신해야 합니다. 모든 염려와 걱정과 의심을 버려야 하고,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이루실 역사를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향하신 미래의 확신을 꿈과 소망으로 삼고, 믿음과 순종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믿음은 과거의 인정입니다. 계속되는 2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에 이것을 알려줍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성경을 기록할 당시는 오래된 과거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기록할 당시에 더 오래된 과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당시 성경의 저자가 이런 오래된 과거의 사건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과거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과거의 사건을 받아드리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곧 ‘인정’을 의미합니다. 여기 매 구절마다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다시 말해 그 모든 것을 인정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결국 과거를 인정하는 것에서 믿음은 세워집니다.
성경저자는 여기에서 우리가 인정할 과거를 두 가지로 말합니다. 우선, 창조의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셨고, 낮과 밤을 창조하셨습니다. 달과 별을 만드셨습니다. 각종 식물과 물고기와 동물을 만드셨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고, 그 은혜와 축복에 따라 아담이후 많은 민족, 많은 나라, 많은 사람으로 번성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창조의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받아드리라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과거에 살던 사람을 인정하라고 강조합니다. 여기 믿음장에 열거된 내용은 모두가 사람입니다. 한 시대를 살던 사람이요, 특히 믿음으로 살던 사람입니다. 거기에 아벨이 나오고, 에녹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가 있습니다. 이런 여러 사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인류역사에 한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요, 또한 성경의 무대에 주인공으로 살던 사람입니다. 이들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역사적인 존재, 이들의 삶, 이들의 신앙과 인격, 이들이 믿었던 하나님, 이들의 아름다운 열매와 결실을 인정하고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 중에 사람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 중에 가장 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그분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존재이십니다. 그분을 기점으로 기원전과 기원 후가 나누어졌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한 시대에 33년을 사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셨고, 다시 이 땅에 재림하실 분이십니다. 바로 그분을 믿고 받아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이요,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과거의 모든 역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제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역사 속에 살던 사람들, 특히 성경의 사람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 중에 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귀한 믿음이 견고하게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그 믿음이 결코 흔들림이 없기를 원합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믿음은 현재의 충성입니다.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기에서 성경은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하고, 또한 하나님이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모두 믿음의 현재를 말하는 것이고, 내 삶의 현재에 신실하고,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특히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상주시는 하나님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그것을 곧 우리의 삶을 셈하시고, 평가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평가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믿음과 삶을 셈하여 상을 주시는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근거로 평등을 주장합니다. 물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생명의 가치는 평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평등의 하나님이 아니라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을 평가하여 상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분명 이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평생 강도로 제멋대로 살다가 죽기 바로 직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천국에 들어간 십자가상의 강도와, 평생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땀과 눈물과 피를 쏟으며 헌신하던 바울과 결코 같을 수는 없습니다. 같아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미래의 확신과 과거의 인정을 가지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 때 우리는 안일주의에서, 형식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나아갈 때 더 진지하고 신실한 헌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나아갈 때 믿음의 역사로 커다란 깨달음과 진실한 삶과 참된 회개와 영적 각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참 의미 있는 날입니다. 1월 14일 오늘은 평양에서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지 꼭 100년째 되는 날입니다. 1907년 1월 14일 바로 오늘 이 땅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온 땅을 뒤덮고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충만하게 임한 날입니다. 이 일은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서 마지막날 있었던 부흥성회가 기점이 되었습니다. 그날 열린 부흥사경회는 눈물바다였습니다. 많은 성도들 앞에서 길선주 장로가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털어놓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자 성도들도 자신의 잘못과 죄를 털어놓으며 밤새도록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평양과 개성, 신의주로 번졌고, 그것이 나중에는 전국으로 번져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다시 그 부흥운동이 이 땅에 임하기를 소원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나를 셈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와 공동체의 잘못을 통회하는 회개입니다. 당시 그들은 구체적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회개에 따르는 행동이 이어졌습니다. 그들이 고백한 죄를 보면, 살인, 절도, 간음, 횡령과 같은 일반적인 죄가 있었고, 제사, 축첩, 노비 등 사회적으로 죄라고 생각지 않았던 문제까지 고백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공평하고 정의로운 하나님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으로 살던 삶을 통회하고 자복 했고, 실제로 이 모든 것에서 돌아서는 역사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회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섬기고,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모든 것에 신실하고 충실하고 있습니까? 내 삶을 셈하시고 평가하시는 하나님 앞에 바르고 참되게 살고 있는 것입니까?
아직 늦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세계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늦은 것이 없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하루가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도 참되고 바르게 살면, 천 날의 잘못을 덮을 수 있는 능력이 믿음에 있습니다. 지금부터 다시 해도 늦지 않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제 미래에 대하여 확신하십시오. 과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나를 셈하시는 하나님 앞에 현재에 충실하십시오. 이 말씀을 마음에 담고, 우리 모두 성령으로 하나 되어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 목사 설교 중에서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적 인생 (0) | 2022.09.08 |
---|---|
외모가 아니라 공의로 판단하라 (0) | 2022.09.08 |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니라 (0) | 2022.09.08 |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 권세. (0) | 2022.09.08 |
그 읽어 들린 말 (0) | 2022.09.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