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는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해마다 3월이면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새 학기에 모든 학부모가 바라는 소원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아이가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한 해만이 아니라, 인생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행복자입니다. 스승을 잘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스승은 하나님 아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고, 제자로 부르셨고, 가르치십니다. 이보다 더 큰 복, 더 큰 은혜, 더 큰 특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제자로 삼으신 것은 열매 맺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훈련을 통해 세워집니다. 우리는 훈련을 받아야 강해지고,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게 되고,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예수님의 훈련은 4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 4가지가 곧 ‘제자 됨’의 정체성입니다. 제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 4가지 훈련을 받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정의하신 제자상이 무엇인지 알아봄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가 됩시다.
첫째, 자기를 부인하는 자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하)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를 비하시킨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등지라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예수 위해 살고, 예수 위해 죽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다 예수님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7-8)고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내 것과 예수님의 것을 구분합니다. 내 시간과 봉사 시간을 구분하고 내가 쓸 돈과 헌금할 돈을 구분합니다. 주일과 나머지 6일을 구분합니다. 더 나아가 나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자의 삶은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낮아지고 겸손해질 때, 높아집니다. 나누어줄 때, 더 많은 소유를 얻게 됩니다(눅 6:38). 나를 내세우면 넘어지지만, 예수님을 높이면 올라갑니다. 우리는 진실로 주님이 높여주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는 자기가 져야합니다. 남에게 떠넘기면 안 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명을 잘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는 세상으로 보냄 받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나가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막 16:15). 우리는 썩어져 가는 세상에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어두워져 가는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합니다. 제자에게는 세상을 변화시킬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살맛나는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서 살맛나지 않는다는 세상 사람들이, “아! 살맛난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빛을 발하고 길을 찾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비만증 환자가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많은 은혜를 받고 많은 복을 받았는데도, 진실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훈련과 봉사 없이, 헌신 없이 예배만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픕니다. 때로는 예수님처럼 수치와 모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비전을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고 면류관 받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하는 희생도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 스승을 좇는 자
스승을 좇는다는 것은 스승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좇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는 것입니다. 또한 스승의 삶을 본받는 것입니다. 바울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아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또한 바울은 예수 닮는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 바울에게는 예수님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과연 나는 삶의 현장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날려야 하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비추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예수님을 좇는 삶은 섬김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낮아져서 섬기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잘 섬길 뿐만 아니라, 사람도 잘 섬기는 건강한 신앙인이 바로 제자입니다.
넷째, 제자 삼는 자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가 또다른 제자를 삼아야 복음이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앞의 선진들이 다 제자 되고 제자를 삼았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후손들을 계속 제자 삼아야 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땅에 복음이 살아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 되고 제자 삼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지혜입니다. 영적 성장의 비법입니다. 예수님은 12명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설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과, 12명이 70명이 되고, 70명이 120문도가 되고, 120문도가 3천 명이 되고, 3천 명이 5천 명이 되었습니다. 그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었고, 수십억의 인구가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도 이 지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디모데를 영적 아들로 제자 삼았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제자 삼으라고 명령합니다(딤후 2:2).
예수님은 우리가 마땅히 선생 되기 원하십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히5:12). 제자를 삼아야 스승이 됩니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어우러지고 동고동락하며 훈련하면 더 깊은 영적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제자로 삼아졌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답게 삽시다. 예수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십니다.
출처/최성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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