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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삶의 영적 부흥 (엡 6:14-17)

by 【고동엽】 2022. 9. 4.

삶의 영적 부흥   (엡 6:14-17)

에베소서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21권의 서신서 중에 꽃이고 여왕이라고 부릅니다. 에베소서는 신앙인의 삶 전반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제 1장에서는 신령한 복을 말씀합니다. 부름 받고 택함 받은 것이 최고의 복이라고 말합니다. 제 2장에서는 은혜를 말씀합니다.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살림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제 3장에서는 세상에 대한 구원의 경륜을 말씀합니다. 4장과 5장에서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심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6장에서는 역할을 말씀합니다. 자녀의 역할, 부모의 역할, 부부의 역할, 종의 역할, 상전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6장 끝머리에서 영적생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삶은 영적생활입니다. 영적생활은 영적 전투를 의미합니다. 신앙인은 이 영적 전투를 잘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영적생활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몇 가지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강건하라”

10절에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져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전투생활입니다. 자신과 전투하고 온갖 유혹들과 전투하고 무지와 나태와 습관과 전투하는 생활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강한 상대가 사탄입니다. 이 사탄과 싸워 이기려면 강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강건하라고 말씀합니다. 강건에는 3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는 몸의 건강입니다. 몸의 건강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무리 지식과 능력이 있어도 건강을 잃으면 다 잃게 딥니다. 첫 번째 인생의 자본이 건강입니다. 육신의 건강을 잃으면 신앙도 쇠약해집니다. 용기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더 규칙적인 삶과 절도있는 삶이 요구됩니다. 성경에서 여러 가지 계명을 말씀하시는 것도 계명들을 통해서 절도있고 절제하고 규칙적인 삶을 이루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몸이 건강해야 생각도 건강하고 능동적인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정신의 건강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정신이 약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정신이 부실하고 결함이 많은 때입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사고를 일으킨 젊은이도 정신의 장애자입니다. 정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적을 이기고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적과 싸울 때 무기도 중요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신의 건강입니다. 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먼저 제압하면 반은 이긴 것입니다. 그 기선을 제압하는 것은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영적인 건강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무엇보다도 영이 건강해야 합니다. 영이 병들면 육신도 병들고 정신도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첫째 조건입니다.  

“전신갑주를 입으라”

두 번째는 전신갑주를 입는 일입니다. 11절에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최대의 적은 마귀와 사탄입니다. 사탄은 이사야 14장을 보면 천사 루시퍼가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쫓겨나 사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탄의 지혜는 천사수준일 것입니다. 우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입니다. 그 사탄의 지혜와 꾀를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기도할 줄 알고 찬송할 줄 안다고 다가 아닐 것입니다. 무장한 그리스도인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전신갑주란 완전무장하라는 말입니다. 그 완전무장한 모습을 14-18까지 7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허리띠 띠라”(14)

허리는 몸의 상하를 연결하는 고리역할을 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은 무엇보다도 허리에 힘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군인은 육중한 허리띠를 단단히 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허리띠를 매야 합니다. 무슨 허리띠냐 하면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그 말은 말씀으로 매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인이 말씀에 깊이가 없으면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도중에 낙오되고 넘어지게 됩니다. 목사도 때로 돈에 유혹받아서 통일교에 넘어간 목사도 있습니다. 목사들도 돈으로 유혹하니까 그대로 넘어갔습니다. 그것은 말씀이 약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허리띠를 졸라 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허리띠인가 하면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즉 말씀으로 허리를 든든히 동여매라는 뜻입니다.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14)

호심경은 가슴에 흉배 즉 갑옷을 입으라는 뜻입니다. 군인이 전투에 나가려면 우선 가슴을 보호해야 합니다. 가슴은 엔진기관입니다. 가슴에 적의 화살을 맞으면 누구도 쓰러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군인의 모습을 보면 가슴에 육중한 놋 흉배를 달고 전투에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적의 공격을 대비해서 가슴을 보호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 가슴의 보호가 중요합니다. 가슴속에 양심이 들어 있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이나 영적생활이나 기도생활이 잘 안됩니다. 죄를 지으면 마음이나 양심에 떳떳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탄이 그냥 있지 않습니다. 자꾸만 고발합니다, “너도 장로냐, 너도 목사냐” 하고 비웃습니다. 루터가 은혜를 받고 경건한 삶을 살아갑니다. 매일 성경을 읽습니다. 그때 사탄이 찾아와서 전에 지은 죄를 고발하고 참소하고 생각나게 하면서 “위선 떨지 말라”고 비웃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루터는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고 소리쳐 물리칩니다. 사탄은 이렇게 조그만 흉터만 있어도 참소합니다. 사탄은 참 묘한 존재입니다. 자꾸만 옛날의 일을 기억나게 해서 용기를 잃게 합니다. 죄를 지으면 사탄이 가만 놔두질 않습니다. 자꾸만 고발하고 양심에 가책을 받게 해서 마음에 불을 지르고 괴로움을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슴에 호심경 즉 흉배를 붙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죄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가슴을 보호하라는 말입니다.  

“복음의 신을 신으라”(15)

신은 발을 보호합니다. 든든한 신발을 신으면 산이든 자갈밭이든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어느 환경에 처해도 흔들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살다 보면 평생 아스팔트만 가라는 법이 없습니다. 살다 보면 꽃길도 걸어갈 때도 있지만 또 때로는 산악지대도 가야하고 자갈길도 가야하고 가시밭길도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이 광야나 산악지대라면 그곳에 새 길을 개척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의 신발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때로 운명도 개척해야 합니다. 운명은 개척하면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런 능력을 주셨습니다. 선교사들이 이 복음의 신을 신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경우입니다. 콜럼버스가 이 복음의 신을 신고 서쪽으로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다가 마침내 신대륙을 발견한 것입니다. 창조는 움직이는 사람이 이루는 것이고 개척하는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절대적 운명입니다. 사람이 남자로 태어나고 여자로 태어난 것은 절대적인 운명입니다. 이것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바꾸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람들은 이것 까지 바꾸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인 운명이 있습니다. 사람이 좀 못생기고 키가 작고 머리가 나쁘고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태어난 것 등은 모두 상대적인 운명 즉 자연적인 운명입니다. 이것들은 얼마든지 고칠 수가 있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얼굴이 좀 부족해도 얼마든지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시대입니다. 가난한 환경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 문제들 가지고 비관을 합니까.  

다만 거기에 복음의 능력만 더해진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좁은 땅에서 태어나서 큰 뜻을 펼칠 수 없다고들 말하는데 그것도 좁은 소견에서 나오는 소치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얼마든지 넓고 큰 나라에 가서 살면서 크게 뜻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시대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내게 주어진 운명은 얼마든지 바꾸고 개척하고 창조하고 내 마음대로 진취적으로 만들어 살아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오늘 중동의 두바이가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두바이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 8성 호텔인데 그 호텔의 수석 주방장이 한국인입니다. 그의 월급 5억 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슨 핑계를 댈 수 있습니까. 이 땅이 좁아서 문제입니까. 어느 국교 중퇴자인 처녀가 남의 집에서 살림을 돕다가 공장에서 재봉틀기술을 익혀 일합니다. 그런데 이 처녀가 동료신앙인을 만나서 회심하고 예수를 영접합니다. 뒤늦게 복음에 눈을 뜬 이 처녀가 마음에 뜻을 품고 장차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자”하고 그때부터 “선교사가 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떻게 국교 중퇴자가 선교사가 되겠습니까. 자격부터 안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서 기능을 가진 선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모하여 지금은 재봉틀 기술을 가지고 아프리카에 가서 직업선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복음의 신발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신만 신게 되면 가는 곳 마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운명도 내가 있는 곳마다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것은 별 것이 아닙니다. 개척하면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복음의 신발을 신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방패를”(16)

16절을 보면 “손에 방패 가지라”고 했습니다. 무슨 방패냐 하면 믿음의 방패입니다. 전투에는 이 방패가 중요합니다. 데모를 진압할 때도 전경들이 모두 방패 가지고 데모를 진압합니다. 날아오는 돌이나 화염병을 막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날아오는 화전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전은 오늘의 화염병을 말합니다. 옛날에는 전쟁할 때 화살 끝에 송진을 발라 불을 붙여 적의 진지에 날려 보냈습니다. 그러면 적의 진지에 불이 붙었습니다. 사탄은 오늘날에도 이 화살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음란의 화살을 쏘아댑니다. 그러면 그 화살이 가슴에 박혀서 가슴속에 정욕과 음란의 불이 이글이글 타 오릅니다. 그리고 불화의 화살도 쏘면 불화가 시작되어 집집마다, 교회마다 불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방패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방패입니다. 오늘 신앙인들은 이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합니다. 시험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방패를 가져야 합니다.  

“구원의 투구를”(17)

전투하려면 군인들이 육중한 철모를 머리에 쓰게 됩니다. 이 철모가 무겁지만 그런데 이 철모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뜨거운 햇빛도, 빗물도, 바위에 부딪쳐도, 날아오는 총알도 다 막아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투구를 쓰라고 합니다. 무슨 투구냐 하면 구원의 투구입니다. 이 머리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머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특히 신앙인은 머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 말은 이단사설을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이단 신앙, 이단사설, 오염문화, 세상의 풍조가 모두 머리를 통해서 다가옵니다. 오늘 청소년들에게는 무방비로 다가옵니다. 특히 성적유혹이나 이데올로기 그리고 이단사상들이 무작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때 확고한 믿음이나 신앙의 기초가 약하면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다가오는 수많은 이단사설을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유혹은 일차적으로 눈을 통해서 머리로 전달되어 옵니다. 눈으로 받는 유혹과 머리로 다가오는 이단사설과 세상의 풍조들은 머리로 잘 걸러내야 하는데 그것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머리에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하신 것입니다.  

“손에 성령의 검을”(17)

지금까지는 모두 방어용 무기를 말씀했습니다. 신앙인은 효과적으로 방어를 해야 하고 피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소극적으로 피하기만 해도 안 됩니다. 때로는 공격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이 필요합니다. 무슨 검이냐 하면 성령의 검입니다. 마 4장을 보면 예수께서 40일 금식했을 때 사탄이 와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사탄은 배고픈 사람에게 명예 같은 것 가지고 오지 않고 그 상황에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쉽게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사느니라.”하고 방어하신 것이 아니고 공격하셨습니다. 그 말은 검으로 내리 치셨다는 말입니다. 때로 필요할 때는 내리 치기도 해야 합니다. 뇌물이 찾아올 때 예수님처럼 내리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물쭈물 하다보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검”입니다. 이 성령의 검이 능력을 발휘하고 사탄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무시로 기도하라”(18)

군인은 완전무장한 후에는 정신무장을 해야 합니다. 정신무장은 어떤 무기보다 더 힘을 발휘합니다. 신앙인들이 직분을 가지고 있고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왜 무시냐 하면 방심이 실수를 불러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방심의 틈을 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부들이 때로 탈선하는데 시간이 많아서 탈선합니다. 옛날에는 주부들이 탈선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의 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틈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까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이 일거리를 주시고 노동을 주신 것은 참으로 축복입니다. 인간은 바쁘게 살아야 합니다. 시간의 틈이 많으면 탈선하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 나라의 젊은 재상이 성자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너무 기특해서 성자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컵에 물을 가득 담아주면서 “물이 넘치지 않도록 집을 한 바퀴 돌고 오라“고 했습니다.  젊은 재상은 물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돌고 왔습니다. 그때 성자가 물었습니다. “집 뒤에 무엇이 있던가, 누굴 만났는가.” “컵에 물이 넘칠까봐 조심하느라고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됐네, 그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리게” 사람이 열심히 살고 열심히 신앙의 삶을 살다보면 유혹받을 틈도 없습니다. “예수 믿기 바쁘다”고 들 말하는데 그 삶이 축복입니다.

사도바울은 옥중에서 이 에베소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기도하라, 깨어 있으라,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잘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또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향해서 쓰신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이 말씀처럼 쉬지 말고 기도해야 이길 수 있는 시대입니다.

출처/이정익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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