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편 1~12절
오늘 우리가 받은 시편의 영감은 열방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고, 세상의 군왕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는 반신적(反神的)이요, 반기독적이요, 반교회적인 대적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시 2:1-3).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이 세상 군왕들의 무모한 대적을 비웃으시며(시 2:3), 진노하시며(시 2:5), 그의 메시아는 시온산에 군림한다고 하였습니다(시 2:6).
그리고 공의로운 메시아의 전능한 자기 통치는 성취된다고 하였습니다(시 2:7-9). 그러므로 세상의 민족들과 군왕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시 2:10-12).
세상의 군왕들과 민족들의 반신적이고 반역적인 역사는 죄로 타락한 인류역사의 어둠이었습니다. 그 결정적인 역사는 바벨의 심판을 받은 이후였습니다. 하나님이 언어를 혼잡케 한 이후로 인류는 하나님을 등지고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창 11:7-9).
그 이후로 구약역사가 어둠과 혼미 가운데 대적의 역사로 꾸며지고, 신약 이후에는 대 헤롯, 네로, 도미시안, 히틀러, 스탈린 등으로 이어지는 반신주의적인 반역의 역사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운동인 교회가 세계 속에 자리를 잡고 복음을 전할 동안, 정말 무서운 여러 종류의 사탄 운동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 무서운 사탄 운동 가운데 한 정체가 민족주의(Nationalism)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시하여 그를 따르는 기독공동체인 교회는 이 민족주의로 말미암아 수많은 박해와 희생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독교와 민족주의’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Ⅰ.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보통 인류학에서 세계인류를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그 하나는 ‘인종’(人種)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인종’(人種)이란 피부, 머리털, 눈의 빛깔, 코, 입술, 얼굴의 윤곽, 머리의 형태, 키, 체구 등 혈통을 중심으로 하고 나타나는 몸의 모양과 체질의 특색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민족’(民族)이란 용어인데, 이것은 동일한 지역에서 태어나 동일한 혈통, 언어, 풍습, 역사 등 동일한 문화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볼 때 인종과 민족은 깊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같은 혈통, 같은 피부 색, 같은 기질, 같은 언어, 같은 문화, 풍습, 정신 등 동일한 민족성과 국민성, 역사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민족의식, 민족정신, 민족종교, 민족국가, 민족자결주의, 또한 민족주의 등의 말들이 나오게 됩니다.
민족주의(民族主義)란 국민주의, 국가주의라고도 말하는데, 이 경우들은 그 민족성(국가성)의 절대우위를 주장하고 거기에 절대가치 세계를 성립시키는 사상 형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는 자국민의 이익을 절대시하는 배타적 경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역사상에서 민족주의는 중세기적 봉건사회에서 탈피하여 민족 자각심을 바탕으로 자아존립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이 그 선구자들이고 독일의 나치(Nazis)는 민족주의 민족국가의 표본이 됩니다. 더 나아가 중동전역을 거점으로 세계 테러분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이른바 이스마엘 후손들은 이 부류에 속하는 특이한 예(例)가 됩니다.
Ⅱ. 기독교와 민족주의
역사상에 민족주의는 자주자주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신사상으로 나타났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운동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적 역사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유대 민족주의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사실입니다. 독일의 게르만 민족주의가 유대인 600만 명을 죽인 엽기적인 인류의 살인마 역사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한국 교회를 잔멸하려 하였습니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 크메르 루즈 정권은 공산주의적 민족주의를 앞세워 1975년부터 1979년까지 3년 8개월 어간에 캄보디아 국민 1/3인 200만 명을 학살하였습니다. 그중에도 종교인, 교육지도자, 지식인, 경제인, 과학문명인을 완전히 학살하였습니다. 그리고 300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켰습니다.
원래 사회주의 국가(공산주의 국가)는 민족주의가 없습니다. 민족보다 절대우위에 있는 것이 칼 마르크스와 레닌주의입니다. 1848년의 공산당 선언에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사회주의 국가들 안에는 민족을 앞세우는 공산주의적 민족주의로 변색하고 있는 경향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민족’ 그 자체를 인정하고, 또 사랑합니다. 그리고 민족을 위하여 애족하고 애국합니다. 그러나 민족지상주의(民族至上主義)는 절대 반대합니다. 민족지상주의는 혈통이요, 육이요,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내 민족을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크리스천화 하는 사명을 띠고 민족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Ⅲ. 한국에 있어서의 기독교와 민족주의
한국의 민족정신, 민족주의 역사는 사실상 한일합방 이후 잃어 버린 나라와 역사를 찾자는 구국운동에서 찾게 됩니다. 빼앗겨 버린 조국의 역사와 문화, 땅과 주권을 찾아야 하겠다는 강한 구국정신은 바로 민족정신이고, 나아가 민족주의 운동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비운 가운데 한국의 기독교는 민족독립운동의 등불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뜻있는 정신적 지도자나 청년들이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교회는 자연히 한국의 우국지사들이 찾아야 할 정신적 보루가 되고 마음의 고향처럼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교회는 같은 민족으로서 잃어 버린 나라를 찾아야 된다는 점에서 일치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면은 나라 그 자체가 최고 가치가 아니고, 찾은 조국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교회가 주장하는 절대 가치였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안에서 민족과 나라만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이른바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가 되는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이중적인 가치관, 곧 이질성과 동질성입니다. 보이는 이 세상에서의 조국을 사랑하고 충성함은, 보이지 아니하는 신령한 그리스도 왕국을 전하고 섬기는 잠정적 수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한국 기독교는 이 ‘민족주의’의 성향에 대하여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미국과 소련이 개입되어 8·15 해방을 맞이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 결과 북한은 무신론적 유물사관에 기초한 공산주의를 국시(國是)로 하는 나라를 수립하고, 구소련과 동맹관계를 맺어 왔으며, 지금은 친 중국적 성향을 띤 동맹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삼고,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들과 국제적 유대관계를 맺고, 선진국 대열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
그 후에 우리는 김일성의 불법남침으로 인하여 6·25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아 반세기가 훨씬 넘는 기나긴 남북양단의 비극을 씹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노무현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족주의 감정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민족공조론’입니다. 이 민족공조론 사상은 민족주의에 그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그래서 60년 가까이 우리의 혈맹적 우방이었던 미국에 대한 반미운동의 성향이 두드러지고, 50년이 넘도록 적대관계에 있었던 북한은 같은 핏줄이라서 용서하고 공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체제야 어떻든 민족이 통일만 되면 된다는 성향들 같습니다. 그래서 과거 10여 년간 이 나라에서는 ‘간첩을 잡자’라거나 ‘반공하자’는 소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 이화여대 김용서 교수는 어떤 강의에서 “대한민국은 그간 이뤄놓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때늦은 ‘저항(抵抗) 민족주의 환상’에 몰입돼 낙후된 북한식 모델을 닮아가려 하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일본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인 구로다 가쓰히토 씨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 김일성 체제에 대한 비판도 함부로 못하게 됐다.”면서, 한국이 이렇게 된 이유를 ‘한국민족주의 발흥’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지난 월드컵을 통해 나타난 한국 민족주의 현상이 빈미촛불집회, 반미시위로 연결, 반미주의로 이어진 반면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라는 정서를 자극하여 체제적 이질감을 약화시킨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 되고, 그래서 민족이 동맹보다 우선이라는 정서가 만연하여 한미동맹이 흔들리게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몽골방문에서, 대북관계에 있어서 무조건적인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달 6월 말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북하여 남북관계에 대하여 협의가 되면 대통령은 ‘슬그머니’ 뒤따라 하겠다고 하는 발언을 하여 국민들에게 의아심과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한 ‘슬그머니 뒤따라 하겠다.’는 우스꽝스러운 말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우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6월 방북이 무엇입니까? 개인 자격으로 가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분의 논의는 그분 개인의 사안(私案)이 됩니다. 대통령 특사 자격입니까? 그렇다면 대통령은 그분에게 무슨 내용을 주어서 보냅니까? 적어도 이런 문제는 국민의 뜻을 합의 도출한 후에 따라와야 할 순서입니다.
2000년 6월,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사이에 이루어졌던 6·15선언이 무슨 복방망이처럼 우리의 사고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공동선언문 제1항에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제2항에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한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우선 이러한 합의는 우리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이나 제4조 통일조항에 어긋나는 불법이라고 법률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전 『월간 조선』 사장이었던 조갑제 씨는 “6·15 선언에 반영된 남측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그 뿌리는 김일성이 대남적화전략으로 만든 연방제”라고 하며, “6·15 선언에 담긴 남측의 연합제는 국가공식 통일방안이 아닌 김대중 개인의 무허가 친북통일방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다시 말하기를 “6·15 선언에 반영된 연방제(연합제)를 하자는 것은 민족사의 유일한 정통국가인 대한민국과 이단 세력인 북한정권을 동격으로 놓은 뒤 대한민국 영토의 반을 떼어내 민족반역자에게 넘겨주자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국가 반역이고, 민족 반역”이라고 하였습니다. 전 미주공사요 명지대 초빙교수인 송종환 교수는 ‘한맥토론회’ 강연을 통해 “북한은 지금까지 수령 유일 지배 체제를 유지한다는 ‘한반도 공산화’라는 대남전략에 전혀 변화가 없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6·15 공동선언 이후에도 북한의 남조선 혁명추진은 포기된 적이 없으며, 오히려 남한 당국에 대한 투쟁과 남한 내 교란을 위한 선전 선동은 보다 더 구체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어서 송 교수는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 강경이든 온건이든 간에 북한 수령 유일 체제와 남조선 공산화 통일 전략의 변화를 유도할 가능성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기독교와 민족주의에 대하여 소론(所論)하였습니다. 민족주의는 민족지상주의(民族至上主義)에 그 최고의 가치와 목적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역사상의 수많은 민족주의는 기독교를 대적하였습니다.
기독교는 민족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야말로 애국하고, 애족하고, 애민하고, 우국정신으로 민족과 나라를 사랑함에 있어서 언제나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 반면 민족주의가 그리스도 주의(主義)에 반대될 때 단연 ‘아니오!’를 하게 됩니다.
우리 정부가 내세우는 민족공조론은 결국 공산화 내지 좌경정부의 성향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자유민주주의 국시가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북한은 민족주의 정신보다 마르크스와 레닌주의가 국시입니다. 그래서 6·25 남침을 감행한 것입니다. 저들은 지금 남조선 공산화의 일환으로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서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자.’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사상적으로 양극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랜 우방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가 반미적 성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기독교는 마르크스와 레닌주의를 국시로 하는 무신론적 공산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공산주의 이념 실현을 위한 민족공조론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공산주의적 민족공조론 말입니다.
정말 열방이 분노하고,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고 있는 역사 앞에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에 7:3) 하는 에스더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민족주의나 공산주의에 뿌리를 박은 민족공조론을 경계하고 배격합시다. - 아 멘 -
출처/석원태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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