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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3.1절 설교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결단

by 【고동엽】 2022. 8. 24.

수6:15-21

오늘 본문의 내용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이집트의 압제와 학정 아래서 중노동에 시달리다 해방되어 40년간 광야를 지나는 고난의 행군 끝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른 이스라엘 민족이 그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관문인 여리고 성을 공략하여 성공한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여리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고고학적 조사는 이 도시가 주전 약 팔천년쯤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리고는 광야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로서 대단히 비옥한 지역에 건설되었습니다. 신34:3에서도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리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벽도시로서 잘 조직되고 번영하던 도시였습니다. 여리고는 방어체제가 뛰어난 성벽도시였습니다. 성벽의 어떤 곳은 그 두께가 무려 6미터 이상이었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신9:1). 성만 크고 견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 주민들도 모두 신장이 장대하고 강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스로를 그들 앞에서 메뚜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민13:28-33). 그래서 여리고는 공략불가의 성으로 여겨졌고 막강한 군사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여리고가 이스라엘 백성의 진군소식을 듣고는 단단히 방어태세에 돌입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여호수아 6장 첫 머리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리고성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무너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호수아나 이스라엘 백성이 초인적인 지략과 전투력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그 여리고 성 주위를 빙빙 돈 것뿐이었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순종한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바로 6:3-5에서 듣는 대로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했습니다(수6:10). 백성이 그 지시대로 했을 때 실제로 여리고 성의 성벽이 무너지며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하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본문 20-21절을 봅니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는 일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은 단지 말없이 성벽주위를 도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명령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본문 17-19절에 있는 대로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명령도 순종했습니다. 물론 이 명령에 대한 이스라엘의 순종은 완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곧 뒤따르는 7:1이 그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아간이라고 하는 자가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훔친 것이었습니다(7:21). 그러나 이 사실을 뒤집어 보면 아간 한 사람 빼고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자세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불가능할 것 같던 여리고 성 함락이라는 기적을 얻어내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결단과 희생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데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이라고는 그 성 주위를 돈 것밖에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한 자기희생을 치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슨 희생입니까? 그 부자 도성 여리고에서 물건 하나에도 손을 대지 않은 것입니다. 좋은 물건 하나라도 갖고 싶은 마음을 포기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전투를 해서 승리를 거두면 패자의 도성을 맘껏 노략질하는 것은 승자의 권리였습니다. 물건도 빼앗고 싶은 대로 빼앗고 사람을 죽이거나 자기 노예로 삼는 것도 자유였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에는 얼마나 탐나는 것들이 많았겠습니까? 게다가 이스라엘은 사십년간을 광야에서 이동하며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주셔서 굶지는 않았지만 무슨 호의호식을 해보았겠습니까? 사십년간 광야에서 땀과 흙먼지에 찌들대로 찌들었을 이스라엘 백성의 옷차림은 보나마나 거지떼들의 그것에 흡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종려나무 우거진 여리고 성에 들어와서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와 이백 세겔 되는 은덩이와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를 보고 눈이 뒤집힐 사람이 어찌 아간 한 사람뿐이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사람 아간 말고는 아무도 그 넘쳐나는 온갖 진귀한 물건들에 손 댈 생각을 안 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인 것입니다. 놀라운 자기포기인 것입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기까지 한 백성입니다. 그 무서운 정신력과 규율을 지닌 백성 앞에서 어떤 민족이 감히 상대가 되겠습니까?

   우리는 여리고 성 공략에 나선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또 다른 형태의 자기희생, 자기포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리고 성 주위를 빙빙 돈 일입니다. 사실 그 크고 견고한 여리고 성을 공격해야 할 군사들에게 있어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하루에 한 번씩 성 주위를 돌기만 하고 일곱 번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에 맞추어 소리만 지르라는 명령은 받아들이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것입니다. 제정신으로는 그대로 따라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합리적으로는 수용이 되지 않을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 말씀대로 행한 것은 엄청난 자기포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성적 사고의 희생이고 합리적 판단의 포기인 것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경험과 지식을 내던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 것입니다. 사람을 신뢰하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사람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역사를 목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만이 가졌던 힘이었습니다.

   오늘은 삼일절 기념주일입니다. 기독교 고유의 절기가 아닌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을 교회가 특별히 기념하며 지키는 것은 우리 민족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백성으로 믿기 때문이며 우리의 해방과 주권국가로서의 독립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를 하나님의 역사로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은 1910년 한일합병에 의해 나라를 완전히 잃기 전인 1905년 을사보호늑약의 체결로 외교권을 강탈당한 직후부터 의병을 조직하여 맹렬히 독립투쟁을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병력과 무장과 훈련에 있어서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압도적으로 우월했던 일본 군대와 경찰의 가혹한 공격과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만 내고 말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의 종료 후 패전국들의 식민지 처리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주장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고무된 애국지사들이 1919년 3월 3일에 예정된 고종황제의 장례식에 참례하러 전국에서 서울로 사람들이 모여오는 것을 이용하여 대규모 비폭력 군중시위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3월 1일에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서울과 주요 지방도시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군중시위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시위는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지만 일제의 무자비한 무력진압으로 그 목적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독립운동은 보다 조직적인 무력항전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임시정부를 세우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역량으로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절대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해방과 독립은 일본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다른 강대국들의 힘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옛 이스라엘 앞의 여리고 성같이 크고 견고하며 공격불가였던 일본제국이 무너진 것을 교회는 우리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로 보기 때문에 오늘을 삼일절 기념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해방과 독립을 하나님의 역사로 본다면 우리는 또한 여리고 성을 공략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준 믿음과 순종, 자기희생과 자기포기를 함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의 생각과 계산과 판단을 더 앞세우며, 자기의 편안함과 이익과 탐욕을 포기할 줄 모르고서는 우리나라가 부강하고 번영하며 우리 민족이 행복하게 평화를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이 번영하기 위해서는 결단하고 희생할 줄 아는 지도자와 국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여호수아와 그를 믿고 따른 이스라엘 백성 같이 되어야 합니다. 지도자와 국민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와 이백 세겔 되는 은덩이와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앞에서도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22일 목요일에 사학법 재개정을 위한 한국교회 총궐기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삼일절을 앞두고 88년 전 일제의 탄압에 맞서 우리 선조들이 궐기하던 심정으로 모였습니다. 일제보다 더 악랄하게 사립학교를 옥죄고 기독교의 선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한 세력과 그들이 개정한 사악한 법을 무너뜨리기 위해 교회가 일어난 것입니다. 150명에 달하는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삭발까지 단행하며 사학법의 재개정을 요구했지만 여리고 성처럼 완강하고 요지부동으로 이를 무시하며 외면하는 정부와 여당입니다. “교회가 그렇게 떠들고 시위 좀 한다고 저 완악한 정부여당이 사학법을 개정할 것 같으냐?”고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여당의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했던 것처럼 사학법에 관해 논의를 하자면 회의도 열지 않고 도망 다니기 바쁘다고 합니다. 교회지도자들이 국회로 예방을 해도 만나주지도 않고 문도 열어주지 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일어서서 싸우는 것입니다. 저들이 아무리 사학법 재개정의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여실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 여리고 성의 역사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으로 기적 같은 승리를 얻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 목요일에도 가두시위와 집회 신청을 냈지만 그날 경찰의 강경한 대처로 우리는 국회나 청와대는 고사하고 시청 앞까지도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소수로 제한된 시위대와, 차도가 아닌 인도를 통한 시위와, 침묵의 행진과, 인권위원회 건물 앞까지만 진출하는 것이 경찰과의 줄다리기 협상 끝에 겨우 허락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행진했습니다. 여리고 성을 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심정을 안고 행진한 것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침묵하며 행진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했던 것처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침묵시위 끝에 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다함께 사학법 재개정을 촉구하는 구호를 힘껏 외친 후 기도하고 마쳤습니다. 제사장들의 나팔소리에 맞추어 이스라엘 백성이 외쳤듯이 외친 것입니다. 그리고 개정사학법이 무너지는 일은 하나님의 손에 의탁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만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무너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정사학법은 가나안 족속들처럼 하나님께 맞서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의 자유와 선교의 자유를 말살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우상도 함께 섬기도록 강요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도록 맡기신 사유재산을 강탈하려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백성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려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법은 서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법을 만든 자들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그의 부르심을 따라 우리는 일어나 싸워야 합니다.

   이번 기도회에서도 100여명의 교회지도자들이 또 삭발을 했습니다. 우리 교인 중에서도 원로장로님 한 분과 여집사님 한 분과 교역자 열다섯 분이 삭발에 동참했습니다. 기독교인이 삭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교인들 앞에 서야 하고 강단에 서야 하며 예전을 집례해야 할 교역자가 삭발하는 것은 많은 불편과 볼썽사나움과 부끄러움을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대의를 위해 체면과 보기 좋은 외모를 얼마간 포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분들이 삭발하는 동안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서글픈 현실 때문에 쉬지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얼마나 마음으로 이들을 고마워하며 자랑스러워했는지 모릅니다. 한국의 어머니교회의 젊은 교역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어려운 결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감사했던 것입니다. 또 수많은 우리 교우들이 그날뿐 아니라 매주 목요일 기도회에 참석해서 뜨겁게 기도의 손길을 모아주셨음에 얼마나 감사하며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삼일구국운동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치르는 첫 전쟁입니다. 개정사학법이 무너지며 이 가나안 복지국가로의 진입의 관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새롭게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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