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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스티브 소오여 이야기 By Steve Sawyer [출처보기 ]
이 글은 대학생 스티브 소오여가 소천하기 얼마전에
대학교에서 쓴 자기 간증문을 한글로 대강 번역한 것이다.
그는 수혈 사고로 에이즈에 걸린 후,
죽기 전까지 캠퍼스를 돌면서 '한 학교라도 더!' 전도하다가 주님 곁으로 갔다.
여러분, 우리가 어줍잖케 보내기 쉬운 하루 하루는
죽음을 앞둔 스티브 소오여가
'하루라도 더, 한 캠퍼스라도 더!' 전도하기 간절히 원했던
매우 소중한 하루였다.
◑환경을 탓하지 말고, 나를 바꾸어야!
▶내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
메인 주 근처 해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군함 한 척이 안개가 자욱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 밤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그 밤에, 한 불빛이 그 군함 정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선장은 즉시 ‘깜박이 신호’를 통해,
군함으로 마주 다가오는 배에게 즉시 진로를 바꾸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마주 오는 불빛으로부터 ‘깜박이 응답’이 왔다.
네가 진로를 바꾸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 한 차례 더 반복되었다.
이제 서로 교신할 시간은 한 번 밖에 남지 않았다.
선장은 직접 신호를 보냈다.
“나는 미국 군함의 선장이다. 너는 즉시 항로를 변경하라!”
그러자 상대편에서 이런 응답이 왔다.
“아니오, 당신이 빨리 항로를 바꾸라. 여기는 등대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고통과 어려움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력을 준다.
우리는 마치 군함의 선장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달라지기를 원한다.
실제로는 내가 변해야, 그 어려움이 해결될 터인데 말이다.
<내가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려운 고난의 환경(HIV, 혈우병, 간염 등)이 내게서 떠나가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암초 위의 등대처럼, 그 불치병들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주먹으로 벽을 치는... 괴로운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 드디어 '내가' 진로를 바꾸었다. (예수님께로 향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삶에 참 평안을 찾게 되었는데...
◑부인, 인정, 비난, 격정
▶나는 날 때부터 혈우병을 갖고 태어났다.
그 병은 이유 없이 내 뼈와 관절을 부풀어 오르게 했고, 그 부분이 몹시 아팠다.
그래서 수혈을 통해, 남의 피에서 단백질을 공급받아야 했었는데,
어느날 감염된 피가 내게 수혈되어, HIV와 C형 간염 등을 덤으로 더 얻게 되었다.
내가 언제 HIV에 감염되었는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너무 많은 수혈을 받았기 때문에, 공급처가 정확하게 어딘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시절인 1980~83년 사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1. 부인
사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 내가 HIV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
(HIV는 에이즈 바이러스인데, 발병상태는 에이즈, 잠복기는 HIV로 구분한다.)
아마 병원과 부모님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아직 너무 어려서 그랬던 것 같다.
이 사실을 통보받았을 때, 나는 여느 사람이 하는 것처럼, 그 사실을 부인했다.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HIV는 잠복기에 별 다른 외적 증상이나 통증이 없다.
(그러나 혈우병 증세로 뼈와 관절이 부어오를 땐, 무척 아팠다.)
어쩌면 내 마음은 그 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도 그랬다. “너는 좋아 보여, 너는 정상이야, 너는 괜찮아!”
▶2. 인정과 비난
그러나 언제까지 부인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문구용 칼로 손끝을 베는 것도 조심해야 했었다. (에이즈는 면역 결핍)
또한 자칫 잘못하면 에이즈를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감염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인정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내가 내 상태를 인정하면서 나타난 제일 초기 반응은 [비난]이었다.
정말 누가 나타나 내게 “미안해, 그건 내 실수였어!” 이렇게 사과라도 한다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동성연애자들 전체를 무조건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비난했다.
▶3. 격정과 폭발
비난이 거세어지면, 화를 내면서 발작하게 된다.
비난은 말로만 하는 것이지만, 그 다음 단계는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차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더욱 미쳐가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아무 사소한 일이라도 누가 나를 건드리기만 하면,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방 안 물건들을 부수면서, 울분을 폭발해버린다.
그런데,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마음 속 흑암의 구름은 더욱 짙어진다. 더 절망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사람은 이성을 잃게 되고,
자기 혼자 감당하면 될 고통을, 가족들까지 함께 아프게 느끼도록 만든다.
나는 차라리 울어버리는 것이, 격정을 폭발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혼자 어디 가서 울어버리면, 가족이나 친구들을 아프게 하지 않을뿐더러
울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개운해 지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를 만나다
▶필요에 의한 거래
하루는 내가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은 상태에서 내 방에 쳐 박혀 있었다.
몸에 통증이 심했고, 체중은 놀라울 정도로 감소되었다.
나는 벽을 치면서 울부짖기도 하고, 하나님께 욕설을 퍼붓기도 해 보았다.
보다 못해 아빠가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아빠는 등 뒤로 문을 닫으셨다.
“스티브야, 아빠가 네게 지금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는 것, 잘 알지?
의사도 너를 도울 수는 없단다.
엄마도 마찬가지고, 너도 네게 도움을 줄 수는 없어!
이제 네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는 안 계셔!”
그 말만 마치고 아빠는 방을 나가셨다.
내가 조금 직전까지 하나님을 욕하다가, 이제 다른 초이스가 없었다.
아빠 말이 맞았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말했다.
“좋습니다. 하나님, 만약 당신이 천국에 정말 살아계시면, 저를 좀 도와주세요!
그러면 저도 주님을 도와드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런데 그 후 신기한 일이 내게 일어났다.
빠졌던 내 체중이 빠른 시일 내로 다시 회복되는 것이었다.
혈액 중의 T세포 수치도 올라갔다. 좋은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내가 전적으로 내 삶을 아직 주께 헌신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 감사해요! 좋았어요! 굿 바이!” (헤어지는 인사)
▶고마운 친구
그러다가 나는 대학에 진학했는데, 거기서 정말 놀라운 기숙사 룸메이트를 만났다.
그는 헌신된 크리스천이었다.
내가 그 친구를 만나기 전에 가졌던 ‘크리스천’에 대한 이미지는
‘겉으로만 경건하지만 속으론 속물이며, 남에게 도움을 베풀지만 오만하며,
남을 정죄하기 잘하는’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그런데 내 룸메이트(이하 친구)는 달랐다.
나는 그 친구를 통해 복음을 듣게 되었다.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죄인을 거저 용서해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 일은, 친구와 내가 바닷가에 놀러가서
친구가 거기서 만난 어떤 낯선 청년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나는 그 곁에서 끼어서 복음을 들을 때 일어났다.
그리고 친구가 그 낯선 청년에게 영접기도를 인도하는데,
나도 끼어서 내 마음 속으로 그 영접기도를 따라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내 삶은 전혀 새로운 시각perspective을 갖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나는 잘 때, ‘다음 날 내가 살아서 깰까?’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어떤 컴컴함 속에서 영원히 지내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충만한 곳에서 영원히 지내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 때 당시, 우리 부모님도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아마 나 때문에 많이 괴로움을 겪으시고, 기도하시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은 내가 약 6개월 정도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를 멀리 떨어진 대학 기숙사에 보내시는 용기가 있었다.
여러분, 자기 자녀가 불치병으로 죽어 가는데,
부모가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임을 깨달을 때,
그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그 부모심정... 얼마나 무너지겠는가?
그렇다. 인간은 여러 면에서 무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은, 오직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뿐이다.
◑한 학교라도 더! 복음전파자의 삶을 살다
▶전도 초청
이 강당에 모인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 에이즈 치료법을 알고 있다면, 나 같은 환자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내 앞에서 가만히 입 닫고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람이 죄를 용서받고, 영생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곳에 찾아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다.
여러분, 살다보면, 사람이 자기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난다.
그 때 주저 말고 주님을 찾으시기 바란다.
벽을 치고, 원망하고, 격노하고, 울지 마시라!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에 영접하는 기도를, 지금 나를 따라 해 주시기 바란다...
당신이 정말 신실한 마음으로 이 기도를 드렸다면,
이제 당신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이제 이 관계는 매일 성장되어야 한다... (요지만 요약했음)
▶한 학교라도 더!
자기의 최후가 점점 가까워오자,
스티브 소요여가 그 마지막 소중한 시간들에 가장 원한 것은
“한 학교라도 더! just one more campus!”였다.
그렇다. 스티브 소오여가 어쩌면 그런 불치병을 아무 이유 없이 얻게 된 것도,
그를 캠퍼스 복음전파자로 불러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는지도 모른다.
캠퍼스를 다니며, 버려진 영혼들을 구하시려고,
하나님은 그에게, 남들이 가지 못하는 어려운 인생항로를 걷게 하셨다.
(만약 그에게 밀어닥친 엄청난 고난이 없었더라면
복음 전파자는커녕, 자신도 죄 가운데 살다가, 죄인으로서 자기 인생을
영원히 마감했을 가능성이 크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에게 밀어닥친 불치병의 큰 고난의 십자가는...
도리어 그에게 영광의 십자가였다.)
이 사실을 깨달은 스티브 소오여는,
“한 학교라도 더!”를 외치면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고 필사적으로 살다가>
1999년 3월 13일에 주님 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여러분, 우리가 헛되이 탄식하며 원망하며 보내는 하루하루는
스티브 소오여 같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했던 ‘하루라도 더!’였다.
그런 하나님나라를 위한 열심과 은혜가, 여러분께 동일하게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 언젠가 우리도 스티브 소오여처럼, 인생을 마감할 때가 찾아온다. 별반 다르지 않다.
그 때 좀 더 맛있는 것 찾다가 죽을 것인가? 좀 더 여행 많이 하다가 죽을 것인가?
아니다. 좀 더 헌신하고, 좀 더 영광 돌리고 죽을 것이다. 좀 더 전도하고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젊어서, 지금부터 해야되지 않겠는가! 죽기 직전에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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