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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과연 살아나셨느니라

by 【고동엽】 2022. 8. 15.
 
부활 목차 돌아가기
 

누가복음 24:13-35


한국 교회의 역사는 부활절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제물포 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배에서 내려 한국 땅에 입을 맞추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의 사슬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들어온 복음은 이 땅을 새롭게 변화시켜나갔습니다. 복음을 통해 민족의 지도자들은 사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역사의 암흑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 땅에 애국 애족의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절은 한국 땅에 축복을 가져다준 날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영생의 문을 열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영원한 희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지난 한 주간 동안 매일 새벽 기도회를 통해 십자가의 사건을 묵상하였습니다. 저는 금번 한 주간 동안 고난 주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축제의 절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그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고난 주간을 무턱대고 슬프게만 보낼 것이 아니더란 말입니다. 물론 금식도 하고, 오락을 삼가고, 유흥과 사치를 떠나 경건하게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가슴속에서는 기쁨의 찬송이 흘러나오는 절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에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실의와 낙심에 빠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실의에 빠진 제자들

오늘 본문에 엠마오를 향해 가는 두 제자는 지금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17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더라"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들 곁에 있는 줄도 모르고 예수님을 향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고 기대했던 나사렛 예수가 대 제사장과 관원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그 일이 있은 지 벌써 사흘이나 되었는데 당신은 예루살렘에 살면서 그것도 모릅니까?"라고 따지듯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슬픔과 충격이 너무 크면 앞이 캄캄해진다고 합니다. 이 말은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를 않을 만큼 큰 충격과 슬픔에 빠져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기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3년간을 동거동락하며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엄청난 능력들을 직접 목격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병든 자가 치유함을 받고, 소경이 보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으며, 벙어리가 입을 열어 말을 하고, 악령이 떠나가며, 죽은자가 살아나는 등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제는 이 민족이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며, 간사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에서도 벗어나 참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자신들의 옷을 길에 깔아주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환영할 때는 이제 금방이라도 주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3년간을 함께 다닌 특권으로 그분이 세우시는 메시아 왕국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리라는 기대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닷새도 못되어 대 제사장과 로마의 군사들에 의해 붙잡히시더니 말 한마디 못하고 매를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에 맞으시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재판을 받아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으셨습니다. 비록 제자들은 저 살겠다고 모두 도망을 쳤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은 제자들에게는 너무나 큰 슬픔과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만 제자들이 아픔을 겪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①주님의 말씀을 잊었기 때문입니다(18-21).

예수님께서는 이미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 여러 차례에 걸쳐서 당신께서 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는지를 제자들에게 상세하게 일러 주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마태복음 16: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태복음 20:17-1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주어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마가복음 8:31, 마가복음 9:31, 마가복음 10:32-34, 누가복음 9:22, 누가복음 18:31-33 등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당신이 당할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자들은 그 말씀은 하나도 기억하고 있지 못합니다. 지금 막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는데,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아픔을 겪는 이유임과 동시에 우리들이 실패하고 낙심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설교 시간이나 성경을 읽으면서 그 약속들을 듣고 받습니다. 그러나 막상 삶에 위기가 오고 고통이 오면 그 때 들었던 말씀들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속에 말씀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말씀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듣기는 들어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 삶 속에서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상 위기가 닥치고 고난이 오면 앞이 캄캄해지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을 건성으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고 겸손하게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게 될 것입니다.


②제자들이 아픔을 겪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불신앙 때문입니다(22-24).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처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불신앙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1절과 22절입니다.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먼저 그들은 시체도 보지 못하고 그냥 천사들이 전해준 말만 듣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이야기하는 여인들의 증언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천사가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헛것을 보고 와서는 공연히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그래도 확인해보고 싶었는지 제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의 말대로 무덤은 열려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누가 없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보지 못했으니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증거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찌 보지도 못하고 믿느냐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했으니 믿을 수가 없다는 제자들의 반응은 오늘날 우리의 이성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옹호하고 싶습니다. 제자들이 이해가 됩니다. 부활이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납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이해되는 것만 믿으려고 합니다.

서울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님이 쓴 칼럼 중 어느 교수의 고백 한 토막입니다. 그는 부모의 교회 생활을 전승한 이른바 출석 교인이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출석은 하지만 예배가 낯설고, 설교가 공상 과학쯤으로 들려 유치했지만 부인과 아이들의 강요로 교회 뒷전 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 들락거리는 교인이었습니다. 특히 그 가운데 기독교가 내세우는 가장 큰 진리인 예수님의 부활, 죽은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을 들을 때에는 메스꺼움을 느낄 만큼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시한부 인생들에게나 위로 삼아 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뇌종양 판결을 받고 수술을 했으나 회복을 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큰딸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어머니의 시신을 부둥켜안은 채 통곡하는 남매를 달랠 언어도 대사도 각본도 없었습니다. 망연자실한 채 훌쩍 떠나간 아내의 관 앞에서 아무런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관식을 끝내고 아내의 관 위에 한 줌의 흙을 던지던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영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은 있어야 한다" "영생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밖에는 더 이상 현실에 처한 슬픔을 달랠 어떤 소망도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 그는 진정한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부활의 증거를 보여 달라는 도마에게 손과 발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시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 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고 하셨습니다. 25절과 26절의 말씀을 보면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책망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증언과 믿음의 선진들이 증언을 통해 그리고 역사의 증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 우리 곁에 계십니다. 오늘 이 아침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영원한 산 소망이 될 줄로 믿습니다. 더디 믿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속히 깨닫고는 믿음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말씀을 잊어버리고 믿음이 없는 제자들에게 모세로부터 모든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초청을 받아 들어가 축사하시면서 떡을 떼어 그들에게 주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예수님이 곁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예수님의 모습은 다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가슴 뜨거운 감동이 넘쳐 났습니다. 믿어지지 않았던 예수님의 부활이 가슴으로부터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즉시 일어나 자신들과 똑같이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제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주께서 과연 살아나셔서 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라고 서로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실을 증거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의 설교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간곡히 부탁하신 말씀은 바로 부활의 사건을 증거 하라는 것입니다.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그는 성경의 약속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이 사실을 온 천하에 전파하는 일을 위해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 두신 것입니다. 46절에서 48절의 말씀을 보면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라" 따라 합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라" "너희는 부활의 증인이라" 땅 끝까지 우리 모두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본적이 없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깨어진 다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로 말미암아 세상은 변화되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부활절에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분명히 복 받은 나라입니다. 구별된 나라입니다. 영원히 쓰러지지 않는 민족임을 주님이 선언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굳게 지키고 자손만대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축복의 미래를 소망하시는 1999년의 부활절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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